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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3화 (5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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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서

신겸혁은 화들짝 놀랐다.

“부마라니요?”

명나라에 간 것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덜컥 황제의 사외, 부마도위가 되게 생겼다. 신겸혁은 감히 거절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이건 말이 의중을 물어보는 거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황제는 지고한 존재다. 그런 황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죽고 싶다는 소리나 똑같다.

의중을 물어보고 어쩌고 하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진행해버리면 자칫 오점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는 소문이 좋지 않은 가정제였다.

거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겸혁은 서둘러 명나라로 떠났다. 왜관의 일이 있었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떠났다고 합니다.”

“허허.”

신겸혁이 명나라로 갔다는 소리에 윤원형은 허탈하게 웃었다.

‘죽 쒀서 개 준다더니.’

그 동안 신유성에게 받아먹은 게 참 많았다. 돌아오기만 하면 왕실의 일원으로 만들 준비도 완벽하게 갖추었다. 문정왕후도 허락한 일.

그런데 가정제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도 모자라 빼앗아갔다.

‘내 돈!’

돈줄을 빼앗아갔다. 등골을 쪽쪽 빨 기회를 놓쳤다.

신유성이 가정제의 사위가 되면서 받은 관직은 조선의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이제 신유성은 조선 조정의 허락이 없어도 마음대로 토벌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선에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명령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방해어왜총병관.

직함 하나만으로도 조정은 신유성에게 협조해야만 했다. 하지 않는다면? 명나라에서 신유성에게 토벌을 명할 수 있었다.

명분은 만들면 된다. 대충 왜와 내통하니 협조를 안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끝이다.

그러니 이제부턴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뜯기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신유성이 협조를 요청하면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찌 예우해야 하는 겁니까?”

“고작 역관의 자식이었는데. 거 참.”

벼락출세. 딱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에겐 왜구를 토벌하고 명나라 사람들을 살려 돌려보냈다는 공적이 있으니 폄하만 할 순 없었다.

“정1품이라니.”

조선 조정의 대신들은 아무도 신유성보다 높다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1품 도독.

황제를 대신해 사신만 와도 어렵사리 달래야 한다. 잔치도 벌였다. 그런데 정1품 도독께서 나오니 어찌 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이 관직이 조선의 임금과 맞먹는다는 것이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조선 임금은 명나라에서는 정1품 대우를 해주었다. 그리고 신유성이 받은 품계도 정1품. 실속이 없는 관직이라고 해도 품계는 품계다.

신유성은 이제 임금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한 나라에 임금이 둘이나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가정제와 명나라 조정에서 노린 점이었다.

괜히 신유성에게 높은 품계를 준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품계를 준 것에 대한 반발을 누르기 위해 부마도위로 삼은 것이었다.

부마도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위직. 그러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 해도 누가 뭐라고 하긴 어려웠다. 이제 겨우 13살이란 나이가 가장 걸림돌이었으나 이 부분은 신유성의 공적이 상쇄해주었기에 나이가 문제가 되는 일도 없었다.

“허허, 그런데 그 아비 되는 자를 또 어찌 해야 합니까?”

임금과 맞먹는 품계를 지닌 자가 조선의 백성이었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더구나 조선에서의 직위는 말단인 부사맹에 불과했다. 그 아버지는 왜관에서 일하는 역관이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집어졌다고 해도 좋을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허허.”

“허허허허.”

모여 있던 대신들은 모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신유성이 정1품이라 해서 신겸혁이 벼슬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어느 누가 신겸혁을 무시할 수 있을까?

신겸혁을 무시했다가 신유성이 분노를 표출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말 답 안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차라리 죽일까?’

몇몇 대신들은 생각했다. 신유성만 사라지면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누가? 어떻게?

속으로 생각은 해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죽여야 하나?’

윤원형은 고민하다가 살심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그 놈이 왕이 되는 거 아니야?’

신유성이 정1품이었다. 조선 왕실을 뒤집어버리고 왕을 자처한다면? 명나라에서 수락하면 진짜 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으음.......’

윤원형은 고민에 빠졌다. 돈을 더 못 받는 것도 아쉽고 더 나아가 명종의 안위도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츠에게.’

신유성의 편지는 은밀히 신유성을 따라왔던 닌자를 통해 북해도로 전해졌다. 편지를 받은 나츠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미안하지만 혼인을 조금 더 미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절대 널 버린 것이 아니다. 널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보고 싶다. 내가 명의 공주와 혼인을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넌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기쁘게 해줘도 부족한 데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믿고 기다려준다면 언젠가 널 꼭 데려가겠다.’

“흑.”

눈물이 편지 위로 떨어졌다. 먹물로 쓴 글씨가 번지자 나츠는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려 했다. 그러나 한 번 번진 글씨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흐윽.”

그것이 더 서러웠다. 님의 편지를 망친 것도, 어쩌면 함께 하지 못하게 될 운명도.

“나츠님?”

“매화야. 차라리 네가 부럽구나. 나도 노비나 될까? 유성님의 노비가 되면 이렇게 아프지 않겠지?”

“무슨 일인가요?”

나츠는 울먹이며 신유성이 명나라의 부마가 되었음을 설명했다. 그제야 얘기를 듣던 매화는 슬픈 눈으로 나츠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그저 조용히 곁을 지켰다.

신유성이 부마도위가 된다는 것은 신페이에게도 알려졌다. 하지만 신페이를 비롯한 가신들에게 흔들림이란 없었다.

“역시!”

나츠와 달리 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 명나라 부마도위라면 엄청난 것이었다. 더불어 이제 명과의 교역은 자신들이 담당하게 될 거란 기대도 있었다.

“흥분은 이릅니다. 주군께서는 겨우 부마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페이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신유성은 나라를 만든다고 했으니 그것이 지켜진다면 새로운 왕국이 탄생하는 것.

“약속의 날이 올 때까지 주군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신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그럼 계속 회의를 하죠.”

가신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상태에서도 신페이의 말을 따라 회의를 진행했다.

“안도와 다테 가문의 해안에는 이제 마을이 없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해군 전력에 공백이 생긴 안도와 다테 가문은 북해도에 의해 약탈당했다.

배가 없으니 막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다테 가문은 난부 하루마사 때문에 전쟁 중이었다.

북해도 해군이 싹 털어가는 데도 어떻게 막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더구나 언제 본성으로 쳐들어올지 몰라 전력을 둘로 나누어 방어해야만 했다.

안도 가문에서는 난부 가문을 치려했으나 역시 북해도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다.

“병력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미미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이 크게 활약했습니다.”

더구나 약탈에 나선 것은 배신당했던 동맹군 병사들이었다.

안도와 다테 가문의 지휘관들이 전투에서 병사들을 버리고 배를 뺀 것이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약탈을 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두 이를 갈면서 충실히 길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약탈은 무척이나 수월했다.

보답으로 새롭게 북해도의 병사로 거듭난 이들의 가족을 몰래 북해도로 데려와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충성심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은 물론 북해도를 ‘신의 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무리하게 영지를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젠 난부 가문이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린 우리의 길을 가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보 통제를 확실히 해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북해도의 가신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비상의 날개를 펼칠 그 날을 위해.

신유성의 소식은 대마도에도 전해졌다. 하루야스는 요시시게를 불러다놓고 질문을 던졌다.

“넌 어떻게 하고 싶으냐?”

“혈연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변함은 없습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 편이 낫지. 사이카이도를 온전히 흡수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 나츠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둔다.”

하루야스는 나츠를 도로 불러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럼?”

“직접 내치거나 홀대를 한다면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굳이 부를 필요는 없지. 언젠가 맺어질지도 모르고. 그리고 신유성은 아직 젊다.”

새파랗게 젊었다. 이제 13살이니까.

나이를 생각한 하루야스는 소름이 돋았다. 요시시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엄청난 일이지.’

역관의 자식에서 명나라의 부마도위까지. 그야말로 일직선으로 급상승한 것이었다. 물론 성공하기까지 노력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했었다.

“크게 될 사람이다. 지나친 욕심은 해로우니 삼가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하루야스는 요시시게의 능력을 알기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길 원했다. 무엇보다 현재 이뤄진 모든 것이 신유성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벌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남만인과의 교역이 힘든 것은 물론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도 어찌 될지 몰랐다.

신유성이 없어진다면 다시 거래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재정이 빈약해지면 군사가 약해진다. 그렇게 되면 큐슈에서 다시 밀려나 눈치 보는 시절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야스는 신유성을 거스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요시시게는 욕심을 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신유성과 함께 하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을 보고 싶은 것이 요즘 마음이었다.

‘젠장. 왜 하필.’

신유성은 골치가 아팠다. 정1품 도독. 이런 과한 관직을 준 의도가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왜구나 토벌하라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따로 사람을 보내 비공식적으로 명령이 내려졌다. 조선의 북방에 자리하며 여진을 견제하고 될 수 있으면 군대를 키워 알탄 칸을 비롯한 오랑캐를 치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신유성에게 주어진 것은 사선 10척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야 했다.

이건 정말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일단 의도대로 해주긴 하지만.’

그냥 왜구를 토벌하라 명했다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고 있던 일이니까. 하지만 너무 큰 관직을 받은 게 문제였다.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강력한 권력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분명 날 감시하는 자도 오겠지. 동창? 아니면 공주?’

절대 북해도로는 데려갈 수 없었다. 북해도는 신유성이 비밀리에 전력을 키우는 곳이었다. 자세히 알아본다면 들통 날 곳이긴 했다. 하지만 조용히 지낸다면 시간을 벌 수 있겠다고 신유성은 생각했었다.

‘조선의 북쪽이라.’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니 신유성은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를 정1품 도독으로 만든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북해도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그리 나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우선 명나라를 쉽게 오갈 수 있었다. 신유성의 배가 오가는 것을 막을 명나라 수군은 존재할 수 없었다.

감히 어느 누가 도독의 함대를 막을까?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교역을 해도 무방했다.

‘일단 교역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군.’

더 많은 설탕이 필요했다. 여진에게 설탕을 뿌리며 말을 더 사야했다. 가죽도 더 얻어서 남만 상인과 거래해야 했다. 그리고 조선과의 교역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면포를 대량으로 구하는 것도 해결되었고.’

그 동안 배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질 좋은 면포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총병관이란 신분을 이용해 면포를 정기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

‘이 참에 배 만드는 장인도 많이 데려가야지.’

신유성의 생각은 조선공에게까지 미쳤다.

‘비단은 힘들 거고. 도공도 좀 데려가고. 대장장이도 좀 데려가고. 대포도 좀 받아가야겠다.’

처음 느꼈던 두통은 어느새 씻은 듯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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