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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2화 (5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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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서

‘대체 뭘 만든 걸까?’

멀리서 한 남자가 신유성이 하는 행동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남자의 이름은 장거정, 서계의 밑에 있는 사람이었다. 객잔을 찾은 것은 순전히 서계의 명령 때문이었다. 신유성에 대해 좀 더 알아보라는.

‘좋은 기회군.’

장거정은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저기, 그게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슈니첼이라고 합니다.”

“슈니첼? 타국 음식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신유성은 자연스럽게 장거정을 대했다.

‘입은 옷이 꽤 고급스럽네.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누굴까?’

호기심 때문이었다. 정말 먹고 싶은 거였다면 그저 점소이를 불러 물어봐도 될 일. 하지만 장거정은 일부러 접근했다.

‘나한테 용건이 있겠지? 동창일까?’

경우의 수는 많았다. 그래서 신유성은 응해주었다. 상대에 대해 모르면 대비하는 것이 어려워지니 일단 꼬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음.......”

슈니첼을 맛 본 장거정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기름이 많아 느끼했던 탓.

“여기선 이런 것을 안 팔 텐데. 어찌 된 건지.”

“아, 제가 만들었습니다. 들은 얘기가 있어서 한 번 먹어보고 싶어서요.”

“얘기를 좀 더 들려주겠나?”

“네, 전에 제가 남만상인과 만났을 때 들었던 겁니다.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돼지고기 요리라고요.”

“그런가?”

“북경은 참 대단한 곳입니다. 없는 것이 없으니까요.”

돈만 있으면 살아있는 생선도 구할 수 있었다. 통에 물을 채워 물고기를 살려서 운반하면 되니까. 이렇게 운반한 물고기는 엄청난 고가에 거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북경의 고관대작들이 지불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예 사람을 보내 구해오게 하면 여행 경비만 지급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긴 하지. 그런데 궁금하군. 자네 같은 젊은이가 북경에는 무슨 일인가?”

“황상의 부르심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호오? 그거 정말 대단하군.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네, 사실은 전 조선에서 왔습니다. 왜구를 토벌하는 공을 세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한 일이군.”

신유성은 속이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속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정보들은 말하지 않았다. 북해도를 점령한 일 같은 것은 그냥 말을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조선을 비롯한 명에서는 신유성이 대마도와 연관이 있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대마도의 힘을 빌려 왜구를 토벌해 더욱 강하게 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까?”

“나? 평범한 학사라네.”

“그러신가요? 그럼 책을 아주 많이 가지고 계시겠군요.”

신유성의 눈이 빛났다. 장거정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 그런데 찾고 있는 책이라도 있나?”

“의서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외에 산학도 그렇고 다른 책들도 구하려 하는데 쉽지 않군요.”

“그것들을 다 뭐하려고 찾는 건가?”

“의서야 당연히 죽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죠.”

신유성의 말에 장거정은 슬적 트집을 잡기로 했다.

“자네는 죽이는 사람 아니었나? 살리는 것을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나?”

“그러니까 살리려는 거지요.”

“응?”

대답 대신 슈니첼에 다른 요리의 양념을 얹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침묵 속에서 신유성은 장거정을 관찰했고 장거정 또한 마찬가지로 신유성을 관찰했다.

“나쁜 놈을 죽인다고 착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게을리 해서야 되겠습니까?”

“나쁜 놈이라. 그들이 처음부터 나쁘게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나? 개과천선을 시키면 될 일을.”

“그건 아니죠.”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개과천선했다고 봐주면 그 놈들에게 죽은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죽여야죠. 일벌백계의 의미로. 그래야 왜구가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덜 입으니까요.”

“개과천선을 시키는 것이 더 훌륭하지 않나?”

장거정은 신유성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계속 꼬투리를 잡았다. 신유성의 바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남을 해쳤다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지요. 약탈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약탈을 하지 않아도 될 나라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신유성은 명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가난을 따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날 어떻게 보게 할까?’

장거정이 자신을 파악하려는 것을 신유성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당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제가 나라를 만들다니요? 그게 또 무슨 말이십니까? 대명이 이미 있는데 나라를 만들라는 것은 설마 저더러 도의를 저버리고 모반을 일으키라는 이야기십니까?”

날카롭게 따지자 장거정은 허둥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지. 오랑캐들이 사는 땅에서 그들을 계도하는 나라를 세우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들이 도의를 몰라서 약탈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나름대로 다 법도가 있더군요.”

신유성은 속으로 웃었다.

‘니들이 못살게 하니까 그렇게 된 거지.’

명나라가 계속 주변 국가들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으니 부정적인 방향으로 일이 터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성장해 명나라를 위협하는 존재로 크게 되니 명나라의 입장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 위로 올라서려고 하는 짓 아닌가?’

신유성 또한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명나라의 행동을 비난할 입장은 아니었다. 아니, 할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써먹어야 할 때가 되면 똑같이 할 테니까.

어쨌거나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잘 모르는 장거정에게 말한다고 해서 얻을 것이 없었다.

“그럼 그들을 계도하면 되지 않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면 되는 문제네.”

“그러나 그 사이에 죽어갈 사람들도 생각해야죠. 모든 문제는 시간을 두고 마주하면 언젠가는 해결되겠죠. 하지만 당장 죽어나가는 사람들에게 할 소린 아니죠.”

“그도 그렇군.”

장거정은 신유성의 성향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녀석이군. 세력은 크게 일으킬 순 있겠지만 멀리보지 않아.’

“그렇군. 그렇다면 나도 돕지 않을 수 없겠네. 구하는 책들에 대해 말해보시게. 내 힘이 닿는 데까지 구해주지.”

“참말이십니까?”

장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후 신유성에게 건네준 책은 전부 조선이나 다른 나라로도 흘러들어갔던 책들뿐이었다. 신간은 없었다.

신유성의 이야기는 서계는 물론 엄숭 그리고 동창을 통해 가정제에게까지 전해졌다.

“딱 좋군.”

이야기를 들은 가정제는 그리 생각했다. 날카로운 보검으로 쓰기 딱 좋아 보였다. 스스로 일어선다 해도 멀리 보지 못하니 슬쩍 흔들기만 해도 무너질 것으로 보였다.

서계도 엄숭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결국 신유성은 다시 불려가 혼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마로 삼겠다는 이야기.

신유성으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황제의 진노를 사겠지.’

살아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었다. 북경을 벗어나 산해관으로 가기 전에 사고가 터질 수도 있었다. 아니면 산해관을 지나는 순간 여진을 이용해 털어버릴 수도 있었다.

성군이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제는 들리는 소문만 해도 미치광이였다. 자신을 거스르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성격이었다.

‘일단 응하는 척하자.’

바로 식을 올리는 것도 아니니 준비할 것이 많아질 터.

신유성은 일단 부모님의 허락을 구해달라 했다. 어리니 혼사 문제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고. 그리고 동시에 북해도로 편지를 썼다. 나츠에게 전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황궁 깊은 곳.

여자들만 사는 금남의 구역이라고 하지만 남자가 정말 없는 건 아니다. 환관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환관들은 남자라고 치지 않으니 금남의 구역이라는 말도 완전히 틀리지 않은 곳.

그런 아주 은밀한 여자들의 세계 구석에 자리 잡은 소녀가 있었다.

“내가 혼인을?”

“네, 그러하옵니다.”

“상대는?”

“조선에서 온 신동이라 했습니다.”

“그런가?”

영안공주 주녹정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목석같은 얼굴이었다.얘기를 꺼낸 환관은 조용히 돌아섰다. 할 일을 다 했으니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환관이 나가고 나자 주녹정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드디어 기회.’

주먹을 꼭 쥐었다.

황궁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녹정에게 황궁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지옥이었다.

‘조선이라고? 더 좋아.’

명나라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기뻐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주녹정은 작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공주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단비 조씨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단비 조씨는 임인궁변에 연루되어 주살 당했다. 조씨가 죽은 이후에는 궁녀나 환관들도 주녹정에게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호해줄 조씨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황자였다면 그래도 황위 계승권이 있으니 어느 정도 대우해주겠지만 주녹정은 공주.

공주는 언젠가 황궁 밖으로 나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엄청난 권력자와 혼인을 하게 되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황궁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정말 원한이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 궁녀나 환관 전체에 대한 복수는 어려웠다.

그러니 적당히 예의를 차리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었다. 험담도 하지 않고 괴롭히지도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주녹정에게는 더 괴로웠다.

한 때는 자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섰다. 다들 어쩔 수 없다고.

머리로는 납득을 하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뒤에는 모든 것이 가정제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죄 없는 어머니를.’

정말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주녹정을 보호해주던 최고의 보호자를 죽이게 된 원인은 결국 가정제에게 있었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주녹정은 원한을 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슬픔은 견디지 못해 죽을 것만 같았다.

증오가 주녹정에게 살아갈 힘을 안겨주었다.

고독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다.

‘언젠가 꼭 복수할 거야.’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시도라 할지라도. 주녹정은 그리 하리라 생각했다.

‘부디 낭군께서 명나라를 싫어하게 되시길.’

주녹정은 빌고 또 빌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눈빛만이 광기를 품고 웃을 뿐이었다.

신유성이 부마라니!

조선의 사신들은 경악했다. 아울러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신유성에게 주어진 관직이었다.

정1품 도독. 방해어왜총병관. 그리고 곧 있으면 추가될 부마도위.

원정군 총사령관 직위를 내린 것이었다. 명목은 왜구를 토벌하란 것.

너무나 거창한 이야기였다.

주어진 것은 명나라 사선 열 척.

병사는 총병관으로 임명된 신유성이 직접 고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조선에서 내린 왜구토벌허가령을 본 딴 것.

사선 10척은 신유성이 가져온 인삼과 산삼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원래는 조선처럼 돈을 주고 사게 하려고 했지만 서계가 나서서 인삼과 산삼에 대한 보상을 배로 하자고 한 것.

여기에 엄숭이 찬성했고 가정제는 허락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이신가?”

사신들은 이젠 신유성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신유성이 정1품 도독으로 임명된 것은 부마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원래 있는 좌우 도독은 그대로 두었다. 신유성에게는 직함만 있을 뿐이었다.

도독과 동급으로 두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한 것.

가정제가 이런 직위를 내린 이유는 단순했다.

조선에서 함부로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실권은 주지 않고 관직만 주었다.

즉, 명나라에서는 그저 부마도위일 뿐.

허나, 이젠 조선의 임금조차 신유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순식간에 벼락출세를 한 것이다.

“황상께서 저를 어여삐 봐주신 모양이십니다.”

“그런가?”

사신들은 생각했다. 신유성이 예쁘게 보인 것이라고 해봐야 왜구를 토벌한 것 정도. 예전에는 돈을 쏟아 부은 짓이 미련하다 생각했었는데 신유성이 출세한 것을 보니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쩌면 우리 애도?’

물론 같은 방법을 쓴다고 해도 부마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게 이득 앞에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면, 신유성은 투덜거렸다.

‘젠장. 이러면 귀찮아지는데?’

명나라 관직이 좋긴 좋다. 하지만 관직과 함께 딸려올 감시의 시선을 생각하면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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