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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냥꾼
다시 한양을 찾은 신유성은 또 다시 뇌물을 바쳤다.
“많이 힘들었는가?”
은 149관. 지난번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으나 정난정은 만족하질 못했다. 자신의 몫까지 배 소유 허가를 내주었는데 액수가 배로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난정이 기대하던 최소 액수는 은 200관이었다.
“왜구들이 단단히 준비해 쳐들어와서 힘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소생이 도움을 받고 있던 왜인이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우느라 피해가 심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피해를 부풀렸다. 정난정은 의심을 지우지 않았으나 겉으로는 웃어주었다.
“그런가?”
“다음에는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신유성은 일부러 액수를 맞춰주지 않았다.
‘계속 맞춰주면 더 요구할지도 몰라.’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본디 권력자들이 그렇다. 하나를 해내면 둘을 요구하고 둘을 해내면 계속 더 해내길 원한다. 그리고 실패하는 것을 봐야 그제야 그것이 한계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니 신유성은 일찌감치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 먼저 선을 그은 것이었다.
‘잘해봐야 일만 더 안겨줄 텐데 뭐.’
한두 번은 잘 할 순 있다. 하지만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얻는 것은 힘들다. 문제는 계속 최상의 결과를 안겨주면 권력자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실패하면 엄청나게 크게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 어쩌지는 않겠지.’
신유성은 윤원형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얼른 세력을 키워서 큐슈를 먹어야 해.’
물론 큐슈를 직접 지배할 생각은 없었다. 큐슈는 대마도주인 하루야스의 몫이었다.
“알았네. 그리고 이번에 조정에서 관직을 내릴 것이니 그리 알게나.”
정난정은 일부러 생색을 내며 말했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을 해낸 것처럼.
“은혜를 어찌 갚을지.”
“전처럼 노력하면 되네.”
‘전처럼? 역시 액수가 불만이라 이거지?’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신유성도 불만이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불만을 내색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알겠네. 그럼 그만 가보시게.”
‘이번에는 밥 안 주네?’
신유성은 조용히 물러났다. 밥도 안 주고 종들이 인사도 하지 않았다. 전에 왔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대접.
‘이게 조선에서의 내 위치.’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릴 운명. 존중받지 못할 신분. 신유성은 그리 느꼈다.
‘그렇게 살순 없지.’
돌아가는 신유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밥을 못 얻어먹어서 화난 건 절대 아니었다.
청계천에 돌아가 잠시 기다리자 등청하라고 조정에서 사람이 나왔다. 졸래졸래 따라갔더니 관직이 내려졌다.
오위의 소속인 부사용이 되었다.
‘뭐야? 별 거 없는 자리잖아?’
임시직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어찌 보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자리. 일은 하지 않고 녹봉이나 받는 자리.
‘뭐 주는 거니 받아야지.’
대단한 벼슬도 아니고 최하위 말단. 크게 기쁠 일도 아니었다.
관직을 받은 신유성은 물러났다. 애초에 할 일도 없으니 등청할 필요도 없었다.
볼 일을 다 본 신유성은 다시 배를 타고 대마도로 향했다.
‘지금은 다른 것보다 큐슈가 먼저다.’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우선 적을 확실히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유구 왕국.
후지바야시 켄은 신유성이 떠난 뒤 생활은 전투의 연속이었다. 일본의 영주들이 보내온 해적들이 계속 유구국으로 밀려왔다. 이들을 잡는 것도 일이었다.
“용병을 구한다! 싸우는 자에게는 배당을 준다!”
전투가 늘어나니 피해가 누적되었고 전력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켄은 쇼세이 왕에게 양해를 구하고 용병을 고용하기로 했다.
유구국의 많은 남자들이 이에 응했다. 신유성의 함대는 언제나 승리를 쟁취했다.
승리할 때면 배를 나포하고 재물을 빼앗았다. 재물이 없던 배들은 배 자체를 쇼세이 왕에게 팔았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사병들에게 배당했다.
돈이 생긴 사병들은 유구 왕국에서 쓰는 이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설탕을 샀다. 음식도 사고 필요한 생필품을 샀으며 사치를 위해 돈을 쓰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부러워 한 유구 왕국의 남자들은 기회가 오자 잡으려 했다. 쇼세이 왕이 이를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저들을 보고 배운다면.’
더 강한 전력을 얻을 것 같아서였다. 신유성의 함대는 전원 쇠뇌로 무장했다. 그러나 새로 보급하기 위해서 북해도까지 오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구 왕국에서 직접 생산했다. 쇼세이 왕은 새로운 무기로 무장해 더욱 강력한 군대를 갖길 원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원래부터 섬에서 살았기 때문에 타고난 뱃사람이었던 유구 왕국 사람들은 쇠뇌에 푹 빠졌다. 한 발 쏘면 장전이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장전만 하면 쏘는 것은 쉬웠다.
유구 왕국의 남자들은 배를 타고 해전을 치르기 위해 나섰다.
때 마침 명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던 선단이 있었다.
총 4척.
켄은 15척을 출격시켰다.
난전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절대 질 수 없는 전력.
“저것들은 뭐지?”
“엄청난데?”
명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던 해적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슬쩍 항로를 틀었다.
“놈들이 쫓아온다!”
“우리가 목표다!”
항로를 틀고 나서 뒤쫓아 온다는 것을 깨닫자 난리가 났다.
“어떻게 하지?”
“싸워야지!”
“왜 싸워? 그냥 얘기를 하면 되는 거 아냐? 싸워서는 승산이 없어!”
많은 해적들이 공감했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발하긴 어려웠다. 결정은 언제나 최고 책임자의 몫이었으니까.
“얘기한다.”
최고 책임자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결국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배 한 척만 신유성의 함대쪽으로 보내기로 했다.
“저 녀석들이 배만 한 척 보내는데요?”
“하나를 희생해 나머지가 도망치겠다는 건가? 꽤 하는 군. 함대를 나눈다! 10척은 뒤로 빠져서 적의 예상 항로로 가라!”
계산은 이미 끝났다. 모두 빈 배라면 당연히 따라잡기 어렵다. 하지만 짐을 잔뜩 실은 배들은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좀 돌아가더라도 잡는 것은 가능했다.
“적의 예상 항로로 가랍신다!”
명령이 함대에 전달되자 10척의 배는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것처럼 위장했다.
사병들과 용병들은 한 척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놓치면 배당이 줄어든다.
배당이 줄어드는 것은 나쁘다.
고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잡는다.
돈의 맛을 본 사병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았다.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돈 벌려고 배에 탔는데 배당이 적으면 안 된다. 한탕 크게 해야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다.
“왜 쫓아오는 겁니까?”
“그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10척이 예상 항로로 멀리 돌아가는 동안 켄은 접근한 배의 선장을 만났다.
“뭐가 궁금한 겁니까?”
“어디 영주 밑에 있는 거지?”
“모리 가문이요.”
자랑스럽게 말했다. 모리 모토나리가 이끄는 모리 가문은 꽤 강자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해서 상대가 한 발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가? 그런데 명의 상황은? 뭔가 주의할 건 없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켄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모리 가문의 무사는 표정이 풀어졌다.
“주의할 건 없소. 그냥 아무데나 사람 많은데 가서 털어오면 되니까. 도망가기 전에 터는 게 좋을 거요.”
“그런가? 알았다.”
말을 하는 순간 검이 번뜩였다. 모리 가문의 무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 검.
갈라진 사이로 피가 뿜어졌다.
“커헉!”
순간 쇠뇌가 발사되며 적선의 갑판에 있던 해적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다른 배들은 난리가 났다.
“도망쳐!”
“빌어먹을 새끼들! 털게 없어서 우릴 터냐!”
욕을 하면서 모리 가문의 배들은 도망쳤다. 하지만 성공한 배는 없었다.
3척 모두 먼저 움직였던 배들에 따라잡혀 나포되었다.
“하하하하!”
배당이 이루어졌다. 명나라를 털었던 배들에는 은을 비롯한 물품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신유성이 한 약속대로 절반은 배를 탔던 이들에게 배당했다. 모두 행복해했다. 그리고 함대에 대한 충성심이 쑥쑥 올라갔다.
‘나도 할까?’
쇼세이 왕은 욕심이 났다. 용병으로 참전했던 이들이 크게 한탕해서 흥청거리는 것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돈이 된다.’
하지만 함부로 나서긴 어려웠다. 신유성의 함대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왜구를 토벌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중간에 이를 가로챈다면?
지분을 요구할 수 있었다. 아니면 그냥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최악의 경우는 홀로 남겨지는 것.
그렇게 될 경우 유구 왕국 홀로 모든 왜구들과 싸워야만 했다.
‘아직은 아니야.’
쇼세이왕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지금은 전력이 너무 약해서 홀로 설 순 없는 상태였다.
‘배를 좀 더 확보해야 한다.’
원래 배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전투를 위한 배를 더 만들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득은 쇼세이 왕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대마도.
요시시게는 죽어라 쇼니 가문을 털었다. 탈탈 털어서 배란 배는 모조리 나포했다. 배가 없으니 쇼니 가문에서는 막아낼 수 없었다.
닌자들이 활발히 움직이며 병력 배치를 알려주니 전투를 피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점령한 뒤 수성은 어렵지만 약탈은 쉬운 법이었다.
치고 빠지면 되니까. 덫에 걸리면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코가와 이가 닌자들이 쇼니 가문을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는 그대로 노출되었다.
하루야스는 요시시게가 잘하는 것을 보고 조금 이른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대마도를 이끌어갈 사람은 요시시게다.”
가신들을 모아놓고 선언을 해버렸다. 여기에 반대하는 가신은 없었다. 요시시게가 아주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을 발굴해 관계를 맺은 것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덕분에 가신들은 큐슈 진출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유리하지만 히젠을 비롯해 쇼니가문의 영지를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선 전력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
당주로 올라선 요시시게는 야심차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우선 우리는 이제부터 친조선 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왜관에서 얻는 것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이카이도 공략에 성공한다면 명과의 교역도 다시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전력으로 사이카이도 공략은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무기와 정예 병사 그리고 시간이다. 모두 당장 싸우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적이 좀 더 약해질 때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일부 강경파는 당장 쳐들어가자며 졸라댔지만 대부분의 가신들은 반대였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우리에게 기회다.”
요시시게는 서두르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큐슈로 향하고 있었으나 인내했다.
한편, 나가사키를 비롯한 쇼니 가문의 영역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상인들의 불만이 가장 컸다.
남만 상인에 이어 모든 사치품이 동이 났다. 구할 수 없게 되자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이리 되자 쇼니 가문은 조금씩 흔들렸다.
사치를 하지 못하게 되니 점점 위상이 추락했다. 여유 없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니 휘하 가신들이 딴 생각을 품고 머리를 굴렸다. 원래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위에 있는 자가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기회였다.
“어쩔까?”
“뒤집을까?”
“팔아먹을까?”
배신하는 방법도 각양각색.
어떤 가신은 다른 영주와 은근히 연락하며 한 자리 하려고 들었다. 홀로 서는 것에는 자신이 없으니 다른 영주의 그늘로 들어가려는 것. 그리고 기왕 들어가는 김에 영주를 팔아서 한 몫 잡으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부류는 아예 집어삼키려고 계획을 짰다. 이들은 주로 실권과 가까운 이들이었다.
영주 가문만 잡아버리면 실권을 가진 자들이 영주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쇼니 가문이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니 기회를 볼 뿐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지.’
요시시게가 때를 기다리듯 쇼니 가문의 가신들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불만은 점점 높아져갔다.
이 때문에 쇼니 가문의 당주는 제대로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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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