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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40화 (4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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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냥꾼

일본인을 사병으로 거둔 사실은 곧 이어 조정에 퍼졌다.

“당장 잡아 들여야 합니다! 이런 발칙한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왜인이라면 한 수 아래로 보며 치를 떠는 이들이 방방 날뛰었다. 하지만 윤원형은 눈을 감고 침묵했다.

“허허, 어찌 이런 일이. 신동이라 하더니 왜인이 다 되었구만.”

헐뜯는 비난은 멈추질 않았다. 욕설은 점점 많아지더니 절정에 치달았다. 그 때, 윤원형이 눈을 번쩍 떴다.

“어리석구려.”

“뭐요?”

“이이제이란 말도 모르시오?”

“커험!”

이이제이. 적을 이용해 적을 친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명나라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외교 정책 또한 바로 이이제이였다. 조선과 일본, 조선과 여진을 서로 적대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싸우게 하면서 명나라는 꿀을 빠는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우수한 경제력을 앞세워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위치를 점하고 있어야만 했다. 또한 상대가 절대 더 강해지지 못하도록 은근히 훼방을 놓아야 했다.

즉, 같은 위치로 기어 올라올 것 같으면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이제이란 말을 양반들이 못 알아먹을 리는 없었다.

“왜구를 잡는데 백성들의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니겠소?”

“허나, 그가 왜구와 한 패가 아니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허어! 지금 뭐라고 하셨소! 그럼 내가 기군망상의 죄를 저질렀다는 소리요?”

꿀꺽. 성토하던 양반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신유성은 윤원형이 천거한 인물. 만약 여기서 신유성이 왜구와 내통했다고 몰고 간다면 윤원형과는 원수가 되는 것이었다.

“에잉! 어쨌거나 다들 지켜보면 알 것 아니오! 죄를 묻는 것은 나중에라도 늦지 않소!”

결국 조정에서의 논란은 잠시 봉합되었다.

한편, 신유성은 사병으로 모집한 이들을 무장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쇠뇌와 철포가 주어지자 사병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제부터 너희가 쓸 무기다. 잘 봐라.”

시범이 이뤄지자 다들 눈이 빛났다. 철포도 괜찮지만 쇠뇌가 더 선호되었다. 철포의 경우에는 화약 때문에 주의 사항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나?’

신유성은 철포로 무장하려던 것을 멈추고 결국 쇠뇌를 선택했다. 북해도의 병력이라면 계속 훈련을 시켜서 익숙해지게 만들 수 있으나 급히 모집한 인원들은 군기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관리가 비교적 더 편한 쇠뇌를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신유성은 경상우수사에게 전령을 보내고는 출항했다.

부산포를 떠나 가장 먼저 향하게 된 곳은 바로 대마도였다.

“주군, 여기는 어쩐 일로?”

“먼저 처리해야 할 놈이 있다.”

신유성은 당당하게 입항했다. 만약 이러한 신유성의 행보를 알았다면 조선의 양반들은 당장 목을 쳐야 한다고 날뛰었을지도 몰랐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음.”

“힘드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신유성은 검을 내밀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오직 하나였다.

‘마사모리.’

하루야스는 눈을 감았다. 신유성이 조선의 토벌대를 이끌고 대마도에 왔다는 것은 선택하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마사모리를 선택하거나.

눈을 감고 침묵하던 하루야스는 검을 받았다.

“내가 하지.”

이제는 때가 되었다. 하루야스는 쓰린 가슴을 안고 측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예전에 말해둔 일을 하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마사모리와 더불어 쇼니 가문에 줄을 댔던 이들이 몽땅 사로잡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언제까지 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나?”

하루야스는 강하게 나갔다. 평소와 달리 매우 무서운 표정이었다.

“내 아들들을 갈라놓고 서로 칼을 겨누게 하다니.”

“그런 적 없습니다!”

“닥쳐!”

사정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 마사모리는 서둘러 나섰다.

“아버지!”

“입 다물어라.”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당주인 날 속인 죄다. 감히 날 거역하고 멋대로 군 죄를 물어야겠다.”

“어찌 절 버리시려 하는 겁니까?”

하루야스는 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모든 잡음이 죽었다.

“네가 먼저 날 버렸으니 우리 사이에 연을 끊겠다.”

스르릉. 소름끼치는 소리가 마사모리의 귀에 들렸다.

“명예를 지킬 기회는 주마.”

할복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마사모리를 비롯한 이들이 할복을 택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자신의 손으로 깨끗하게 끝내겠다는 것.

순식간에 많은 가신들이 죽었다.

하루야스는 굳은 눈으로 방으로 향했다.

“쇼니 가문을 치는 것 맞겠지?”

“그들이 제일 목표입니다.”

“믿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들에게 죽음을 명했으니 하루야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영주로서 내린 판단이었다.

아들 대신 신유성을 택했다. 그러니 그만한 것을 얻고 싶은 마음이 보다 더 커졌다.

혈육을 잡아먹은 욕망은 거세게 불타올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유성은 일단 하루야스를 달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나가사키 방면으로 출항했다.

5척의 배는 나가사키 근방의 섬에 정박했다. 항구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왜 안 들어가시는 겁니까?”

“우린 이곳에서 기다린다.”

잠복은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다. 해가 지나 1552년이 되었으나 아직 몸이 오지 않은 시기. 날씨는 상당히 쌀쌀했다.

“모두 따뜻하게 하고 술은 한 모금씩만.”

신유성은 술을 나눠주었다. 한 모금씩 술을 마신 이들은 입을 다셨지만 그 이상은 마실 수 없었다. 딱 한 모금만 마시라니 입맛만 버린 기분이었으나 효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몸 안에 술기운이 도니 몸이 좀 더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신유성이 지급한 털옷을 입고 가만히 시린 하늘을 바라보며 사병들은 잡담을 나누었다.

“배가 보입니다!”

“전투 준비!”

밤에는 섬에서 잠을 잤지만 낮에는 항상 배에 타고 대기해 있었다. 그래서 출격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가능했다.

수평선 멀리 다가오는 배를 보며 신유성은 전의를 다졌다.

‘어디서 오는 배건 싹 털어주지.’

전의를 다지는 동안 배는 점점 적선에 가까워졌다.

“해적선 맞습니다!”

가까이 가게 되자 뚜렷히 확인이 가능했다. 무장을 한 이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뒤에서부터 접근해 옆으로 나란히!”

명령을 내리자 항해장으로 임명된 이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명령에 따라 배가 움직이며 적선의 뒤쪽으로 접근해 나란히 섰다.

“쏴!”

명령이 떨어지자 발사되는 쇠뇌. 바람을 가른 쇠뇌는 허탕을 치기도 했으나 사람의 몸에 박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개자식들!”

적선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쇠뇌를 쏜 사병들은 다시 신이 나서 장전했다. 해전이 무사히 끝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씩 배들이 스쳐지나가며 쇠뇌를 쏴댔다. 적선은 총 3척.

숫자에서 우위를 차지했기에 접근전이 벌어져도 자신 있는 상황.

적들은 불리함을 느끼고 도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쏴!”

해적질을 해서 배의 창고에 약탈한 물품으로 가득했다. 사람도 잡아와서 사람도 가득했다. 배에 실은 것이 많으면 당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신유성의 함대는 식량 외에는 실은 것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배도 최고로 빠른 쾌속선으로만 준비했다.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아아아악!”

계속해서 쇠뇌의 화살이 날아오자 접근전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신유성의 함대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움직였다.

숙련된 뱃사람들이 하는 조종은 신묘했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이루어진 사격.

총 10번의 사격이 이뤄지자 나가사키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접현!”

명령에 따라 접현이 이뤄졌다. 그러자 독이 오른 적들이 갑판으로 넘어오려 했다.

“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정한 화살.

“컥!”

앞장 선 이들은 쓰러졌다. 그리고 신유성 함대의 사병들은 검을 뽑고는 달려들었다.

“목을 내놔라!”

“하하하하하하!”

사기가 충만했다. 적의 수를 확 줄여놓고 시작하는 전투. 배의 숫자도 우위.

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니 사기가 올랐다. 다 죽이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낭인 생활 끝이다!’

‘한 몫 잡는 거야!’

‘유키코!’

각자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갑판은 피로 물들었다.

피의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신유성은 가만히 전투를 지켜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쓰러진 이들은 버둥거렸다.

창자를 흘리는 이도 있었다.

죽어가며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무엇인가 잡으려 했다. 생명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처절한 전투 속에서 광기가 빛나고 있었다.

신유성의 눈은 모든 것을 담았다.

전투가 끝나자 시체들을 벌거벗겨져 바다로 내던져졌다. 이후 신유성은 나포한 3척의 배를 끌고 해역을 벗어났다.

나가사키 근처를 지나가던 배들은 전투를 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오거나 하지 않았다. 전투에 휘말려봐야 좋지 않기에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

결국 나가사키 인근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누가 누구랑 싸웠는지 알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쇼니 가문이 맞나?”

“맞습니다.”

“상품은?”

“비단, 도자기를 비롯한 자기. 금. 은.......”

많이 털어먹어서 목록이 길어졌다. 적선의 배에 실려 있던 약탈품에는 예술품들도 상당했다. 어딘가의 부잣집을 털어온 것으로 보이는 목록이었다.

“우리 피해는?”

“사망자가 20명입니다.”

“사망자들이 타기 전에 남긴 유서대로 보상을 전하도록.”

후지바야시 켄은 고개를 숙였다. 죽은 자에게 꼭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신유성이 약속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뤄져야만 했다.

그래서 보상을 하겠다고 공언하자 사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신유성을 찬양했다.

“우리 같은 이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시다니!”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몇몇은 감동한 나머지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이에 합류하지 않은 이들도 많았지만 신유성을 나쁘게 말하는 이는 없었다.

“약탈에 성공한 보상으로 약탈품의 반은 분배하기로 했다.”

또한 신유성은 약탈품을 독식하지 않았다. 이 또한 켄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순순히 따랐다. 신유성이 하는 일이니까.

이에 사병들은 턱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이내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찬양은 경배로 돌변했다.

이젠 신유성이 가자고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기세였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신유성의 외침에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충성 맹세를 하는 이들을 보며 잠자코 있던 이들의 마음에 충성심이 아로새겨졌다.

돈의 힘은 위대했다.

신유성은 대마도로 돌아가 하루야스에게 성과를 보고하고는 병력을 더 충원했다.

이젠 총 8척으로 이뤄진 함대가 되었다.

‘아직 멀었어.’

신유성은 틈만 나면 나가사키 인근을 돌며 해적선을 나포했다.

배는 차곡차곡 늘어났다. 함대도 늘어났다.

명나라를 털고 돌아오던 배들을 털 때마다 엄청난 재물을 받게 된 사병들은 모두 흥분했다. 그렇게 신유성은 빠르게 해군 전력을 늘려나갔다.

한편, 큐슈의 영주들은 이상을 느끼고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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