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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변화
배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던 기병들은 바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약속된 움직임.
동맹군이 이를 악물고 추격에 들어갔을 때 기병 대장은 때가 왔음을 느꼈다.
“자 가자. 신의 땅을 침범한 놈들에게 죽음을!”
“죽음을!”
기병들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기병들은 대체로 신유성을 광적으로 추종하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싼 말을 맡기기 때문에 엄격하게 선발한 결과였다.
한 차례 화살을 날리고 무거운 쇠뇌를 안장 뒤쪽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월도를 뽑았다.
그리고 달렸다.
월도를 앞으로 하고 달려가는 4천의 기병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측면에서 날아온 화살에 돌격하던 동맹군의 우측은 무너졌다. 돌격하는 상황에 측면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살려줘!”
“싸워라! 창을 들어!”
무사들이 싸우라고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전방의 적에 이어 측면에 기병들이 나타나니 공포가 번졌다.
전투 상황에서 명령은 실시간으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장의 병사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허나, 이 또한 어느 정도 전의가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기병들이 월도를 앞으로 뻗었다.
달려오는 속도로 인해 그저 스치고 지나가도 살이 그냥 갈라졌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날아가기도 했다.
기병들은 혼란스러운 동맹군의 우측에서 후방 쪽으로 잡았다. 달려 나가던 동맹군 병사들은 계속 앞으로 달렸다. 기병이 우측에서부터 파고든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는 이미 기병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가 되었다.
혼란이 동맹군 전체에 퍼졌다. 앞으로 달려가던 이들이 주춤했다. 그리고 기병을 막을지 계속 돌격할지 혼란스러워 했다. 무사들도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더구나 명령이 제각각이었다.
“돌격! 무조건 돌격!”
“말을 막아! 뭉쳐서 창을 들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대로 뭉치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소수. 나머지는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사이 기병들은 동맹군의 좌측까지 도달해 빠져나갔다.
“피해는?”
한참 멀어진 뒤에야 멈춰서 다시 방향을 바꾼 기병 대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병들이라고 피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피해는 미미했다. 단 한 번의 기습적인 돌격으로 무려 1만에 가깝게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동맹군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쏴!”
우왕좌왕하는 사이, 신유성의 군대는 쇠뇌의 재장전을 마쳤다. 그리고 기병들이 빠져나가자 바로 쏴버렸다.
일제 사격이 아니었으나 이미 가까이 접근했던 수많은 동맹군 병사들의 몸에 화살이 박혔다.
아주 잠깐 사이에 수천이 또 쓰러졌다.
그러자 동맹군 사이에 공포가 퍼졌다.
이대로 돌격한다면 기병들이 또 덮칠 것이 확실했다. 기병 대장은 돌격을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대기했다. 돌격하며 지친 말들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제자리에 멈춰서 기병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도 무리였다.
한 번 사격 후 뒤로 또 물러났던 쇠뇌 본대는 다시 재장전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동맹군은 등을 돌리고 바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배에 타면 살 수 있어!’
명령? 통하지 않았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자 병사들은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했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
애초에 북해도를 털기 위해 온 병사들에게 신념 따윈 없었다.
그러니 불리한 상황이 되자 흩어졌다.
살기 위해.
“돌격!”
잠시 쉬던 기병 대장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말발굽 소리가 대기를 진동케 했다.
동맹군의 공포는 더욱 커졌다. 배를 향해 도망치는 다리가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또 한 차례 기병은 동맹군을 관통했다.
이젠 대놓고 피하니 피해가 전처럼 크지 않았다. 허나, 기병이 관통한 뒤에는 다시 재장전을 마친 쇠뇌 부대의 사격이 이뤄졌다.
“아아아아악!”
“유키!”
비명이 난무했다. 등 뒤에 화살을 맞은 이들은 쓰러졌다. 수많은 이들이 물에 닿기도 전에 쓰러졌다.
지휘관들도 이미 등을 돌려 배에 올라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돌아간다!”
2만의 쇠뇌 부대가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에 지휘관들은 겁을 집어먹고 명령을 내렸다. 죽음의 사신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으로 보여 덜덜 떨었다.
배들이 선착장에서 하나둘 멀어지려 하자 다가가던 병사들이 울부짖었다.
“개새끼들아!”
“나도 데려가!”
“살려줘!”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동맹군 병사들은 절망했다. 배들은 매정하게 병사들을 버렸다.
아예 죽은 사람 취급을 당한 것이었다.
“항복하라!”
기병들이 외치자 도망치려던 병사들은 순순히 항복했다.
이미 배신당한 상황이었다. 살려주겠다는데 반항할 이유 따윈 없었다.
지휘관들과 다수의 무사들이 다시 올라탄 배는 하코다테를 벗어나진 못했다.
“한 척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하코다테에 동맹군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북해도의 함대는 서서히 하코다테 앞바다를 포위했다. 그리고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적들의 배에는 병력이 별로 없다. 그냥 쏘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는 영지민들도 동원되었다.
북해도를 지키고자 하는 영지민들은 투지를 불태우며 쇠뇌를 만지작거렸다.
“허락도 없이 신의 땅을 밟은 놈들이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인다!”
“죽이자!”
북해도의 군에 들어가는 건 이제 매우 어려워졌다. 철저히 조건을 따져서 받았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기회만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이번 단 한 번만 전투에 참여하면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기존의 영지민들은 앞을 다투어 자원했다. 큐슈에서 온 이들은 뒤늦게 서둘러 지원했다.
그렇게 채운 병력이었다.
모두 손에 쇠뇌를 들고 있기에 안정을 느꼈다. 만약 검을 쥐어줬다면 긴장으로 오줌을 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쇠뇌를 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전투방법이었다.
전투력이 떨어지는 일반인도 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더구나 북해도 함대에는 영지민만 탄 것이 아니었다.
“오늘 실력을 확인하겠다.”
철포병들은 배에 탔다.
“모두 무장 확인!”
“무장 확인!”
명령을 복창하며 확인에 들어가는 철포병들. 철포를 확인하고 몸에 주렁주렁 매단 화약주머니를 살폈다.
철포를 쏘기 위해서 화약을 장전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적절하게 양을 나눈 화약 주머니를 여러 개 달고 있는 것이 연사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었다.
동맹군의 함선이 점점 가까워지자 북해도 함대는 전부 방향을 틀더니 반대로 전환했다. 적을 스쳐지나가거나 가로 막는 게 아니었다.
적과 나란히 가기 위한 것이었다.
도망치는 동맹군은 싸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스쳐지나가려 했다.
지나가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쏴!”
허나 스쳐지나가는 배가 가까워지자 철포병들이 사격했다. 영지민들이 탄 배에선 일제히 화살이 날아올랐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동맹군 함선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그와 함께 배는 더욱 느려졌다.
그리고 북해도 함대는 갑판에 사람이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나란히 움직이며 원거리 공격을 고집했다.
결국 동맹군의 함선들은 모두 멈췄다.
“대승입니다!”
“하하하하하!”
신페이는 승전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그리고는 신유성과 함께 했던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신페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병종이 늘어나고 병사들의 훈련이 있을 때 마다 신유성은 장기말처럼 만든 병사들을 세워두고는 놀이를 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놀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신페이를 비롯한 가신들은 열띈 토론을 벌이며 어찌 전투가 흘러갈지 토론했다.
그 결과가 이번 전투를 통해 드러났다.
쇠뇌 부대와 기병들을 활용한 전술은 수없이 토론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정예병들은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고 훈련이 바로 일이었기 때문에 대응 능력이 더욱 발전했다.
지휘관들도 여러 번 훈련을 하며 병사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전투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항복한 병사들은 어찌할까요?”
“그들은 일단 인력으로 쓰죠.”
“전향시키지 않는 겁니까?”
“바로 병사로 편입시킨다면 기존의 병사들이 불만을 품을 겁니다. 모두 선택 받은 정예병이란 자부심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일을 좀 시키다가 조선소나 선원으로 전향시킵시다.”
“그게 가장 좋겠군요.”
한 번의 전투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더구나 5만의 군대가 쓸 보급품을 거의 대부분 피해 없이 손에 넣는 일도 벌어졌다.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신페이는 언제나 했던 것처럼 이를 분배했다. 전리품의 5할을 돈으로 환산해 병사들에게 지급한 것이었다. 또한 사망한 기병들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죽은 말들은 고기가 되어 구워졌고 잔치가 벌어졌다.
당분간 외부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한편, 동맹군을 보낸 안도와 다테 가문은 초조했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았다.
“허허, 대체 무슨 일이.”
“조금 기다리면 소식이 오겠지요.”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아.”
다테 하루무네는 고개를 흔들었다. 승패에 관계없이 전령은 와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전쟁에선 달랐다.
전쟁에서 무소식은 재앙일 수도 있다.
연락이 끊길 정도로 사정이 나쁘단 소리니까.
“그럼 2차를 준비합니까?”
“배를 구하는데 더 힘쓰라고 해.”
배. 바다를 이용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다.
배가 없으면 백만 대군이 있어도 북해도는 칠 수 없다.
새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 결국 사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전 일본의 배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배를 빨리 만든다고 해도 군대가 쓸 배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다테 하루무네의 불안은 적중했다.
난부 하루마사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소식이 없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때가 되었군.”
하루마사의 입술이 비틀렸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안도의 병력이 북해도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일이.”
“그렇습니다.”
“정말 궁금해. 대체 어떻게 했는지. 그쪽에 발붙인 자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바다에서 모두 당했을지도 모르지요. 배가 침몰하면 병사의 숫자는 무의미하니까요.”
“그렇지?”
하루마사와 가신들은 해전을 벌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어쨌거나 좋은 기회야. 적들은 배가 없어. 그렇지?”
“그렇습니다.”
“북해도에 사신을 보낸다. 동맹을 하자고.”
“어디와 붙으실 생각이십니까?”
“안도 가문을 유린해달라고 그래. 우린 다테를 친다.”
하루마사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허나 가신들을 슬쩍 걱정했다.
“다테는 강력합니다.”
“언젠가 한 번 붙어야 할 놈이야. 지금이 아니면 난부는 결국 다테의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승부처라고 생각되는 곳에선 모든 것을 건다. 하루마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놈과의 일전이 겁나는 놈은 나서라.”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다.
“이번 일만 잘 풀린다면 난부는 천하를 노릴 수 있다. 그때 우리가 나누게 될 것을 생각해라.”
공포를 뿌린 뒤에는 희망을 주었다. 난부 가문의 가신들은 하루마사의 뜻을 따라 움직였다.
얼마 뒤, 북해도의 신페이는 이에 호응했다. 그리고 안도 가문과 다테 가문의 영지 해안가는 약탈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마사는 다테 가문의 본거지로 진격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