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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38화 (3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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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좋겠구나.”

“네?”

짐을 싸는 매화를 보며 나츠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성이 조선에 가게 되자 매화와 차돌은 자동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반면 나츠는 또 다시 신유성과 떨어진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아니다.”

한숨을 푹푹 쉬는 나츠의 모습은 매화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지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감정도 각별했다.

‘나만 가도 될까?’

짐을 챙기면서도 고민했다. 하지만 신유성이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매화도 갈 생각이었다.

‘주인님을 지켜야 해.’

살짝. 레이로부터 받은 쿠노이치 교육이 발동했다.

챙기는 짐 중에는 닌자 도구들도 다수 있었다.

한편, 레이는 신페이를 조르고 있었다.

“오라버니. 절 보내주세요.”

“대체 왜 네가 간다고 그러는 건데?”

“제가 영주님을 지켜드려야죠.”

신페이의 눈이 흔들렸다. 마음도 흔들렸다.

“음.......”

“이제 저도 어엿한 닌자. 영주님의 곁을 지킬 수 있어요.”

레이는 계속해서 닌자로서 훈련을 했다. 남자들처럼 전투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사시에 신유성을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네가 간다면 영주님의 시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좋으냐?”

남는다면 신유성이 신뢰하는 가신의 여동생으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는 슬쩍 볼을 붉히며 답했다.

“시녀라도 좋아요.”

‘이 녀석.’

딱 보니 반했다. 알 수 있었다. 신유성이 레이를 딱히 가까이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는 언제나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숨어서.

처음에는 호기심. 그 다음에는 호감. 그리고 이제는 애정.

‘그래. 차라리 영주님의 여자가 되어라.’

이미 신유성에게 모든 것을 건 신페이는 레이를 막지 않았다. 그래서 신유성을 설득했다. 레이가 시녀로 곁을 지키게 해달라고. 전투력은 좀 떨어지지만 암습 정도는 충분히 막을 능력이 있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신유성은 곁을 지키는 여닌자가 한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 허락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츠의 귀에 들어갔다.

“음? 정말?”

“네, 저도 갑니다. 나츠님.”

레이가 간다고 하자 나츠는 무척이나 외로워졌다. 신유성이 없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낸 세 사람은 자매처럼 가까워진 사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둘이 떠나고 홀로 남는다니 참기가 어려워졌다.

‘나도 갈 거야!’

쿵쾅쿵쾅. 성난 기세 그대로 신유성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응?”

“저도.......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저도 유성님을 지킬 수 있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온 몸이 떨렸다. 그래도 나츠는 용기를 냈다. 신유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선말은?”

“조금해요!”

많이 어설프긴 했지만 나츠는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그 동안 열심히 배운 덕분에 간단한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괜찮겠군. 알았다.”

신유성은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준비가 끝나자 신유성은 배를 타고 대마도로 향했다. 배를 탄 세 소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유람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한가했다.

허나, 신유성의 마음은 온통 계획으로 가득했다.

‘어떻게 해서든 성사시킨다.’

머릿속엔 이미 하나의 계획이 완성 되어 있었다. 실행하게 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배는 계속 나아가 대마도에 도착했지만 신유성은 배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다만 그대로 부산포의 왜관으로 향했다.

왜관에 도착하자 신겸혁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이 컸구나.”

신겸혁은 부쩍 자란 아들을 보자 가슴이 뿌듯했다. 전란으로 혼란스러운 일본에서 영지까지 차지했으니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친 곳 없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집에 가자.”

신유성은 일행을 이끌고 왜관 밖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여기도 많이 변했군.’

예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이젠 북적거렸다. 왜관의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려는 이들이 모여든 탓이었다.

“아이고 유성아!”

신유성의 어머니 유씨는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고?”

“괜찮습니다.”

유씨는 신유성을 살폈다. 키가 부쩍 자랐지만 유씨에겐 아직도 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유성은 아직 어린 나이였다.

“얼른 들어가자. 그런데 뒤에는 누구니?”

“예전에 말씀 드렸던 혼약자입니다.”

“나츠입니다. 어머님.”

공손한 인사에 유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츠를 박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신겸혁에게 들어서 아는 문제이니 이제 와서 시끄럽게 떠들 이유는 없었다.

집안을 이끄는 신겸혁이 결정한 이상 물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대마도주의 딸이었다. 덕분에 신겸혁도 많은 덕을 보았다. 집안에는 재물이 넘쳐나서 항상 풍족하게 생활했다.

“그래, 잘 왔다.”

여자들은 유씨를 따라 들어가고 차돌은 우두커니 마당을 지켰다. 그리고 신겸혁은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오라고 해도 오지 않더니 어찌 된 일이냐?”

“왜구들 때문입니다.”

“으음,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더냐?”

신겸혁도 왜관을 드나드는 요시시게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무역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영주들이 약탈을 지시했다는 것을.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그렇습니다. 해서 서둘러 한양으로 갔으면 합니다.”

“대체 무슨 방법인데 그러느냐?”

“상께 왜구를 잡도록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되게 해야지요. 안 되면 명으로 갈 것입니다.”

“으음.”

신유성이 명나라로 가겠다고 하니 예전에 잠시 잊고 있던 명나라 이민이 스쳤다.

“알았다. 하지만 한양으로 가기 전에 삼가에 한 번 들리거라.”

삼가현. 남명 조식을 한 번 만나보라는 얘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뵈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그만 쉬어라.”

휴식은 무척이나 짧았다. 신유성은 딱 하루만 쉰 뒤 삼가현으로 향했다.

“한양에 가면 예전에 살던 집 그대로 있으니까. 거기로 가고.”

신유성의 형, 신주성은 이미 가정을 이룬 상태였다. 매일 같이 여자를 그리다가 결국 일찍 혼인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청계천의 집은 신주성이 살고 유씨는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부산포로 내려온 것이었다.

신겸혁이 왜관에서 중용되니 한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이젠 부산포에서 유지와 같은 지위를 갖게 되었다. 신유성이 매번 챙겨주는 재물이 엄청난 덕이었다.

“알겠습니다.”

신유성은 바쁘게 움직였다.

조식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식은 신유성이 왔다고 하자 바로 만나주었다.

“허허, 그래 왜에서 무엇을 공부했느냐?”

“검을 조금 익혔습니다.”

“학문이 아니고 검을?”

조식의 눈가가 꿈틀했다. 하지만 역정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면 학문은 아주 놓아버린 것이더냐?”

눈치가 별로 좋지 않았다. 신유성은 대충 둘러댔다.

“학문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왜에서 실천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검을 배워야 했습니다.”

“호오?”

학문을 실천하려고 했다는 말에 조식의 호감이 급상승했다.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져 하극상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소생이 부족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조식은 탄식했다.

사실 신유성은 사서삼경에 나오는 내용을 써먹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힘이 있어야 말도 먹히지.’

이게 신유성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식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양반은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양반이 아래로 내려다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식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으나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대화를 마쳤다.

“지금부터라도 노력한다면 학문으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식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신유성의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으니 조식 또한 적극적으로 봐줄 필요가 없었다.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리고 신유성은 서둘러 한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청계천.

중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신유성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 오랜만에 돌아오니 옛 추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한편, 켄과 나츠는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이 주군이 태어난 곳!’

일본에서만 살던 두 사람에겐 조선의 평화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일본은 어딜 가나 전쟁으로 인해 긴장감이 감도는데 조선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특별해 보였다.

신유성은 집을 금방 찾았다. 신유성을 마중 나온 것은 젊은 청년, 신주성이었다.

‘저 분이 주군의 형님!’

하지만 충성하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충성은 오직 한 사람에게 할 뿐이었다.

대신 신유성의 형제이니 공손히 대할 뿐.

신유성과 신주성의 만남은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음 날, 신유성은 일찍 일어나 윤원형의 집을 찾았다.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쩐 일이냐?”

윤원형의 집의 종은 다소 삐딱한 눈으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윤대감님께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뉘집 심부름이냐?”

“소생이 역관의 자식이라 이름을 말씀드려도 모르실 겁니다.”

“흐음. 그래?”

일단 뭔가 가져왔다니 종은 돌려보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윤원형은 돈을 좋아했다. 그래서 재물을 가지고 오는 자는 여간해서는 쫓아 보내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마름이 나왔다.

“자, 안으로 들어와라.”

일단 윤원형의 집 문턱을 넘는데 성공한 신유성은 안도했다.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군.’

하지만 윤원형이나 정난정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지고 온 것이 뭔지 보자.”

얘기를 하는 것은 마름이었다. 조금 따지고 싶은 기분이 든 신유성은 금방 보따리를 풀지 않았다.

“이건 정말 대감님께 직접 드려야 하는 겁니다. 나중에 잘못되면 경을 치실 겁니다.”

“어허! 그거야 내가 보고 대감님께 전해드릴 것이니 어서 보따리나 풀어라!”

“저는 분명 말했습니다.”

신유성은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자 마름은 깜짝 놀랐다.

“허억?”

상자 하나에 은덩이가 가득했다.

덜덜덜.

마름의 손이 떨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여.’

중간에 빼먹거나 할 수도 없었다. 사소한 청탁이라면 마름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윤원형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은덩이가 가득 든 상자 같은 것은 마름이 꿀꺽 할 수 없었다. 했다가 들키면 진짜 경을 칠 일이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마름은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신유성이 가져온 재물의 가치. 액수가 높으니 상전이 직접 듣고 처리해야 할 일었다.

잠시 뒤, 신유성은 사랑채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들어오너라.”

여인의 목소리에 신유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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