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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대마도주 하루야스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방법이 없는 것인가?”
“없는 줄로 압니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가 신유성을 직접 보고자 했다. 대마도는 쇼균이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명령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대마도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가 쇼군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러면 이러는 것은 어떻습니까?”
“응?”
“나츠님도 함께 보내시는 겁니다.”
“나츠를?”
“신유성님에게 슬쩍 마음에 두신 말을 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흐음.”
“요즘 들어 나츠님과도 사이가 많이 돈독해진 것으로 압니다. 더 늦으면 원하시는 것을 놓치시게 될 겁니다.”
가신의 재촉에 하루야스는 결국 나츠를 불러 당부했다.
“준비하거라. 이제부터 넌 유성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하기에는 한참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나츠님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혼인은 어떠십니까?”
말을 건네는 하루야스의 가신은 은근한 눈빛으로 압박했다. 온갖 기대를 담은 부담스러운 눈빛. 허나, 신유성은 그리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때가 되었군.’
나츠와는 일부러 가깝게 지냈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의도를 꿰뚫어 보았으니까. 만약 나츠를 곁에 둘 마음이 없었다면 신유성은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오우치 가문은 너무 크다. 그리고 위태롭지. 다른 가문들은 잘 모르고. 대마도 정도가 딱이야.’
너무 큰 것을 먹으려 하다가는 체할 수 있었다. 먹으면 좋지만 먹고 나서도 소화하기 힘들어 끙끙 대다가 끝난다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신유성은 판단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바로 신겸혁이었다.
“아버지의 허락이 없다면 어렵습니다.”
가족을 아예 등질 생각이라면 어려울 것은 없었다. 미래의 기억을 가진 신유성은 사실 자신이 차지한 몸의 아버지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그 동안 길러준 부모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신겸혁은 신유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또한 이 시대에 가족은 든든한 우군이기도 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부친의 허락만 있으시다면?”
신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안을 한 가신은 표정이 환해졌다.
향통사로 일하던 신겸혁은 갑작스러운 일을 맞이했다. 갑자기 혼담이 들어온 것이었다.
문제는 상대 집안이 바로 대마도주라는 것.
“아직은 어렵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국법으로 조혼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시지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나츠와 결혼하게 된다면 결국 양반들도 알게 된다.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양반들이 걸고 넘어진다면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으음, 그럼 가족분들 모두 넘어오시는 건?”
“그건 어렵겠습니다.”
신겸혁은 어찌 되었든 조선에 붙어 있으려 했다.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마도주의 딸을 잡다니.’
왕이 되고 싶다며 뛰쳐나가더니 권력자의 딸과 이어지게 생겼다. 조선이었다면 기뻐할 일이지만 상대가 일본 사람이니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도 벌써 뭔가 하다니.’
하지만 신겸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식을 올리는 것은 어렵고 혼약만 먼저 하도록 하지요.”
결국 대마도주는 혼약으로 만족해야 했다.
“젠장!”
신유성과 나츠의 혼약이 발표되자 마사모리는 이를 갈았다. 이변이 없는 한 이제 신유성과 나츠는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대마도주는 벌써부터 신유성을 사위 대접해주고 있었다.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야스의 유력한 후계자인 요시시게 또한 신유성을 자신의 매제처럼 대우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군.’
뛰어난 인재가 요시시게에게 붙는 것을 볼 수 없던 마사모리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낭인들에게 전해라.”
신유성이 쇼군을 만나러 가는 길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혼약을 하게 된 나츠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잠을 같이 자기 위해 방을 옮겼다.
“남녀가 유별하거늘.”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제부터 나츠는 서방님의 여자입니다.”
얼굴을 붉히며 절을 하는 나츠. 신유성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함께 잘 필요까지야.’
나츠를 싫어하거나 내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색했을 뿐이었다.
혼약을 한 이후 신유성은 가신으로 인정받았다. 조선에서는 역관의 자식일 뿐이지만 일본에서는 무사인 셈이었다.
“알았다.”
나츠가 간절히 원하니 그냥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나츠가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잠들었다.
‘참 빨리 잠드네.’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흘렀다. 신유성은 가만히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교토로 가서 쇼군을 만나는 건가? 무능한 쇼군인데 어찌해야 할까?’
쇼군이 신유성을 만나고자 한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분명할 터였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사소한 것으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하기도 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
신유성은 고민을 거듭하며 뒤척였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
교토까지 가는 길은 간단했다. 배를 타고 셋쓰로 간 뒤 육로로 교토까지 가면 끝이었다.
몇 번 배를 타본 신유성은 더 이상 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이었다.
‘시원하구나.’
바람을 맞으며 나아가던 배가 셋쓰에 있는 효고진에 도착했다. 효고진은 교토가 가까운 만큼 굉장히 번성한 항구였다. 하지만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효고진은 활기찼으나 효고진을 벗어나자 금방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나타났다.
‘어휴.’
조선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신유성의 눈에는 모두 발전이 덜 된 것으로 보였다. 권력자의 주변은 권력자가 살기 좋게 발전한 반면 권력자의 영역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욕망이란 건가?’
신유성은 욕망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 또한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루하고 힘들어서 세상으로 뛰쳐나와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천방지축이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왕이 되고자 하는 꿈도 꾸고 있었다.
이 시대에 왕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전쟁을 한다는 것.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왕이 될 수 있을까?’
왕이 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을 거쳐야 하는지도. 하지만 머리로 알고는 있어도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무게를 확실히 느끼기는 어려웠다.
상념 속에 신유성이 탄 가마는 계속해서 교토로 나아갔다.
교토.
아시카가 요시하루는 자신이 만나고 싶어하던 신유성이 곧 도착한다는 소릴 듣고 웃었다.
“음식들은 준비가 됐는가?”
“그렇습니다. 아마 놀랄 겁니다.”
요시하루는 신유성이 알린 요리를 개량해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
‘젠장, 한심하긴.’
한쪽에서 대기 중이던 핫토리 야스나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멍청하니까 매번 패배하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는 자주 패배하는 쇼군이었다. 호소카와 하루모토와 대립한 이후 패배해 오미로 도망쳤다. 이후 여러 번 교토에서 오미를 오가는 패배자 생활을 이어왔던 것이었다.
이가 마을을 뛰쳐나와 성을 핫토리로 고치며 요시하루의 밑에 있게 되었으나 그것이 썩은 동아줄이었던 셈이었다.
‘마츠다이라님이 보고 싶구나.’
야스나가는 문득 죽은 마츠다이라 기요야스를 떠올렸다. 젊은 기요야스는 그야말로 용맹했다. 미카와를 일통한 남자로 장래가 기대되었지만 젊은 나이에 가신에게 기습당해 죽고 말았다.
한 쪽은 가진 직위에 비해 한심했고 다른 한 쪽은 뛰어났지만 요절했다.
‘그래도 이대로 계속 지낼 순 없어.’
야스나가는 기어코 결심을 굳혔다. 매번 호소카와 하루모토와 대립하다 패배해 오미로 도망쳤던 쇼군 밑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의 목숨이 아니라 자신을 따라 나선 일족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야스나가는 요시하루가 신유성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들을 여기 교토로 다시 불러들일까 합니다.”
“그리 하라.”
상대를 해준 것은 요시하루가 아닌 요시하루의 가신이었다. 허락을 받은 야스나가는 서둘러 오미로 향했다.
오미에는 인질을 겸해 핫토리 일족이 살고 있었다.
한편, 요시하루를 만난 신유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냐? 대단하지?”
요시하루는 온갖 튀김을 늘어놓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튀긴 어묵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생선과 야채를 튀겼다. 수많은 튀김을 늘어놓고 자랑을 하는 게 꼭 아이 같았다.
“훌륭합니다.”
‘어휴.’
겉과 속이 따로 놀았다. 감동이란 전혀 없었으나 쇼군이니 기쁜 척 해주었다.
“하하, 많이 먹도록 하라.”
신유성은 천천히 하나씩 맛보았다. 맛은 훌륭했다. 요리인들이 목숨을 걸고 만든 것이니까.
이후 요시하루는 잡다한 이야기를 물어보다가 학문에 대해 가신과 논하도록 시켰다. 요시하루의 가신은 가지고 있던 책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사서삼경을 외웠다는 말에 사서 중 하나를 가져와 아무 곳이나 펼쳐놓고 질문 했던 것이었다.
신유성의 대답은 막힘없이 나왔다. 아기 때부터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미치도록 외웠기에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도 시간 날 때면 한 번씩 빠르게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잊어먹지도 않았다.
“하하, 대단하구나.”
시험에도 불과하고 신유성은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요시하루는 대단하다고 생각만 할 뿐 신유성을 곁에 두고자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아이.’
신유성의 겉모습은 조금 큰 아이일 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랄지는 알 수 없는 법이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대마도주의 사위이기도 했다. 대마도는 멀다고 하나 쇼군의 영향력이 아예 안 닿는 곳은 아니었다.
쇼군이 조선에 사람을 보내 몇 마디 찌르기만 해도 대마도는 시련을 겪게 되기 때문이었다.
조선에서 왜관을 모두 닫은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대마도였기에 조선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요시하루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크면 그때 영입해도 늦지 않겠지.’
요시하루는 편하게 생각했다.
신유성은 교토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요시하루와 만난 이후 딱히 교토에서 할 일도 없었다. 아직 일본 내에 아는 사람도 적었고 입지도 그저 그랬다. 대마도에선 대마도주가 왕이지만 교토에선 변방의 영주일 뿐이었다.
진짜 힘이 강한 영주들은 계속해서 군대를 일으켜 반목하며 충돌하고 있었다.
“떠납시다.”
신유성은 교토를 나섰다. 신유성의 가마를 둘러싼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다.”
교토와 효고진의 중간 지점. 한 무리의 남자들이 길가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사모리가 신유성을 죽이기 위해 보낸 낭인들이었다.
신유성을 죽이기 가장 편한 곳은 대마도였지만 대마도에서 일을 벌일 순 없었다. 자칫하면 의심을 받아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마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신유성이 교토로 움직인 것이었다.
‘꼬마의 목을 벤 자에게 죽이면 봉토를 준다고 했다.’
낭인들의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신유성의 목을 베어 무사로 인정받는 것.
주인 없이 낭인으로 떠도는 생활은 괴로웠다. 굶주리는 생활은 낭인들을 늑대처럼 만들었다.
탐욕과 광기로 물든 늑대 무리를 향해 신유성을 태운 가마는 계속 움직였다.
“지금이다!”
가마가 매복지점의 중간 쯤 지났을 때 낭인들은 뛰쳐나갔다.
“적이다!”
호위를 서던 신페이는 가장 먼저 낭인들을 발견하고는 검을 뽑았다.
“나오지 마십시오!”
신유성에게 한 마디 던진 신페이는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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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