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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임진왜란에 대한 지식이 떠올랐다. 서양으로부터 총을 입수한 일본이 결국 총을 들고 쳐들어 온 전쟁. 일본군이 총만 가지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검도 쓰고 창도 쓰고 쓸 건 다 썼다. 하지만 조총병은 조선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이건 기회?’
조선에서는 화기에 접근할 수 없었다. 신유성의 신분으로는 화약 근처에 가는 것도 무리였다. 잘못하다가는 잡혀가기 딱 좋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전쟁 때문에 통제가 상당히 느슨했다. 영주의 말이 곧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주가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신유성은 대마도주는 물론 오우치 가문의 당주에게 큰 호감을 사고 있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요시타카와의 대면이 끝나자 신유성은 신페이를 불렀다.
“사사키씨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정보를 좀 구하고 싶습니다.”
의뢰라는 것을 들은 순간 신페이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무엇이 알고 싶으신 겁니까?”
“남만인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남만인이라면 그 이상하게 생긴 놈들 말씀이십니까?”
“네, 그들에 대한 것이 알고 싶습니다.”
사사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순히 호기심을 표하는 수준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군요.”
“알아봐 주시면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의는 거절하지 않는 사사키였다.
신유성은 계획과 달리 곧바로 대마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요리에 대해 궁금하다며 더 배우겠다고 하니 요시타카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호감을 사기 위해 접근했다.
카스테라를 만드는 것은 금방 배웠다. 만드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재료 조달이었다. 설탕이 들어가야 하는데 설탕은 무척이나 귀한 것이어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허나 신유성은 카스테라에 대한 관심은 곧 접었다.
‘빵 보단 총!’
총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남만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요상하게 생긴 녀석들이죠. 말도 이상하고. 그래서 그런지 신기한 물건도 많이 가지고 있었죠.”
“신기한 물건요?”
“여기 와 보시죠.”
안내를 받아 간 곳에는 요시타카가 수집한 물건이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있다!’
여러 가지 잡화들 사이에 놓여있는 길쭉한 물건, 화승총이었다.
“이건?”
“아, 그건 철포라는 겁니다.”
“철포요?”
이미 아는 물건이었지만 모르는 척.
“뭐에 쓰는 물건입니까?”
“보여드리죠.”
시범은 간단했다. 무사 한 명이 멀리 있는 표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총성이 울리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멀리 있던 표적에는 총알이 명중했다.
“놀랍군요.”
미국 유학생으로 지내며 사격장까지 가 본 신유성에겐 화승총은 그야말로 구닥다리였다. 그러나 놀란 척했다. 안 놀라면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자 한 번 싸보라며 장전해주었다.
‘좀 무겁네.’
하지만 신유성이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에 불을 붙이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불이 붙은 심지가 움직여 화약 접시로 떨어졌다. 화약으로 인해 총 안에 폭발이 일어났고 총알이 발사되었다.
“쿨럭.”
매캐한 연기에 기침을 하자 주변에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거, 하나 갖고 싶네요. 나중에 사냥할 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하나 구해드리죠.”
“남만인들이 판 것이 더 있나요?”
“그건 아니고 우리도 이걸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신유성은 의아했다.
“이게 신기한 건 알지만 만들 필요까지 있나요? 그냥 신기할 뿐인데?”
“활보다 더 뛰어나다고 지금은 말하기 힘들지만 장점은 있죠.”
활보다 총이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중에 가면 활을 우습게 보는 무기로 성장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머나먼 이야기였다. 정밀하게 똑같은 크기의 부품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공장을 갖출 수 있을 때나 가능했다.
“이걸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한데.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기밀이었다. 신유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안 가르쳐주면 빼내지 뭐.’
신유성은 닌자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페이를 통해 의뢰를 받은 코가 닌자들이 움직였다. 남만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표류해왔던 포르투갈 선원이었던가.’
시작은 표류 선원. 그 뒤에는 명나라까지 왔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그렇군.’
남만인으로 불리는 포루투갈 상인들의 거래에는 문제가 있었다.
철포와 화약 그리고 향료 등을 팔면서 받아간 대금에는 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도 있었다.
‘돈이 없으니 여자로 준다?’
제대로 질서가 선 국가였다면 하기 힘든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전쟁 중이었다. 전쟁 중에 잡힌 적지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더구나 전쟁으로 남자가 많이 죽었으니 기댈 곳 없는 여자들의 수도 상당했다.
‘어휴.’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부터 노비를 부리는데 뭐라 할 건 아니지.’
매화와 차돌은 노비였다. 함부로 하지는 않지만 역시 인간을 노비로 부리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하는 건 위선이야.’
때문에 신유성은 애써 끓어올랐던 부정적인 감정을 식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머리가 차가워지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사사키는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
떠오른 질문은 바로 물어보았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성을 어떻게 할지는 오로지 영주의 몫입니다.”
무사 집안 출신인 신페이에게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평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던 무사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닌자로 살기는 했지만 다시 대마도주의 아래에서 무사가 되었다.
‘이용해 먹기는 힘들겠네.’
신유성은 신페이가 분노한다면 외국에 여자를 팔아먹는 영주들을 성토하는 명분 중 하나로 삼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신페이부터 큰 거부감이 없었으니 써먹기는 힘들어 보였다.
‘좀 더 두고 봐야겠구나.’
여자들에 대한 생각을 접은 신유성은 다시 정보를 살폈다. 그러나 다른 정보는 종교적인 이야기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사사키씨. 부탁이 또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여기 나온 철포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한 번 쏴봤는데 저도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건 영주들의 기밀이라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안 된다고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어렵다고 할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해주시겠습니까?”
“돈이 좀 많이 듭니다.”
“제게 배가 한 척 있습니다. 아시죠?”
끄덕. 신페이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와주신다면 나중에 배를 팔아서라도 사례하죠.”
“정확히 어떤 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철포를 만드는 방법을 아는 장인을 얻고 싶네요.”
“시간을 단축시키면 돈이 많이 들 겁니다.”
“조금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다. 확실하게 협조할 장인을 구해주세요.”
“알아보겠습니다.”
신페이는 코가 마을에 연락을 넣었다.
“누가 할 거냐?”
코가 마을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신유성의 의뢰 때문이었다.
“가면 뭐가 좋습니까?”
“닌자 일에서 빼준다.”
그러자 몇 명이 갈등했다. 닌자의 일은 상당히 위험한 면이 있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무사들은 못 보던 인간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는 경우도 많았다. 정보가 빠져나가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니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살벌하게 대응했다.
그렇기에 닌자 일에서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코가 닌자들은 대부분 무사 계급 출신들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닌자지만 그래도 무사로 살았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다시 무사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닌자로 살면서 영주에게 잘 보이면 다시 무사가 될 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페이였다. 그냥 호위로 팔려간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정식 무사가 되었으니 몇몇 닌자들은 자신이 일을 맡지 않는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반면, 철포를 만드는 일에 참가하게 되면 장인으로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지원자들은 꺼렸다.
‘무사가 되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신유성의 의뢰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현재 일하고 있는 장인을 납치해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닌자 중 하나가 잠입해 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장인이 납치 되었으니 난리가 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납치하는 편이 빨리 해결하는 길이지만 철포 장인은 철저히 보호가 되고 있으니 건드리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 중 하나가 장인으로 들어가야 한다.”
“꼭 우리 중 한 명이어야 합니까?”
“타지 녀석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그 녀석이 나중에 배신하면 의뢰는 실패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꼭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냔 말입니다. 이가 녀석들에게 맡겨도 될 것 같은데.”
“중개를 하자고?”
“그렇죠.”
의뢰를 중개하며 소개비만 먹잔 소리였다.
“다들 하기 싫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결국 의뢰는 이가 마을로 넘어갔다.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소개비를 받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가 마을.
센가지, 모모치, 후지바야시라는 이가상인삼가라 불리는 가문이 사는 곳이었다. 실력있는 닌자들이 모였기에 이가 닌자는 영주들 사이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의뢰가 들어왔다고?”
“코가 녀석들이 소개했습니다.”
“뭔데?”
“보시죠.”
센가지가의 당주는 의뢰를 살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런 쉬운 일을 직접 안 하고 떠맡기다니. 그 놈들 배가 불렀구만.”
“자존심이란 거겠죠.”
“뭐, 그렇게 살 놈은 그렇게 사는 거지.”
“어떻게 할까요?”
“한다. 요즘 땅이 부족해서 문젠데.”
땅이 부족했다. 이가 마을은 번성했다. 그러나 번성했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구가 늘어난 만큼 필요한 자원도 늘어났다. 전쟁 때문에 호황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니 식량이 부족한 일도 종종 일어났다. 더구나 서로 경쟁하며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
“그 놈은 잘 하고 있을지.”
센가지가의 당주는 문득 마을을 뛰쳐나간 닌자를 떠올렸다. 센가지 가문의 일원이 마을을 떠나 쇼군의 아래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면서 성까지 ‘핫토리’로 바꿨다.
“또 그 녀석 생각입니까? 잘 하고 있겠죠. 쇼군 밑에서 아마 늘어지고 있을 겁니다.”
“그럴까? 쇼군의 입지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알아서 하겠죠. 그 놈도 명색이 닌자인데.”
“어쨌거나 이 일은 알아서 처리해.”
센가지가의 당주는 신유성의 의뢰를 처리하라고 명하고는 차를 홀짝였다.
신유성은 며칠 동안 오우치 가문에서 지내다가 다시 대마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유행하는 것과 함께 신유성의 이름이 영주들 사이에 퍼졌다.
“허허, 이런 요리를 어찌 생각해낸 것인가?”
“조선에서는 이런 것이 유행인가?”
소문에 소문이 더해지며 엉뚱한 이야기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결국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까지 전해졌다.
“정말 색다른 요리로구나.”
튀긴다는 발상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기에 신선했다. 바삭한 식감이 주는 자극은 그야말로 하나의 충격이기도 했다.
“이 요리를 생각해낸 인물에 대해 고하라.”
요시하루의 명에 핫토리 야스나가는 조사해두었던 것을 보고했다.
‘젠장, 이 따위 일을 할 땐가?’
보고를 하는 야스나가는 요시하루에게 몹시 실망하고 있었다. 향락에 빠져 있는 쇼군이 못 마땅한 야스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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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