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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35화 (3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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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과의 거래까지 마치자 신유성의 재산은 더욱 늘어날 계기를 맞이했다.

‘모피를 가져다 남만 상인에게 판다면 돈 한 몫 잡겠지.’

하지만 걱정되는 것도 있었다. 쇼니가문을 비롯한 주변 영지의 반응이었다. 힘이 없는데 보물을 가지게 되면 적을 불러들이게 된다. 타인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은 곧 인내를 시험하는 것과 같았다.

“말들은 어떻지?”

“이제는 안정을 취했습니다.”

먼 거리를 좁은 공간에서 지낸 말들은 쉽게 안정을 취하지 못했다.

“생필품을 계속 여진에 팔아 말을 늘린다.”

아울러 말에 흥미가 있는 이들에게 말을 타는 것을 권장했다.

이에 가신들이 가장 먼저 나섰다.

말을 탄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과 동일했다. 말은 가격도 비싸고 유지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을 타게 된 가신들은 저마다 말을 탐냈다. 그렇기 때문에 여진과의 교역에 더욱 열을 올리며 매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가고 싶어도 배가 없으면 못 가니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배를 더 늘리겠다. 또한 목수와 조선공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하라.”

신유성은 개인 재산을 털어 배를 더 구입하도록 했다. 배 이용료로 일정한 세금을 내야 했지만 가신들은 배를 타고 가서 교역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허나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군, 상선이 많이 늘어나면 교역을 한다는 것이 탄로 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군선으로 위장해라.”

이로 인해 배를 늘려서 땅에서 싸우지 않고 해전을 통해 영지를 방어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신유성은 다시 신겸혁의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조식이 한 번 보고자 하니 되도록 빨리 귀국하라는 것.

‘가고 싶지 않은데.’

지금 하는 일을 내던지고 갈 순 없었다. 지금은 발전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신겸혁의 말을 계속 무시할 순 없었다.

‘지금 양반들과 얽혀야 좋을 건 별로 없을 텐데.’

신유성이 양반이었거나 왕족이었다면 얘기가 달랐다. 과거를 보면 금방 중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신이 미천하다고 따돌려질 뿐이었다.

‘조식 그 양반이 날 밀어준다고 해도.......’

사대부들을 억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조식의 입장에서는 신겸혁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 있었다. 신유성을 어떻게 해서든 낮은 벼슬이라도 인정받게 해서 양반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러나 신유성의 생각은 달랐다.

‘더구나 지금이 어느 땐데.’

지금은 윤원형의 세상이었다. 조식이 아무리 명망 있는 학자라고 윤원형을 중심으로 뭉친 사대부들이 더 강했다. 이들의 눈 밖에 나면 답도 없었다.

‘변명이나 해야겠다.’

결국 가기 싫은 신유성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느라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편지를 보냈다.

안 가겠다는 소리도 아니고 조금 더 세상을 보겠다고 하니 신겸혁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 아이누족들 사이에는 한 가지 유행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형태의 집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집을 이렇게 지으면 더 깔끔하다는 거지. 멋있잖아. 불 피워서 집에서 따뜻하게 씻을 수도 있어.”

신유성이 짓도록 한 여관을 보고 돌아간 아이누족 남자들이 자신의 집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지 멀쩡한 집을 왜?”

젊은 아이누족 청년들과 달리 나이 든 노인들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나무랐다. 악령에 사로잡힌 게 아니냐며 의식을 해야겠다고 날뛰는 노인도 있었다.

“예전에는 장사도 하고 그랬다면서요! 집 좀 바꾸는 게 뭐가 악령 드는 일인데요!”

“욕심 부리잖아! 그러다가 악령이 되는 거야!”

“사람 해치는 일도 아닌데 뭘!”

“에잉! 니 맘대로 해!”

젊은이들은 부득불 집을 고쳤다. 그래도 젊은이들의 부모세대는 더 말리지 못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같이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아이누족은 자식이 자라서 결혼하면 따로 살았다. 즉, 한 집에 사는 것은 나중에 가면 부부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계속 고치겠다고 해도 끝까지 말릴 명분은 없었다. 고칠 사람은 고치고 안 고칠 사람은 안 고치면 된다.

집을 고치면서 더 많은 도구와 생필품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금의 소모가 더 늘어났다.

영지에서는 사금을 귀하게 쳐주니 사금을 주고 필요한 도구를 사오는 것이었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젊은 청년들이 자주 여관에 놀러가 놀고 오면서 들은 이야기들이 계속 퍼졌다.

“집을 한 채씩 지어줬데.”

“뭐?”

“진짜야. 그 쪽 족장이 집을 하나씩 지어줬다고 하더라고. 가봤는데 좋더라.”

아이누들은 신유성을 족장이라고 칭했다. 영지민들을 이끄는 족장.

“어? 그럼?”

젊은 청년은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나도 영지민하면 집을? 하지만 이건 좀 나쁜 거 같은데.’

신유성의 영지민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부족을 떠난다는 소리였다. 부족은 가족이었다. 가족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

“부럽다.”

그래서 그냥 부러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영지민들을 부러워 할 일이 계속 늘어나니 근처의 아이누들은 종종 신유성의 영지를 방문했다.

한편, 신유성은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여진과의 거래는 지속되었다.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아이누와 달리 여진족은 상당히 많은 모피와 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바로 거래에 응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팔면 손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되면 소문이 난다. 그렇게 되면 북해도가 표적이 될 위험이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나중에 다른 영주에게 빼앗긴다면 손해일 뿐이었다.

“다음 모피 거래는 명에서 한다.”

“명과의 교역은 오우치 가문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해적으로 위장해서 간다.”

순간 가신들의 눈이 빛났다.

‘이건 꼭 해야만 해.’

어떻게 보면 오우치 가문에 반기를 드는 셈이었으나 오우치 가문은 예전만 못했다. 그리고 명에 머무는 남만 상인들과 교역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신유성이 갈 때 옆에 끼어있기만 해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절 데려가 주십시오.”

“주군!”

가신들은 서로 가겠다며 나섰다. 그 때 신유성은 간단하게 사람들을 걸렀다.

“남만인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사람?”

후지바야시 켄만이 앞으로 나섰다.

“명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아직 없었다.

“정해졌군.”

순간 가신들은 느꼈다.

‘말을 못하면 끼지도 못한다!’

여러 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신유성이 계속 여러 나라 말을 배우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

자신들이 가신들이니 당연히 옆에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통역을 옆에 두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신유성은 책임자로 따라나설 가신들에게 언어 소양을 물었다. 말을 못하면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신유성이 배를 타고 떠나자 가신들 사이에선 외국어 열풍이 불었다.

항로는 남쪽으로 정해졌다. 대마도에서 다시 보급을 한 뒤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결국 오스미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태풍 때문이었다.

‘젠장. 배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배에서 상품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보는 눈이 많아서였다.

해적으로 위장하고 있는데 상품을 배에서 내린다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항구에 발이 묶인 신유성은 배를 지킬 인원을 상당수 남겨 놓았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여행자들이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음.......’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질이 굉장히 나빠 보이는 무리들이었다. 술을 마시며 여자를 끼고 있었다. 굉장히 거칠어 보였다.

“어이쿠. 어디서 온 분들이신가?”

“그건 왜?”

“아니, 그냥.”

신유성을 대신해 무리를 이끄는 척하고 있는 켄은 주변을 노려보았다.

“조용히 쉬다 가고 싶다.”

싸움을 할 의사는 없으나 건드리면 재미없을 거라는 경고였다. 그러자 흐트러져 있던 거친 남자들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좋지 않아.’

켄의 뒤를 따르며 신유성은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던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저 놈이 대장인가?’

신유성이 만난 무리는 해적들이었다. 원래는 영업을 가기 위해서 모였으나 태풍 때문에 발이 묶이자 쉬고 있던 중이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여자를 더듬었다.

‘문제가 없었으면.......’

태풍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잘못하면 오도가도 못하고 발이 묶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허나, 신유성의 바람은 배신당했다.

“그럼 여기 와서 술이나 한잔 하지? 얘기 좀 듣자고!”

해적들 중 하나가 말을 걸며 나섰다.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곁에 있던 남자였다.

“생각없다.”

“아니 뒤에 꼬마야 그렇다치고 다른 사람들까지 다 술 생각이 없는 거야?”

“그렇다.”

“뭐야? 샌님들 아닌가? 하하하하하!”

명백한 시비였다. 술이 적당히 들어가자 자제심이 사라져서 생긴 문제였다.

허나, 켄을 비롯한 신유성의 부하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죽어라 훈련 받은 이가 닌자의 최정예들인 탓이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이미 철저히 교육 받은 이들이었다.

켄은 슬쩍 비켜서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계속 피하려 하니 가로 막은 남자의 간덩이는 부풀었다.

“어이, 통행세 내라고 통행세. 이 몸을 나서게 했으니 통행세는 내야지.”

어이없는 해적 영업. 하지만 지금은 칼 가진 자들이 법이기도 했다.

결국 켄은 남자를 슬쩍 밀어 넘어트렸다. 쓰러진 남자는 얼떨결에 쓰러졌으나 곧바로 일어나며 성질을 냈다.

“이 자식이! 죽을라고!”

품에서 단도를 꺼낸 남자는 칼날을 드러냈다. 순간, 켄의 손이 움직였다. 코가 뭉게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뒤로 날아갔다.

“크헉!”

코가 부러진 남자는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안에 있는 남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도 여자를 밀치고는 일어났다.

“잘못했다고 빌어라. 그럼 살려주지.”

싸움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군.’

신유성도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쯤 되면 평화적인 해결은 무리였다.

“전부 죽여.”

가혹한 명령이 떨어지자 닌자들은 입구를 비롯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모두 틀어막기 위해 움직였다. 동시에 켄의 검이 공간을 갈랐다.

허공에 붉은 혈화가 연속으로 피어났다. 바닥은 핏빛 꽃밭이 되었다. 켄이 움직이자 신유성도 검을 뽑았다.

“으아아아아아악!”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미 술에 취한 것도 있고 닌자들이 먼저 공격에 임한 터라 싸움은 금방 끝났다.

“사, 살려주세요!”

죽지 않은 것은 남자들을 시중들던 여자들과 일하던 사람들 정도였다.

“시체는 치우고. 귀찮은 일은 만들지 마라.”

“예!”

입막음을 위해선 모두 죽이는 것이 좋았으나 신유성은 거기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죽어라!’

‘이히히히히힛!’

잠을 자던 신유성은 벌떡 일어났다. 악몽 때문이었다.

‘젠장.’

꿈속에 죽였던 인간들이 나왔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엄청나게 자극적인 행위였다. 때문에 죽인 자들의 얼굴이 꿈속에 나타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시대의 보통 사람이었다면 꿈에 귀신이 나왔다며 겁에 질릴 수도 있었다.

원혼이 자신에게 달라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단순히 자극적인 기억이 정리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씁쓸하군.’

신유성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베었다. 벨 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살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무아지경으로 사람들을 베어버렸다.

문제는 싸움이 끝난 뒤. 잠을 잘 때면 죽였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여서 기분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갈라진 살과 피어오르는 혈화를 볼 때면 죽음이 느껴졌다.

밖에는 태풍 때문인지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살아가려면 이겨내야지. 깊게 생각하지 말자.’

신유성은 멍하니 바람소리를 감상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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