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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33화 (3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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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 상인

미구엘은 잔을 들었다. 잔이 기울어지자 술이 흘렀다. 이어서 구운 생선 한 점을 먹었다. 그 외에는 이런 저런 야채 절임을 집어 먹었다.

‘좋구나!’

뱃사람이 먹을 것을 가리는 일은 별로 없다. 배에서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벌레 먹은 음식을 먹기도 했고 가끔은 상한 것을 먹고 바다 한 가운데서 선원들이 단체로 드러눕는 일도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육지의 음식은 더할 나위 없는 만찬.

이국적인 음식이라 하더라도 가리진 않는다. 뭘 먹어도 배에서 먹는 것보다는 맛있었으니까.

하지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잠깐이었다.

인간의 위장은 무한하지 않다. 그렇기에 먹는 즐거움을 즐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안주로 적당히 배가 불러지면 술만 마시게 된다.

‘이럴 때 여자를 안으면 참 좋은데.’

배가 부르고 알딸딸하게 취한 상황. 기분이 좋아지다가 갑자기 우울해졌다.

동료도 없고 밤을 같이 할 상대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홀로 밤을 보내는 것은 고독했다.

미구엘의 한숨에 타오르던 등잔불이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등잔불의 춤은 위로가 되질 못했다.

‘여기 말이나 배워볼까?’

외로웠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었으나 그때까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미구엘은 돌아다니며 여자를 물색했다.

후지바야시 켄은 여자를 유혹하려 돌아다니는 미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남만인이라 이거지?’

이질적인 외모의 남만인. 말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은 열심히 여자를 유혹하려고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여자들은 미구엘이 다가오면 기겁해서 도망쳤다.

해롭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나 이질적인 외모가 장벽이 되었다. 더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니 무섭기도 했다.

미구엘의 행동에 켄은 금방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외로운 모양이군.’

남자가 여자를 찾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타국에 홀로 남은 미구엘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저 놈의 말을 배우면 주군께서 날 좀 더 데리고 다니시겠지?’

그렇게 된다면 신페이처럼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켄은 결심했다.

‘그래. 너도 포함시킨다.’

켄은 기왕이면 많은 나라의 말을 배우기로 했다. 조선 말은 물론 명나라 말에 여진 말까지 배우려고 준비 중이었다. 여기에 미구엘이 쓰는 남만의 말까지 포함시킨 것이었다.

‘우선 준비를.’

켄은 창녀를 한 명 고용해 밤에 미구엘을 찾아갔다.

“음?”

“여자다.”

만나자마자 켄은 미구엘에게 여자를 밀었다. 살짝 밀린 여자는 나비처럼 날아 미구엘의 품에 안겼다.

여자가 안기자 미구엘의 팔은 자연스럽게 여자를 안았다. 부드러운 몸의 감촉에 찌르르 낭심이 불끈했다.

“나중에 보자.”

켄은 더 방해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미구엘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여자를 안았다. 옷을 벗겨도 반항하지 않고 품에 더욱 안겨오니 환장할 것 같았다.

나신이 된 두 남녀는 하나로 뒤엉켰다.

거친 열풍이 몰아쳤다.

여자는 경험이 많아 남자를 어떻게 하면 자극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미구엘은 몇 번이고 사정했다. 그리고 지쳐서 여자를 안고 잠이 들며 생각했다.

‘포근하다.’

따뜻한 체온에 매일 밤 쌓아올렸던 고독의 산이 허물어졌다.

다음 날, 켄은 아침 일찍 찾아왔다. 켄을 본 미구엘은 활짝 웃으며 반겼다.

“친구여!”

어느 날 갑자기 여자를 안겨줬으니 친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친구?”

“그래! 친구!”

켄은 남만어로 말하는 미구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익숙해졌다.

손으로 사물을 가리켜 서로 말하는 것으로 하나씩 맞춰나간 것이었다.

‘이거 귀찮네.’

배우기 위해서 직접 나섰지만 말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선 말을 먼저 배우고 이건 나중에 해야지.’

결국 귀찮은 일은 부하에게 떠넘겼다.

“매일 여자를 안겨줘라. 그리고 말을 최대한 배우고.”

미구엘의 북해도 생활은 그렇게 안정을 찾았다. 술과 여자와 함께 쾌락의 밤을 보내고 나면 낮에는 말을 배우러 온 닌자와 함께 열심히 입을 놀렸다. 그리고 신유성이 한 일을 했다.

덕분에 지루함은 이겨냈다.

‘뭘 더 할 수 있을까?’

벌여놓은 일이 많았다. 대마도를 이용한 교역으로 북해도의 재정은 안정적이었다. 재정이 안정적이니 가신들이 불만을 가질 겨를은 없었다. 더구나 신페이처럼 영지 하나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신유성에게 더욱 충성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신유성이 보기에는 부족했다.

‘안정적이지만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그때 생각난 것은 아이누. 이들을 잘 이용한다면 인구를 더 빨리 늘림과 동시에 경제를 더욱 빠르게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다는 것.

‘대화도 겨우 통하는 수준.’

빛나는화살을 비롯한 인근의 아이누 부족이 아니면 교류도 어려웠다.

가장 쉬운 정복은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

하지만 무력으로 정복해버리면 반발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신유성의 영지에 있는 영지민들 입장에서 무력으로 점령한 대상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는 인식이 퍼진다.

이런 인식은 나중에 좋지 않았다. 분열의 싹이 될 수 있었다.

‘스스로 넘어오게 해야 해.’

방법은 있었다.

‘문명으로, 문화로 꼬시는 거야.’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었다. 신유성은 아이누족을 낚을 계획을 세웠다.

“뭘 짓는 건가?”

“손님 접대하는 집.”

“손님?”

“응.”

빛나는화살은 영지로 거래를 하러 왔다가 아이누족과 신유성의 영지 경계 부근에 세워지는 집을 보고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손님?”

“말에는 아이누를 대접하는 집이라던데?”

“흐음?”

빛나는화살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신유성이 대체 뭘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이들만 먼저 돌려보냈다.

기다리는 동안 빛나는화살은 집을 짓는 방식을 눈여겨보았다. 좀 더 좋아 보이는 집이 지어지고 있으니 호기심에 바라본 것. 보통 이러고 있으면 과거에는 쫓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뭔가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옛날과는 분위기가 달라.’

빛나는화살은 바뀐 분위기를 느끼며 아예 눌러앉았다. 그래도 공짜로 먹고 자는 것은 미안해서 일도 배울 겸 공사를 도왔다.

그렇게 공사가 끝나고 안을 돌아보게 되었다.

깔끔했다.

‘좋구나.’

집을 둘러보며 빛나는화살은 욕심이 조금 생겼다.

‘나도 이런 집 가지고 싶네.’

견물생심.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보통이다.

“마침 잘 됐군.”

신유성은 완성된 집을 보러 왔다가 빛나는화살을 보고 웃었다.

“빛나는화살. 당신이 첫 손님이다.”

신유성의 말에 빛나는화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래, 대접할 테니 받아보라고.”

이후 접대가 시작되었다. 우선 빛나는화살은 욕실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 금방 데운 따끈따끈한 물로 몸을 씻고 나오자 다른 옷이 준비 되어 있었다.

대접이란 말을 떠올린 빛나는화살은 준비된 옷을 입었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은 매우 간편해서 입기도 편했다.

‘이게 다 뭐야?’

옷을 입은 뒤에 안내를 받아 간 곳에는 화려한 상이 놓여 있었다.

“앉지.”

자리에 앉게 된 빛나는화살은 상 위에 놓은 음식들을 보았다. 신유성이 기억을 되살려 만든 갈비찜에서부터 생선튀김 등 여러 요리가 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못 먹는다.”

“걱정마라. 남은 것은 천천히 먹으면 되니까.”

작은 그릇에 조금씩 덜어진 음식들. 하나하나 맛을 음미하던 빛나는화살은 혀가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히야.’

감탄이 거듭 나왔다. 색다른 음식들이 주는 다채로운 맛의 향연은 빛나는화살을 감탄하게 했다. 특히 생선회와 초밥은 빛나는화살의 입맛에 딱 맞았다.

“잘 먹었다.”

더 먹기 힘들 정도로 많이 먹었다.

“이젠 노래를 듣도록 하지.”

상이 치워지자 악기를 든 여인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신유성의 입장에서는 조금 심심한 음악이었지만 빛나는화살에게는 색다른 여흥을 안겨주었다.

이어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자 빛나는화살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자! 일어나라고!”

손뼉에 맞춰 춤을 추는 빛나는화살은 즐거웠다.

맛있는 밥을 먹고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은 아이누의 행복이기도 했다.

신유성이 이에 맞춰서 놀아주었다. 그리고 술이 나왔다.

술과 안주를 즐기던 빛나는화살은 곪아 떨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부드러운 이불 속에서 일어나며 개운함을 느꼈다.

‘일어나기 싫다.’

이불의 포근함이 빛나는화살의 몸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어제는 참 즐거웠어.’

가끔 이렇게 노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빛나는화살은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가를 치르고 싶다.”

“첫 손님이니 공짜다.”

“공짜는 싫다. 자, 받아라.”

빛나는화살은 허리춤에서 사금이 든 자루를 내밀었다.

“이건 너무 많다.”

“다음 것 계산도 같이다.”

“그렇다면 기억해두겠다.”

빛나는화살이 가고 나자 신유성은 여관 책임자에게 사금자루를 건넸다.

“이건 여관 운영하는데 쓰고 아이누에게는 외상을 준다. 다 장부에 적어놔야만 한다. 언제 와서 얼마나 먹고 마시고 놀다 갔는지. 모자란 것은 다른 이에게 말하면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얘기를 들은 관리인은 속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영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어린 나이에 영지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영주였다. 관리인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나는화살은 동료들을 이끌고 여관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음껏 먹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악기까지 가져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와하하하하하!”

춤을 추며 놀고 나서 술을 마셨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단체로 쓰러져 잠들고 다음 날 아침에는 해장국을 먹고 돌아갔다. 이후 여관을 이용하는 아이누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여관의 창고에는 먹고 논 대가로 주고 가는 가죽이나 고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고기가 문제라고?”

“그렇습니다. 처치 곤란한 정도입니다.”

가죽은 상관없었다. 사금도 좋은 상품이었다. 하지만 고기는 애매했다.

고기는 오래 놔두면 상하기 때문이었다.

“훈제를 한다.”

오래 보관 못한다고 영지민들에게 전부 나눠줄 순 없었다. 휘하에 키우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쪽으로 돌려도 되지만 그쪽은 이미 많은 양의 생선을 비롯한 단백질을 공급 중이었다.

그래서 훈제고기를 만들도록 명했다.

나무를 태워 연기로 고기를 익힌다고 하자 다들 흥미로워했다. 북쪽의 차가운 칼바람에 말리는 방법은 알고 있었으나 연기에 익히는 것은 신선한 방법이었다.

‘건강에 나쁘다고는 해도 뭐.’

신유성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균 수명이 짧아서 정말 장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훈제한 고기는 영지민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고기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했다. 더구나 바람에 말리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훈제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렇기에 더욱 좋아했다.

“이건 정말 좋군요.”

켄은 훈제 고기를 극찬했다. 병사들의 전투식량으로도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불을 피우지 않아도 먹을 수 있으니 매복을 하거나 할 땐 매우 유용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만들지는 말고. 이것도 오래 두면 상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북해도는 신유성의 노력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1551년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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