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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34화 (3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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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

1551년이 되었다. 신유성은 어느새 11살이 되었다.

새해가 되자 신겸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고 묻는 단순한 안부 편지. 신겸혁은 신유성의 부탁은 뭐든 들어주었다. 신유성이 보낸 재물이 상당해서 부탁을 들어주고도 한참 남을 정도였다.

그래서 땅도 좀 더 사고 노비도 더 늘릴 수 있었다.

‘집은 문제없군.’

신겸혁에게 큰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돈을 벌게 되면 적당히 지역 양반들에게 뇌물도 챙겨준 덕분에 이상한 이야기가 퍼지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가난한 선비들을 지원해준 덕분에 평판이 좋았다.

번 돈을 대가도 바라지 않고 선비들에게 주니 욕을 할 이들이 없었다. 오히려 신겸혁이 돈 잘 버는 걸 시샘하는 자가 나오면 혼쭐을 내줄 정도였다.

특히 남명 조식에게 큰 칭찬을 듣기도 했다.

영남학파의 거두인 조식까지 칭찬하고 나선 것이 신겸혁이었으니 건드릴 자가 별로 없었다.

벼슬까지 마다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조식의 영향력은 영남에서는 상당했다.

조식과 가까이 지내기만 해도 벼슬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아 달라붙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날 한 번 보자고 했다고?’

하지만 신유성은 아직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없어도 이제 신페이가 어느 정도 영지를 다스릴 정도가 되었다. 신페이는 어느새 신유성이 가르치는 것들을 익혀 교역에 눈을 떴다.

더구나 닌자들 중에도 상재에 눈을 뜬 이들이 있어 장사는 더욱 원활해졌다.

이젠 신유성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갈 정도였다.

‘다음은 어딜 먹을까?’

그래서 요즘 부쩍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여진으로 진출하는 것과 남하해서 위협적인 영주들을 제거하는 것.

어느 정도 영지의 덩치를 키워놓으면 함부로 덤벼들 놈들은 없기 때문이었다.

‘좀 더 생각해볼 문제군.’

신유성은 산책을 나섰다.

옆에는 나츠와 매화, 그리고 신페이의 동생인 레이가 함께였다.

“다리 괜찮아?”

“네, 괜찮아요.”

많이 걸어야 했지만 나츠는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최근 들어 여자 닌자, 쿠노이치가 되는 훈련을 받은 덕분에 체력은 충분했다. 원래 나츠는 닌자가 될 생각이 없었으나 신페이의 동생인 레이와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닌자 기술들을 익히게 되었다.

매화와 함께 셋이서 놀다보니 가까워진 탓이었다.

“그럼 가자.”

나츠는 물론 매화나 레이도 멀쩡해 보였다. 꽤 먼 거리를 걸었으나 다들 힘들단 표정은 짓지 않았다.

“저기가 조선소야.”

조선소에서는 커다란 범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범선은 정체는 캐럭이었다.

“상당히 크네요.”

“그렇지? 나중에는 저런 배를 타고 세상을 돌아볼 거야.”

순간 나츠의 어깨가 살짝 쳐졌다. 신유성이 어딘가 또 가버린다니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막으면 안 돼.’

나츠는 신유성이 볼세라 고개를 들고는 웃었다. 신유성의 앞길을 막는 것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신유성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마을로 향했다.

아이들의 숫자는 이제 1천명에 도달했다. 수많은 아이들은 오직 신유성에게 충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

포르투갈어와 에스퍄냐어는 물론 조선과 명나라 말도 수준급으로 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아이들을 많이 모으고 경쟁을 시키다보니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난 덕분이었다.

또한 아이들은 저마다 특기가 있었다.

상재가 있는가하면 장인 기질이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싸움을 잘하는 녀석도.

신유성은 흐뭇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장차 자신의 손과 발이 될 아이들이었으니까.

‘좀 더 키워야지.’

신유성은 계속 아이들을 모집해 키우도록 명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장인들이 모여있는 곳.

장인 구역에서는 조선에서 넘어온 노비들이 상당했다. 신겸혁이 꾸준히 노비를 보내주어 숫자가 상당히 늘어났다. 이들은 모두 신유성을 주인으로 알고 지냈다. 무엇보다 타국이었기 때문에 신유성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도 않았다.

신유성 덕분에 가정을 이루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다들 만족이었다. 더구나 장인이 되어 물건을 잘 만들면 상을 주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이었다.

장인 구역을 돌아보고 향한 곳은 영지민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신유성이 나서자 모두 알아서 공손히 절을 했다.

목숨이 아까워서 벌벌 떨며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닌 진심이 담긴 복종의 몸짓이었다.

신유성은 끊임없이 집을 지었다. 집 짓는 이들을 따로 놔두고 계속 건설 기술을 축적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신유성의 영지민들은 공짜로 집을 하나씩 얻었다.

지금까지 어떤 영주도 집을 공짜로 지어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평화롭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고마운데 집까지 지어주니 그냥 하늘이 내려주신 영주님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신유성의 뒤를 따르는 세 소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홀린 듯 신유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모습을 보니 신유성이 엄청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되겠어.’

신유성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여진으로 간다.’

영지를 둘러보며 고민하던 신유성은 남하보다는 여진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을 떠나기 전에 하나의 비보를 접했다.

바로 오다 노부히데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4월. 오다 노부히데가 죽자 오와리는 폭풍에 휘말렸다.

바로 후계자를 두고 일어난 폭풍이었다.

“그 바보 같은 놈을 당주로 인정하라고? 절대 못 해!”

오다 노부유키는 불같이 화를 냈다.

노부히데가 죽기 전에 승계를 확실히 정하지 않아 당주의 자리가 결국 노부나가에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장례식에서 보인 행동이었다.

식이 거의 끝날 때 겨우 얼굴을 들이밀더니 말향을 아버지 영전에 집어던졌다. 이는 매우 불손한 행동으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다.

이런 노부유키의 행동에 몇몇 가신들은 조용히 뜻을 모았다. 평소 바보라고 소문났던 노부나가보다는 노부유키가 더 당주에 어울린다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허나, 이들은 몰랐다.

노부나가의 생각을.

“왜 그러신 겁니까?”

“그 놈들은 곱게 나를 따를 놈들이 아니니까.”

“네?”

“나는 당주다. 가신들에게 내 행동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나? 그대들이 할 일은 나를 섬기는 것이다.”

당주의 자리에 오르자 노부나가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무척이나 고압적이고 도전적이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사람들을 다독일 생각이 없었다.

‘따라오지 못하는 놈은 버리고 간다.’

천하일통.

그것을 위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당주의 자리에 올랐으니 집안 정리는 필수였다.

‘저들은 아버지의 사람. 내 사람이 되지 않겠다면 버린다.’

무엇보다 현재 오다 가문은 온전히 노부나가의 것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노부나가는 가문을 잇기는 했지만 방계였다. 본가는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었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상황에서 노부나가는 노부히데를 따르던 이들도 믿기가 어려웠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배신할 가신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 품은 뜻을 펼치기에는 적이 너무 많았다. 사방이 적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등 뒤에 비수를 꽂을지도 모를 이들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떠날 놈은 빨리 떠나는 게 나한테도 좋다.’

본가에서 오와리의 실권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부히데의 죽음으로 뒤를 잇기는 했지만 그것이 명목상의 승계라는 것을 잘 아는 노부나가는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여진으로 가는 배 위, 노부히데가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와리에서 맺은 인연을 떠올리니 가슴이 허전해졌다.

‘그래, 죽을 사람은 죽는 거야.’

무엇을 위해 살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한 번 죽으면 다시 볼 순 없었다.

‘아니, 볼 수 있으려나?’

윤회를 한다면 마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 서로를 알아본다는 보장은 없었다.

신유성은 웃었다. 바람을 닮아 어딘가 허전한 웃음이었다.

북해도에서 조금 더 북부로 가면 사할린이 나온다.

신유성은 사할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계속 북으로 올라가다 대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해안가에 자리 잡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고 배를 멈추도록 했다.

“역시 있네.”

여진족이었다.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주 가끔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족과 거래를 했다고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선 것이었다.

여진 말은 그 동안 연습해서 어느 정도 소통은 가능했다. 여러 언어를 계속 배우다보니 배우는 요령이 생겨 익히는 속도가 무척 빨라진 덕분이었다.

조선에는 여진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여진어를 하는 역관도 키웠기에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누구냐!”

“난 물건을 팔러 온 상인.”

해안에 자리 잡고 있던 여진족들은 도망가지 못하고 모여서 나타난 신유성을 경계했다. 신유성을 비롯한 이들이 모두 무장을 하고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로 왔지?”

상인이라고 했지만 경계심을 풀지 않는 여진의 대표였다.

“당연히 여진인을 만나려고.”

“우릴?”

“그래.”

신유성이 웃어보였지만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졌다.

“못 믿겠다.”

여진의 대표는 신유성이 방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기억?”

“넌?”

“나다. 큰곰발바닥”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족인 큰곰발바닥이 나서자 분위기가 단숨에 풀어졌다.

“너 잡힌 거냐?”

“아니다. 이 사람들 상인. 물건 좋다.”

“정말?”

“정말!”

아이누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그리고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족은 대륙에도 발을 디뎠다. 물론 대륙에는 여진족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여진족은 너무나 호전적이어서 대륙에서의 생활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진인들이 아이누를 적대한 것도 아니었다.

몇 번 교류를 한 여진인들은 아이누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얘기를 나누는 여진의 대표와 큰곰발바닥이었다.

“좋다. 거래 하겠다.”

가죽을 사러 다니는 상인이란 것을 알자 여진의 대표는 거래를 허락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역시 아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게 제일이야.’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다. 꾸준히 만나며 관계를 키워나간 뒤에야 겨우 조금 생기는 것이 신뢰였다. 상대를 잘 모르는데 대뜸 믿어달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특히 누군가 지켜줄 수 없는 황야에선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은 목숨을 맡긴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러니 아무나 믿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데리고 가면 안면 트기가 쉬웠다.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은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 여진인가?”

여진족의 대표는 해서 여진 출신이라고 답했다. 이리 저리 떠돌다가 강한 부족들에게 밀려 바닷가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말은 안파나?”

“산다면 말도 판다.”

“그럼 5 마리만.”

말을 사게 되면 가죽을 대량으로 사기가 힘들었다. 배의 적재 공간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가죽보다 말을 선택했다. 기병을 양성하려면 말이 필요했다.

‘일본은 보병 중심이니까.’

기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 귀해서 수가 몇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병을 보병보다 기동성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중요했다.

‘궁기병이 가장 좋지만.......’

신유성은 눈앞의 여진 대표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진인들은 대부분 말을 잘 탔다. 말을 타지 못하면 생활이 어려워지니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말 타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탐이 났다.

‘데리고 가기만 하면 그냥 기병이 될 텐데.’

양성할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초면부터 ‘자네 기병 할 텐가?’ 하고 물을 순 없는 법이었다.

‘괜한 소릴 했다가 관계가 어색해지면 곤란하지.’

신유성은 인내했다.

‘관계가 무르익으면 그때.’

“이걸 마셔라. 우리가 만든 술.”

신유성은 잔뜩 가져온 술도 넘겼다.

술맛을 본 여진인들을 좋다고 껄껄 웃었다. 그렇게 신유성은 해서 여진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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