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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8화 (2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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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뭣이? 1만이 몰살?”

“그렇습니다.”

“상당했나보군.”

다테 하루무네는 신유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신유성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이겼는지는 알아냈나?”

중요한 것은 바로 승리를 쟁취한 과정. 특히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겨낸 방법은 탐이나는 것이었다.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알아내도록.”

하루무네는 닌자들을 더 투입하도록 명했다. 주변 가문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디서 온 놈이지?”

“무쓰에서 왔습니다. 여기 좋은 가죽이 있다고 들어서요.”

“돌아가라. 영주님이 교역을 금하셨다.”

“하지만.”

“돌아가.”

신유성은 대부분의 교역을 금지했다. 북해도에서 장사할 수 있는 배는 오직 하나. 대마도에서 온 배 뿐이었다. 이들의 신분은 철저하게 검사했고 감시했기 때문에 상인들을 통해 정보가 흘러나가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정보를 캐려는 닌자들은 은밀히 투입해 납치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을 예측한 코가와 이가 닌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침투한 자들을 척살했다.

더구나 수시로 해변을 감시하는 닌자들이 있어 배도 대기 어려운 탓에 탈출도 어려웠다.

결국 북해도에 들어왔던 외부의 닌자들은 척살 당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안도 가문과의 전투에서 승리 이후, 신유성은 다시 관심을 아이누로 옮겼다.

신유성이 한 번 쇠뇌를 이용한 전술을 보여주자 가신들은 이를 토대로 새롭게 전술을 짜내며 병사를 조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유성의 군대가 싸워서 대승을 거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많은 지원자가 강력하게 입대를 원했다.

예전에 무서워서 지원하지 않았던 이들이 자신이 했던 선택을 후회하면서 매달렸다.

하지만 입대는 아무나 시켜주지 않았다. 무조건 기준을 통과한 이들이 아니면 돌려보냈다.

병력 손실은 금방 채워졌고 이제는 숫자가 예전보다 더 늘어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절대 한꺼번에 숫자를 늘리지 못하게 했다.

“숫자만 많다고 잘 싸우는 건 아니다. 물자 보급에 대해 더 신경 쓰도록.”

생산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병력을 끌어 모으면 말짱 헛수고였다.

회의를 마친 신유성은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힘들다.’

닌자 출신으로 이뤄진 가신들의 신뢰는 어느 정도 얻어냈다. 그들의 태도가 좀 더 순종적으로 변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배신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

멀리 내다보기만 하고 발밑을 살피지 않고 걷다가는 함정에 빠지기 딱 좋았다.

그렇기에 신유성은 착실히 가신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안도 가문이 쳐들어왔을 땐 항문이 쫄깃쫄깃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가신들의 표정은 신뢰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리해진다면 뒤통수를 칠 것만 같았다.

때문에 매일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 시대의 권력은 그야말로 피바다 위를 항해하는 거구나.’

조그만 영지 하나 가지고도 심력 소모가 심했다. 신유성의 경우에는 지지기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 심했다.

‘사이토 도산이라고 했던가? 그 양반이 정말 대단한 거군.’

은인까지 배신하며 강력한 영주가 된 사이토 도산. 인간적으로는 정말 신뢰하지 못할 망종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 그 정도의 독기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겠지.’

자리에 누운 신유성은 문득 고독을 느꼈다.

쉬는 시간인데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권력이라는 괴물이 점점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권력을 놓는 순간 목이 떨어질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권력을 놓을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젠장.’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을 이미 끌어들였다. 다른 가신들은 몰라도 신페이와 호위들은 신유성에게 무한한 충성을 보였다.

‘그들의 믿음은 저버릴 수 없어. 이딴 것에 질 수 없어.’

하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숨이 막혔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있지만 정신적인 압박이 몸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좀 쉬어야겠다.’

신유성은 바람을 쐬기 위해 움직였다.

밖으로 나와 움직였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볼을 간질였다.

‘평화롭구나.’

그렇게 여긴 순간이었다. 멀리 토끼를 물고 가는 여우가 보였다.

“거 참.”

평화로운 풍경에 돌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니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연은 평화롭다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었다. 심지어 가만히 서 있는 것만 같은 나무들도 서로 싸운다. 뿌리를 뻗어 영양분을 빼앗고 더 크게 자라 작은 나무가 크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죽어버린 작은 나무들은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 큰 나무의 양분이 된다.

‘모든 것은 흙으로.’

죽은 것들이 어디 하늘로 날아가지는 않으니 결국 흙으로 간다는 소리였다.

그저 그렇게 한 세상 살다 다들 가버리는 것.

‘잊지 말자. 중요한 것은 내가 즐거울 것.’

잠시 영주 노릇을 하느라 잊었던 것을 떠올린 신유성은 즐거울만한 일을 생각해보았다.

‘음악 정도인가?’

술은 아직 즐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여자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한 신유성이었다. 무엇보다 아무 여자나 곁에 둔다면 권력 누수가 일어날 수 있었다.

곁에 둔 여자가 만약 멍청한 행동이라도 한다면 힘겹게 쌓아올린 권력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이 시대 음악은 별로지만.’

미래의 자극적인 노래들을 듣던 신유성에게는 심심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심심한 음악으로 여흥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기생들이 연주하는 노래를 듣던 신유성은 하품을 했다. 심심했다.

“그거 줘봐.”

샤미센을 받은 신유성은 줄을 튕겨보았다.

괜찮은 소리가 났지만 기타를 연주할 때처럼 다채로운 소리를 내긴 힘들었다.

“으음.”

“주군, 마음에 안 드십니까?”

신유성을 따라다니던 후지바야시 켄은 눈을 부릅뜨며 기생들을 노려보았다. 기생들은 벌벌 떨었다. 조만간 신페이가 검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겁주지 마. 왜 죄 없는 여자들한테 그래. 죄라면 이 심심한 악기가 죄지.”

신유성은 샤미센을 가리켰다. 켄의 눈이 번득였다.

“부술까요?”

최근 승리로 인해 켄은 신유성에게 감복했다. 켄이 보기에는 정말 믿기 힘든 승리였다. 5배의 전력 차를 뒤집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최근 신유성에게 인생을 걸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부수지 마라. 아깝다.”

그렇기에 신유성의 행동에 살짝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신유성은 이런 켄의 행동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어이쿠.’

하지만 하지 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언제 배신을 때릴지 모를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샤미센을 만드는 장인은 여기 없을 거고. 악기 하나를 주문하고 싶은데.”

얼마 뒤, 기타의 설계도를 가진 닌자가 샤미센 장인이 있는 영지로 향했다.

한편, 안도 가문은 떠들썩했다.

패배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도 가문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

“추가로 병사를 보내 완전히 눌러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잘못될 경우 위험해집니다!”

1만의 병력이 돌아오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이겨서 영지를 차지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지한 영지에서 다시 병사를 징집하면 되니까. 하지만 영지도 차지하지 못하고 병사들은 돌아오지도 못했다.

여기서 추가로 파병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번에도 잘못된다면 타격이 좀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늑대들은 약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는 것이 특기였다.

“난부 가문의 움직임이 수상하답니다.”

결국 안도 가문의 당주는 추가 파병을 보류했다.

“지금은 다시 숨을 고를 때다. 언젠가 반드시 북해도를 친다!”

한편, 난부 가문은 안도 가문이 움직이지 않자 조금 아쉬워했다.

“실패로군.”

“그래도 저쪽에 타격이 없던 것은 아니니 좋은 일이지요.”

“그래, 우린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적이 약해지는 걸 봤을 뿐이지.”

“아쉬우십니까?”

“얻은 게 별로 없으니까.”

난부 하루마사는 술잔을 들이켰다.

“취하지도 않는군.”

“그럼 우리쪽에서 치러 갈까요? 아마 싸우고 난 뒤라 정신없을지도 모르는데.”

“관둬라. 닌자들을 보내도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선에서 온 신동이 보통이 아닌 건 확실해.”

학문을 좀 잘 하고 그림 잘 그리는 그런 신동이 아니었다. 하루마사는 신유성이 언젠가 비상할 용처럼 느껴졌다.

“위험하다면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위협을 느낀다면 우리보다 다테가 나서야지. 다만 얻는 게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야.”

하루마사는 계속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의 눈은 늑대처럼 빛났다.

그것은 굶주린 늑대의 눈빛이었다.

북해도의 변화가 있었지만 주변 영지의 상황은 물고 물리는 관계가 이어지며 결국 북해도를 그냥 내버려두게 되었다. 또한 혼슈 서쪽 해안가의 영지들은 갑자기 자주 들락거리는 대마도의 상선들로 인해 꽤 짭짤한 이득을 보고 있었다.

대마도와 북해도의 관계를 알기에 이득을 보는 영지들은 그냥 묵인해버렸다.

어차피 위협이 안 되는 상황이니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잘 되고 있군.’

닌자들의 종합 보고를 들은 신유성은 한시름을 놓았다.

‘당분간 전력을 키우기만 하면 된다.’

쇠뇌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거운 무기라고 다들 인상을 썼지만 지난 전투에서 보여준 놀라운 효과에 불평은 쏙 들어갔다. 그리고 장인들은 쇠뇌란 무기를 더욱 개량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시간은 벌었다.

‘다테 가문도 조용하고. 좋구나.’

긴장을 완전히 풀 때는 아니었으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기타가 도착했다.

“잘 만들었네.”

기타의 유려한 곡선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줄을 튕기니 영롱한 소리가 울렸다.

“좋아.”

스페인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가 떠올랐다. 열심히 연습해서 기타를 연주해주었을 때 좋아하던 모습이 뇌리에 선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얼굴을 떠올리며 연주에 들어갔다.

연주곡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신유성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간,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과 무사들은 멍해졌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선율 때문이었다. 그런데 연주를 좀 하던 신유성이 멈췄다.

“이 소리가 아닌데.”

순간 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기에 이상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장인을 납치해올 기세였다.

“만들어진 것은 이상없다. 다만 내가 그림을 잘못 그려준 것 같다.”

“주군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분명 장인이 실수한 것입니다.”

“아니, 그냥 생각처럼 소리가 안 나와서 그런 것뿐이다. 죄 없는 장인 잡지 말도록.”

‘악기를 재현하는 것도 힘든 일이구나.’

미래의 많은 것들이 신유성의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사용자였지 제작자가 아니었다.

개념은 설명을 해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려웠다.

뜻하지 않게 한계에 부딪치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즐거운 일이 있나? 오늘은 그냥 생각 없이 놀고 싶다.”

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많이 힘드셨겠지.’

닌자로서 수많은 영주들에 대한 보고를 들어 알고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국시대. 영주들도 죽음의 공포 앞에 벌벌 떨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항상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문화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를 소개해줄 수도 없고.’

아직 어린 신유성이 여자를 알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냥은 어떻겠습니까?”

“사냥?”

“북해도에는 사냥감이 많습니다.”

‘사냥이라 나쁘지 않지만 예로부터 암살은 사냥터에서도 많이 일어났지.’

행여나 사고라도 나면 난감했다.

“아니. 사냥은 됐고 낚시나 가자.”

신유성은 낚싯대를 구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낚시를 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감상하다 손에 느낌이 오면 들어올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물고기가 바늘에 걸려있었다.

꽤 잡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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