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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변화
관직을 받았다고 해도 신유성은 조선에 머물지 않았다. 윤원형과 정난정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신유성이 바다로 나가 더 많은 왜구를 잡아들여 은을 바치길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직접 왜구를 약탈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미 훌륭한 부하가 자신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건 좀 문제네.’
하지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신페이와 켄이라는 심복들이 있어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새롭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전에는 더 이상의 확장은 위험했다.
‘잘못하면 남 좋은 일만 할 수 있어.’
믿지 못할 자에게 떡을 쥐어준다면? 그 떡을 삼켜도 누굴 탓할 것인가?
‘가장 좋은 것은 지금 키우는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하는 건데.’
하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좀 더 빨리 많은 인재를 얻어야 했다.
‘성장한 남자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단 말이지.’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잘 배웠다. 하지만 모두가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안 나와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신유성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학습 능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생각해야만 했다.
‘공부는 지루해. 매일 쓰는 것이 아니면 잊어먹기 쉽지.’
물론 똑똑한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평소 쓰지 않는 지식은 잊고 지내는 편이었다. 그러다 까맣게 잊기도 한다.
‘공부는 힘들다. 즐기는 게 좋아. 관심을 가질 만한 것.’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책이었다. 하지만 책도 한두 번 읽으면 내용을 다 알게 된다.
‘계속 새로운 자극을 줄 필요가 있어. 그러려면.......’
신문.
신문이 필요했다. 신문을 발행할 경우 여러 가지 소식을 신문에 싣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신유성이 신문사의 사주나 마찬가지.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으나 더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돈을 써야 한다. 공짜로 꿀꺽하는 것은 어렵다.
‘한글이 편하겠군.’
신유성은 한글을 골랐다. 한자의 경우에는 활자를 활용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글자마다 하나씩 파줘야 하니까. 반면 한글의 경우에는 조합으로 가능했다. 물론 일본어의 히라가나가 가장 쉽기는 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한글을 골랐다.
‘일본어를 하면 다른 녀석들이 따라붙을지 몰라.’
영주들은 경쟁 상대이기도 했다. 그러니 약간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글을 택했다. 무엇보다 한글로 된 신문을 읽기 위해 조선말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국제적인 인재를 구하는 것이 더 쉬워질 거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을 꾸준히 영주들에게서 사들여 가르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발적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나올 거란 계산이었다.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한두 해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 하지만 신유성이 크게 성장할수록 효과가 더 커지는 일이기도 했다.
“신문이라니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한다.”
신유성은 북해도로 돌아와 가신들을 잡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매주 영지에서 벌어진 사건 같은 것을 적는다. 어디의 누가 어떤 벌로 처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부터 어디의 누가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 그런 것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자잘한 내용이라고 해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나의 영향력 아래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내용은 가벼운 동네 소식지 수준으로 제한하도록 했다.
“아울러 농사 방법이나 물건을 만드는 방법 같은 것도 적는다. 또한 약초나 다른 지식들도.”
교육적인 목적도 병행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러 지역의 특산품을 광고하는 것을 허락한다. 단, 전략 물자는 소개를 금한다.”
“하지만 얼마나 만들어야 합니까?”
“우선 2천부를 만들어 뿌린다.”
2천부. 절대 많다고 할 순 없는 양. 하지만 낭비로 여겨질 수 있는 사업이었다. 종이는 절대 아무렇게나 낭비해도 좋을 정도로 생산량이 남아나질 않았으니까.
“비용이 많이 들 겁니다.”
“그래도 괜찮다. 해라.”
돈은 아직 많았다. 부담은 없었다.
종이를 만들고 활자로 첫 번째 신문을 찍었다. 감격스러운 첫 번째 신문에는 별 다른 얘기는 없었다.
다만 신유성은 녹말가루를 이용해 생선을 튀겨먹는 요리법을 싣게 했다. 쇼군까지 극찬했던 요리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아니, 진짜 쇼군이 먹었던 음식인가?”
성공한 상인들은 신문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신문의 가격은 쌌다. 그래서 부담 없이 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북해도에는 조선어를 배운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모두 신유성이 키운 아이들.
이들 중에 상인들의 일을 도우면서 실습하는 이들이 있었다.
“네, 저도 숙소에서 해주는 걸 먹어봤습니다.”
“맛있냐?”
“맛있죠.”
꿀꺽.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었다.
‘해먹어 볼까?’
상인은 견습에게 자세히 물었다. 그렇게 해서 요리를 알게 되고 해먹어 보았다. 요리의 맛은 좋았다.
‘괜찮네.’
신문의 의도가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단 요리에 대한 것은 좋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 신문 자체가 그리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견습에게 부탁해 신문의 내용을 모두 들은 상인은 결심했다.
‘직접 읽는 게 좋겠어.’
자잘한 북해도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에 그쳤지만 세상사는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번거롭게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소식을 접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혹시 뭔가 좋은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무엇보다 권력자인 신유성이 시킨 일. 언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니 작은 투자라 생각하고 꾸준히 구독하기로 했다.
신문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았다. 가신들의 경우에는 공부를 겸해서 읽었다. 상인들은 뭔가 얻을 것이 없을까 싶어 읽었다. 그리고 일반 평민들은 자신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니까 궁금해 했다.
번화한 곳에 가면 상인들이 신문 한 장씩 끼고 읽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취재를 한다고 돌아다니는 무사들도 있었다.
물론 이들은 닌자였다.
코가와 이가 닌자에서는 자신들의 행보를 자연스럽게 만들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신유성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닌자들은 기자가 되었다.
“이봐, 이번에는 뭘 쓰는 게 좋을까?”
“나쁜 짓을 한 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쓰자.”
“나쁜 짓?”
“영지에 숨어 들어온 그 녀석 있잖아.”
기사에 대한 논의가 열심히 이뤄졌다. 닌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욱 열심이었다. 음지만이 아니라 양지에서도 당당히 활동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문제를 내놓는다니.”
주변 얘기만 쓰다보면 금방 흥미를 잃을 수 있기에 문제도 내놓았다. 문제를 내놓고 답을 적어서 응모하면 당첨자를 뽑아 선물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건 왜 할까?”
“영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깊으신 뜻이 있을 거다.”
닌자들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신문은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모양이군.’
반응은 꽤 성공적이었다. 특히 문제를 내기 시작하자 폭발적이었다. 답을 알아내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열심히 의논하는 이들도 있었다.
‘설탕을 한 줌씩 주면 되겠지.’
설탕은 이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켄이 유구 왕국에서 자리 잡은 이후 설탕을 계속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대만과의 교역도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신유성이 거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설탕은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니까.
한 번 먹으면 없어지는 비싼 상품. 사치를 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주군! 바다 건너 다테 가문의 영지에서 병이 돌았다고 합니다.”
“뭣이?”
전염병이 돌았다는 소식에 신유성은 깜짝 놀랐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은 싸워서 이기기도 어려웠다. 한 번 돌면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일단 다테 영지는 물론 모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려는 자들을 막으라고 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이들은 일단 격리하도록!”
제대로 된 약이 없으니 남는 방법은 격리뿐이었다.
‘젠장.’
신유성의 뇌리에 문득 흑사병과 같은 병명이 스치고 지나갔다. 배운 기억은 있으나 접해본 적은 없는 병들.
발전한 의학 시스템 덕분에 당연하게 여기던 혜택들.
그 모든 것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젠장! 이러니까 언제 죽을지 모른다니까!’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자 신유성은 분노가 치밀었다.
‘의학을 발전 시켜야 한다.’
살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아울러 의료를 발전시키는 것이 곧 국가를 발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의원들을 모아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해. 그래도 늦다.’
의원들을 불러모은 신유성은 명령을 내렸다.
“알고 있는 모든 병에 대한 치료 방법을 적어라. 그리고 어떤 효과를 보았는지도. 그리고 검증해라. 정말 효과가 있는지 검사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적는 자에게는 상을 줄 것이다. 하지만 허튼 소릴 하는 놈들은 목을 벤다.”
의원 자격증 제도 같은 것이 있는 일본이 아니었다. 당연히 돌팔이들도 많은 시기. 조선에서도 나름 검증된 의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돌팔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 가서 싸구려 약초를 명약이라고 속여 파는 인간들도 있었으니까.
지식이 없는 단순한 이들은 떠돌이 돌팔이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쩔 때는 알면서도 당한다. 병자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하지만 신유성은 이런 일들을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의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반항?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거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
“그럼 어쩌려고? 도망치게?”
“난 안 간다. 여기가 좋다.”
신유성은 협박만 하지는 않았다. 가신들을 시켜 최고의 대우를 해주도록 했다. 밥은 맛있었고 다른 모든 것들이 지급되었다. 생활에 불편함 따윈 없었다. 시중을 들어줄 시종들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가신급 대우였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일단 적어서 제출했다. 거짓말은 적지도 못했다. 혼자였다면 적당히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치료 효과를 과장되게 부풀려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여럿이라면?
신유성은 확인해본다고 했다. 그 말은 즉, 다른 의원에게 보여줄 거란 소리였다. 모두가 담합한다면 속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유성이 아예 다른 지역의 의원에게 확인한다면?
들통 나는 것은 시간문제.
그러니 함부로 거짓을 적는 모험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좀 더 지식이 필요해.’
한편, 의원들에게 집필을 요구하고 의학을 정리하려 했으나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다. 해서 신유성은 조선과 명나라 등 각 나라의 의료 지식을 손에 넣기로 작심했다.
신유성이 갑자기 터진 전염병에 펄떡거리는 동안, 명나라는 조선에서 온 사신을 맞이했다.
“이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왜구에게 잡혀갔던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의 사신들과 함께 돌아왔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대신들이 흥미를 가졌다.
“그러니까 그 소년에게 토벌을 허락했다?”
“그러합니다.”
“허허, 의로운 소년이로다.”
기특했다. 왜구 소탕에 앞장섰다고 하니. 하지만 모두 단순하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 소년의 집안이 무가의 집안인가?”
“아닙니다.”
“그럼 거부인가?”
“재산은 좀 있지만 거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한 건가?”
대신들 중 한 명인 서계는 의혹을 내비쳤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질 않았다.
“원래 왜로 유학을 갔던 신동입니다.”
“뭣이?”
몇몇 대신들이 펄쩍 뛰었다. 명나라도 아니고 왜로 유학을 갔다니 어이가 없던 것이었다.
“설마 왜인들과 내통한 건 아닌가?”
서계는 날카로웠다.
“내통은 아니었습니다.”
사신들은 필사적으로 신유성을 변호했다. 만약 여기서 신유성이 잘못된다면? 돌아가서 윤원형의 원한을 살 수도 있었다. 신유성이 왜인과 내통했다면 이를 허락한 임금은 더 큰 죄를 지은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당장 명종의 자리가 불안해진다면 윤원형이 칼춤을 출지도 몰랐다.
대립하던 윤임일파를 쓸어버린 윤원형의 성정이라면 또 하지 못하란 법은 없었다.
부산포의 왜관과 조선에게 우호적인 대마도주와의 친분을 언급했다.
“허허. 왜 그러시나? 왜인으로 왜인을 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일 아닌가?”
한쪽에서 듣고 있던 엄숭이 나섰다. 그러자 서계의 질책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큰일도 아닌데 엄숭과 충돌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빌어먹을 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서계는 간교한 엄숭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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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