0011 / 0271 ----------------------------------------------
닌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은 처음에는 설레는 일이었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출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갑판도 흔들흔들, 신유성을 멀미를 하다가 급기야 토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더 나올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을 했다. 쓰러진 신유성은 바닥의 흔들림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행여 신유성이 잘못될까 싶어서였다.
신유성을 따라온 매화는 그런 신유성이 곁에 꼭 붙어있었다.
“안 어지럽냐?”
도리도리.
매화는 멀쩡했다. 신유성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같이 배에 탄 나츠의 위로였다.
‘얼른 갔으면 좋겠지만 이런 시간이 의외로 안 간단 말이지.’
고통스러운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몸은 정말 싫다.’
얼른 크고 싶었다. 물론 얼른 큰다고 멀미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신유성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부산포에서 대마도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신유성은 안도했다.
‘흔들리지 않아.’
저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그리고 땅에 이마를 댔다. 대지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신유성이었다.
“아아! 정말 고마운 땅이로다! 땅은 은혜롭다!”
신유성과 함께 배를 탔던 이들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멀미 때문에 고생했기에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허나, 마중을 나왔던 이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모르니 신유성이 대마도를 칭찬하는 것으로 들은 것이다.
“얼른 가자.”
요시시게는 피식거리며 신유성을 재촉했다.
대마도주의 저택.
당주인 소 하루야스는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어디까지 왔다고?”
“곧 온다고 합니다.”
아들 요시시게의 보고를 받았을 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학문이 뛰어난 것은 물론 무예에 대한 소질도 상당하다는 얘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요시시게의 조언대로 양녀를 들여 보내주었다.
“허허.”
그러나 가장 결정적으로 하루야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바로 암살자의 공격을 피한 일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냥 죽는 줄 알았다.
어린 아이가 암살자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거의 근접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피하고 살아남았다는 말에 하루야스는 살짝 전율했다.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감이 온 것이었다.
여기에 스스로 유학을 오겠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호감이 더해지니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더구나 잘하면 대단한 인물이 자신의 사위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 문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래, 어서 보자.”
하루야스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대마도주의 집답게 매우 넓었다. 차가운 마루을 딛고 안으로 향하니 문이 열렸다.
“여기서 기다려 주시죠.”
대기하던 무사의 지시에 따라 신유성은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야스가 나타났다.
“왔군. 하하하. 정말 잘 왔네.”
처음 보자마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하루야스는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신유성이라 합니다.”
“그래,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당분간 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타다 보면 익숙해 질 것이다.”
첫 인상이 마음에 든 하루야스는 계속 호의적이었다. 신유성의 말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자란 아이 같았다.
‘정말 조선에서 자랐다니 믿어지질 않아.’
아버지가 역관이기에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을 받았을 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쉬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이제 대마도에 왔으니 살펴 볼 시간은 충분히 많았다. 하루야스는 신유성을 쉬도록 놔주었다.
방으로 돌아온 신유성은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앞으로 제가 호위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정체는 코가 마을 출신인 사사키 신페이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른스러운 대응에 신페이는 잠깐이나마 품었던 의문을 접었다. 어린 아이를 호위하라고 해서 뭔가 호들갑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신유성은 보통 아이와는 달랐다.
‘더 지나면 얼마나 클까?’
나이에 비해 상당히 큰 신유성이었다. 여기에 어른스러운 말투와 행동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호위까지 생기자 신유성은 다시 하루야스와 대면하게 되었다. 그냥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식사로 나온 것은 튀긴 어묵이었다.
“이것 참 맛있단 말이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질 않아.”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칭찬을 했지만 신유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 또한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무엇을 배울 생각인가?”
“이 나라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려고 왔으니까요.”
“별로 배울 것이 없지 않나?”
“제가 천하를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어찌 배울 것이 없겠습니까?”
“하하, 그런가?”
하루야스는 흡족해했다. 사실 신유성의 대답은 하루야스의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답이었다.
‘일단 상대를 추켜 세워준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상대의 호감을 받길 원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성공하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일단 대마도주의 호의를 사놓으면 도움이 되겠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지루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식사가 끝나고 신유성은 조용히 물러났다.
며칠 동안은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식사 때마다 신유성은 하루야스와 식사했다. 같이 밥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니 친분이 더욱 돈독해졌다.
친분이 돈독해진 것은 신유성과 하루야스만이 아니었다.
매화와 차돌 또한 친한 사람들이 생겼다.
매화는 사사키 신페이의 동생인 레이와 친해졌다. 방이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리고 차돌은 신페이와 친해졌다.
항상 신유성과 붙어 다니다보니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간단하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적응이 끝난 신유성은 슬슬 다음 일을 꾸몄다.
‘뭐가 좋을까?’
대마도주의 호의는 끌어냈다. 하지만 호의만으로 대마도를 먹을 순 없었다. 요시시게도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신유성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끝까지 지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죽음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란 것은 지배를 당하는 사람들이 따르기로 결정할 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왕이 되려면 이들이 나를 믿고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말로는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무척 어려웠다.
‘조금 뛰어난 정도로는 안 돼. 이들이 따르고 싶어 하게 만들어야 해.’
난세에 가장 잘 통하는 것은 바로 난세를 평정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이 명분에 이끌리는 이들은 명분을 세운 사람이 강한 힘을 가졌다고 판단할 경우 따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따를 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기회를 잡아야 했다.
신유성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일본에 존재하는 영주들의 이름과 지명을 모조리 외웠다. 그리고 다음 날,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다케다 하루노부.’
훗날 다케다 신겐으로 알려질 남자의 정보를 보고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싸우긴 정말 잘 싸우네.’
그 뒤를 이어 주목하게 된 것은 모리 모토나리.
오우치라는 막강한 가문과 자웅을 겨룬 아마고 쓰네히사란 인물이 경계한 남자였다. 신유성이 요시시게를 통해 접한 정보에는 요주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호조 우지야스.’
그리고 중요한 인물 호조 우지야스. 상당한 능력을 보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 공부하게 된 신유성의 시선은 북해도로 향했다.
‘아무도 없다.’
사람이 안 사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은 분명 살고 있었다. 하지만 막부에서는 북해도에는 영주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었다.
‘여긴 내가 먹어도 되겠어.’
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닌자가 필요해.’
정보는 힘이었다. 신유성은 한쪽에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신페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닌자 마을 출신이라고 했지.’
처음 닌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유성은 어떤 유명한 닌자 만화를 떠올렸었다. 하지만 만화는 만화. 현실은 많이 달랐다.
전국시대의 닌자는 정보중개인에 가까웠다.
전쟁을 하는 영주들은 정보를 원했다. 닌자들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집단이었다. 전란으로 인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이 많았다. 떠도는 이들 중에는 무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전쟁을 통해 생을 이어가는 직업을 얻게 된 것이 바로 닌자였다.
영주들이 직접 손을 쓸 수 없는 더러운 일에 이용되기도 했다.
‘정보는 힘이다.’
때문에 신유성은 닌자를 우선 손에 넣기로 마음먹었다.
목표를 정한 신유성은 바로 움직였다.
“오늘은 요리를 할 겁니다.”
“요리요?”
신유성의 뜬금없는 행동에 신페이는 멍해졌다.
‘유학을 왔다더니 갑자기 무슨 요리인가? 어린 아이라 종잡을 수가 없구나.’
신페이는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신유성이 자신을 포섭하려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신유성은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요리인들이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켜라.”
부엌으로 들어서기 전 신페이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요리인들을 한쪽 구석으로 치웠다.
“칼을 잡지 마라. 벤다.”
신유성의 호위를 맡고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요리인들이 암살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신페이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요리인들은 높은 인물의 행차라 생각하고 순순히 따랐다. 아랫사람이 무사 계급에 반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사에게는 일반 백성을 벨 수 있는 생사여탈권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베어버려도 일반 백성은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신페이는 닌자였지만 호위가 되며 다시 무사로 올라섰다. 그러니 요리인들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마도주를 위해 일하는 요리인이라고는 하나 무사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기 때문이었다. 대립해봐야 요리인만 손해였다.
요리인들이 한쪽에 서서 구경하는 동안 신유성은 움직였다.
‘임연수어구나. 좋다.’
맛 좋은 생선이었다. 신유성은 간단하게 임연수어를 다듬고는 녹말가루를 묻히고 기름을 두른 넓은 철판에 튀겨냈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임연수어가 익었다.
‘이것만 하면 좀 그렇지.’
뼈를 발라낸 뒤 잘게 썰어 녹말을 묻혀 끓는 기름에 튀겨내기도 했다. 이후 간장과 야채로 만든 양념을 살짝 뿌려주었다.
순식간에 두 가지 요리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순수하게 튀기기만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념을 곁들인 것.
“사사키씨도 드시죠.”
하얀 밥과 튀긴 임연수어. 곁에서 지켜보던 신페이는 생선이 익는 소리가 이렇게 맛있게 들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익으면서 퍼진 향기는 입에 침이 고이게 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신유성이 내미는 밥그릇을 받아먹었다.
“음!”
하얀 밥을 씹다가 튀긴 임연수어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입안에 가득 퍼지는 맛이란!
‘세상에 이게 생선인가?’
생전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신페이의 손은 무척이나 빨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손이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안 좋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여동생 생각이 나서.”
“그럼 여동생도 함께 먹도록 하죠. 얼른 불러오세요.”
신유성은 넉넉하게 튀기기 시작했다. 이후 신페이의 동생인 레이는 임연수어 튀김을 먹고는 눈물까지 흘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맛있는 것을 준 신유성에게 감사했다.
“다음에 또 같이 먹죠.”
단순한 말이었으나 신페이와 레이의 마음 속에 호감이 엄청나게 빠르게 자랐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