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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7화 (2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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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쳐들어오는 건가?’

안도 가문이 쳐들어오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닌자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규모는 1만.

신유성의 병사는 2천이 고작이었다. 닌자와 무사들까지 합치면 수는 더 늘어나지만 이들을 전부 전투에 투입할 순 없었다.

병력을 모조리 투입했다가 큰 피해를 입는다면 결국 지배력이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2천으로 끝을 봐야 한다.’

다섯 배의 차이.

여간 해서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궁병이 적다. 철포도 없고.’

궁병은 고작 5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창병이었다.

“화살과 쇠뇌 생산에 전력을 기울인다.”

“징병을 하시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난 분명히 약속했다.”

싸우고 싶지 않은 이들은 그대로 살아도 좋다고 신유성은 약속했었다. 이를 어긴다면 주민들이 배신감을 느껴 비협조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리고 싸울 의지가 없는 이들을 끌고 가봐야 식량만 축낼 뿐이다.”

신페이와 가신들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겁이 많은 이들은 싸우는 척 하다가 조금만 틈이 생기면 탈영하는 일이 잦았다.

“나한테 계획이 있다.”

신유성은 작전을 숨기지 않고 신페이를 비롯한 가신들에게 말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좋겠지만 그런다는 보장도 없었다.

가신이 된 닌자들도 불리하다 싶으면 적에게 붙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그럴싸한 계획을 알려주고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나를 따르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해.’

신뢰를 얻지 못하면 진정한 영주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안도 가문의 1만 병력은 선착장에 배를 댔다. 방해하는 존재는 없었다. 선착장 주변의 집들은 모두 비어있었다.

“모두 도망쳤군.”

“아마 농성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하긴.”

신유성의 영지 병력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가끔 훈련이랍시고 창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안도 가문을 위해 일하는 닌자들이 보고 파악한 것이었다.

2천.

일반 영지민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숫자지만 안도 가문에는 그다지 부담되는 숫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안전하게 1만을 보냈다. 1만 정도면 수월하게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농성을 한다면 편하게 싸울 수 있겠군.”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며 안도 가문의 가신은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배에서 병사들이 차례로 내려 진격 준비를 할 때였다.

“컥!”

“크악!”

“적이다!”

“저기!”

화살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50여명이 쓰러졌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는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자들이 보였다.

“잡아!”

숫자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궁병을 먼저 보낸 건가? 멍청하군. 빨리 잡아라!”

100명 정도 도망가는 것을 보며 안도 가문의 가신은 희소식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배에서 내린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쉴 틈도 없이 적을 쫓아야 했다.

신유성이 보낸 것은 쇠뇌로 무장한 100명의 병사였다.

“아! 무겁다!”

“잔말 말고 뛰어!”

“버리면 죽는다!”

쇠뇌는 강력한 만큼 무거운 무기였다. 그래서 쇠뇌를 들고 뛰는 병사들은 몸이 무거웠다. 그나마 버티는 것은 그 동안 열심히 뛰어다니는 체력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밥 먹고 좀 쉬었다 뛰고 밥 먹고 좀 쉬었다 뛰고 밥 먹고.

그야말로 질리도록 뛰고 걸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쉽게 잡히지 않고 도망쳤다.

“1차 지점 도착!”

“사격 준비!”

약속된 지점에 도착했지만 도망치던 신유성의 병사들은 계속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약속된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쇠뇌로 쫓아오는 적을 조준했다.

“쏴!”

대기하던 병사들은 쏘았다. 추적하던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다시 사격을 받아 선두가 쓰러졌다. 하지만 숫자에서 우세하다는 판단에 계속 밀어붙이란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먼저 쏜 병사들은 도망쳤다. 하지만 먼저 도망친 병사들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어떻게 합니까?”

“둘로 갈라져서 쫓는다!”

신유성의 병사들은 하나로 뭉쳐서 도망치지 않았다. 추적하던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뒤를 쫓다가 똑같은 일을 또 겪었다.

약속된 지점에 대기하고 있던 신유성의 병사들은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도망쳤다.

계속 치고 빠지는 일이 반복되자 뒤를 쫓던 안도 가문의 지휘관은 유인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멈춰라!”

‘얕은 수작을!’

피해가 꽤 컸다. 추적하면서 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상자가 500명이 넘어섰다.

단 한 번의 전투에 500명을 넘게 처치했다. 그리고 아군의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

신유성의 작전이 실행된 이후 결과를 본 가신들은 조금 더 신유성을 신뢰하게 되었다.

‘대단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건가?’

쇠뇌는 신유성이 처음부터 만들라고 지시한 무기. 처음에는 무겁기만 해서 별로 쓸모가 없다고 여겼었다.

강력한 한 발을 쏠 수는 있었으나 재장전이 너무 힘들었다. 장점이라고는 초보도 금방 익힐 수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신유성은 쇠뇌를 이용해 적을 유인하는 작전으로 500명을 잡았다.

영지를 차지할 때부터 이미 어떻게 지킬지 머릿속에 계획이 있었다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잘 이끌어 왔기에 가신들은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기습은 계속 이루어졌다. 밤도 낮도 없었다.

신유성은 2천의 부대를 둘로 나눴다. 코가 닌자 출신인 사사키 신페이가 이끄는 부대와 이가 닌자 출신인 후지바야시 켄이 이끄는 부대.

밤과 낮을 나누어 두 부대는 교대로 기습에 나섰다.

기습이 거듭되자 안도 가문은 이에 대응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신유성의 부대는 적진에 뛰어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화살만 날리고 도망쳤다. 이들을 뒤쫓다보면 매복하고 있던 이들에게 화살 세례를 받고 첫날과 마찬가지로 유인 당할 뿐이었다.

정찰병들을 운용했지만 정찰병들은 모조리 암살당했다.

“빌어먹을!”

안도 가문의 병력을 이끄는 무장은 화를 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도 흩어져서 빠르게 진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희생을 감안하는 작전. 결국 안도 가문의 무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희생을 치르며 진격한 안도 가문의 군대가 신유성이 머무는 영주성에 도착했을 때는 숫자가 7천명으로 줄어있었다.

단 며칠 사이에 3천이 줄어들었다.

반면 신유성은 작전 중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병사들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성이 포위되기 직전, 신유성은 주변의 영지민들을 모았다.

“적이 왔다.”

영지민들은 성안에 들어가 함께 농성을 해야 하나 싶어 불안에 떨었다.

“너희들은 적들이 신경 쓰지 않는 먼 곳에 지어진 산성에 숨어라.”

의외의 말에 영지민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싸우는 것은 자원한 병사들뿐이다. 어서 가라.”

영지민들은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믿지 못했다. 신유성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함께 싸우다 죽고 싶지 않다면 빨리 가라. 난 약속을 깨고 싶지 않다.”

약속이란 단어에 신유성이 병농분리를 선언했던 것이 떠올랐다.

위기의 상황이 되면 어길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었으나 신유성은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영지민들은 의외의 횡재에 환호하며 얼른 도망쳤다.

이를 보던 신페이와 켄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저들과 함께 싸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7천은 막을 수 있습니다.”

“저들이 다치면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

신유성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가신들의 마음은 다시 한 번 흔들렸지만 그래도 지켜보고자 했다. 성에 쌓아놓은 물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농성이 시작되었다.

7천의 병력이 조그만 성을 둘러쌌다. 성벽이라고 해도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군이 한 번에 밀려드는 것은 막아줄 정도는 됐다.

“돌격!”

안도 가문의 무장은 볼 것이 없이 돌격을 명했다. 조그만 성 따위는 순식간에 잡아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놈! 지금까진 잘도 빠져나갔지만 어림도 없다!’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전투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1조 사격 준비!”

“2조 사격 준비!”

“1조 쏴!”

“2조 쏴!”

성 벽에 자리 잡은 신유성의 병사들은 조별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던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가자 지휘에 따라 조장이 명령을 내렸다.

순차적으로 쇠뇌를 쏘니 한꺼번에 쏘는 것에 비해 효율이 늘어났다.

더구나 쏘고 난 다음에는 바로 뒤에서 장전된 쇠뇌를 건네주었다. 사수들 뒤에선 재장전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계속 순차적으로 쇠뇌를 쏘니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쉽게 성벽에 다가가질 못했다.

방패도 없었고 몸에 걸친 갑옷도 뚫고 박히는 쇠뇌는 무서웠다.

시체가 계속 늘어났다.

그러자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겁을 먹었다.

순식간에 많은 수가 쓰러지니 두려움에 속도가 느려진 것.

“돌격!”

하지만 머뭇거리던 이들의 목은 뒤에 있던 무사들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였다.

이에 안도 가문의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멈춰도 죽고 달려도 죽는다.

그렇다면 싸우다 죽는 편이 그래도 살 가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살기 위해 악착 같이 달리는 병사들.

그리고 살기 위해 악착 같이 쏘는 병사들.

양측은 악에 받쳐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안도 가문의 병사들이 성벽에 도착했다. 허나, 성벽을 넘기 위해 오르려는 순간,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위에서 내리 찍었다.

“커헉!”

그러면서도 쇠뇌를 지닌 병사들이 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격 속도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화살을 날렸다.

성벽 위에서 신유성의 병사들이 적을 저지하는 동안 사격이 계속 이루어졌다.

결국 안도 가문은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병력이 적다고 얕보고 밀어붙이다 입은 피해가 5천명이었다.

반면, 신유성의 군대는 300명 정도의 사상자를 냈을 뿐이었다.

“대승입니다!”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놈들이 타고 온 배를 빼앗고 북해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냥 준비는 끝났나?”

“네!”

안도 가문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다는 판단에 후퇴했다. 7천으로 함락시키지 못한 성을 2천으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면, 신유성의 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 도망치는 적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쇠뇌를 들고 가서 한 발씩 먹여주면 끝나는 일.

공을 세워 체면치례를 하고자 가신들은 너도나도 사냥에 참가했다.

배를 빼앗기고 빠져나가지 못한 안도 가문의 군대는 결국 북해도에서 전멸하고 말았다.

패잔병들이 흩어지긴 했지만 이들은 닌자들의 추적을 받아 모조리 척살 당했다.

1만의 병력을 물리치자 가신들은 저마다 흥분하며 신유성을 다시 보았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특히 후지바야시 켄은 감동하기까지 했다. 신유성의 용병술은 그야말로 귀신같았다. 2천으로 1만의 적과 싸워 이겼다. 더구나 싸운 2천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이런 기적 같은 전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닌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 명을 내리겠다. 절대 쇠뇌가 북해도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관리해라. 그리고 외지인은 철저히 검문하고. 그리고 전투에 대한 사실도 최대한 숨기고 전하지 마라! 절대 정보를 팔지 마라. 파는 놈은 일족을 멸하겠다.”

승리 이후 신유성은 다시 가신들을 바짝 조였다. 하지만 불만을 품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신유성의 명령이 더 밝은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럼 오늘부터 삼일 동안 승전 축제를 연다. 병사들에게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라.”

북해도의 밤은 흥청거렸다. 그리고 안도 가문의 패배 소식이 빠르게 주변 영주들에게 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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