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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0화 (5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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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서

명나라 북경.

북해도에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열심히 움직인 사신단은 한 달이 조금 넘어가자 북경에 도착했다.

‘크네.’

여행은 지루했다. 말을 탈 수 있었기 때문에 걷는 일은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지루했다. 말 위에서 마냥 주변 풍경만 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

차도 아니고 말을 타고 움직였으나 사신단 행렬에는 걷는 자들도 있으니 속도는 느렸다.

중간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여진족이 털러 오는 일도 없었다. 산적도 만나지 않았다. 호랑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산해관을 지날 때는 조금 볼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또 다시 지루한 여정.

그렇기에 북경 도착이 너무나 반갑게 느껴지는 신유성이었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하네.”

“예, 알겠습니다.”

사신으로 온 대신의 말에 신유성은 고개를 숙여 답했다. 명나라 황제가 직접 불렀다고 해도 조선에서 신유성의 신분은 아직 양반보다는 아래였다.

‘뭘 사가야 잘 사갔다고 소문이 날까?’

대신이 뭐라고 계속 주의를 주고 있었으나 신유성은 한 귀로 흘리며 사갈 것을 떠올렸다.

‘일단 책을 사가야겠지.’

지식은 중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신유성은 경서들은 제외했다.

‘경서야 조선에서 읽은 걸로 충분하지 뭐.’

현재 신유성에겐 경서들보다는 의서들이 더 중요했다.

‘의서는 일단 다 모아야 해. 그리고 다른 기술 서적도 있으면 가져가야지.’

질병을 관리하고 더 오래 장수하기 위해선 의술의 발달은 필수였다.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이 필요했다.

‘세계로 나가면 존재할 수많은 풍토병들!’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이야기였다. 말라리아, 콜레라, 흑사병. 모두 두려웠다. 여기에 신유성이 알지 못하는 병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감안한다면 정말 심각한 이야기였다.

때문에 신유성은 과감하게 의학에 큰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금성.

서계와 엄숭은 또 은근히 대립했다. 서계는 엄숭을 실각시킬 기회를 노렸고 엄숭은 서계를 죽일 기회를 노렸다.

서계 이외에도 말 안 듣는 녀석들은 참 많았다.

‘폐하도 참.’

엄숭은 눈치가 빨랐다. 그렇기에 간신으로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치워버리기도 어렵고.’

가정제가 엄숭을 신임하는 것 같지만 견제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예로 충신이라 할 법한 신인들을 키워주고 있었다.

적당한 견제를 통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었다.

‘뭐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엄숭은 눈을 빛내며 부하의 보고를 들었다. 그러다 신유성이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눈을 빛냈다.

‘오호?’

신유성. 한 때 서계와 대립하느라 편을 들어주었던 조선의 신동.

때마침 도착하니 엄숭은 호기심을 느끼며 신유성을 찾았다. 어차피 황제와 만나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했으니 엄숭이 먼저 만나보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왔는가?”

“예, 대인.”

“말을 잘 하는 군. 어디서 배웠는가?”

“소생이 역관의 자식이라 주변 어른들게 배웠습니다.”

“그런가?”

신분이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에도 엄숭은 딱히 빈정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이렇게 늦게 왔는가?”

“왜구들과의 싸움 때문에 늦었습니다.”

이미 보고한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본 엄숭이었다.

“그래도 폐하께서 부르시면 바로 와야 할 것 아닌가?”

“폐하의 강토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험.”

‘요 녀석은 충신인가? 하지만 아닌 거 같은데.’

일부러 흔든 이유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헌데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그것도 아직 어린 소년이.

‘보통 녀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엄숭은 신유성을 얕보지 않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황제의 관심을 살 정도로 활약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요리는 좋아하는가?”

조금 전 압박하던 것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엄숭은 다른 말을 꺼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아예 없던 일로 치는 미꾸라지 같은 행동에 신유성도 엄숭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적이 되면 피곤한 사람.’

적이 되어도 우직하게 정공을 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능력으로 대결하면 그만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 항상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기억해 두겠다.’

소인배의 치졸함을 잊고 있다가는 뒤통수를 맞는다.

‘북경 내에도 첩자를 만들면 좋겠는데.’

하지만 쉽지 않은 일.

북경에는 연줄이 없는 신유성이었다.

엄숭은 신유성에게 북경오리를 대접했다. 많은 미식가들이 좋아했고 황제의 입맛도 사로잡았던 요리가 바로 북경오리였다.

북경오리는 조리하는 방법이 매우 복잡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흔히 만들어먹을 수 없는 요리. 하지만 엄숭은 집에서 요리를 시켰다.

그만큼 잘 산다는 의미였다.

‘맛있네.’

껍질이 무척이나 바삭바삭했다. 오리의 향을 느끼며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이번에는 요리 자랑하기 힘들겠네.’

일본에서는 쉽게 먹혀든 방법이지만 명나라에서는 써먹기 힘든 것을 금방 깨달았다. 물론 서양 요리를 내놓는다면 관심을 살 순 있다.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거부들에게는 먹힐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마 나를 더 놀라게 만들겠지. 역시 산삼을 구한 게 정답이었어.’

신유성은 짐 속에 고이 모셔둔 산삼 두 뿌리를 떠올렸다.

자금성.

가정제는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다.

“하앙! 아으으으응!”

엉덩이를 내밀고 엎드린 궁녀는 연신 신음을 흘렸다. 황홀해서? 아니었다. 가정제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얼른 하고 내려가지.’

피곤했다. 가정제는 정말 발정 난 토끼처럼 마구잡이였다. 정사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사 이후에는 체액을 가져다가 약을 만들겠다고 난리를 쳤다.

수치스럽고 피곤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궁녀들이 가정제를 죽이려고 덤비기까지 했으나 실패했다. 어떤 궁녀들은 슬슬 가정제를 피하기도 했다.

황제의 자식을 낳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긴 했다. 하지만 가정제의 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정제의 씨는 약하다고 소문이 났다.

‘어휴. 애도 안 설 텐데.’

여자를 많이 취하지만 자식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나마 태어났던 아이들도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에 태자가 죽고 더 심해졌어.’

가정제의 둘째 아들인 장경태자 주재예가 죽은 이후 가정제는 더욱 여자에 집착했다.

황제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모두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어의가 돌본다고 해도 요절하는 아이들은 얼마든지 생긴다. 그러니 후사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다.

정력은 황제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정제는 이 부분의 평가가 굉장히 나빴다. 이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가정제의 전임 황제인 정덕제가 자식이 없어 결국 사촌인 가정제가 황제가 되었다.

방계라는 것은 곧 정통성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자식이라도 많이 낳아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자식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무리 황제가 똑똑해도 자식이 없으면 신하들은 다음 황제가 될 만한 인물들에게 줄을 대기 시작한다.

권력의 누수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이 뒤를 잇게 한다면 이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태자를 선택하는 것은 황제의 권리였다. 이것을 쥐고 있는 한 신하들은 황제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또한 후계자들로 인해 파벌이 갈려도 결국 황제가 모든 것을 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신하들은 황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식이 없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척이 된 신하들도 힘을 쓰기 힘들다. 그러니 황제의 편이 그리 강하지 않게 된다. 기어오르는 신하들을 막기 어려지는 것이었다.

엄숭이란 간신을 키워서 휘두르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내 아이를 낳아라!”

“폐하아아아아앙!”

가정제는 고함을 지르며 사정했다. 몸을 부르르 떨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정사 끝에 찾아오는 나른함.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환관들이 다가와 궁녀에게 옷을 입히고는 밖으로 내보냈다.

임인궁변 이후 잘 때 궁녀를 곁에 두지 않게 된 가정제였다.

한숨 자고 일어난 가정제는 단약을 먹었다.

“음, 좋군.”

단약에는 마약 성분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 당연히 기분이 몽롱하고 좋아졌다. 두통이 사라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단약은 잘 된 것 같구나.”

“황공하옵니다.”

“상을 내리도록하지.”

황제의 한 마디는 언제나 지켜졌다. 단약을 만드는 도사는 입이 귀에 걸렸다.

“오늘 할 일은?”

“조선의 사신들이 도착했사옵니다.”

“사신들? 올 때가 아닐 텐데?”

“일전에 보시고자 한 신유성이란 아이를 대령했사옵니다.”

“일전에? 그랬나?”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 가정제는 아예 까먹고 있었다. 환관이 차근차근 설명하자 그제야 기억이 날 정도였다.

“아, 그래. 만나야지. 궁으로 들라하라!”

대기하고 있던 신유성은 생각보다 빨리 가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허허,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사신단을 이끄는 대신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황제를 만나는 일은 지극히 복잡했다. 사신들도 인사차 와서 황제 얼굴 보려면 대기타면서 기다리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신유성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불렀다.

이것이 조선의 사신들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명나라 황제가 이 녀석을 좋게 본 건가?’

그렇지 않고는 서둘러 부를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신유성은 황궁으로 들어갔다.

“검은 안 됩니다.”

“호위도 안 됩니다.”

황궁에서 무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울러 호위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아, 벌거벗겨진 기분이네.’

무장도 없고 호위로 데려온 차돌도 밖에 남겨두고 황궁에 들어서니 신유성은 조금 불안했다.

‘뭐가 이렇게 커?’

더구나 자금성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안내하는 환관을 따라 걷다보면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자금성의 웅장함에서 황실의 힘이 느껴졌다.

‘나중에 나도 이런 거 하나 지을까?’

못할 것 없었다. 돈만 많으면 지을 수 있었다.

아니, 지어야만 했다.

강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뽐내기 위해서라도.

가장 발전했으며 가장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의 욕망이 신유성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욕망을 휘두른다.’

그것이 바로 황제였다.

신유성을 본 가정제는 감탄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

키가 성인과 같았다. 기골이 장대했다. 신동이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문무겸전의 인재였다.

‘저런 놈이 내 아들이었으면.’

이 순간만큼은 신겸혁이 살짝 부러워지는 가정제였다.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인사를 마친 신유성은 선물을 내밀었다.

“무엇인가?”

“산삼이라는 영약이옵니다.”

“뭣이?”

가정제의 궁둥이가 들썩였다.

산삼이란 것은 갖고 싶다고 마냥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황궁에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계속 약으로 만들고 먹어치워서 사실 조금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신유성이 산삼을 가져왔다니 기분이 들썩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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