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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냥꾼
30척의 전투선 그리고 10척의 대맹선.
신유성이 동원한 전력이었다. 대마도를 나선 함대는 유유히 남쪽으로 향했다. 해협을 건너 일본 근처에 도달하자 깜짝 놀란 배들이 뱃머리를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이야기가 나도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함대가 나타나니 일단 도망치고 보는 것이었다.
신유성은 곧바로 나가사키로 향했다. 나가사키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정보대로군.’
대마도를 치기 위해 병력을 끌어 모은 쇼니 가문이었다. 나가사키에 배가 많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산개해 대형을 만든다.”
밀집 대형으로 파고 들어가 난전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신유성은 전력을 아낄 생각이었다.
함대를 이루고 다니면서 이제는 대형을 이루는 것에 능숙해진 함대였다. 지시대로 일렬로 늘어선 배는 천천히 전진했다. 돛을 내리고 노의 힘으로만 천천히 나아갔다.
“적입니다!”
“어떤 놈이냐!”
“모르겠습니다. 다만 돛에 칼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배가 보였습니다!”
신유성은 함대에 두 개의 검을 교차한 그림을 돛에 그리게 했다. 이는 해전에서 적과 아군을 보다 빨리 판별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뭐라 조선이?”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였다.
‘설마?’
조선이 칼을 빼들었으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엎드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죽어도 이겨야 한다!”
죽어서라도 승리를 쟁취하라는 말이 울렸다. 가신들은 서둘러 전투를 위해 나서면서도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신풍이라도 불었으면.’
예전부터 그랬었다. 신풍이 불어 일본을 정벌하려던 조선의 함대가 무너졌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길 기대하는 쇼니 가문의 가신들이었다.
배들이 하나둘 항구를 빠져나오고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제대로 진영을 갖추기도 전에 신유성의 함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여 둘러싸고는 잡아먹었다.
가까이 다가가며 쇠뇌를 날리면 대부분 반항도 못했다. 철포를 쏘며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잠깐이었다.
쇼니가문의 배들은 하나둘 나포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쇼니 가문의 가신들이 남만인들을 찾아가 부탁했다.
“함께 싸웁시다!”
“내가 왜?”
“저들은 당신들도 털어갈 것이니 함께 싸웁시다!”
“그런!”
남만 상인들은 이를 악물었다. 쇼니 가문의 가신들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했다. 결국 싸우기로 마음먹은 남만인들은 배를 몰고 나왔다.
“드디어 나오는군.”
예상 못하고 있던 일이 아니었다. 신유성은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렸다.
“저들과의 싸움은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단숨에 몰아쳐라!”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배를 상대로 해전을 벌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한 방만 잘못 맞으면 신유성의 함대의 전투선은 침몰할 수 있었다. 그러니 희생이 따르더라도 단숨에 숫자로 제압하는 것이 최고였다.
배가 항구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범선이 취약할 순간에 신유성의 함대는 달려들었다.
“쏴!”
남만인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화승총의 장전 속도로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더구나 항구에서 배가 나오는 순간이라 대포를 쏠 수 있는 각도 나오지 않았다.
“화약통을 던져!”
남만인 중 누군가 외쳤다. 배를 접현하고 기어오르는 적을 향해 불붙은 화약통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무엇인가 던지려하자 쇠뇌를 들고 견제하던 사수 하나가 바로 쏴버렸다. 그 통에 불 붙은 화약통이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아아아아!”
남만인들은 불붙은 화약통이 구르자 다들 갑판에서 도망쳤다. 잠시 뒤 거대한 폭음이 들리고 불길이 치솟았다.
“헉!”
배에 오르려던 이들은 충격에 튕겨져 나갔다. 남만 상선은 불타기 시작했다. 이를 본 다른 상선들은 화약통을 던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하나둘 배에 기어오른 신유성의 사병들에게 탈탈 털리고 배를 빼앗겼다.
워낙에 기습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해전이라고도 불릴 수 없는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빨리 달려라!”
쇼니 가문의 가신들은 병사들을 재촉했다. 전투를 준비한 다음 항구로 달린 것이었다. 이미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배는! 배는 없나?”
“없습니다!”
이미 전투를 위해 배를 모두 띄운 상황. 하지만 전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나포되어가고 있었다.
“젠장!”
가신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제발 들어와라!’
배를 타고 나가지 못하면 싸움도 없다. 배가 모자란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모든 배들이 나포 당했다.
“적들이 항구에 모여 있습니다.”
“배를 타고 나오진 않고?”
“작은 배를 타고 나와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는지 나오진 않고 있습니다.”
“그냥 가긴 그렇군.”
기습은 정말 훌륭하게 성공했다. 이게 다 정보 덕분이었다. 적이 먼저 습격해 왔다면 힘겨운 싸움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쇼니가문을 감시한 덕분에 무사히 기습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나포한 배들은 뒤로 빼고 쇠뇌 사수들을 태운 배로 근처까지만 가서 사격하고 돌아오라고 해.”
명령이 전달되자 다들 피식거리며 웃었다. 만약 상륙해서 싸우라고 했으면 표정이 굳었겠지만 그냥 쏘고 돌아오라는 말에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함대는 육지에 배를 대지 않았다. 대신 최대한 멀리 화살을 날리며 겁을 주고는 되돌아왔다.
이날 나포한 쇼니 가문의 배는 25척. 남만인들의 상선은 4척이었다.
“음, 훌륭하군.”
하루야스는 마음이 풀어졌다. 신유성이 새롭게 나포해 온 배들을 보며 자신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 속도라면 쇼니 가문도 얼마 남지 않았겠어.’
쇼니가문의 저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지만 배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배가 없는 동안에는 이쪽에서 어디든 들쑤시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일단 사람을 늘리는 것이 좋겠죠. 쇼니 가문이 지키지 못한 곳의 어촌의 사람들을 빼내기로 하죠.”
말은 곱게 빼낸다고 했지만 의미는 달랐다.
“그 일은 요시시게에게 시키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하시죠.”
함대는 새롭게 둘로 나뉘었다. 신유성은 남만의 상선들을 차지했다. 요시시게에게는 새로 나포한 배들을 전부 넘겼다.
이후 요시시게는 빠르게 움직이며 해안선을 털었다. 함께 갈 것에 동의하면 살려주고 반대하면 죽였다.
소문이 퍼지자 큐슈의 북부는 빠르게 비워지기 시작했다.
쇼니 가문의 당주는 크게 화를 냈다.
“대마도 그 놈들이 조선과 붙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가신들은 다들 잡아 죽여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배가 없으니 대마도를 칠 수 없었다.
“빨리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라리 사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대마도 놈들이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으음.”
배를 만드는 것이라면 노동력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사오는 것은 얘기가 달랐다. 재정이 악화되면 당주의 권력이 약해지게 된다.
‘이대로라면.’
더 버틸 수 없다. 어떻게 하든 똑같았다.
“배를 턴다.”
“네?”
“오우치를 친다. 그들의 배를 빼앗으면 돼!”
돈 주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싸우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쇼니 가문의 당주였다. 이에 몇몇 가신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대하진 않았다.
배신은 언제나 은밀해야 하는 법이니까.
요시시게가 큐슈 북부를 털고 있을 때 신유성은 유구 왕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본 배들은 모조리 털어버렸다.
30척이나 되는 함대를 이겨낼 수 있는 전력은 왜구들에게 없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4척의 캐럭까지 갖춘 상태였다. 이들의 속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훈련을 겸해서 정찰을 시킨 것이 주효했다.
함대가 나하에 나타나자 유구의 병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이건 막기 힘들겠다.’
성벽을 쌓아올리긴 했으나 척 봐도 상당한 전력이었다. 만약 신유성이 공격 명령을 내린다면 뚫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성벽이 아무리 견고해도 모든 지역을 다 방어할 순 없었다. 공격하는 쪽은 어디든 전력을 집중할 수 있으니 언제나 유리한 것은 공격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공격하지 않았다.
“협력을 요구하기 위해 왔다.”
유구 왕국의 쇼세이 왕은 앞에서 말하는 신유성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으음. 이런 어린 소년이.’
함대를 이끌고 있는 주인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함대를 대표해 신유성이 말하지만 아무도 조언을 하거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쇼세이왕은 신유성을 적대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굴지도 않았다.
‘조선의 배도 있었다. 적어도 명에 조공을 바치는 날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이제부터 왜구들의 배를 보면 무조건 나포해라. 만약 왜구를 돕는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멸하겠다.”
협력이라고 말하면서 협박을 던졌다.
“왜구를 도운 일은 없다.”
“내가 얼마 전에 왜구의 배를 나포했다. 그런데 부하가 여기서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으음.”
“다시 말하지만 왜구에 협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린 싸울 능력이 없다. 그대가 지켜줄 건가?”
“지켜줄 순 있다. 하지만 우리가 피를 흘리게 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공짜로 지켜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것은 손해. 그렇다고 사병으로 고용한 이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라고 할 순 없었다. 만약 목숨 바쳐 충성하라며 사지로 밀어 넣는다면 배신부터 하고 볼 인간은 수두룩했다.
“으음.”
쇼세이 왕은 신음을 흘렸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조선에서 왜구 토벌 허가령을 받은 몸이다. 명에다 하소연한다고 풀릴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가?’
왜구들이 명나라를 휩쓸고 있었다. 쇼세이 왕도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유구 왕국이 버티는 것은 왜구들에게 보급항의 역할을 해주며 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명나라에 신유성이 협박했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유구 왕국이 왜구와 한통속이라며 토벌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는 건가?”
“설탕.”
“응?”
“설탕을 주면 지켜주겠다.”
쇼세이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탕수수를 많이 키우게 해야겠군.’
상대가 더 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아 일단 안심하는 쇼세이 왕이었다.
“어찌 하시렵니까?”
“30척은 유구왕국을 중심으로 해적 소탕에 들어간다. 항상 교대로 움직일 것이며 일이 있으면 대마도로 전령을 보내도록.”
신유성은 뒤에 후지바야시 켄을 남겼다. 해적을 토벌하겠다고 계속 전선에 묶여있을 순 없었다.
“약탈한 물품은 지금까지 했던 대로 배분하고 설탕과 다른 상품은 모두 북해도로 보내고 명나라 사람과 은만 대마도로 보내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신유성은 그대로 남만 상선과 대맹선을 이끌고 부산포로 향했다.
한편, 조선에서는 명나라로 사신을 보냈다.
잡혀 온 왜구를 토벌해 명나라 사람들을 구했으니 데려가라는 것.
이 문제로 조정에서는 조금 시끄러웠다. 모두 자기 사람을 명나라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신단과 함께 움직이면 장사를 할 수 있으니 크게 한 몫 잡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윤원형을 이길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