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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뒤, 신유성은 떠났다. 그리고 해적들을 고용했던 오스미의 영주는 펄쩍 뛰었다.
“어떤 놈들이!”
“시마즈 놈들이 아닐까요?”
“그놈들이? 감히?”
오스미의 영주는 이를 갈았다. 시마즈는 최근 들어 점점 강해지며 오스미를 넘보고 있었다. 더구나 해적 영업도 방해를 하기 일쑤였다.
“놈들을 친다!”
진실을 알려는 노력보다 적을 견제해야 한다는 마음에 공격이 감행되었다. 시마즈 가문 또한 엉뚱한 명분에 화해를 하기보다는 대립을 택했다. 그렇게 사쓰마와 오스미는 싸움이 붙었다.
그 순간, 신유성은 유구 왕국에 들어섰다.
유구 왕국. 훗날 오키나와로 불리며 일본에 편입될 섬나라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나하에 입항하는 것은 꽤 어려웠다.
신유성의 배가 다가가자 갑자기 항구에서 병사들이 나타나며 전투태세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물러가라!”
병사 중 한 명이 일본어로 외쳤다. 발음이 이상해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아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왜 이러는 건가?”
“해적 물러가라!”
“해적 아니다!”
“해적 맞다! 해적 배다!”
해적으로 위장하며 배도 해적선처럼 꾸몄더니 생긴 문제였다. 유구는 해적들의 약탈을 많이 받아왔다. 유구 또한 명나라와 조공 무역을 했는데 이것을 노리고 달려드는 해적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유구 왕국에서는 해적들과 싸우기 위해 성벽까지 만들었다.
“물과 식량을 주면 쉬었다 가겠다.”
병사는 뒤로 물러나 책임자와 얘기하더니 되돌아왔다.
“못 준다! 내일까지 떠나지 않으면 공격한다!”
결국 신유성은 아무 것도 얻어먹지 못했다.
유구왕국와의 첫 대면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신유성은 불평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여긴 해적이 많이 오나보군.”
“사쓰마를 비롯한 지역에서 자주 털어갑니다.”
쇼니 가문은 최근 남만 상인과 교역을 했다. 여기에 대마도도 있었다. 오우치 가문에는 명나라와 교역했다.
하지만 나머지 큐슈의 영주들은 별 다른 교역로를 개척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적들을 통해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왕국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명과 교류가 있는 나라.’
중요한 것은 이 점이었다. 유구 왕국이 아예 사라지면 조공 무역을 하는 나라가 하나 줄어든다. 그러니 멸망은 시키지 않는다. 다만 털어갈 뿐.
“어쨌거나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신유성을 유구를 털어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교류를 하며 이용할 생각은 충만했다.
점령은 순식간에 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명에서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채니 점령할 생각은 버렸다.
‘명나라가 현재 사정이 좀 나쁘다고 해도 저력이 있으니까.’
훈제고기를 씹으며 신유성은 해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유구 왕국을 떠나 계속 작은 섬들을 징검다리처럼 지나며 도착한 곳은 대만섬이었다.
신유성의 배가 도착한 곳은 바로 평포족이 사는 지역이었다.
평포족은 주로 평지에 살던 원주민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대륙에서 건너온 한족과의 통혼으로 점점 한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명나라 사람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스스로도 명나라 사람이란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명과 교류는 하지만 명의 지배하에 있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원래는 부족 생활을 하던 이들은 급기야 하나의 왕국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대두 왕국’이었다.
평포족의 족장들이 연맹을 만들어 왕을 뽑은 것이었다.
“어디서 오셨나?”
어쨌거나 대만섬은 명나라와 가까웠기 때문에 명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특히 고산 지대에 사는 고산족과 달리 평포족은 한화 되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명나라 사람들과 교류도 있었고 명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꽤 됐다.
“유구의 북쪽에서 왔다.”
항구를 지키던 평포족 전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유성의 명나라 말이 꽤 유창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직접 말하는 것으로 보아 책임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적으로 보이는 자들을 환대할 순 없었다.
“멀리서 오셨군. 그래서? 언제 떠날 건가?”
대만에서도 대접은 좋지 않았다. 해적선으로 가장했기 때문이었다.
“남만 상인과 만나려고 한다. 여기에는 없나?”
“하핫! 설마 그들을 털려고? 꿈 깨는 게 좋다.”
“그게 아니고 거래를 하려고 한다.”
“상인이었나?”
“상인이다.”
“그런데 배가 해적선이라고?”
“사정이 있다.”
병사는 의심을 하며 더 윗선을 불렀다. 그리고 계속 대화를 나누다 결국 체류를 허가했다.
“대신 배에서 내리지 말 것. 배에서 내리면 공격하겠다.”
“알겠다. 물과 식량만 주면 좋겠다.”
“남만 상인은 없다.”
대만섬이라고 남만 상인들이 안 왔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지만 모험심 있는 상인들은 대만섬에도 종종 들렸다. 뭔가 팔만한 것이 없을까 가끔 살피는 것이었다.
“겨우 쉴 수 있겠군.”
“다행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만 상인들이 머무는 곳에 갈 수 있을 겁니다.”
신유성이 목표로 삼은 곳은 바로 향항, 홍콩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신유성은 땀을 주르륵 흘리며 답했다. 유구에서부터 대만까지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찌는구나.’
때문에 체력이 떨어졌다. 안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에 걱정한 켄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힘이 될만한 것을 찾았다.
“이것 좀 드셔보시죠. 맛이 좋습니다.”
신유성은 별 생각 없이 들이켰다.
“음?”
그리고 놀랐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며 갑자기 힘이 솟았다.
“놀랍죠?”
“이건 어디서?”
“여기 사람들이 더워서 지쳤을 때 먹으면 좋다고 줬습니다.”
‘이것은 설탕맛인데?’
신유성이 설탕맛을 모를 리가 없었다. 미래에는 너무나 흔해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설탕이었다.
‘아.......’
갑자기 그리움에 눈물이 흐르려고 했다. 너무나 반가운 맛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에 넣어먹던 설탕. 과자에도 들어가는 설탕. 먹고 싶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던 설탕은 이 시대엔 구경조차 하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희미하지만 설탕의 맛을 느끼니 울컥했다.
‘이건 꼭 알아야겠군.’
그리고 신유성은 대만섬의 평포족이 설탕을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모피를 줄 테니 설탕을 팔지 않겠나?”
“그거 가져다 뭐하라고? 덥다.”
모피는 팔리지 않았다. 장식용으로는 쓸 만할지 몰라도 평포족에게는 그리 유용한 물건은 아니었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
대만섬을 떠나며 신유성은 맹세했다.
홍콩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신유성은 복장을 모두 바꾸라고 했다. 해적처럼 입던 복장에서 상인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 무기를 숨겼다.
항구의 관리인은 무척 수상하다는 눈으로 신유성의 배를 바라보았다.
“뭐하러 온 건가?”
“남만 상인들과 만나려고 왔습니다.”
“어험. 문제 일으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예의 바른 표정으로 슬쩍 주머니 하나를 찔러주자 관리인은 헛기침을 했다. 왜구가 날뛴다고 하지만 무역을 아주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해적들도 털어온 물건을 가져와서는 싸게 팔아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사가기도 했다.
혹은 명나라 사람의 의뢰를 받고 약탈도 했다.
어디에나 어둠은 있는 법.
특히 요즘처럼 명나라 기강이 헤이해진 시기에는 관리들의 부패는 더욱 심해졌다.
‘역시 통하는군.’
정보를 수집하며 명나라에 입항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입수했는데 다행히 먹혔다. 물론 정보에는 실패 했을 경우에는 물론 도망치거나 아니면 털고 나서 도망치라고 나와 있었다.
항구에 들어선 신유성은 남만 상인들을 찾아 움직였다.
홍콩에는 포르투갈 사람들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상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도 있었다.
“모피를 팔러 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신유성의 유창한 에스파냐어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상품에 또 놀랐다.
“이건 정말 좋군.”
모피는 중요한 상품이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이국의 모피라면 가치가 상당했다.
“전부 사도록 하지.”
파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피는 화약으로 바꿨다.
거래가 끝나자 식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디서 왔다고?”
“동방에서 왔습니다.”
“그런가?”
신유성은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자신이 홍콩에서 거래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고 싶어서였다.
에스파냐 상인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앞으로 종종 거래를 하고 싶군요.”
“나야 여기에 계속 머무니 언제라도 물건을 가져오도록. 신기한 물건도 다루니까 전부 다 가져와도 돼.”
“앞으로 저보다는 여기 이 사람과 거래를 하시면 될 겁니다.”
“반갑습니다.”
신유성의 옆에 앉아 있던 후지바야시 켄은 어렵게 인사를 건넸다. 이상한 점이 많았으나 소통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가? 그럼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지.”
이로써 켄은 홍콩을 오가는 비밀 무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되돌아가는 길은 쉬웠다. 다시 대만섬에 도착한 신유성은 화약 한 통을 가지고 평포족을 찾았다.
“화약은 알겠지?”
“오오. 화약!”
화약은 쉽게 손에 넣기 힘든 물품이었다. 명나라에서도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손에 넣긴 어려웠다. 그런데 신유성이 대뜸 화약을 들고 나타나니 기뻐했다.
“원하는 게 뭔가?”
신유성은 원하는 것을 설명했다. 설탕을 원한다는 것을 알자 평포족 족장은 흔쾌히 응했다.
“좋다! 많이 주지!”
신유성은 화약 한 통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설탕을 받아냈다.
‘이걸로 뭘 해먹을까?’
신유성은 행복한 꿈을 꾸며 북해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게 설탕인가요?”
“그래. 맛있지?”
“네!”
설탕을 맛 본 나츠와 매화 그리고 레이는 표정이 확 밝아졌다. 더구나 신유성은 설탕을 요리에 이용했다.
고기를 조릴 때 설탕을 넣고 졸이니 맛이 남달랐다.
“정말 훌륭합니다!”
“세상에 이런 것이!”
가신들의 감탄도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신페이와 켄은 신유성을 다시 보았다.
한 번의 항해로 많은 것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군. 이번에 얻은 화약은 어찌 하시렵니까?”
“이거? 이건 오와리에 가져다 팔아야지.”
“오와리에요?”
“노부나가가 좋아 할 테니까.”
신유성은 쇼니 가문에 팔지 않았다. 다른 큐슈 가문에도 화약을 넘기지 않았다. 쇼니 가문과는 원한이 있고 다른 큐슈 가문이 강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부나가에게 가져온 화약의 반을 넘기기로 한 것이었다.
당주가 되기 전부터 철포를 사들이며 철포부대를 만들 정도였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나가는 화약을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 화약의 대금으로는 배와 여자들이 보내졌다.
덕분에 북해도의 인구는 다시금 늘어났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북으로는 여진과 교역을 하며 말을 들여오고 멀리 홍콩으로 가서 몰래 화약과 설탕을 들여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가 닌자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오래 전에 했던 의뢰를 완수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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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