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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46화 (4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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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변화

한양.

윤원형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제 시작인데.’

앞에는 사신들을 따라갔던 상인들이 사온 물건들이 쫙 나열되어 있었다. 정난정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윤원형은 그러지 못했다.

‘명나라로 안 보낼 수 없나?’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신유성을 이용해 은을 쪽쪽 빨아들일 기회. 벌어들인 은으로 사온 물건들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커졌다.

‘차라리 혼인을? 아니야. 그래도 왜인들과 연결되어 있어.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어찌될지 모를 일.’

조선과 일본과의 사이가 나빠지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이가 괜찮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사이가 나빠지면 왜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조정은 물론 다른 양반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후손의 출사는 그냥 포기해야 한다. 구국의 영웅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어려웠다.

연좌제 때문이었다.

조상 중 누가 죄를 지었으면 그걸 빌미로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막는 일은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출사를 결심한 이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상을 모시며 이들의 잘못이 사실은 억울한 일임을 밝히는 식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정사에 기록이 되어야 연좌제에서 벗어나 길이 열린다.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의 관직을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다시 복구시켜주는 일이 행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당연히 반대하는 파벌에 의해 가로막히는 경우가 흔했다.

‘이기.......’

윤원형의 뇌리에 이기가 떠올랐다.

이기는 집안도 좋고 능력도 있는 문신이었다. 무재가 있는 문신으로 그야말로 다재다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기는 외직을 전전해야만 했다.

이기의 집안과 외가는 문제가 없었으나 장인이 재물을 탐하는 탐관오리로 단죄되었다.

이 때문에 이기는 언제나 요직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리고 권세를 누리던 윤임에 의해 중요한 자리에서 미끄러지자 원한을 품고 윤임을 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윤원형이 이 사실을 알고 이용해먹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신유성을 가까이 하고 싶어도 더 가까이 품을 수 없는 이유였다.

왜인과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안 자체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연좌제의 무서움이었다.

‘이대로 보내긴 아까운데.’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왕족과의 혼사였다. 왕족의 혈통은 그 모든 것을 초월했다.

‘어디 보자. 혼례를 올리지 않은 분이 누구시더라.’

윤원형은 명종의 사촌 중 결혼하지 않은 옹주를 살피기 시작했다.

명나라 황제의 의사는 곧바로 신겸혁에게 전해졌다. 신겸혁은 바로 편지를 써 신유성에게 보냈다.

‘으음. 명이라.’

편지를 받아 본 신유성은 갈등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아직 적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적이 살아나기라도 하면 대마도는 물론 북해도까지 위험해진다.

‘이 놈들 숨통은 끊어놓아야 해.’

다른 영주들은 몰라도 큐슈의 영주들은 확실히 정리해야 했다. 이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쇼니 가문을 박살내야만 했다.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시간이 별로 없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페이는 눈을 빛냈다. 명나라 황제와 만나게 될 거라는 이야기에 신유성이 더욱 달라보였다. 신유성이 대등한 입장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넘어왔던 좀 똑똑한 꼬마에서 명나라 황제가 직접 찾을 정도의 사람이 된 것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큰 나라인 명나라의 황제가 인정한 남자라는 사실에 신페이는 미래가 더욱 기대되었다.

“그럼 내분을 일으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내분?”

“보고에 의하면 쇼니 가문의 가신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흐음. 그런 놈들은 쉽게 믿기 어려운데.”

“책임지고 감시하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신유성은 신페이의 작전을 허락했다. 배신하는 놈들은 믿지 못할 놈들이었지만 믿을만한 사람들로만 세력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작은 조직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조직이 크면 클수록 이는 어려웠다.

‘큰 조직에는 큰 조직을 다스리는 방법을 써야 한다.’

신유성이 생각해낸 것은 감시와 가지치기였다.

‘일단 받아들이되 이상한 조짐을 보이면 죽인다.’

이를 위해 닌자들은 더욱 중요했다.

“닌자들을 더 모으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송구합니다.”

“아니야. 얼마든지 가져다 쓰도록.”

지금은 돈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소 요시시게는 정말 이 악물고 털었다. 해안선을 탈탈탈 털어서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이쯤 되니 쇼니 가문은 배를 전혀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배를 사야하는 상황.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배를 사러 가던 무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게 아무래도.”

“암습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영주의 성 안에 있었다면 암습은 어려웠다. 수많은 무사들이 뭉쳐서 지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외부로 나갔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잠든 사이에 다가와 목을 긋는 것만으로도 죽일 수 있었다. 외부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좋은 무사라도 허점이 생긴다. 더구나 닌자들이 계속 뒤를 추적하고 있다가 빈틈을 노려 기습을 한다면 당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홀로 움직이지 않고 여럿이 움직이며 등을 지켜주긴 하지만 코가 닌자들은 다른 닌자들과 달랐다.

월등한 전투력과 숫자로 아예 밀어버렸다.

이 때문에 쇼니 가문의 가신들은 더욱 불안해졌다. 외부와도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은 불안을 안겨주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약탈하는 요시시게를 막을 방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요시시게는 점점 깊이 들어왔다. 해안만이 아니라 더 안쪽으로 들어와 마을을 털어갔다.

재물 같은 것은 대충 내버려두고 사람만 뽑아갔다.

이것이 문제였다.

사람이 계속 줄어드니 드디어 영지민들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꼭 그 놈한테 세금을 내야 하나? 지켜주지도 못하잖아?”

“차라리 도망치자고.”

“그거 아나? 얼마 전에 사람이 왔는데 그냥 항복하면 안 죽인데. 사는 곳을 옮기긴 해야 하는데 더 살기 좋데.”

“돈도 줬다던데?”

“뭣이?”

신페이는 닌자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내분을 일으키기 위해 쇼니 가문의 가신들을 만나는 것과 동시에 이미 잡아갔던 사람들 중 생활에 만족하는 이들을 뽑아 민심 흔들기에 나선 것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다른 마을 사람이 멀쩡하게 나타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소리가 퍼져나가자 쇼니 가문에 대한 불만이 점점 고조되었다.

애초에 백성들이 영주 가문에 세금을 내고 충성하는 것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안 된다면 세금을 내고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할 이유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에게는 목숨이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을 지켜 줄 수 없는 영주에게 보낼 충성심은 없었다.

영지민들은 하나둘 짐을 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쇼니 가문에서는 영지민들의 이탈을 막기가 어려웠다.

“또 사라졌다고 합니다!”

“젠장! 언제 거기까지!”

이젠 영주성 부근의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분명 길목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로 온 듯 합니다!”

쇼니 가문에서는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코가와 이가 닌자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하게 되니 언제나 뒷북을 칠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얘기가 달랐다.

요시시게가 직접 나서서 마을 사람들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이탈한 것이었다.

마을의 촌장이 결정을 내리자 마을 사람들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 나선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가속화되자 쇼니 가문의 가신들은 결정을 내렸다.

‘판다.’

‘먹는다.’

‘도망친다.’

첫 번째 부류는 다른 강력한 영주에게 접촉하는 것이었다. 해서 제법 잘 대해줄 것 같은 모리 모토나리에게 의탁하고자 떠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다른 강력한 영주를 불러들여 반전을 노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반란을 준비했다. 쇼니 가문을 몰아내고 영주가 되어 화해한다는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는 그냥 쇼니 가문을 버리고 요시시게를 비롯한 다른 영주들에게 전향 의사를 밝혔다.

회생할 가망이 없어 보이는 쇼니 가문에 머무는 곳보다 그래도 작지만 좀 더 나은 영주의 밑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약소 영주들 또한 사람이 부족하니 배신자라고 해도 일단 받아들여 쓰려는 이들은 꽤 있었다.

첫 번째 부류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부류도 배를 사러 간다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쩔 때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두 번째 부류!

“병사를 내주시면 당장 배신자 놈들을 잡아오겠습니다!”

“주군!”

충신의 외침처럼 들려 쇼니 가문의 당주는 허락했다. 그도 분노한 까닭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이는 배신자에게 칼을 쥐어준 격.

“쇼니 가문은 미래가 없다. 너희들은 미래가 없는 영주를 위해 죽을 것이냐?”

“아닙니다!”

“좋다. 나를 따라라. 그러면 보여주겠다! 밝은! 미래를!”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며 배신자들은 쇼니 가문에 쳐들어갔다. 그리고 당주 가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 죽였다.

멸문.

쇼니 가문은 요시시게가 아닌 배신자들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허나, 그렇다고 요시시게가 배신자들과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화해? 웃기고 있군.”

화해가 거절되자 배신을 이끌었던 자는 죽었다. 가족도 모두 함께. 그리고 그 다음으로 실권을 잡은 자도 화해에 실패했다. 다른 영주를 끌어들이려 한 것도 실패.

그렇게 또 죽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가 실권을 잡았다.

“살려만 주십시오.”

세 번째로 실권을 잡은 배신자는 바로 항복했다.

그제야 요시시게는 항복을 받아들였다.

“좋다. 받아주겠다.”

항복을 했던 쇼니 가문의 배신자들은 가족을 모두 인질로 대마도로 보내게 되었다. 이미 뒤로 물러난 하루야스는 인질들을 관리하며 조선과의 관계만 살피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아들을 뒤에서 돕는 역할을 자처한 것.

“요시시게. 너는 새 영지에 집중해라.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대마도와 달리 쇼니 가문이 차지했던 영역은 상당히 넓었었다. 하지만 쇼니 가문이 흔들리는 틈에 다른 큐슈의 영주들이 야금야금 차지해 많이 줄어든 상태. 하지만 요시시게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먹었다고 좋아하는 거냐?’

요시시게는 당장에 넓은 영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든 전력은 나가사키에 집중한다!”

땅을 점령해도 가문이 사라지면 결국 주인 없는 땅이 된다. 그때 가서 먹으면 그만인 것.

‘결국 중요한 것은 땅을 지배한 가문과의 싸움.’

신유성의 작전대로 싸우며 적을 약하게 만드는 것을 배운 요시시게는 새로운 방식의 전쟁에 눈을 떴다.

그래서 나가사키에 전력을 집중한 것이었다.

‘사이카이도와 다른 곳과의 교류를 끊는다.’

배가 사라지면 결국 큐슈는 고립된다.

고립되면 별 다른 자원이 없는 영주들은 위신을 세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계속 지나면 지위가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시게는 나가사키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 방어하기로 했다.

넓은 땅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한 지역만을 지키는 것은 가능했다. 더불어 바다에서는 그 어떤 큐슈의 영주도 요시시게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해군 전력은 앞선 상황.

더구나 대마도는 조선과 교역을 하는 것은 물론 신유성 덕분에 남만 상인과 명나라의 물건도 쉽게 들여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량으로 들여오는 설탕은 그야말로 보물과 같았다.

영주를 비롯한 가신들의 다도회에서 차에 설탕을 살짝 뿌려 마시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 된 것이었다.

또한 귀한 설탕으로 만든 사탕을 비롯한 과자들은 그야말로 황송한 마음을 갖게 하는 진미.

‘고맙다.’

요시시게는 신유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신유성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최대한 돕는다.’

그리고 신유성이 원하는 더 큰 나라라는 것에 요시시게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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