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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1화 (5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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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서

불로장생.

고대 문명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권력자들이 원했던 능력. 하지만 가정제는 그냥 원하는 것을 넘어선 집착을 보였다.

엽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기행을 보이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력 문제였다.

황제가 된 이후에도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방계 출신이기에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가정제가 느끼는 정신적인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여자들을 안아도 생기지 않는 아이.

가정제는 점점 거칠어졌다.

그리고 길을 찾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길을.

황제의 힘을 그대로 유지하는 길을.

그렇게 해서 시도한 것이 바로 불로장생의 단약이었다. 꽤나 의심스러운 일이었으나 가정제는 모험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했다.

가정제는 생각했다.

‘나에게 좀 더 강한 힘이 있다면! 불로장생의 힘이 더 강해진다면!’

우연인지 모르지만 단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아이들이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들은 다들 병약했다.

아이들이 허약할수록 가정제의 집착은 점점 더 강해져갔다.

단약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두통이 시작되었지만 가정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약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여자들도 힘을 얻는다면 두 배!’

엽기적인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약을 억지로 먹이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먹으니 약재는 빠르게 소모되었다.

보통 부자라면 집안이 거덜 나도 진즉에 거덜 났겠지만 가정제는 명나라의 황제였다.

보통 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든지 단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몇 가지 약재는 구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구할 순 없었다.

산삼이 바로 대표적으로 구하기 힘든 약재였다.

“하하하하! 기특하구나.”

웃음이 나왔다. 산삼이 들어간 단약을 먹으면 효과가 더 강한 단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가져오지 못했지만 인삼 또한 가져왔사옵니다. 받아주소서.”

“그래! 정성이 갸륵하구나.”

가정제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신유성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변함없었으나 호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이미 폐하를 알현했사오니 원하는 것을 이뤘나이다.”

“기특한지고!”

원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니 입을 싹 씻을 수 있다. 허나, 가정제는 명나라의 황제. 자신에게 납작 엎드려 아부를 하는 신유성이 좋게만 보일 뿐이었다.

‘엄숭을 만났었다고 하니 얘기를 들어봐야겠군.’

“그럼 물러가 기다리도록 하라!”

대기령이 떨어졌다. 신유성은 자금성을 나와 조선의 사신들이 머무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래 무슨 일 있었는가?”

“별다른 말씀은 안 계셨습니다. 단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별 다른 얘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사신들은 신유성을 곧바로 외면했다.

‘그냥 신기하니까 한 번 보자고 한 모양이군. 아니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거나.’

가정제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신들은 별일 없을 거라 여겼다.

그냥 미친 황제의 변덕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떻던가?”

“폐하의 강토를 지키는 일을 하느라 늦었다고 했사옵니다.”

엄숭은 대답에 가정제는 만족했다. 충신이라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 모습은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좋은 인재야. 조선에는 아까워.’

가정제의 눈이 빛났다.

“조선에는 아까운 인재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엄숭은 섣불리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황제의 의중이 가장 중요했다. 일단 눈치를 살피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내 눈치 볼 것 없다. 그를 어찌하면 조선과 갈라지게 할 수 있는지 말하라.”

“직접 관직을 내려주시면 조선이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러하옵니다.”

“뭐가 좋을까?”

“높은 것이 좋지 않을까 하옵니다.”

“높은 거?”

“낮으면 조선에서 힘을 쓰기 어려울 테니 높은 관직을 내려 조선 조정의 사람들이 어렵게 대하도록 만드는 것이옵니다.”

“좋군.”

하지만 가정제는 바로 관직을 내리지 않고 서계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똑같은 것을 물었다. 그러자 서계는 간단히 답했다.

“그냥 놔두어도 갈라질 것이옵니다.”

“어찌 그런가?”

“가진 능력이 뛰어난 인재이옵니다. 어린 나이에 왜로 건너가 홀로 일어섰다는 것은 그만한 야심이 있다는 증거. 가만히 놔두어도 알아서 조선의 품을 벗어날 것이옵니다.”

“허나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조선의 왕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조선과는 멀어지게 되어있사옵니다.”

“왕실이라.......”

갑자기 두통이 지끈거렸다.

“물러가라.”

가정제는 대화를 나누다 말고 단약을 먹었다. 그리고 궁녀를 품었다.

“아흥! 하으으응!”

궁녀는 연신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뒤에선 철썩철썩 떡치는 소리가 울렸다. 가정제는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숨을 몰아쉬었다.

“흐읍!”

이윽고 사정을 한 가정제는 누워버렸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나른함을 즐겼다.

한숨 자고 일어난 가정제는 단약 조제에 대한 것을 직접 살펴보았다. 그리고 산삼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신유성을 떠올렸다.

‘그래, 그 놈 생각을 했었지.’

두통 때문에 서계와 대화를 중단했지만 신유성에 대한 것은 결정해야만 했다.

‘야심찬 놈이라.’

서계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게 야심찬 놈이라면 오랑캐와 싸우게 하면 되겠군.’

물론 오랑캐들을 모두 물리쳐 거대한 제국이 된다면 문제가 심하다. 하지만 그럴 조짐이 보인다면 다시 이간계를 펼쳐 신유성을 죽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쳐들어왔던 놈들을 상대하는 것.’

북로남왜.

알탄 칸이 북경까지 쳐들어왔던 것을 떠올린 가정제는 신유성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북방 오랑캐 놈들과 싸우라고 하면 견제는 되겠지.’

둘이 싸우는 사이에 명이 더욱 강해지면 된다. 이것이 가정제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바로 위에 둔다면.......’

필요할 땐 조선과 이간질을 시켜 조선이 신유성을 치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다.

가정제는 엄숭과 서계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감탄하며 가정제를 칭송했다. 서계도 눈치가 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가정제가 말한 방법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이놈만 죽인다면 만사가 다 해결되는데.’

엄숭이 지방에서 빼먹는 돈만 도로 채워놔도 명나라 군대는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간신들이 돈을 자꾸 빼먹으니 군대가 약해졌다. 그 결과 북경이 포위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면 역시 가정제였다.

하지만 황제를 탓할 순 없는 일.

결국 원망을 모두 엄숭에게 쏟을 뿐이었다.

‘넌 언젠가 내가 잡는다.’

서계를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가정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부마로 삼도록 하지.”

순간 서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부마라 하시오면 어떤 분을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영안공주와 맺어줄까 한다.”

가정제의 대답에 서계는 물론 엄숭까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황제가 입에서 꺼낸 말은 이뤄져야 한다.

물론 강력하게 충언을 올려 주워 담게 하거나 물러나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얘기가 통하는 황제일 때 얘기였다.

가정제는 반미치광이였다. 한 번 마음먹은 것은 해야만 했다.

‘막을 수 없다. 그러면 내쳐진다.’

서계는 머리를 굴렸다. 신유성과 주녹정이 혼인을 할 경우 명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철저히 계산했다. 만약 손해라 생각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유성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보가 없으니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좀 더 방해를 해야겠군.’

서계는 조용히 물러나며 방법을 생각했다.

북경의 거리.

신유성은 차돌을 대동하고 약재상과 의원을 찾아다녔다.

“책 좀 파시죠?”

“왜?”

“의술을 공부하고 싶어서요.”

“그 나이에?”

“저 아직 어립니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신유성이 어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놀랐다. 그리고 웃으면서 의서를 팔아주었다. 하지만 의서들은 아무리 모아도 살 것이 많았다.

더구나 신유성은 만약 틀린 내용이 적혀있을까 싶어 같은 책을 최소 3권을 샀다.

이 때문에 소문이 났다.

웬 거부의 자식이 의원이 되겠다고 돈을 뿌리고 다닌다고.

이 시대에 책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돈이 없는 이들은 책을 사기보다는 잠시 빌려서 필사했다.

그러니 신유성이 책을 사러 다니는 것이 금방 소문났다.

‘다른 책도 사야하는데.’

의서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살 책은 많았다. 산학부터 여러 분야의 전문 서적들을 몽땅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서와 산학은 살 수 있어도 다른 기술서들은 구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며 팔지 않는 것이었다.

‘이거 일이 꼬이네.’

좀 더 많은 책을 구하고 싶었는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발전 속도가 더뎌진다.

‘아무래도 유럽에 가봐야 하나?’

명나라에서 구하기 힘들다면 다른 나라로 가봐야 했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당장 갈 순 없었다.

“어휴.......”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객잔으로 돌아갔다. 조선의 사신들은 보이지 않았다. 북경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사신들은 나름 필사적으로 뭔가 얻으려 했다. 그러니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이봐!”

주문을 하기 위해 점소이를 불렀다.

“오늘은 뭐가 맛있지?”

“헤헤, 오늘은 남쪽의 향항에서 들여온 절인 돼지고기로 넣어 볶은 면과 만두가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가져와.”

동전을 던져주자 점소이는 고개를 공손히 숙이고는 잽싸게 움직였다. 신유성의 시중을 들다보면 수고비를 던져주니 황제처럼 모시려고 노력했다.

잠시 뒤, 음식이 나오자 신유성은 피식 웃었다.

‘이건 햄이잖아?’

맛이 딱 햄이었다.

‘향항, 홍콩에서 들어온 거라면 남만인들이 판 거겠네.’

향항은 남쪽에 있는 항구였다. 하지만 명나라 안의 모든 사치품은 결국 북경으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음식도 다르지 않았다.

황실은 돈이 많으니 진귀한 것을 황실에 팔기 위해 전국의 상인들이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권력이 있는 곳에 물류가 집중되고 돈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황제가 아니더라도 황제를 위해 일하는 대신들 또한 고급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신기한 것을 찾기도 한다.

‘햄이라.......’

문든 신유성은 슈니첼이 생각났다. 포크 커틀릿 혹은 돈까스라고 불리는 음식이었다.

‘어디보자. 그러고 보니 여긴 필요한 건 다 있네.’

객잔에서 요리를 자주 먹다보니 요리 재료들에 대한 것도 금방 파악했다.

조선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밀가루도 북경에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일단 빵을 만들어볼까?’

슈니첼을 만들기 위해선 빵가루가 필요했다.

“잠시 주방 좀 빌려도 되나?”

“네?”

갑자기 요리를 한다니 의아해하던 점소이는 이내 허락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잠시 뒤, 숙수가 나와 물었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고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제가 만들 수 있습니다만.”

“요리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제 취미입니다.”

“아, 그렇군요.”

주방을 빌린 신유성은 빵을 만들 수 있었다. 고급 객잔이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었다.

“오, 남만인들이 먹는다는 거로군요.”

이어서 빵가루를 갈아서 결국 슈니첼을 만들어냈다. 기름을 끓여 튀겨낸 슈니첼은 바삭바삭하게 익었다. 숙수는 신유성이 요리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음. 괜찮군요.”

직접 만들어본 슈니첼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소스가 없어서 느끼한 맛이 많이 강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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