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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으로
핫토리 야스나가는 갈등했다. 신유성과 호위무사들이 나타났을 때 쫓기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적을 끌고 온다면?’
죽이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신유성의 호위들은 이미 경각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는 상황. 수틀리면 검을 뽑을 태세였다.
야스나가는 망설였다.
‘가족만 없었다면.’
한 바탕 붙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호위무사들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숫자에선 야스나가쪽이 더 우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킬 가족이 많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신유성이 지목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다행인가?’
야스나가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는 핫토리 야스나가요. 쇼군의 밑에 있었습니다.”
“있었다는 말은 더 이상 아니란 겁니까?”
“지금은 그냥 도망치는 중입니다.”
지목 받은 야스나가의 말을 믿어야 할지 신페이는 망설였다. 그때 야스나가가 제안했다.
“쫓기는 모양인데 일단 서둘러 움직이죠. 아니면 우린 먼저 가겠습니다.”
서로 갈 길 가자는 것. 허나 신페이는 그냥 보내주는 것도 꺼려져 적당히 거리를 두고 뒤를 쫓았다.
서둘러 길을 떠난 일행은 무사히 효고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효고진에 도착하자 치료를 받은 신유성은 금방 깨어났다. 전투의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이기는 힘들었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곧 배를 구하면 대마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잠깐만요.”
“네?”
“저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신페이는 멍해졌다.
“그게 무슨?”
“공격했던 놈들은 분명 저를 노렸습니다. 제 존재가 불만인 놈들이 보낸 거겠죠. 한둘도 아니고 50명 가까이 되는 낭인을 제 하나 베자고 보낸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안 돌아가면 위험합니다.”
“어쩌면 대마도가 더 위험할 수도 있죠.”
신페이도 생각해본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대마도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은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그럼 어쩌시렵니까? 이대로 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습니다. 또 습격이라도 당하면 위험합니다.”
신페이의 말에 신유성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신페이의 말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아갈 순 없어.’
목숨을 노린 놈들을 잡아야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밖에 있으면 계속 암살자를 보낼 테니 배후를 알아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말을 들은 신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대마도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죠. 하지만 앞으로 어쩔 겁니까?”
“그건 생각해봐야죠. 아, 그리고.”
신유성은 다시 휴식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가 싸웠던 것은 모두 비밀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호위들도 모두 함구하도록 하세요.”
신페이는 숙소를 나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찌 되는 걸까?’
막막했다.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닌자였던 자신을 호위로 붙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순간 신유성의 무용이 떠올랐다.
어린 몸으로 돌파의 선봉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13살 정도의 몸을 가지게 된 신유성이지만 아직 8살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런지 베는 깊이는 얕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적들을 잠깐 멈추는 것은 충분했다.
‘최소한 짐은 아니지.’
다시 생각하니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정말 미래가 어찌될지 보고 싶었다.
‘어쨌거나 이대로 돌아가도 답은 없다.’
신페이는 결국 신유성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핫토리 야스나가는 배를 구하려 했으나 구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빈 배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위험한데.’
가족을 교토로 데려오는 척하며 교토를 벗어났다. 지금쯤 추적자가 붙었을지도 몰랐다.
‘빨리 미카와로 가야하는데.’
야스나가의 목표는 연이 닿았던 미카와였다. 허나 효고진에서 미카와를 가는 배는 없었다.
초초한 마음에 돌아다니던 야스나가는 멀리 배를 향해 가는 신페이를 보았다.
‘저 자는?’
대마도에서 온 남자라는 것을 떠올린 순간 야스나가는 움직였다.
“사사키씨죠?”
“핫토리씨?”
“이거 이렇게 또 뵙는군요.”
“그렇군요.”
우연이 아니라는 것쯤은 신페이도 알고 있었으나 따지지 않았다.
“지금 혹시 저 배에 타시려는 겁니까?”
“아,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사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배를 좀 빌릴 수 없을까요?”
“배를요?”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야스나가는 저자세로 나갔다. 신페이는 처음 만났을 때 야스나가가 도망치는 중이라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불이 번뜩였다.
“어디로 가시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오카자키로 가려고 합니다.”
오카자키. 미카와에 있는 성이었다.
“마츠다이라가?”
“그렇습니다.”
야스나가는 마츠다이라에 의탁하려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괜한 거짓말로 상대의 의심을 사면 배를 빌리는 일이 허사가 되니까.
‘마츠다이라라. 혼란스럽지만 나쁘지 않아.’
“그럼 같이 가도록 하죠.”
“네?”
“우리도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신페이의 질문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야스나가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신유성이 야스나가와 함께 배를 타고 미카와로 향하게 되었을 때, 신페이가 남긴 서신은 다른 사람을 통해 대마도주인 하루야스에게 전해졌다.
“뭣이?”
하루야스는 대노했다. 애지중지하는 신유성이 죽을 뻔했다는 얘기에 화가 났다.
‘어떤 놈이?’
의심 가는 인물은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마사모리였다. 하지만 마사모리를 함부로 내칠 수는 없었다.
가신들 중, 마사모리의 편을 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합당한 명분도 없이 아들을 죽이고 가신들을 쳐내면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하루야스는 마사모리를 어떻게 하기가 곤란했다.
‘이 놈을 팰 수도 없고.’
벌을 내린다면 더 삐뚤어질 위험이 있었다. 함께 사는 가족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꼬리를 잡겠다는 건가?’
하루야스는 신유성의 의도를 읽었다. 안에 있을 땐 건드리지 않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건드린 것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하루야스는 신유성의 일을 허락했다.
한편, 신유성 암살에 실패한 마사모리는 이를 갈았다.
“그 놈이 그렇게 잘 싸워?”
“마치 유수와 같았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엄청난 놈이잖아? 고작 그 나이에?’
마사모리는 더더욱 신유성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의 경쟁자인 요시시게가 더 강해지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일 땐 죽이더라도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실패한 놈들을 처리하도록.”
마사모리는 실패한 낭인들을 척살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렇게 한 때 무사가 될 꿈을 꾸었던 낭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신유성이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매화는 우울해졌다. 그리고 불안했다.
‘도련님.’
생활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비인 매화는 주인인 신유성이 곁에 없으니 몹시 불안했다.
이러한 매화를 달랜 것은 바로 나츠와 신페이의 동생 레이였다.
“왜 그렇게 뾰루퉁해?”
“아닙니다. 마님.”
신유성과 나츠가 혼약을 했다는 사실을 듣고 매화는 나츠를 상전으로 모셨다. 나츠 또한 매화의 상황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츠의 입장에선 남편이 될 신유성을 모시던 시녀를 자신이 거느리게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지 말고 재미있는 거 해볼까?”
아직 어린 나츠는 매화를 이끌고 다른 소녀, 레이를 찾았다. 갇혀 사는 것은 심심하다. 그렇기에 유희를 찾게 된다. 그렇기에 성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소녀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닌자 마을에서 살았던 레이는 많은 놀이를 알고 있었다.
문제는 레이가 아는 놀이들 대부분이 닌자 교육을 위한 놀이라는 것.
“자 던져보죠!”
신이 난 레이는 표창을 던져 과녁에 맞췄다. 그렇게 세 사람은 신유성이 없는 동안 계속 어울렸다.
닌자들의 놀이를 하면서.
야스나가와 함께 움직인 신유성은 함께 마츠다이라 가문을 찾았다.
“어수선하군요.”
마츠다이라 가문은 크게 쇠퇴한 상황이었다. 기요야스가 다스리던 때에는 미카와를 일통할 정도로 강했지만 기요야스가 죽은 이후 계속 약해졌다.
미카와의 동부는 이마가와가 지배하는 실정이었고 서부는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오카자키 성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페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약한 영지이기 때문이겠죠.”
“그렇군요.”
신유성도 분위기를 느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살짝 망설여졌다.
‘정말 여기 있어도 될까?’
하지만 대마도로 가지 않는 이상 마츠다이라 외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오우치 가문이 있기는 했지만 오우치 가문에서 낭인을 보내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기에 신유성은 조심하기로 했다.
‘마츠다이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너무나 약해서 외부에 크게 신경 쓸 틈도 없는 영지였다.
“하하하, 쇼군께서 칭찬하신 신동을 이렇게 보게 되어 영광이네.”
마츠다이라 가문에 잠시 신세를 지겠다고 하자 당주인 마츠다이라 히로타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유성이 반가운 것보다는 신유성과 연결된 대마도주와 인연이 생기는 것을 반긴 것이었다. 대마도주 하루야스가 신유성을 애지중지한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가신들도 신유성이 머무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주가 손님을 받는 것조차 가신들의 눈치를 보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신유성은 오카자키에 머물게 되었다.
신유성의 생활은 평온했다. 마츠다이라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당장 어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야스가 상당한 양의 재물을 보낸 것이 즉효였다.
신유성은 귀빈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뒤, 평소와 같이 수련을 하기 위해 정원을 찾았다. 검을 수련해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돌아다니고 싶다면 배워야 한다.’
무력이 없다면 죽임을 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 허허벌판에는 경찰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도 없다. 죽이고 지나가도 누가 죽였는지도 모를 경우가 허다했다.
지루해서 세상으로 뛰쳐나왔지만 죽고 죽이는 광기를 만나야 했다.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싸움이 겁이 난다면 평생 방구석에 박혀 있어야 했다. 그러면 싸울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것은 신유성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최근 들어 검술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한바탕 수련을 한 신유성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멀리서 자신을 보는 꼬마를 보았다.
‘마츠다이라 다케치요.’
바로 히로타다의 아들이었다. 히로타다가 아들과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소개시켜 주었던 것이다.
허나 다케치요는 신유성에게 달라붙거나 하지 않았다.
항상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뭐 심심하면 가까이 오겠지.’
신유성은 생각을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케치요는 신유성이 사라지자 조용히 정원을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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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