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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무기도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
이들은 신유성이 보낸 무사와 통역으로 나선 주민이었다. 빛나는화살이 잘 아는 얼굴은 바로 통역이었다. 얼마 전에도 만나 가키자키 스에히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다고?”
“네, 괜찮습니다.”
통역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무기는 없지만 바로 곁에는 무사가 있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빛나는화살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가키자키 스에히로와는 화해했다. 그리고 아이누의 전쟁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에히로에게 어떤 빚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빛나는화살의 입장에서는 그냥 타인.
걱정되는 것은 새로 나타난 자들이 또 다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것.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전사들을 끌고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자에게 아이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지만 상대는 무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무작정 적으로 간주하고 죽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면 악령이 붙으니까 안 될 말이지.’
빛나는화살은 결국 전투에 들어가진 않았다. 대신 만남을 요청했다.
“너희 대장을 만나고 싶다. 얘기를 해봐야겠어.”
“그 분은 좀.......”
“이젠 만나지 않겠다는 건가?”
“제가 정할 일이 아니라서.”
그때 옆에 있던 무사가 얘기를 듣고 질문했다.
“복수하려고 그러냐는데요?”
“복수는 무슨? 우타리도 아닌데 내가 왜 그 놈 복수를 해?”
우타리. 형제를 말했다.
화해는 했지만 형제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피도 이어지지 않은 가키자키 스에히로를 형제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 아이누에게 스에히로는 어디까지나 타지인이었다.
“복수는 아니다?”
“네, 아마도 세력이 바뀌니 관계 정립을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가실 겁니까?”
신페이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신유성은 아직 외모는 어렸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무시할 수 있었다.
점령을 한 이후에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거나 얕보는 언사를 한 포로들을 목을 베어버렸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 과격하게 나서는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유성이 과격하게 나갈 것 같아 걱정이었다.
‘행여나 잘못되면.’
신페이는 호위와 함께 최고 실력을 가진 닌자들을 불러 모았다.
신유성이 홀로 대면에 나서게 할 순 없었다.
“족장이냐고 묻는데요.”
통역의 말을 들은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 통역이 필요 없었는데.’
아이누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이름도 달랐다. 외모는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러시아? 어디 계통이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 모양에서부터 피부색까지 일본인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누에 대해 지식이 없는 신유성은 살짝 당황했다.
“내가 맞다. 그런데 그가 족장은 맡나?”
“아닙니다. 대전사입니다.”
“그래? 그럼 싸우러 온 건가?”
“나쁜 자들이면 싸운다고 했습니다.”
“나쁜 자들?”
“오래 전에 저들의 소년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전쟁이 일어났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짓이며 악령이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악령을 처치한다는 것이었다.
“얘기가 길어지겠군.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하는 건 어떤지 물어봐.”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에 빛나는화살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유성을 따라 움직이지는 않았다.
결국 마을에서 가져온 고기를 직접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요리는 내가 하지.”
신유성이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자 통역은 깜짝 놀랐다. 이전 영주인 가키자키는 물론 영주들이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신유성은 생선살을 잘게 다져 녹말가루와 섞어 뭉쳤다. 그리고 튀겨냈다. 즉석에서 만든 어묵이었다. 또한 녹말가루를 묻힌 생선도 함께 튀겼다. 여기에 옆에서 지은 밥을 곁들여 주었다.
여러 번 일본인들의 식사를 해봤던 빛나는화살은 처음보는 요리에 살짝 놀랐다. 처음보는 요리 방식이라 흥미로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맛을 보았을 땐 정신이 없었다.
“허헙. 쩝쩝쩝쩝쩝.”
밥과 튀김이 너무 잘 어울렸다. 살짝 뿌린 간장은 감칠맛을 더욱 우러나게 했다.
순식간에 밥을 먹어치운 빛나는화살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다! 음식 잘하는구나!”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니 분위기가 풀렸다. 처음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 이름은 빛나는화살. 대전사다.”
“난 신유성이다.”
“신유성? 무슨 뜻이지?”
“신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가족들이 쓰는 이름이고 유성은 흐르는 별이란 뜻이다.”
“흐르는별! 너무 좋은 이름이다! 위험하지 않나!”
“위험?”
고개를 갸웃하는 말이었다.
“그래! 너처럼 귀여운 녀석이 그런 멋진 이름이라니. 예쁜 걸 좋아하는 악령이 널 노릴 거다.”
통역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통역했다. 행여나 신유성이 화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지금까지 몇 번 무사들의 통역을 했는데 가끔 서로 문화가 달라 분위기가 살벌해질 때가 있었다.
무사들은 화를 냈지만 검을 뽑거나 하진 않았었다. 화해를 원하던 스에히로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화가 다른 거군.’
문화가 다르면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다르다. 이는 미국에서 신유성이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때문에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악령이 많은가?”
“많다. 악령은 불운을 가져온다. 그들에게 걸리면 사는 거 힘들다. 아프고 괴롭다.”
‘샤머니즘인가?’
신유성은 머리가 살짝 아팠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대화에 임했다.
“나는 악령이 두렵지 않다.”
“하하! 정말 대단하구나!”
빛나는화살은 감탄했다. 어린 신유성이 사람들을 이끈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었지만 기개만큼은 상당해 보였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나처럼 멋진 남자가 좋은 이름을 가지면 안 되는 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악령이 노린다. 위험하다. 그래서 우린 약하거나 예쁜 아이들은 지저분한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면 예쁜 걸 노리는 악령이 못 알아본다.”
‘탐욕을 말하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신유성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너네 여자 중 가장 예쁜 여자는 가장 지저분한 이름을 가졌겠구나?”
“그렇다. 가장 지저분한 이름을 가졌으면 가장 멋지고 예쁘다.”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이 살짝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신유성은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름 얘기는 그만하지. 그나저나 난 아이누와 싸울 생각이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이누랑 싸웠지 않나?”
“그게 무슨 소리지?”
신유성은 중간에 통역을 하고 있는 주민에게 물었다.
“전 영주가 아이누 출신인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이누랑 싸웠다고 하지?”
“이들이 아이누라 하는 건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 그냥 아이누란 이름으로 구분하는 겁니다.”
그제야 신유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누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빛나는화살에게는 신유성도 아이누, ‘사람’이었다. 국가와 민족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을 지칭하는 명칭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캐나다가 생각나네.’
캐나다는 세인트 로랜스 이로쿼아 부족 단어로 ‘마을’ 혹은 ‘정착’이란 뜻을 가진 ‘카나타’란 말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나타나 원주민에게 여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카나타’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자크 카르티에가 그대로 썼다. 그래서 결국 그 지역 이름이 캐나다가 되었다. 마을이란 단어가 졸지에 국가 이름이 되어버렸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나도 아이누인가?”
“그렇다. 우리 모두 아이누다.”
“그럼 우리 편은 뭐라고 하지?”
“우타리!”
형제.
신유성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이들과는 싸울 필요가 없겠어.’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 이름이란 것은 구분을 짓기 위해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 다른 민족이라고 구분을 지어버리면 타인이 된다.
하지만 신유성은 북해도를 꿀꺽할 생각이었다.
‘정체성이 없다면 흡수하기도 편하지.’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앞서가면 결국 젊은 사람들부터 차례로 넘어온다는 것을 신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친하게 지내는 것부터.’
신유성은 웃으며 친선을 요구했다. 빛나는화살은 좋은 녀석이라며 이에 응했다.
빛나는화살과 전사들은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식사를 대접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가죽 몇 장을 남기고.
‘위험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바이킹 같은 호전적인 종교라도 가졌었다면 말보다 도끼가 앞섰겠지.’
위기를 벗어난 신유성은 아이누에게 좀 잘 해줄 생각을 했다.
‘일단 잘 해주다보면 뭔가 반응이 오겠지.’
무엇보다 아직은 외부와 전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대담하군.”
신유성이 북해도의 영지를 차지한 것은 다 소문났다. 주변 영주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확인했더니 사실이었다.
다테 가문의 하루무네는 웃었다.
“보통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거기 뭐 먹을 거라도 있는가?”
“조선인이 영주가 되도록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뭐가 나쁜가?”
하루무네는 그저 웃었다. 그러자 가신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 기회에 영지를 차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무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먹어서 뭐하자는 건가? 이제 막 영주가 바뀌었을 뿐인데.”
“그럼 나중을 기약하시는 겁니까?”
“뭐 그렇지.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곳에 병력을 보내는 것도 일이고. 그리고 병력을 한 번 보내면 지키기 위해 거기에 두어야 하는데 여러 모로 불편해.”
“하지만.......”
하루무네는 피식 웃었다. 가신들이 공격을 원하는 이유는 뻔했다.
‘영주가 되보고 싶은 거겠지.’
다테 가문이 직접 다스리기에는 불편했다. 바다라는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가신 중 하나를 보내 속령처럼 다스리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다테는 그런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힘이 흩어지면 좋지 않아.’
차라리 옆 동네를 쳐들어가면 모를까 바다 건너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다테 가문의 위상을 이용해 성장하고 나중에 역으로 검을 들이대지 말란 법도 없었으니까.
실제로 가키자키 스에히로는 안도 가문의 휘화에 있는 세력이었으나 그늘을 벗어나려고 했었다.
“익지 않은 밥은 맛이 없는 법이다.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다테 가문은 신유성이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오히려 살짝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무쓰에 남겨두었던 여자와 아이들을 데려갈 때 양식까지 더 얹어서 보내줄 정도로 호의를 보였다.
모두 방심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한편, 안도 가문은 전쟁을 하네마네 시끄러웠다.
“당장 쳐야 합니다! 지금 다른 놈들이 우릴 비웃고 있습니다!”
“어허! 남쪽의 난부는 어쩌고요!”
“그 놈들이 쳐들어오겠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안도 가문은 상황이 살짝 어지러웠다. 원래 둘로 갈라졌던 가문이 최근 들어 겨우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로 갈라졌을 때 만들어진 파벌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모두 조용!”
안도 가문의 영주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가신들을 바라보았다.
“가키자키 놈이 우리 손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리긴 했으나 어찌 되었든 우리 쪽 사람이었다. 이렇게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선 얕보이게 된다.”
가키자키 가문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있던 안도 가문의 당주는 주변에서 슬쩍 비웃는다는 소리가 나오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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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