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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32화 (3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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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 상인

조선공을 얻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호세는 휘하 선원 중에 조선공을 여럿 데리고 있었다. 원양 항해를 하다보면 배가 고장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하니 만약을 대비해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여러 배를 설계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를 만들 정도의 실력은 있는 조선공들이었다.

“미구엘. 네가 남아야겠다.”

“네?”

“저쪽에서 널 원했다. 여기서 살면서 배 만드는 것을 가르쳐줘라. 그러면 다음에 와서 데려가겠다.”

일방적인 계약 파기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더 준다고 하니 더 따지기도 그랬다. 다른 조선공들은 모두 미구엘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젠장 더러워서.’

원래 선원 일을 어렵다. 힘들고 괴로운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아나 다름없는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배에서 길러지며 자연스럽게 선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랑자들도 선원이 되기도 했다.

거친 삶 속에서도 미구엘은 미래를 위해 배에 대해 공부했다. 그렇게 조금씩 배워 조선공이 되었다. 대접은 더 받았다. 이젠 밑에 부하를 두고 일을 시켜먹기도 했다. 머지않아 돈이 좀 모이면 배에서 내려 조선소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세가 배에서 내리라고 한 것이었다.

“너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니다. 네가 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준다면 사례를 한다고 했어.”

“후우. 알겠습니다.”

미구엘은 배에서 내리며 침을 뱉었다.

“당신이 미구엘?”

신유성을 본 미구엘은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새 고용주가 새파랗게 어린 꼬마였다.

‘뭔가 대단한 집안 아들인가?’

귀족가의 자식이라면 가능한 일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다만 새 고용주가 어리다는 점이 문제였다.

‘마음에 안 든다고 변덕 부리면 골치 아픈데.’

어린 아이들은 변덕이 심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귀족가의 자식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잘못 걸리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들었다.

걱정이 마구 불어났다.

“그렇습니다.”

“반갑군요. 신유성이라고 합니다.”

“제게 원하는 게 정확히 무슨 일입니까? 배를 만드는 겁니까?”

“더 정확하게는 다른 이들을 조선공이 되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사례는 해드리죠.”

“가르치는 일입니까? 그런데 보수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만약 신유성이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한다면 몰래 밀항해서라도 도망칠 생각이었다.

“미구엘씨가 만든 배 중 하나를 드리죠.”

“헉!”

“어떻습니까?”

미구엘은 목이 빠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의욕이 샘솟았다. 열심히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호세와의 거래에서 신유성은 다량의 화약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빼돌린 뒤 전부 쇼니 가문에 되팔았다.

한 번의 거래로 많은 것을 얻어낸 신유성은 대마도로 다시 돌아왔다.

“습격을 받았다더니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으음, 다행이군.”

신유성은 마사모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루야스 또한 더 말하지 않았다. 마사모리의 일은 쇼니 가문과 연관이 있었다. 마사모리에게 할복을 명한다고 문제가 깔끔하게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쇼니 가문의 손길이 대마도에 뻗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사모리가 죽어도 마사모리의 세력에 속했던 가신들이 가만히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더구나 마사모리의 죄를 낱낱이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자칫하면 쇼니 가문의 당주와 반목하게 되니까.

과거 오우치 가문이 엄청나게 강했을 때라면 오우치 가문과 손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오우치 가문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쇼니 가문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웠다.

“그것보다 이번에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해라.”

미안하기 때문에 뭐든 들어주고 싶은 하루야스였다.

“조선공들을 좀 지원해주시죠.”

“뭐?”

“남만인들과 같은 배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남만인들의 범선은 크고 빨랐다. 하지만 그만큼 돛을 만드는데 필요한 면포가 많았다. 일본의 상황에서 범선 하나에 쓰일 면포의 양은 상당했다. 일본의 현재 상황에서는 조금 느리더라도 배를 여럿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면포는 현재 조선에서 수입해다 쓰는 처지였다. 그러니 범선을 대량으로 만든다면 비용이 상당히 들어갔다.

“제가 이걸 드리죠.”

신유성은 해구신을 꺼냈다.

“조선 상인에게 파십시오. 아주 비싸게 불러도 사겠다고 할 겁니다.”

“이것은?”

“돈 많은 조선 양반이라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갈 물건이죠.”

신페이가 구해온 해구신을 몽땅 내놓았다.

“앞으로 종종 구해올 겁니다. 이걸로 당분간 조선의 면포를 사는데 썼으면 합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배 유지비가 많이 들 텐데.”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우선 배를 만드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천천히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배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 아직 제대로 된 조선소도 없으니 오래 걸릴 일이었다.

“북해도에서 배를 만들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알았다. 도와주지.”

하루야스는 허락했다. 남만인들의 배를 만들어서 어디에 쓸까 궁금했지만 다 생각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더 묻지는 않았다.

‘이제 놈을 만나 볼까?’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 신유성은 그냥 돌아가기는 억울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신유성은 마사모리의 거처에 대뜸 들어서서 인사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무사들이 막으려 했으나 신유성을 따르는 차돌과 닌자들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무슨 짓이냐?”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뭐?”

“다음에는 제가 선물을 드리죠. 밤에 잘 때 조심하시고.”

말을 하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마사모리는 크게 노했다.

“네 놈이!”

“난 그냥 언제 선물을 보내겠다고 한 건데. 왜 화를 내십니까?”

“감히!”

“뭔지 몰라도 검으로 해결을 볼 거라면 상대해 드리죠.”

신유성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마사모리의 부하가 말렸다. 신유성의 검술이 신묘하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해서 마사모리가 결투에서 죽는다면 곤란했다.

신유성은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이더라도 요시시게가 당주가 된 다음에나 할 생각이었다.

‘쇼니 가문보다 더 강한 힘을 얻기 전에는 목을 붙여놔 주마.’

“알았으니 돌아가라. 네 선물은 받고 싶지 않으니 보낸다면 돌려주겠다.”

보복을 하겠다는 말을 빙 둘러 말했다.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신유성은 거처로 돌아왔다.

다음 날, 신유성은 매화와 차돌 나츠 그리고 신페이의 동생인 레이를 데리고 북해도로 떠났다.

북해도로 가는 길에 습격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뭐라고요?”

“궁금한 게 있으면 글로 쓰지? 그럼 내가 옆에 적어줄 테니까.”

북해도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미구엘의 교육이었다. 미구엘은 포르투갈어와 에스파냐어를 빼고는 다른 말을 못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자연히 일을 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때문에 신유성은 미구엘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야 했다.

“잡다한 건 생활하면서 알아서 배우고 배 만드는 것에 대해서만 적도록.”

배를 만들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설계야 미구엘의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다른 사람을 부리려면 말이 통해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인부로 써먹기 어려웠다. 간단한 말이라도 어느 정도 통해야 일을 시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에스파냐어를 배우면 편하지만 신유성은 배에 대해 잘 몰랐다. 잘 알았다면 신유성이 직접 나서서 배를 만들지 미구엘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거나 신유성이 배에 대해 잘 모르니 다른 이들에게 에스파냐어를 가르쳐도 배를 만드는데 쓰이는 전문용어는 가르칠 수 없었다.

‘말이라도 통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언어에 재능이 없었거나 스페인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면 더 고생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적어보겠습니다.”

‘미구엘이 글도 모르던 녀석이었으면 더 고생했을지도.’

하지만 미구엘은 붓글씨를 쓸 줄 몰랐다. 문제는 산더미였다.

‘연필! 종이! 연필! 종이!’

미구엘이 말하는 것을 신유성은 받아 적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알파벳을 붓으로 적는 것은 꽤나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깃털 펜을 만들어 쓰려고 했는데 종이가 찢어졌다. 붓글씨에는 적당하지만 펜글씨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

신유성은 연필과 종이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만들까 싶었지만 연필은 당장 만들기가 어려웠다.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유학을 하며 이런 저런 견학을 했고 배운 것도 있었다. 연필 만드는 공장 견학도 그 중 하나. 하지만 자세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어서 많은 실험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결국 더 질긴 종이를 만들기로 했다.

‘받아쓰기 하다간 할 일을 못한다.’

영주는 할 일이 많았다. 가신들과 매일 회의를 하고 영지 내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또한 영지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받아쓰기 하는데 보낼 순 없었다.

“더 질긴 종이를 만들게 하라.”

결국 선택은 깃털 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알아서 하겠지.’

이후 신유성은 영지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움직였다.

한편, 신페이와 켄은 잔뜩 열 받은 상태였다.

“감히 주군에게 손을 대려고 해?”

켄은 당장에라도 대마도로 날아가 마사모리의 목을 치고 싶었다.

“그 놈 하나 죽인다고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 죽이면 주군이 의심 받는다.”

“젠장!”

신페이는 냉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타올랐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동생 레이가 신페이를 슬슬 피할 정도였다.

“쇼니 가문이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 놈들은 죽어야 해.”

“쉽게 죽을 놈들은 아니지.”

암살은 어려웠다. 영주는 무사들에 둘러 싸여 생활했다. 침투해서 죽인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럼 이대로 두고 보잔 말인가?”

“그건 아니지. 놈들의 정보를 철저하게 캐내서 주변 영지에 흘린다. 그리고 놈들의 닌자들을 죽여야지.”

“그거 좋은 생각이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군의 명. 북해도의 정보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전력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데?”

“적지에서 직접 키우는 방법도 있지.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도 아니니까.”

“그렇군.”

신페이와 켄은 웃으며 손을 잡았다.

닌자는 영주들의 눈과 귀와 같은 존재. 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영주의 판단력도 흐려질 수 있었다.

전국시대의 늑대들에게 판단력이 흐려진 영주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북해도에 자리 잡았던 코가와 이가 닌자들이 큐슈로 향했다.

쇼니 가문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깊은 밤.

나츠는 신유성의 곁에 누웠다. 매일 그리워했던 순간이 오니 행복했다.

“정말 꿈만 같아요.”

“꿈은 무슨.”

부스럭.

이불 속에서 신유성의 품에 파고드는 나츠였다. 예전에는 나츠가 조금 컸지만 이젠 신유성이 훨씬 컸다. 그래서 품에 안는 것이 아닌 안기는 자세가 나왔다.

나츠는 신유성의 품에 안겨 얼굴을 들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얼굴의 선이 보았다. 감히 만지지는 못하고 눈으로 선을 더듬을 뿐이었다.

더구나 못 본 사이에 신유성은 더욱 늠름하게 변했다.

소녀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정식으로 식을 올리며 신유성의 여자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신유성은 어느새 잠든 상황.

나츠는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조용히 상상에 빠졌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

꿈속에서 나츠는 신유성과 함께 커다란 성의 꼭대기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래에는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나츠는 행복해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과 함께 찾아온 요의 때문에 일어나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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