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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밖의 사정이 궁금했다. 신유성은 슬쩍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저들은?’
앞뒤로 포위하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가장 앞에선 신페이와 검을 나눈 낭인은 한 칼에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낭인!’
검을 쓰는 방식이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다.
‘전장 검술이다.’
갑옷을 입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특화된 검술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본 신유성은 불안해졌다. 일반 도적이라면 신페이를 비롯한 호위들이 물리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싸울 줄 아는 낭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제길!’
적의 수를 빠르게 헤아려 보았다.
‘대략 50!’
반면 신유성의 호위는 20명뿐이었다. 다들 실력이 뛰어난 무사로 이루어졌지만 머릿수에서 열세였다. 낙관하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어서 빨리 도망가라며 외쳐댔다.
‘하지만 어디로?’
아이의 몸이었다. 이대로 혼자 도망쳐봐야 좋은 꼴 보긴 힘들었다.
“에이!”
그 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욕이 끊임없이 나왔다. 허나 아무도 신유성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호위들은 길 앞 뒤로 막은 낭인들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크악!”
호위 중 하나가 낭인에게 팔이 베였다. 즉사는 모면했으나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한 팔로 검을 들고 상대를 견제하고 있지만 베인 팔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후우.”
비명 소리에 신유성은 정신을 차렸다.
‘죽는 건가?’
팔이 베인 호위가 열세에 빠져 밀리는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있을 순 없어.’
가마를 박차고 나온 신유성은 작은 돌을 집었다. 그리고 팔을 베인 호위를 공격하는 자를 향해 던졌다.
돌은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신경을 분산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큭!”
팔을 베인 호위는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신경이 분산되었던 적의 옆구리를 베었다. 허나 뒤에 대기하던 낭인에 의해 목을 베였다.
혈화가 허공에 피어났다.
“저기 저 놈이다!”
누군가 신유성을 가리켰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평범한 낭인 집단이 아니다.’
사주를 받은 것이 확실해졌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신유성은 더 늦기 전에 판단을 내렸다. 숫자에서 열세. 계속 싸운다면 살아 남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이 지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었다.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해.’
이대로 지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신유성은 어린 몸에 맞게 만들어진 검을 뽑았다.
‘돌파한다.’
마음을 정했지만 심장은 두려움에 벌렁거렸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언젠가 죽을 목숨!”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외쳤다.
“끝까지 싸우리라!”
다짐을 외치며 신유성은 달렸다. 의지를 한 곳에 모아. 쓰러졌던 호위를 벤 낭인을 향해.
낭인은 환하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신유성의 목을 베는 자에게는 큰 포상이 주어지기에.
‘좌상단!’
자세에서 검이 움직일 방향을 읽은 신유성은 간격을 좁히며 집중했다.
‘지금!’
팔이 움직이려는 것을 보며 몸을 날렸다. 검로를 읽고 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나치며 검을 휘둘렀다.
급소는 노리지 않았다. 팔을 노렸을 뿐.
스윽.
검이 옷과 살을 동시에 베었다.
섬뜩한 감촉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신유성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돌아오십시오!”
신페이가 외쳤으나 신유성은 앞으로 나아갔다.
‘따라 올 것이다.’
계산을 한 것이었다.
신유성의 계산대로 신페이를 비롯한 호위들은 신유성의 뒤를 따랐다.
졸지에 신유성이 맨 앞에 선 대형이 되었다.
“간다!”
신유성은 외치며 달렸고 호위들은 어찌할 틈도 없이 뒤를 따랐다.
“흐읍!”
낭인이 막아서며 베려했다. 그러나 신유성의 감각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집중력이 극도로 높아지며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 기분이었다. 허나 신유성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전장의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만을 생각했다.
스윽.
달려들던 낭인의 검은 허공만 벴다.
신유성은 대충 스쳐지나가며 허벅지를 살짝 벴다. 허벅지를 베인 낭인은 주춤했다. 그 뒤를 따른 신페이와 호위들이 주춤한 낭인을 벴다.
‘피할 수 없다.’
허나 다음 순간 신유성은 피할 수 없는 검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힘을 이용한다!’
검을 비스듬히 들며 꽉 쥐었다. 검격이 검에 닿는 순간 신유성은 상대의 힘을 이용해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더욱 빠르게 회전한 검이 낭인을 베었고 신유성은 빠른 회전으로 인해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낭인이 앞을 막았다.
신유성은 계속 움직였다.
머리로 들어온 정보는 낭인들의 위치와 동선을 파악하며 검로를 읽어냈다. 예상되는 경로를 빠르게 계산하며 신유성은 계속 돌파했다.
작은 몸으로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것을 낭인들은 막지 못했다.
그리고 신유성에게 집중한 나머지 뒤를 따르던 호위들에게 베였다.
하지만 모두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신유성 또한 칼끝에 스치며 살짝 상처가 나기도 했다. 호위들의 상태는 더 심했다.
뒤쪽에서 접근하던 이들을 막으려 하던 이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죽어가면서도 호위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신유성의 외침을 듣고는 그것을 생각하며 싸웠던 것이었다.
선봉과 중간은 괜찮았지만 후방부터 호위들은 계속 무너졌다. 앞서가는 동료들을 보호하면서 뒤를 경계하기란 어려웠다.
“가라!”
“소타!”
아주 짧게 한 마디씩 남기며 호위들은 몸을 던졌다.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았다. 낭인들의 검이 칼질을 하는 동안 쉬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호위들은 더욱 눈에 힘을 주며 검을 휘둘렀다.
죽음을 도외시한 사나운 기세에 낭인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욕심 때문에 덤비는 이들과 죽기를 각오한 이들의 전투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호위들은 처절하게 죽어갔다. 죽은 자의 몸에는 수없는 검상이 생겼다. 힘이 모두 빠질 때까지 죽어라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아아아!”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죽어간다는 것도. 그렇기에 끝까지 싸워 하나라도 더 죽이고자 했다.
혼자 저승에 가는 것은 억울하니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 신유성은 어느 순간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순간 몸이 탁 풀렸다. 짧은 순간 온 힘을 다해 움직였으나 적이 안 보인 순간 긴장의 끝이 끊어지며 몸이 무너진 것.
“업어!”
신페이의 외침에 포위망을 빠져나온 호위 하나가 신유성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달렸다.
낭인들은 뒤에서 계속 쫓아왔다.
‘저 놈들을.’
호위의 어깨에서 매달린 상태라 신유성은 뒤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쫓아오는 놈 하나 베고 가!”
신유성의 외침에 신페이는 슬쩍 뒤를 보았다.
낭인들이 따라오고 있었지만 속도는 다 제각각이었다.
“간다!”
따질 틈은 없었다. 유리한 일이면 한다.
동료와 함께 가장 앞에 오던 낭인을 순식간에 베어버린 신페이는 다시 달렸다.
추격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따라잡았다 싶은 순간 호위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베어버리고 도망치니 낭인들의 속도는 느려졌다.
둘이나 셋이 호흡을 맞추며 따라가야 했다. 반면 도망치는 입장에선 일단 달리고 봤다.
결국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낭인들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도망치는 쪽도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온 힘을 다했을 뿐.
낭인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도 한참을 달린 뒤에야 호위들은 멈췄다.
그리고는 주저앉았다.
이젠 더 뛰라고 해도 뛸 수 없었다. 그만큼 지친 상태였다.
길에서 벗어나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상태로 휴식을 취하던 신페이는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모했습니다.”
“그대로 싸웠으면 다 죽었을 겁니다.”
신페이는 반박할 수 없었다. 다른 호위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호위들에게 있어 신유성은 잃어선 안 되는 짐이었다. 만약 신유성을 잃고 대마도로 돌아갔다면?
곱게 살 순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인물을 잃은 죄를 물어 할복을 명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지금, 신유성의 빠른 판단 덕분에 소수지만 살아남았다.
남은 호위의 숫자는 신페이를 합쳐서 7명이 전부였다.
13명이 장렬하게 산화했다.
“그나저나 정말 감탄했습니다. 벌써부터 그런 움직임이라니.”
호위 하나가 나서서 분위기 전환에 들어갔다. 그렇게 신페이는 뒤로 물러났다.
신유성이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했지만 어쨌든 짐에서 전력으로 변해준 것만 해도 할 일을 다 한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호위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돌파를 하면서 보여준 움직임은 전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포위에 틈을 만들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정말 멋졌습니다.”
호위 하나가 밝은 목소리로 연신 신유성을 칭찬했다. 얘기를 들은 신페이와 호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낭인들의 강한 공격을 되받아친 적은 없었다. 피하거나 비껴냈다. 바위가 앞을 막으면 그 옆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신유성은 계속해서 낭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한 줄기 강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유유히 흘러 결국 반대편으로 나갔다.
‘앞으로 정말 엄청난 사람이 되겠구나.’
신유성의 나이는 겨우 8살이었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무사로 자라날 수도 있었다.
이를 떠올린 호위들의 눈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특히 싸우기 전에 외쳤던 말은 호위들도 들어 기억하고 있었다.
어리지만 신유성도 어엿한 무사였다.
학문이 뛰어나다 해서 그저 글이나 좀 읽을 줄 안다고 생각했던 관념은 깨졌다.
학문과 무예를 함께 지닌 상전이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앞으로 훌륭하게 자란다면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페이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추격전은 계속 이어졌다. 낭인들은 신유성을 암살하는데 실패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걸어서 쫓고 또 쫓아왔다.
그럴 때면 신유성과 호위들은 도망쳤다.
양 쪽 다 지칠 수밖에 없었다. 쫓는 쪽도 쫓기는 쪽도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렇지만 쫓는 자의 탐욕과 쫓기는 자의 생존욕구는 추격전을 계속 이어지게 했다.
그러다 신유성과 호위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누구시오!”
신유성이 만난 이들은 얼핏 보기에는 피난을 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옷이 깨끗하다.’
하지만 옷이 상당히 깨끗해 보였다. 신페이는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수상하니 일단 벤다.
안전을 위해선 변수를 최소화 하는 것이 최선.
그러자 앞서 가는 이들 중에 몇몇 남자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 전에 신유성이 나섰다.
칼에 살짝 긁힌 상처로 인해 열이 오른 신유성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만.”
“어떤 자들인지 모릅니다. 위험한 놈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기 저 사람은 본 적이 있군요.”
신유성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남자 한 명을 지목했다. 그리고는 열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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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