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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화 (1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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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으로

하루가 지났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게 요리를 했다는 이야기가 살짝 흘렀다. 노부나가는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해서 신유성은 살짝 오다 가문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이해했다.

‘암투가 한창이군.’

노부나가와 그 형제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신유성은 노부나가의 행동들을 떠올렸다.

특히 요리를 직접 하며 비밀로 하자는 말과 노부나가의 눈빛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다.

‘믿을만한 사람을 골라내는 거였어.’

정말 노부나가를 위하는 사람들만 함께였다면 소문이 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결국 입을 열었다. 노부나가를 더욱 못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치밀하네.’

신유성은 노부나가가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내가 밑에 둘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던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노부나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한 산에 두 호랑이는 안 된다지만 노부나가 같은 사람도 다스릴 수 없다면 내가 왕이 될 왕국은 그저 그런 왕국이겠지.’

어렵고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신유성은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왕 세우는 왕국이라면 더 크게.’

다음 날, 아침 신유성은 노부나가를 찾았다.

“어라 무슨 일?”

“그냥 친해지려는 거죠.”

“그래? 너도 내가 좋은 거지?”

약간 바보 같이 웃으며 말하는 노부나가. 하지만 신유성은 속지 않았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이후 계속해서 보여주는 행동은 판단을 살짝 흔들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침부터 말을 타고 나가더니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다. 농가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상인들과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품위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를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다음에는 음담패설을 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여자는 말이지.......”

알고 보니 노부나가는 벌써 유부남이었다. 12살에 성인식을 올리고 14살에 결혼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결혼하는 게 좋아. 여자는 정말 좋아. 행복하다고?”

결국 나온 말은 신유성에게 결혼을 권하는 거였다.

“혼약한 상대라면 이미 있습니다.”

“아, 그렇지? 내가 깜빡했네.”

싱글거리는 노부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뭐 해줄 거야?”

“밥이나 볶아 먹죠.”

신유성은 볶음밥을 만들었다.

노부나가는 계속 덜 떨어진 것 같은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하루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거 알아?”

“이것은?”

“아나 보네? 내 철포야. 멋있지?”

철포를 든 노부나가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사냥이나 가자며 꼬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부나가가 그냥 어디 놀러가나 싶었다. 하지만 사냥을 위해 밖으로 나오자 노부나가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이렇게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하게 돼서 좋군.”

이야기를 하던 노부나가는 주변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다. 신유성은 장전된 철포가 신경 쓰였다.

바스락.

몰이를 하자 새가 날아올랐다. 노부나가는 얼른 조준을 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고 새가 떨어졌다.

“조선에서 왔다고 했지? 조선왕은 엄청나게 부자라던데 맞나?”

“이 나라의 영주들보다 부자는 맞습니다. 하지만 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죠.”

“명이야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철포를 가져온 남만 녀석들이 더 대단한 거 같지 않아?”

노부나가는 철포를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대단한 자들이죠. 항해 기술도 그렇고.”

“그렇지? 다들 남만은 별로 걱정할 거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넌 말이 좀 통하는 거 같아서 좋아.”

노부나가의 눈빛은 담담했다. 신유성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래서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내 밑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영입 제안이었다.

노부나가의 눈은 열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열기로 가득한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세계를 태워버릴 눈빛인지도 모르지.’

잠시 노부나가를 바라보던 신유성은 입을 열었다.

“제가 노부나가님 밑으로요? 그럼 묻지 않을 수 없군요. 노부나가님은 앞으로 뭘 하고 싶으신 거죠?”

“천하를 발아래 둘 것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모든 영주들을 모조리 굴복시킬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는 것이 없으니까 대답할 수 없다.”

신유성은 살짝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가 듣는가 싶어서였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어.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도 못할 정도로 겁쟁이인 거냐?”

“원하는 건 그냥 가지면 되죠.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천하는 다르지. 말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그건 그렇죠.”

신유성은 살짝 갈등했다.

‘지금 말해도 좋은 것일까?’

효과가 없다면 괜한 말을 해서 약점 잡힐 수 있었다. 천하운운을 했다는 사실이 권력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견제가 들어올 터였다.

조선에서 알게 되면 왜놈이 되었다며 양반들이 가족을 전부 잡아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살짝 고민하던 신유성은 결심을 굳혔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더 힘들다.’

승부수를 던졌다.

“제가 누구 밑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닌가?”

“아닙니다.”

“하지만 넌 영지도 없지 않나? 설마 대마도를 먹을 셈인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다 가문도 원래 오와리를 다스리던 시바 가문을 누르고 영주로 올라선 거니까.

“대마도는 작죠.”

신유성은 웃으면서 거리를 벌렸다.

“세계는 넓습니다. 차지할 땅은 널렸죠.”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하며 등을 돌린 신유성은 그대로 돌아갔다.

홀로 남게 된 노부나가는 갈등했다. 신유성이 말이 통하는 것 같아서 곁에 두려했다. 그렇게 하면 뭔가 더 대단한 일들이 가능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거절했다.

‘누군가의 밑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고?’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죽일까?’

순간 살심이 치솟았다. 자신을 거부했으니까. 하지만 노부나가는 살심을 억눌렀다.

‘그런데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살심을 억누르자 반대로 호기심이 커졌다.

‘기반 없이 어떻게 천하를 잡겠다는 걸까?’

지금 노부나가는 영주가 되기 위해 형제들과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보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이유는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 이러한 노부나가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유용했다. 다른 형제들의 관심을 덜 받게 됨과 동시에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가신을 구분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

노부나가는 신유성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후, 신유성과 노부나가는 그리 자주 만나지 않았다. 신유성은 노부나가의 일을 말하지 않았고 노부나가 또한 신유성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신유성이 노부나가와 뭔가 사이가 틀어졌다고 판단했다.

신유성은 별 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노부나가의 성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 신유성은 어떻게 회유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를 아래에 둘 수 있을까?’

지금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한다면 영원히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언제 돌아갑니까?”

상념을 깬 것은 신페이였다.

“암살자는요?”

“전혀 기미가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지내는 것은 사실 좀 문제입니다.”

“다케치요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신유성은 다케치요를 걱정했다. 최근 들어 신유성과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의지하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매화가 생각난단 말이지.’

대마도에 있는 매화를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때문에 다케치요를 그냥 내버려두기가 힘들었다.

“계속 돌보실 순 없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클 때까진 같이 있고 싶습니다.”

신페이는 더 이상 신유성을 설득하지 못했다.

‘인정이 넘치는 구나.’

딱히 좋다 나쁘다 말하긴 어려웠다. 신페이의 눈에 신유성은 아직 어렸으니까.

반면, 신유성은 고민에 빠졌다.

‘노부나가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까?’

다케치요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떠올린 신유성은 떠오르는 대부분의 방법에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굴복하게 만든다고 꺾일 인간은 아니지.’

진다면 차라리 죽겠다며 자결할 사람이었다.

‘애처럼 먹는 것으로 회유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고민은 깊어졌지만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털어놓을까 생각했지만 꾹 참았다. 미래의 기억은 최후의 보루였다. 누군가에게 알려져 이용되는 순간 힘을 잃게 되어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허나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다. 노부나가와 신유성의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노부나가였다.

“어이쿠. 이치! 그 쪽으로 가면 안 돼.”

신유성이 수련을 하는데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가 있었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였다.

‘풉!’

신유성은 노부나가의 행동에 웃었다. 오이치를 막으려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오이치가 신유성에게 향하게 몰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웃거나 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의 행동이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을 만나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잘 지냈지?”

“덕분에 편안히 지냈습니다.”

“나도 잠이 정말 잘 오더라고.”

살짝 눈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분은?”

“내 동생.”

노부나가는 오이치를 안아들었다.

“정말 귀여운 분이시군요. 크면 남자 여럿 울리시겠습니다.”

“그렇지?”

잡담이 이어지는 와중에 노부나가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나?”

질문의 의도는 간단했다. 신유성이 말한 널려있는 땅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하는 것이었다.

“대충 압니다.”

신유성은 막대기를 들고는 땅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이게 명나라입니다. 옆에 붙어있는 것이 조선 그리고 이쪽은 노부나가님이 사시는 땅.”

노부나가와 오이치는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여기 엄청난 바다가 있고 이 바다 너머에 엄청나게 큰 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데 정확히 누가 사는지는 모릅니다. 대신 남만인들이 최근 이 땅을 차지하기 시작한 걸로 압니다.”

“그래?”

노부나가는 더 묻지 않았다. 남만인들의 이야기니 남만인들에게 들었다고 판단해버린 것.

“저는 언젠가 여기로 갈 겁니다.”

“그럼 나하고 볼 일은 없겠군.”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순간 신유성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기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무슨?”

신유성은 주변의 사람을 모두 물렸다. 내기 조건은 단 둘이 남게 된 뒤에 조용히 속삭였다.

“제가 오와리를 떠난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될 때,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을 모시는 걸로 하면 어떻습니까?”

신유성의 내기 제안에 노부나가는 씩 웃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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