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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
센가지 카즈마는 정말 죽을 정도로 노력했다. 이가 닌자의 마을은 점점 땅이 좁아졌다. 의뢰가 들어와 먹고 살 순 있었으나 그래도 부족한 것은 매한가지.
사람은 늘어나는데 땅이 없었다. 어딘가 쳐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을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센가지 야스나가가 마을을 나서며 핫토리로 성을 바꾼 이유이기도 했다.
카즈마는 그래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몸은 튼튼했지만 눈치가 없고 둔했다. 싸움도 별로였다. 성격은 우직해서 일은 잘 했지만 그뿐이었다. 닌자로 쓰기에는 글렀다는 평가였다.
이때 장인으로 들어가는 임무가 들어왔다. 딱이었다.
하지만 철포 장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을 배워야 했다.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인들은 아무에게나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끼워주지도 않았다.
카즈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그리고 겨우 철포를 만드는 장인이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맙다.”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철포를 만드는 장인을 드디어 손에 넣으니 감격이 밀려왔다.
신유성은 바로 이가 닌자들에게 크게 보상했다. 앞으로 카즈마는 신페이처럼 계속 신유성의 밑에서 일하게 될 터였다.
신유성은 바로 카즈마를 가신으로 삼았다. 그리고 집도 주고 대장간도 지어주었다.
“아이고. 이런 집에서 살게 되다니.”
“형이 가신이 된 거야?”
카즈마의 가족들은 다들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 영주님께서 가신이라고 해주셨다.”
“우와아아아아!”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는 카즈마는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그저 장인으로 평생 구를 것만 생각했는데 신유성의 의외로 대우를 잘 해주었다.
‘영주님의 가신이라니.’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철포는 앞으로 계속 개발해야 했다. 그야말로 미래로 이어지는 핵심 기술을 책임지는 자를 엉망으로 대우할 순 없었다.
중요한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관리도 특별히 해야만 했다.
“카즈마. 잠깐 보자.”
“아! 후지바야시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 켄이 방문했다. 켄은 손에 훈제 고기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이건 가족들과 먹어라. 맛있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다.”
훈제 고기를 가족에게 넘겨준 뒤 카즈마는 밖으로 나왔다.
“말씀하시죠.”
카즈마에게 켄은 어려운 상대였다. 켄은 젊지만 후지바야시 일족을 거느린 남자였고 카즈마는 센가지 일족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켄은 엄청나게 강한 닌자였다.
“우선 함께 일하게 되어서 기쁘다.”
“저도 기쁩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절대 주군을 배신하지 마라.”
“네?”
“넌 이제부터 주군의 가신이다. 배신은 용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이라 켄은 반복해서 말했다. 카즈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닌자 마을에서 배신은 죽음이었다. 때로는 가족들도 같이 참살해버렸다. 죽지 않아도 배신자의 가족에게는 참혹한 미래가 이어질 뿐이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명심해라.”
켄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카즈마는 등골이 오싹했다.
‘절대 배신하지 않아.’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카즈마는 쫓기는 꿈을 꾸었다.
1551년 9월.
오우치 가문의 당주인 요우치 요시타카가 죽었다. 요시타카의 죽음 이후로 오우치 가문은 혼란에 휩싸였다. 아무리 하락세에 있다고 해도 오우치 가문은 강력했다. 명나라와의 무역으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우치 요시타카의 죽음으로 인해 명과의 무역이 단절되게 생긴 것이었다.
오우치 가문에서는 명나라와의 무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명나라에서는 요시타카의 죽음으로 인해 아예 관계를 끊으려 하고 있었다.
요시타카의 죽음은 명나라 조정에서 좋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오우치 가문에 힘을 실어주며 무역을 계속한 것으로 문치를 시작하게 했고 더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요시타카는 죽었다. 이에 더 이상 무역을 하며 일본에 이득이 안겨줘야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신유성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를 대마도주를 통해 듣고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조선에서 왜관을 닫아버렸을 때 오히려 해적 행위가 늘어났다. 장사를 해서 얻을 수 없다면 약탈을 해서라도 필요한 것을 가져가겠다는 것이 일본 영주들의 심리였다.
‘만약 명이 무역을 차단한다면 대규모로 일이 터지겠지.’
돌아가는 판세가 급박해졌다.
대혼란이 곧 시작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신유성은 고민에 빠졌다.
원래 계획은 간단했다.
여진에서 모피와 말을 사고 홍콩에서 모피를 팔아 화약을 산다. 그리고 화약을 대만에서 조금 팔아 설탕을 구입한다. 그리고 구입한 설탕을 도로 여진에 파는 것이었다.
설탕을 약이라고까지 말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설탕으로 엄청난 양의 모피와 말을 살 수 있었다. 여진족으로서는 설탕을 구할 길이 명나라 밖에 없는데 명나라에서는 정말 맛보기 수준으로나 내려주었기 때문에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냥 조용히 교역을 하며 전력 차이를 한꺼번에 벌릴 계획이었다.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치고 나가려 했다. 허나, 해적들이 급증한다면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상적인 교역은 아무래도 힘들어지겠지.’
해적들이 들쑤시고 다니면 홍콩에 입항하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입항하면 바로 체포해 실적을 올리려 들 수 있었다. 또한 계속 배가 오가다보면 결국 명나라 수군과 싸우게 될 수 있었다.
‘같이 해적질을 해?’
어찌 보면 해적질이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쉽게 선택할 순 없었다.
‘고작 해적질 하자고 이러는 거 아닌데.’
해적질을 안 해도 크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이 굳이 해적질을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급증한 해적들이 교역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고민 속에 신유성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초겨울이 되자 일본 전체의 영주들이 술렁였다. 오우치 요시타카의 죽음으로 명나라와의 무역이 중단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진 탓이었다.
이 일로 인해 오우치 가문만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일본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명하고 교역을 못한다니!”
“명에서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뭐야?”
영주들은 명나라의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게 되었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팔지 않는다면 빼앗아 와!”
명나라의 물건을 원하는 영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차피 명나라는 예전부터 일본 전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일본의 영주들도 이 사실을 잘 알았다.
평화롭게 하던 교역이 있을 땐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역이 단절된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낭인들이 엄청나게 고용되었다.
“가서 털어 와라. 닥치는 대로 털어 와라! 그럼 무사로 받아주겠다!”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빼앗겠다는 식이었다.
낭인들은 한 몫 잡은 뒤에 영주의 무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몰려들었다. 한 몫 잡으려는 이들도 모여들었다.
대규모 해적들이 명나라 해안을 탈탈 털기 위해 바다로 향했다.
‘이것들이?’
신유성은 분노했다. 신겸혁이 보내온 편지에 실린 내용 때문이었다. 조선에 왜구가 다시 나타나 털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조선을 턴 영주가 있다. 그게 누군지 알아내도록.”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쇼니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파견 나갔던 닌자들이 금방 소식을 전해왔다.
“시마즈라고?”
“시마즈뿐만이 아닙니다. 큐슈의 영주들 대부분이 조선을 털었다고 합니다.”
큐슈의 영주들은 가까운 조선에도 약탈선을 보낸 것이었다.
“으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신들도 신유성의 눈치를 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신유성이 조선 출신이니 이 일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분 같아선 바로 치고 싶지만.......’
하지만 북해도의 전력을 빼서 큐슈를 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미래에는 몰라도 아직은 아니었다.
“우린 움직이지 않는다.”
가신들은 안도했다. 신유성이 감정적으로 나서지 않나 싶어서였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냉정하게 판단하시네.’
하지만 신유성의 속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왜 저러시지?’
나츠는 걱정이 됐다. 최근 들어 신유성의 표정이 펴질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에서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슨 일 있나요?”
“음, 나츠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답을 피하자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신유성에게 답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서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수소문을 하니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신들도 다 아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아.......’
안타까웠다. 신유성이 태어난 조선이 약탈당한다고 하니 나츠는 괜히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신유성은 부글부글 끓는 속은 안고 참으며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저기 이것 좀 먹어보세요.”
나츠는 사탕을 만들었다. 신유성이 설탕을 녹여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었다.
달짝지근한 사탕은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그러나 신유성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머리로 맹렬히 굴리며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내가 힘이 되어드려야 해.’
나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결심에 대못을 박는 편지가 대마도에서 날아왔다.
‘오라버니가?’
편지가 구겨졌다. 나츠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튀었다.
‘이대로는 안 돼.’
편지를 집어던진 나츠는 신유성을 찾아 움직였다. 버려진 편지에는 조선을 약탈하는 일에 마사모리가 참가했다고 적혀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오라버니, 아니 그 자는 쇼니 가문을 등에 업고 행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직까지는 힘이 약해 참았지만 이젠 더 참기가 어려워졌다.
마사모리는 요시시게에게 뒤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약탈을 택한 것이었다.
“제가 그를 죽이겠어요.”
나츠의 눈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허나, 타오르는 불길의 연료는 불안이었다.
마음은 이미 신유성의 것. 행여나 이번 일로 신유성의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사모리에 대한 증오가 급격하게 타올랐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신유성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하지만.......”
“네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어.”
신유성은 나츠를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조선으로 돌아가겠다.”
“네?”
갑작스러운 선언에 나츠는 깜짝 놀랐다. 허나 잡을 수 없었다.
신유성이 결정한 일을 막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아니됩니다!”
“북해도를 버리시려는 겁니까?”
가신들도 난리가 났다. 신유성이 떠난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계획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신페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신유성이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나 따위는 주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페이는 현재 상태에서 유지하는 것이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앞으로 나아가는 자였다. 미래를 계획하고 발전시켰다. 획기적인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나며 북해도의 수준이 급격하게 올라간 것도 신유성의 뜻을 따른 덕분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다시 돌아 올 거니까. 그때까지는 신페이가 북해도를 책임져야겠다.”
“정말 돌아오시는 겁니까?”
“켄도 데려갈 것이다.”
그제야 가신들은 안심했다. 켄이 함께 간다면 아주 인연을 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후지바야시 켄은 흥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반면 신페이는 아쉬웠다.
‘차라리 내가 가고 켄이 남는 게 좋은데.’
하지만 신유성이 믿고 북해도를 맡겼다.
“주군이 돌아오실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신유성은 조선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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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