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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으로
다케치요의 기행은 계속 되었다.
‘대체.......’
알 수 없는 꼬마의 행동이 계속 이어지니 결국 신유성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케치요에 대해 알아보았다.
“뭘 좋아하지?”
시녀 하나를 불러 물어보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잘.......”
“뭐?”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고 했다. 싫어하는 것도 뭔지 모른다고 했다.
‘이상하네.’
다케치요는 어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표현하기 마련이었다. 호불호를 숨기는 것은 어른들이 자주 하는 일이지 아이들의 능력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긴 신유성은 다케치요에 대한 것을 더 알아보았다.
그러자 금방 뭔가 알 것 같았다.
‘안쓰럽네.’
다케치요는 현재 계모의 슬하에 있었다.
다케치요의 친모는 가리야 성의 성주인 미즈노 다다마사의 딸이었다. 하지만 미즈노 다다마사의 사후, 다케치요의 외삼촌인 미즈노 노부모토는 친 오다 정책을 유지했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당시 마츠다이라는 오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미즈노 노부모토가 오다의 편을 드니 가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때문에 다케치요의 친모는 친정으로 돌려보내졌다.
이것이 다케치요가 2살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다케치요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눈치를 보게 되었다.
당주의 아들로 후계자이긴 하지만 친모가 오다에 붙은 미즈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주가 죽고 뒤를 잇게 된다면 오다의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오다와 죽도록 싸워온 이들은 무의미한 투쟁을 한 것이 된다.
단순한 정쟁이 아닌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가 죽어나간 투쟁이었다. 쉽사리 고개를 숙일 순 없는 법이었다. 이렇다보니 가신들은 은근히 다케치요를 멀리했다. 그리고 당주는 결국 후실을 들이게 되었다.
후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기만 하면 다케치요가 아닌 후실의 자식에 붙을 가신들이 상당했다.
이 때문에 다케치요는 조심스러워졌다. 응석을 쉽게 부리지 못했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무언가 잘못하면 혼내는 이들이 많았다.
트집을 잡아서 나쁘고 형편없는 아이라는 인식을 퍼트렸다.
때문에 다케치요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멍청하다고 욕을 먹기는 하지만 적어도 혼내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당주인 히로타다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이 강한 당주였다면 당연히 썩을 짓을 하는 가신들의 목을 베어버렸겠지만 힘이 약한 당주는 그럴 수 없었다. 가신들이 마츠다이라를 버리고 다른 가문 아래로 들어가면 다케치요의 인생도 끝장이었다.
‘좀 놀아줄까?’
측은하게 생각한 신유성은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신유성이 생각한 것은 역시 먹을 것이었다.
‘바베큐를 하자.’
따로 특별한 요리를 하기에 오카자키는 약간 열악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부유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구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해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선택된 것은 닭.
닭을 잡아서 간장으로 만든 양념에 숙성시켰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지나자 신유성은 항상 수련하던 곳에 바비큐를 위해 불을 피웠다.
대장간에 주문해 만든 석쇠가 적당히 달구어졌을 때 들러붙지 말라고 동물성 기름을 먼저 칠했다. 그리고 불을 조절한 뒤 양념한 닭고기를 올렸다.
닭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양념과 고기가 함께 익으며 만들어낸 냄새가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숨어서 지켜보던 다케치요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래도 다가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유성은 다케치요를 못 본 척하고 계속 고기를 굽게 했다.
“으음! 맛있게 잘 익은 것 같은데!”
과장된 목소리로 크게 말하며 신유성은 닭다리를 들었다. 양념이 스며든 닭다리는 딱 알맞게 익었다.
간도 딱 좋았다.
신유성은 정말 맛있게 닭다리를 뜯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페이와 호위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하나씩 먹어요.”
신유성이 권하자 호위들도 하나씩 먹고는 극찬했다.
그렇게 석쇠 위의 닭고기는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를 보며 다케치요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아쉬워했다. 하지만 역시 다가가지 않고 보기만 했다.
먹고 싶다고 다가갔다가 천박한 행동을 했다고 혼날까 무서워서였다.
신유성은 얼마 남지 않은 닭고기를 보고 호위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러자 들은 얘기가 있던 호위들은 신유성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정말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요?”
“다른 분을 모셔서 맛을 보여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식으면 맛이 없는데요?”
호위는 슬쩍 두리번거리는 척하며 다케치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다케치요는 깜짝 놀랐다.
“아! 저기 저분에게 한 번 맛을 시식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오! 다케치요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신유성은 손짓했다. 전에는 먼저 다가가려 하자 다케치요가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이것 좀 맛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어, 으.......”
다케치요는 안절부절했다. 판단하기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다케치요님이 한 번만 맛 봐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신유성이 정중히 부탁하니 다케치요는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그래서 용기를 내 다가갔다.
“한 번 맛을 봐 주시지요.”
남은 닭다리를 손에 쥔 다케치요는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갔다. 한 입 베어 물자 적당히 따뜻한 닭고기의 맛이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조심스럽게 먹던 다케치요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자 닭다리를 모조리 먹었다.
“어떠셨습니까?”
“마, 마, 맛있슴니다.”
어눌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대답한 다케치요였다.
“그래요? 정말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신유성은 최대한 다케치요를 띄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다케치요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신유성과 다케치요는 먹는 것을 매개로 해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졌다.
나름 평안한 나날을 보내던 신유성은 어느 날, 혼란스러운 상황과 직면해야 했다.
갑자기 성 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사사키와 호위들은 긴장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모반이 일어났습니다.”
“모반? 누가요?”
“노부타카님이라고 합니다.”
마츠다이라 노부타카. 마츠다이라 기요야스의 동생으로 당주인 히로타다의 후견인으로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로타다와 일이 틀어지고 만 일이 있었다.
그것은 병으로 누워있던 히로타다를 대신해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인사를 하러 간 사이에 미키성을 공격당해 빼앗겼다. 이를 따져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노부타카는 오다와 내통하고 있던 가신과 함께 오다에 투항하며 모반을 일으켰다.
“떠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사방이 전쟁터인데 어디로 갑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딜 가든 전쟁이었다. 좀 더 큰 세력에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세력이 강력했던 영주가 사망하고 다른 영주가 치고 올라와 강력해지는 일도 벌어졌다.
전란이 끝나기 전에는 어딜 가든 위험은 존재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우면 날 노리던 존재가 기회라고 생각하겠지요.”
신페이는 더 이상 권할 수 없었다.
‘자신을 미끼로 삼다니.’
혼란스러우면 암살자를 보내기 더 쉬워진다. 신유성은 일부러 틈을 보이는 것이었다.
‘적으로 둬선 안 될 사람.’
신페이에게 신유성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오다와 마츠다이라의 반복은 점점 거세졌다. 그러자 이마가와쪽에 붙었던 마츠다이라의 가신들은 위협을 느꼈다.
이대로는 먹히겠다는 생각. 그래서 이마가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나온 것은 바로 다케치요를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 마츠다이라의 완전한 종속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마츠다이라는 이마가와에 기울어져 있던 상황, 인질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특히 오다와 붙은 노부타카 때문에 위기이기도 했다.
“해서 슨푸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나?”
마츠다이라의 당주 히로타다는 신유성에게 이마가와쪽으로 갈 것을 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 마츠다이라는 가문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이게 될 것 같으니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유성이 마츠다이라의 소속은 아니지만 영주의 성이 점령당하는 위기에 처한다면 신유성 또한 한 편으로 매도되어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결국 신유성은 버티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버티려 한다면 마츠다이라와 한 편으로 싸우겠다는 것이 되니까.
‘아쉽군.’
좀 더 버티면서 암살자가 오길 기다렸던 신유성은 내심 혀를 찼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리하여 신유성은 다케치요와 함께 이마가와로 향하게 되었다.
신유성과 다케치요는 도보로 움직이다가 배를 타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배를 타고 슨푸까지 가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배는 슨푸로 가지 않았다.
“오와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
배가 도착한 곳은 오와리였다.
오와리의 군사들이 배 앞에 대기했다. 그리고 마중인사를 한 것은 소년이었다.
첫인상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유성을 비롯한 호위들은 바짝 긴장했다. 마츠다이라와 오다는 반목하고 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검을 뽑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 죽이려면 그냥 수장시켰지.”
엄청난 말을 너무나 태연하게 하는 소년이었다.
“그럼 원하는 게 있단 소린데 뭡니까?”
“귀공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넌 누구지?”
“신유성이라고 합니다. 마츠다이라가에 잠시 머물고 있었습니다.”
“신유성? 그 소문의 요리사? 나도 맛있는 거 좀 먹고 싶은데. 해줄 거지?”
소년은 대뜸 친한 척 다가왔다. 그러자 신페이가 슬쩍 나서서 앞을 막았다.
“아, 이러지 말라고. 난 그냥 친해지고 싶은 것뿐이라니까?”
“귀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신유성은 일단 이름부터 물었다. 모여 있는 군사들이 중 나서는 이는 없고 소년이 계속 말을 하니 소년이 책임자로 보였다.
“나? 노부나가. 이제 이름을 알게 됐으니 우린 친구 맞나?”
‘노부나가? 잠깐. 오다 노부나가?’
소년의 이름을 들은 신유성은 깜짝 놀랐다.
오다 노부나가.
일본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었다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임진왜란에 관해 관심을 가졌었던 신유성은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부하로 부리던 남자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였다.
‘노부나가를 여기서 죽이면?’
살짝 스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은 굉장히 늦게 일어나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노부나가를 죽이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신유성은 당장 목숨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도움이 될지도.’
오다 노부나가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만약 아래에 둘 수 있다면 일본 평정은 시간문제였다.
오히려 이용할 생각을 했다.
“네가 다케치요구나. 잘 지내보자.”
노부나가는 어느새 다케치요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그러자 다케치요는 눈을 맞추지 않고 두리번거리다 신유성의 뒤로 숨었다.
“이거 미움 산 건가? 어쨌든 안심해. 해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노부나가는 실실 웃으며 돌아섰다. 신유성은 그런 노부나가의 등을 보며 어떻게 하면 노부나가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등 뒤에 숨어 옷자락을 쥐고 있는 마츠다이라 다케치요가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이름을 갖게 될 거란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와리의 오다 가문은 신유성에게 우호적이었다. 다케치요에 대한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오다에 붙은 마츠다이라의 가신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케치요의 어머니는 오다에 우호적이었던 미즈노 가문 사람이었다.
덕분에 신유성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를 빼고.
“이봐. 그러니까 먹을 것 좀 해달라니까? 다른 요리 없어?”
노부나가는 호기심이 굉장히 강했다. 그리고 끈질겼다.
“알았습니다. 해드리죠. 하지만 튀김에는 기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럼 금방 구해오지!”
잠시 뒤, 신유성은 요리인들에게 튀김 요리에 대한 것을 전수해주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노부나가는 자기도 해보겠다며 나섰다.
주변에서 무사 하나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뭐 어때? 여기 있는 사람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노부나가. 하지만 신유성은 노부나가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함정인가?’
무언가를 노리는 눈빛에 신유성은 살짝 긴장 되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노부나가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그렇게 튀김 시식회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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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