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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4화 (2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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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으로

북해도는 상당히 큰 섬이었다.

가키자키 가문이 차지한 땅은 북해도 전체에 비한다면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북해도 최남단에 있는 반도에 가키자키 가문은 자리 잡았다.

가키자키 가문 외에는 아이누족이 살았다.

아이누족은 북해도뿐만 아니라 더 위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걸쳐 캄차카 반도까지 널리 퍼져 살고 있는 민족이었다.

일본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최남단에 살짝 미치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영주간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사이, 가키자키 가문의 선조 중 하나가 북해도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안도 가문과 혼인을 했다 이거지?’

안도 가문은 북해도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영주 가문이었다. 가키자키는 자신만의 힘으로 영지를 지키지 못할 것을 우려, 기세가 오르고 있는 안도 가문과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이유는 바로 옆에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다테 가문 때문이었다.

다테 가문의 성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때문에 다른 가문들은 다테 가문의 성장이 달갑지 않았다.

신유성은 수많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어딜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단독으로 쳐들어가서 땅을 빼앗는 것은 힘들었다. 가키자키를 아예 무시하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전부 시작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빼앗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곳에 자리 잡는다고 가키자키 가문을 비롯한 다른 영주들이 그대로 두고 본다는 보장은 없었다. 가키자키 가문에 돈을 내민다고 ‘네!’하면서 거래에 응할 리도 없었다.

그러니 빼앗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싸우게 된다면 빼앗는 쪽을 택하겠다.’

목표를 정하니 자연스럽게 방법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두뇌가 움직였다.

‘일단 가키자키를 치려면 안도 가문을 견제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테 가문과 손을 잡는 게 가장 편하지만.’

다테 가문은 무섭게 성장했다. 이용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그대로 흡수될 위험이 있었다.

‘키워서 잡아먹으려 들 수도 있지.’

물론 손을 안 잡아도 잡아먹을 순 있었다. 그냥 옆에서 잘 크나 구경하고 있다가 적당한 때가 오면 꿀꺽 집어삼키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불의라고 해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야생의 약육강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시기였다.

무너진 질서로 인해 사회를 후퇴하게 만들었다. 인의보다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인의에만 기대는 것은 어리석었다.

‘결국 내 전력이 중요하다.’

신유성은 더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전력을 더욱 키워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전력을 빠르게 키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닌자였다.

어두운 밤, 신유성은 신페이를 조용히 불렀다.

“신페이.”

“네, 주군.”

“힘이 필요하다.”

“힘이라 하심은?”

“내 눈과 귀가 되어줄 존재로 닌자들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는 말에 신페이는 흥분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었다.

“저는 믿으셔도 되지만 다른 닌자들은 모릅니다.”

“그래도 모아야 한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뭔가 보여줘야 넘어올 거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일단 능력을 보여주면 되겠지. 넌 가서 일을 의뢰하고 와라.”

닌자들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쟁에서 정보는 곧 힘이었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정보가 늦는 사람은 눈을 감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

주먹을 날려도 이미 피한 곳에 날려봐야 사람은 때리지 못한다.

영주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닌자들을 이용했다. 덕분에 닌자들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집한 정보를 팔아 집단을 유지했다.

신유성은 미래 국가의 숨은 기둥, 정보부를 떠올렸다.

CIA. KGB. MI6.

‘정보가 힘이야.’

군대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그렇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면 기회가 있어도 잡지 못한다. 황금 같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다.

코가 마을.

신페이가 다시 돌아오자 촌장은 신페이를 환영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신유성은 이제 유명 인사였다. 그림 몇 장 그려주고 거부가 되었으니까. 조선에서 온 신동이란 명성이 따라 붙어 신유성이 그린 그림에 대한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물론 많은 부분은 그림을 얻은 영주들이 값을 지나치게 지불하며 올라간 것도 있다.

어쨌거나 거부가 된 신유성의 밑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신페이의 소식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이었다. 유명인사에 대한 정보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기에 인기가 있었다. 한 마디로 잘 팔리는 정보였다.

“일을 의뢰하러 왔습니다.”

“그런가? 그래 무슨 일이지?”

“이번에 코가 닌자 전체를 고용하려 합니다.”

“뭐?”

“하시겠습니까?”

굉장한 건수였다. 마을 전체의 닌자를 고용하는 것은 약간의 재물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거부가 되었다고 하더니.’

거대한 상선이 한 척도 아니고 여러 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유성에게 보내지는 재물만 해도 상당했다.

닌자 마을 하나를 통째로 고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한다.”

“그럼 우선 하실 일을 알려드리죠.”

신유성은 가키자키 가문을 칠 병력으로 낭인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낭인은 신뢰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집단이 되면 도적으로 돌변해 신유성만 털어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닌자들을 사이에 넣어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나쁜 마음을 품은 놈들은 죽여야 할 겁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코가 마을에는 낭인 출신이 많았다. 전투에서 상당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만 고용하지 않는 거지? 우리만 해도 상당한 전력인데.”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전 의뢰 내용을 전할 뿐입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시죠.”

결국 촌장은 의문을 품고 의뢰에 임하게 되었다.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의뢰를 받은 것은 코가 닌자 전체. 그리고 낭인들이었다. 낭인들은 상선을 타고 북해도에 먼저 보내졌다.

이 때문에 가키자키 가문에서는 살짝 민감해졌다.

“요즘 낭인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을 잘 설득해라.”

“그런데 쉽게 넘어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뭔가 수상합니다.”

“흐음.”

가키자키 가문의 당주 가키자키 스에히로는 고민에 빠졌다.

‘좋은 대접을 해주겠다고 해도 거절했다. 설마 누군가 영지를 노리는 건가?’

어쩌면 기습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곳의 땅을 차지하려 왔을지도 몰랐다.

“일단 병사들을 소집해라.”

스에히로는 방심하지 않았다.

‘어떻게 얻은 땅인데!’

겨우 영주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데 쉽게 땅을 빼앗길 순 없었다.

신유성은 계속 낭인들을 고용해 스에히로의 영지로 보냈다.

일본 전역이 전쟁 중이라 낭인과 유민들은 계속 발생했다. 북해도에는 전쟁을 피해 도망친 이들이 꽤 모여들었다. 가키자키 가문은 이런 이들을 흡수해 세력을 불렸다.

때문에 신유성이 보낸 낭인들은 손쉽게 북해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거 불안한데?”

“그냥 갈아타면 안 되나?”

“미친놈아. 그쪽에서 우리 이름 다 적어갔어. 우린 이제 그쪽 병사나 마찬가지야. 반대편에 붙었다가 첩자였다고 명단 넘기면 무슨 꼴 당할 것 같냐?”

신유성에게 고용된 낭인들은 충성심은 없었지만 두려움은 있었다. 낭인들의 명단을 만든 이후 배신하면 명단을 뿌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바꾼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첩자로 오인 받아 죽게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만 잘 하면 낭인 생활도 끝이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라.”

더구나 낭인들 사이에는 코가 닌자가 뒤섞여 있었다.

닌자들은 친근한 척 굴면서 다른 낭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아우 불안해. 얼른 끝내버렸으면 좋겠네.”

“기다려.”

기다림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북해도에 침투한 인원이 무려 2천에 달했다.

“이제 남은 재물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슬슬 시작해야겠군.”

시간을 오래 끌 순 없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필패.

“그나저나 난부 가문에는 연락했나?”

“그쪽에서도 호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신유성은 난부 가문에 연락을 취했다. 안도 가문과 연을 맺은 가키자키를 자신이 집어 삼킬 테니 만약에 안도가 움직이려 한다면 이득을 취하는 게 어떻겠냐고.

난부 가문에서는 그리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받아들였다.

안도 가문과 가키자키 가문이 혼인으로 이어진 상태였다. 여기에 가키자키에서 꾸준히 안도 가문과 거래를 하자 안도 가문이 서서히 강해질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난부 가문으로서는 영 달갑지 않은 상황.

해서 신유성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가자.”

신유성은 호위들만 이끌고 북해도로 향했다.

어두운 밤. 낭인들은 누군가 전해주는 무기와 보호 장비를 받았다.

“오오, 그래. 이래야지.”

기다란 창과 갑옷. 전투를 참가하는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는 물건들이었다.

장비를 지급받은 낭인들은 바로 착용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낭인들은 코가 닌자들이 지휘를 하게 되었다.

오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낭인들을 이끄는 위치로 올라선 것이었다. 닌자 여럿이 바람을 잡아주니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쉬웠다.

“준비되었으면 간다.”

어두운 밤, 가키자키 가문의 심장부인 카츠야마관에서 2천의 낭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일어나자 가키자키 가문은 시끄러워졌다.

“뭐라고?”

“지금 낭인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목표는 이곳입니다!”

영주의 저택을 목표로 움직인다는 소식에 스에히로는 잠이 깼다.

“전투 준비!”

싸워야 했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자고 있던 이들이 일어나 전투 준비를 하려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자다 갑자기 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리에 허둥댄 것이었다.

가키자키군이 허둥대는 사이 빠르게 영주의 저택을 포위한 신유성은 바로 공격을 명령했다.

“우와아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가는 병사들.

아직 방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성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간 낭인들은 닥치는 대로 찌르고 죽였다.

제대로 전투를 치렀다면 낭인들이 불리했겠지만 허점을 파고들어 난전으로 이어가자 낭인들은 그야말로 저택을 휩쓸었다.

“아아아아아아!”

스에히로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적이 모여 있었다는 정보만 있었어도. 적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만 조금 더 일찍 접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일은 없었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틈을 찌른 기습이었다.

“어떤 놈들이!”

적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다. 스에히로는 망설였다.

자결과 항복.

둘 중 하나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항복을 선택했다.

신유성은 전투에 뛰어들 일도 없었다. 뒤에서 지휘를 하고 마무리가 끝나자 안으로 들어섰다.

‘저 꼬마가 우리를 고용했다고?’

‘이거 잘하면?’

몇몇 낭인들이 고용주의 정체를 깨닫자 허튼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료에게 영지를 찬탈할 계획을 말했다.

그 순간 목이 떨어졌다.

낭인들 사이에 있던 코가 닌자가 목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썩을 놈. 난 뒤통수치는 놈이 제일 싫어.”

그걸로 끝이었다. 여기 저기 욕심을 품고 수작을 부리려던 낭인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졌다. 살벌한 분위기는 곧 낭인들 사이에 퍼져 허튼 생각을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됐다.

신유성을 적대하는 말을 하는 순간 목이 떨어진다는 것에 자신들 사이에 누군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네가 나를?”

스에히로는 자신을 친 존재가 신유성이란 것을 안 순간 기가 막혔다.

이제 10살도 되지 않은 꼬마에게 영지를 빼앗긴 것이었다.

“네가? 목을 쳐라.”

명령이 떨어지자 신페이의 검이 번뜩였다.

북해도에 자리 잡은 영주, 가키자키 스에히로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항복한 보람이 없는 죽음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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