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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영주의 죽음 이후, 북해도 12관은 몽땅 신유성에게 떨어졌다. 영주 가문의 몰락으로 구심점이 사라지자 대부분 항복한 것이었다.
원래 낭인에서 시작한 이들은 항복을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일반 백성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일반 백성에게는 그저 영주가 바뀐 것일 뿐이었다.
누가 영주가 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 분노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신유성은 약탈을 금지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게 보는 사람도 많았다.
“낭인들은 해산하지. 남고 싶은 놈은 내 영지의 백성으로 남을 수 있지만 다른 놈들은 모두 나가게 하도록.”
낭인들의 피해는 대부분 닌자들에게 당한 것이었다. 가키자키 스에히로가 너무나 쉽게 무너져 큰 피해가 없던 탓이었다. 오히려 신유성을 만만하게 보고 자리를 차지하려 음모를 꾸미다가 닌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수가 더 많았다.
코가 닌자를 지휘하던 촌장은 신유성에게 감탄했다.
‘아직 어린데도 용병술이 상당하구나.’
처음에 일을 시킬 때는 불안했다.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닌자들에게도 적당히 싸우다 위험하면 빠지라는 명령까지 내려두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오히려 대승을 거두었다. 알고 보니 가키자키가 경계하고 있었지만 언제 습격을 할지 모르고 있다가 당한 것.
‘아직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용병술이 상당하다.’
어쩌면 신유성이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에 북해도는 너무 척박했다.
남쪽에 비해 농사를 자주 짓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땅은 아이누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점령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지.’
수성을 잘 해야 진짜 영주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영지를 빼앗아도 지키질 못해 도로 빼앗긴다면 무의미한 피만 흘린 것이 된다.
일시적인 점령과 약탈은 도적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코가 닌자의 촌장이 생각하는 것은 신유성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지키기 위한 싸움은 더욱 어렵다. 만만해 보이면 덤벼든다.
그래서 항복했던 가키자키의 목을 쳐버렸다. 단순히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음모를 꾸민 낭인들도 죽였다. 이로 인해 낭인들은 조심스러워졌다.
‘승리에 기뻐할 때가 아니다.’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할 일이 많았다.
신유성은 일단 코가 닌자의 수장인 촌장을 불렀다.
“내가 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리지만 이제는 어엿한 영주의 자리에 앉게 된 신유성은 거침이 없었다. 촌장도 딱히 신유성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고 응대했다.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럼 날 어떻게 생각하나?”
“장래가 기대되는 분이시라 생각합니다.”
“그럼 날 위해 일하지 않겠나?”
촌장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으나 신유성은 여유로운 표정을 고수했다.
‘밀리면 안 된다.’
침묵에 밀려 먼저 입을 연다면 열세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계속 기다렸다.
긴 침묵 끝에 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님께서 대단하신 것은 사실이나 지금 영지를 지켜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습니다.”
“나의 눈과 귀가 되기 싫다는 건가?”
“그건.......”
촌장은 말끝을 흐렸다.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영주의 밑에 들어가는 것은 더 큰 성공을 보장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코가에는 다시 무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많은 것은 약속하지 않겠다. 지금 내 처지에 허황된 약속을 해봐야 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날 위해 일한다면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더 큰 세상 말입니까?”
신유성은 종이를 가져와 지도를 그렸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있는 곳이다.”
일본 그리고 그 위에 북해도를 그렸다. 북해도는 상당히 컸다. 그 옆으로 대륙을 그렸다.
“여기가 조선이고 이 위에는 여진인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쪽이 명이다.”
신유성은 계속 종이를 가져와 이어가며 지도를 그렸다.
“땅은 계속 이어져 있다. 명을 지나 계속 가면 남만인들이 사는 땅이 나온다.”
촌장의 입은 점점 벌어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또 엄청나게 큰 땅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그렸다.
“여기는 최근에 남만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충 세계를 그린 신유성은 촌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영주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땅에 만족할 생각이 없다. 차지할 땅은 많다. 더 넓은 땅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꿀꺽.
‘이게 사실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건데.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안 거지? 남만인에게 배웠나?’
지레짐작을 하며 촌장은 머리를 굴렸다.
“난 아주 큰 나라를 만들 거다. 나와 함께 하지 않겠나?”
갑자기 신유성이 커 보이는 촌장이었다.
가진 지식과 능력 그리고 지금까지 이룬 것 모두 합치면 절대 평범하게 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신페이는 이미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
촌장은 잠깐 한 쪽에 대기하고 있는 신페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여 확인해주니 마음이 흔들렸다.
“대답은 지금 해라. 하고 싶지 않다면 잡지 않는다.”
‘보통 이런 땐 뭔가 약속하는 거 아닌가?’
촌장은 살짝 기세에 밀렸다. 그리고 왠지 지금 기회를 잡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유성이 홈쇼핑 광고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시간제한을 두고 몰아치며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기회!
지금 바로!
‘그냥 넘기자니 조금 아깝군. 어차피 나중에 어려워지면 갈아타면 된다.’
빠르게 생각을 마친 촌장은 신유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다.”
신유성은 코가 닌자를 얻었다. 하지만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든지 내가 힘들어지면 내빼겠지. 하지만 내가 힘들어지지 않는 이상 나에게 협조할 사람들이다. 이제부터 인정하게 만들면 돼.’
잠시 신뢰를 얻을 시간은 벌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음 날, 신유성은 사람들을 모아 한 가지 무기를 만들게 했다.
바로 쇠뇌였다.
“대충 이렇게 만들면 된다.”
쇠뇌의 자세한 설계도는 알지 못하는 신유성은 개념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원리가 간단했기 때문에 활을 만드는 장인은 쉽게 만들었다.
원래는 철포를 지급하고 싶었다. 그러나 철포 부대를 만들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아직 재력이 충분치 않기에 신유성은 쇠뇌를 선택한 것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물건을 시험해본 신유성은 일단 시험을 해보았다. 쇠뇌를 사용해본 이들은 놀랐다.
활에 비해 숙달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효 사정거리에서 파괴력이 상당했다.
“이거라면 모두 한 번은 궁수가 될 수 있겠습니다.”
“지금부터 이걸 많이 만들도록 해라. 그리고 무사들에게 지급하고.”
신유성의 무사들은 대부분 코가 닌자로 채워져 있었다. 낭인이었다가 무사로 된 이들은 닌자들에 비해 적었다. 낭인으로 점령전에 참가했던 이들 대부분이 북해도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사의 수는 상당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유성은 끊임없이 방법을 강구했다. 전력을 보충해야만 했다. 남들이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먹기 좋은 먹이로 전락할 뿐이었다.
숫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원거리 무기 개발에 힘을 썼다.
그래서 쇠뇌와 쇠뇌용 화살이 대량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기를 만들어 공급해도 모자라단 느낌은 지우기 힘들었다.
‘정예부대가 필요해.’
해서 신유성은 병농분리를 명했다.
상당히 많은 영주들은 농민을 소집해 병사로 쓰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훈련을 받지 못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신유성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일.
그래서 병사와 농민을 분리했다.
“지원하는 자의 가족은 세금을 반으로 줄여주겠다.”
그러자 지원자가 넘쳐났다.
영지민들에게 세금은 꽤 무거운 족쇄였다. 그런데 병사로 지원하면 세금을 줄여준다니!
어차피 영주가 부르면 싸우러 가야 하기 때문에 병사로 지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바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힘이 약하거나 죽는 게 무서운 이들은 지원하지 않았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시험을 치러 딱 1천명만 받았다.
“이들을 훈련시킨다.”
매일 일정한 시간 훈련을 하도록 명했다. 아울러 일도 시켰다.
주로 한 일은 나무를 해서 쇠뇌와 화살을 만드는 장인들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얼마 뒤, 신유성의 군대는 전원 쇠뇌를 들게 되었다.
‘경쟁 상대가 필요해.’
쇠뇌를 사용할 수 있는 정예 부대를 만든 이후 신유성은 부대가 코가 닌자의 영향력에 지배 당하는 것을 보았다.
‘이대로 가면 안 돼.’
좋지 않은 현상. 그래서 이가 닌자들도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설득은 쉽지 않았다.
센가지와 모모치는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절했다. 후지바야시만이 신유성의 밑으로 들어왔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지바야시 켄.
후지바야시 일족을 거느린 남자는 상당히 젊었다. 얼마 전 전대 당주가 사망하고 뒤를 이은 것이었다.
신유성은 켄이 마음에 들었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강해 보였다.
‘코가 닌자의 늙은이와 상대할 수도 있겠어.’
코가에만 기대면 결국 기반이 안정되었다 싶은 순간 빼앗길 수 있었다. 그래서 이가 닌자를 설득했다. 이가 닌자의 일부분만 들어온 것이기에 코가에 비해 세력이 약하긴 했지만 신유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후지바야시가 1천의 병력을 통솔해라.”
코가 닌자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경쟁자가 생긴 것이었으나 신유성에게 반기를 들진 못했다. 어차피 병사는 신유성이 키운 것이었으니 닌자들이 뭐라 할 순 없는 일이었다.
후지바야시 일족은 빠르게 적응했다.
무엇보다 지급되는 병기에 감탄했다.
“정말 병사를 아끼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싸워야지.”
신유성이 농민들을 마구잡이로 징병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달라 보였다. 해서 후지바야시 켄은 신유성을 좋게 보았다. 적어도 학정을 펼칠 영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신유성을 긴장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장한 자들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어디 군대지?”
“그게 영주의 군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뭐?”
무장한 자들이 나타났다. 무장한 자들은 영지를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진을 치고 있었다.
“원래 이 땅에 살던 아이누라고 합니다.”
코가 닌자가 허겁지겁 보고를 올리고 물러나는데 켄이 나타나 추가 정보를 더했다.
이에 코가 닌자는 살짝 표정을 구겼다. 왠지 밀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누?”
신유성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설마 가키자키가 죽은 것 때문에?’
아이누는 일본인들과 전쟁 상태였으나 가키자키의 노력으로 화해로 돌아섰었다. 그래서 신유성도 건드리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잠시 미뤄둔 것이었다.
그런데 미뤄둔 일이 의외의 폭탄이 되었다.
“우선 그들의 목적인지 알아보고. 대화를 할 수 있으면 해. 싸움은 절대 안 된다!”
다른 영주들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누하고 싸울 여력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누와 전쟁만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뭘?”
“저들은 우리와 싸우게 될까?”
“악령에 물든 놈들이라면 몰아내야지.”
아이누 전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빛나는화살’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못생긴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럼 빨리 해치우는 게 어때?”
“하지만 아직 얘기도 못해봤잖아. 만약 악령에 물든 놈들이 아니면 우리가 악령이 되는 거야.”
“그건 좋지 않지. 얘기는 나중에 하고 싸울 준비해.”
빛나는화살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빛나는화살은 방심하지 않았다.
긴장이 이어졌다.
그러다 다가온 사람 중 한 명을 보고 살짝 표정이 풀렸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제가 아이누어를 몰라서 아이누식 이름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짓는 법을 흉내내서 우리말로 표현해봤습니다.
그럼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