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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변화
시간이 흘러 1553년이 되었다.
“주군. 이제 혼례를 올리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북해도는 꾸준히 변하고 있었다. 우선 요시시게가 점령한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방어만 하기로 결정한 이상 다른 지역을 방어해줄 순 없었다. 즉,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
이를 다른 가문에서 흡수하게 내버려둔다면 결국 남자들은 병사로 징집되어 나가사키에 무기를 겨누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시게는 나가사키 인근에 수용할 수 있는 인구를 빼고는 꾸준히 북해도로 사람을 보내왔다.
이와 더불어 요시시게는 큐슈 영주들의 배를 나포하고 해안을 약탈했다. 바다 근처에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약탈했다.
큐슈를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작전이었다.
어쨌거나 요시시게와의 협력으로 북해도의 인구는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발이 손쉬워졌다. 병력이 더 늘어났다.
이제는 정예 병력이 2만5천이었다. 이 2만5천은 컸다.
이들은 아무 것도 안 하고 훈련만 받는 병사들이었다. 전원 쇠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철포를 지급해 철포병의 숫자를 늘리는 중이었다.
또한 여진과의 꾸준한 교역으로 말의 숫자가 늘어 기병도 4천이었다. 이들은 말을 타고 가서 내린 다음에 싸우는 것이 아닌 말 위에서 싸우는 것이 가능한 기병이었다. 또한 이들 중에는 활을 다루는 병사가 5백이나 됐다.
궁기병 5백은 정말 무시무시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쇠뇌를 사용하는 쇠뇌병이 2만.
철포병 1천.
기병 4천.
신유성을 모시는 가신들은 안정감을 느꼈다. 북해도의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는 더욱 활성화 되었다. 이제는 다른 가문의 침략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
하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예 병력이 2만5천이라고 하지만 닌자들의 숫자는 신유성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신유성을 신격화 하는 영지민들은 모두 정보원이었다. 이들이 전부 닌자들에게 협조했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짧은 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
가신들은 만족해했지만 동시에 불안해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영지민들이 모두 주군의 피가 계속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북해도가 급속도로 발전해 안전하다고 해도 모두 신유성을 중심으로 이룩한 것.
구심점인 신유성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북해도의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를 알고 있기에 가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신유성이 얼른 가정을 이뤄 아이를 낳길 원했다.
신유성의 아이가 신유성과 같은 존재는 아니더라고 해도 상징적인 존재로서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는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무런 저항 없이 변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안 된다.”
신유성도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혼례를 올릴 순 없었다.
“명나라 황제가 불렀다. 이 이상 지체하는 것은 어렵다.”
왜구 토벌을 이유로 신유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이었으니까. 명나라 황제가 분노해 교역을 방해한다면 여러 모로 힘들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왜구 토벌을 이유로 들자 명나라에서도 더 다그치지는 않았다. 신유성이 토벌에 실패해 왜구가 다시 급증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녀오신 뒤에는 어떻습니까?”
가신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상당히 집요했다.
“알았다. 명나라에서 돌아오면 혼례를 올리도록 하겠다.”
결국 신유성은 더 버티지 못했다.
오래 못 보는 것은 자주 경험해서 익숙해졌을 법 한데도 매화와 나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제 가시면 언제 오나요?”
“모르지. 황제만 보면 돌아오게 될 테니까.”
“느낌이 안 좋아요.”
나츠는 불안했다. 너무나 잘난 신유성. 명나라 사람들이라고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명나라 말도 잘했다. 나츠가 보기에는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였다.
“꼭 돌아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으응.”
나츠는 투정을 부리며 신유성에게 안겼다. 나츠가 연상인데다가 예전에는 나츠가 더 컸지만 지금은 신유성이 더 연상으로 보였다.
‘부럽다.’
옆에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매화는 부러운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매화도 예전처럼 신유성의 품에 안기고 싶었으나 나이가 들며 점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위축되고 있었다.
나츠와 자매처럼 지낸다고 하지만 진정한 자매는 아니었다.
신유성을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다고 하지만 자격지심이 안 생길 수 없었다. 그래서 매화는 그냥 받아들였다.
단지 조금이라도 신유성이 관심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은 매화만이 아니었다.
방 밖에서는 문틈으로 레이가 엿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명나라로 떠나기 전에 준비할 것은 많았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황제가 부른다고 달랑 빈손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뭐라도 바쳐야 했다. 특히 이번 황제는 여색을 즐기는 황제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더구나 기괴한 소문이 잇따랐다.
‘여색을 통해 불로장생이라.......’
사람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다. 그러니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을 취하면 생명력이 늘어난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가정제는 불로장생을 꿈꾸고 있었다. 어린 여자의 월경액을 채취해 단약을 만드는 데 쓰기도 했다.
이런 가정제의 엽기적인 행각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 궁녀들이 못 살겠다고 사고를 쳤다. 이것이 바로 임인궁변이었다.
잠 든 사이에 궁녀들이 가정제의 목을 조른 것이었다.
하지만 가정제는 죽지 않았다. 황후 덕분에 살아난 가정제는 궁녀들을 죽였다.
‘불로불사라. 진시황제도 원했던 거지.’
황제가 된다면,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을 놓고 싶어지지 않는 것은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권력의 마력에 이끌려 비정하게 가족을 버리기도 하니까.
“선물이라 하심은?”
“인삼과 산삼을 최대한 많이 구해야 한다.”
선물이란 것은 자고로 상대가 기뻐할 만한 것을 줘야 한다. 본인 생각에 좋다고 생각된다고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줘봐야 소용없다. 심할 경우 선물을 주고도 욕을 먹는다.
그렇기에 인삼과 산삼이었다.
산삼은 그야말로 구하기 힘든 귀한 약재였다. 오죽하면 영약으로 분류할까?
신유성은 은밀히 신겸혁에게 산삼을 구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모아둔 은을 가지고 윤원형을 찾아갔다.
은 1천관.
어마어마한 양의 은을 가진 신유성은 한양을 찾았다. 도착하면서 호위까지 요청할 정도였다.
이에 윤원형은 관병을 움직여 호위하게 했다. 신유성이 이번에 가져갈 은이 좀 많다고 먼저 전갈을 넣으니 벌어진 일.
“허허허. 허허허허허!”
그 동안 꾸준히 신유성이 은을 보내주긴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이 가져온 적은 처음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웃으면서도 윤원형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이 놈이 혹시 지금까지 떼먹은 거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다.
“얼마 전에 대규모로 왜구들이 명나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잡고 얻은 것입니다.”
“그런가?”
명나라에서 벌어지는 왜구들의 약탈 현황이 일일이 조선으로 보고되는 것이 아니니 윤원형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가끔 들려오는 소식으로 짐작할 뿐.
사실 신유성이 가져온 은은 일본에서 교역으로 얻은 은이었다.
유구를 통해 명나라로 가는 항로를 독점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교역을 통해 벌어들이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또한 남만상인들과 홍콩에서 거래하면서 더욱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인삼을 좀 구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선물을 하려는 건가?”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윤원형은 조선의 체면이 걸린 일이기도 해서 이를 수락했다. 덕분에 인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삼을 파는 상인들도 감히 신유성을 상대로 수작을 부리진 못했다.
만약 수작을 부렸다가 걸린다면 윤원형이 자신을 업신여겼다면서 날뛸 테니까.
인삼을 구한 뒤에는 비단도 샀다.
황제만이 아니라 다른 대신들에게도 바칠 선물이었다.
이를 위해 또 엄청난 양의 은이 썼다. 물론 대부분의 은은 윤원형의 곳간으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선물이 모두 준비되자 신유성은 해로가 아닌 육로로 움직이게 되었다.
빨리 간다면 해로로 갈 순 있다. 하지만 해금 정책이 있는 이상 공식적인 방문을 하는데 대놓고 배를 타고 가는 것은 명나라를 무시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해금정책.’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신유성에겐 달갑지 않은 정책일 뿐이었다. 배를 타고 가면 금방인데 육로로 가게 생겼다.
‘가는 데 한 달. 오는 데 한 달.’
여기에 가서 대기하거나 볼일을 보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길어질 수 있었다. 사실 한 달도 빠듯하게 잡은 것이었다.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여행한 번 더럽게 힘드네.’
비행기를 타면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을 한 달 동안 육로로 움직일 생각을 하니 까마득할 뿐이었다.
‘아, 비행기 만들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비행기는커녕 자동차도 만들 줄 모르는 신유성이었다.
개념은 알지만 개념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우 답답해.’
어찌 보면 미래의 기억은 저주와도 같았다. 너무나 편한 길을 아는데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 있으니 답답했다.
그립고 또 그리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워도 그냥 죽음을 택할 순 없었다.
죽는다고 다시 되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한편, 신유성이 육로로 명나라로 향한 사이. 북해도의 남쪽 영주들은 북해도에 슬슬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많이 컸어. 그렇지 않나?”
“인구도 늘었고. 더 놔둔다면 위험하겠습니다.”
“그래.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이야.”
닌자들과 북해도 주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외부인들을 감시했다고 하지만 정보가 세어나가는 것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어려웠다.
결국 북해도의 발전 소식은 다테 가문을 비롯해 다른 영주들에게도 전해졌다.
“놈들을 쳐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다테 하루무네는 이에 동의했다. 더 크기 전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병력이 약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유성의 군대는 정예병이란 보고가 들어왔다.
‘기병이라니. 대체 어디서?’
말은 엄청나게 비싼 동물이었다. 영주들을 비롯해 가신들이나 탈 수 있는 정도. 병사들까지 기병으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면 엄두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신유성은 해냈다.
조그만 영지의 영주가.
‘더 놔두면 오히려 당한다.’
위기감을 느낀 하루무네는 안도 가문에 사신을 보냈다.
안도 가문에서도 북해도의 소식을 듣고 불안해했다.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탓이었다.
“놈들이 대마도와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마도를 치라고 할까?”
“어렵습니다. 이미 사이카이도의 영주들이 다 털렸습니다. 그만큼 배가 많다고 합니다.”
“모리 모토나리는 어떤가?”
“그쪽은 다른 가문과 싸우고 있어서 힘들 겁니다.”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고 가문은 물론 오우치 요시타카 사후 남은 오우치 가문의 잔재들과도 싸우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여유롭게 외부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요시시게와의 거래로 힘을 얻는 상황이었다.
“으음.”
“난카이도는?”
시코쿠 섬과 긴키 지방의 영주들에 대한 것을 물었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다들 요시시게와의 거래로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놈들이 크기 전에 밟아야하는데. 바보 같은 놈들.”
하지만 요시시게를 공격하는 것이 여의치 않기에 다들 교류로 노선을 바꾼 것뿐이었다.
요시시게는 신유성과 합작하고 있으며 모든 외국과의 교역로를 독차지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나가사키에 틀어박힌 요시시게를 잡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지만 나가사키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굳건했다.
엄청난 수의 대군이 상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해군 전력도 무시무시했다.
누구든 독자적으로 공격한다면 큰 피해를 피할 순 없었다.
영지의 안위가 흔들릴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 영주는 실권을 잃게 된다. 그러니 도박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결국 북해도를 먼저 쳐야겠군.”
큐슈는 너무 멀었다. 그러니 결국 가까운 북해도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리.
“마침 다테가문에서도 동맹을 제안했으니 좋은 기회입니다.”
“그래.”
이렇게 신유성이 없는 사이 북해도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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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