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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8화 (5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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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사람들은 고민했다. 병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말로 못살겠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뭐 있나? 난 그냥 병사라도 하련다.”

“그래, 병사가 되면 나중에 풀어줄 거 아냐? 노비보다는 낫지.”

“에이, 노비가 되는 게 더 낫지 않아? 최소한 죽지는 않잖아.”

“그럼 그러든가.”

의견은 갈라졌다. 병사가 되겠다는 쪽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반면 노비를 택하는 이들은 나이가 많거나 겁이 많은 이들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나섰다.

“그런데 말이야. 그냥 노비가 되면 억울하지도 않나?”

“뭐가?”

“그냥 노비가 되어봐. 먹고 살기야 하겠지만 일은 안 시킬 거 같아? 그리고 일 못하면 매질 당하는 것도 알면서 하겠다는 건가? 또 자식은 어쩌고? 자식도 노비로 만들 셈인가?”

그제야 노비가 더 낫다고 한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남자의 설득에 결국 사람들은 전부 신유성의 병사가 되겠다고 청했다.

그 수가 무려 3천명이었다.

“네?”

“이들은 오늘부로 내 병사가 되었다. 그러니 돌아가라.”

다시 사람을 데리고 온 호방은 신유성과 마주했다. 그리고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전부 병사가 되었으니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 백성들입니다. 이럴 순 없습니다.”

“왜구 토벌을 위해 자원했다. 이제 명나라 병사들이다.”

그렇다. 나진 사람들은 신유성의 병사라고 명부에 이름을 기록한 순간 명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황당한 이야기에 호방은 입만 벙긋거리다 돌아갔다. 그리고 나진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다.

정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생긴 것이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보고를 받은 윤원형은 펄쩍 뛰었다. 세금을 내야 할 백성들을 순식간에 명나라 병사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명부의 필사본이 세금을 내라고 하지 말라는 편지와 함께 보냈다. 이제 명나라 군사니 신경 끄라는 이야기였다.

환장할 일이었다.

“이건 법도에 어긋난 일입니다. 따져야 합니다.”

“어느 세월에?”

윤원형은 예의고 뭐고 다 잊고 씩씩 거렸다.

‘내가 왜 그 놈을!’

천추의 한이었다. 신유성에게 왜구토벌 허가령을 내준 것이 이토록 한이 될 줄이야!

“허면 이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주변의 다른 대신들이 다그치자 윤원형은 심호흡을 하며 겨우 진정했다. 그리고는 사신을 하루 속히 보내도록 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는 데 최소 한 달. 오는 데 한 달. 명나라에서 볼 일 보는데 걸리는 시간. 모두 합하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작정하고 신유성을 보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조선을 존중했다면 신유성을 정1품 도독으로 임명해 보낼 순 없었다.

‘결국 그놈 손을 들어주겠지.’

아주 질질 시간을 끌며 논의하다가 결국 신유성에게 유리한 쪽으로 손을 들어주게 되면 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원형은 사신에게 기대할 순 없었다.

‘더 빨리 수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윤원형은 남 몰래 사람 하나를 두만강 건너로 보냈다.

3천명이 넘는 사람들. 신유성은 이들을 ‘공병’이라고 이름 지었다.

나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은 간단했다. 계속 지금처럼 신유성이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만 했다. 노인들은 쉴 수 있었으나 신유성 덕분에 세금을 내지 않게 되자 뭐라도 하겠다며 나섰다. 그래서 신유성은 감시를 맡겼다.

“혹시라도 이곳에 수상한 놈들이 나타나면 징을 치면 됩니다.”

노인들은 수상한 놈들만 감시하지 않았다. 일 안 하고 어디 숨어서 농땡이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귀신 같이 잡아냈다.

“이 놈들아! 네놈들이 누구 덕에 이렇게 편히 지낼 수 있게 됐는데! 에라이 썩을 놈들!”

단 며칠이었으나 신유성의 병사가 된 나진 사람들은 정말 편했다.

신유성은 하루 세끼 꼬박 먹여주었다. 옷도 주었다. 일은 좀 힘들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이 굶지 않는다는 것. 그 다음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진은 갑자기 살기 좋은 곳으로 둔갑해버렸다. 그리고 소문은 점점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유성에겐 걱정거리 하나를 안겨 주었다.

‘겨울을 위해 쌀을 좀 더 모아놔야 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어려워.’

앞으로 얼마나 더 모이게 될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함경도 전체를 먹여 살려야 할 수도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신유성은 얼마 전에 올라온 보고를 떠올렸다.

“청하방에서 사온 다기와 용정차를 포장해라.”

그리고 북해도로 가는 배편에 편지와 함께 신페이에게 보냈다.

북해도.

조선소의 책임자로 임명된 미구엘은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 빨리 일본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바뀌었다. 말이 점점 통하게 되자 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북해도에서 받는 대접은 마치 귀족이 된 느낌을 안겨주었다.

매일 밤, 창녀들을 안았었지만 이젠 부인을 둘이나 두고 있었다. 집도 으리으리했고 먹는 것도 꽤 호화스러웠다.

힘든 일은 이제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한 번 조선공들을 키워내고 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자 조선소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었다.

때문에 미구엘은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 봐야.’

아무 것도 없었다. 신유성이 주는 돈을 가지고 조선소를 차릴 순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성공한 삶을 살게 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말이 좀 더 통하는 곳이면 좋겠지만 북해도도 나쁘지 않았다.

예쁜 아내들을 생각하며 미구엘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젠 이런 일도 주어졌지.’

뱃사람의 혼이 불타오르는 일이 주어졌다. 바로 조선과 명나라의 배들을 직접 만들어 볼 기회였다.

신유성이 보낸 자료들에는 배들의 설계도가 있었다. 미구엘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이 배들을 제작하며 더 나은 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러 배를 제작하며 배에 대한 연구를 하라는 신유성의 배려였다.

‘그런데 이 배는 정말 가능한 건가?’

신유성이 보낸 것은 설계도만이 아니었다. 몇몇 배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무시무시했다.

‘이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저건 좀.’

첫 번째 그림은 신유성이 기억을 더듬어 그린 갤리온이었다. 돛이 엄청 많아서 순풍이 불면 쭉쭉 앞으로 나갈 것 같은 배였다.

‘이건 꽤 커야겠네.’

그리고 다른 배는 엄청난 수의 포문을 가진 군선이었다.

전열함이라고 불리는.......

‘뭐 그냥 연구만 해보라고 했으니까.’

미구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그림을 살폈다.

‘이건 금방 만들 수 있겠는데?’

마지막 그림 한 장에는 판옥선이 그러져 있었다.

난부 하루마사는 결국 다테 가문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하하! 즐거운 날이로구나!”

완벽하게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다테 가문의 영지를 반이나 차지했다. 반쯤 죽여 놨다고 봐도 좋은 상황.

난부 가문의 가신들은 저마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승리를 한 덕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군! 북해도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그래? 만나야지!”

북해도는 이번 승리에 큰 공을 세운 동맹이었다. 북해도의 배들이 끊임없이 안도와 다테 가문의 영역을 약탈해준 덕분에 하루마사는 편히 싸울 수 있었다.

안도 가문은 난부 가문을 신경 쓰지도 못했고 다테 가문 또한 전력으로 싸우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었다.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될 곳.’

난부 하루마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북해도가 어떤 방식으로 승리를 거뒀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웠다.

배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지 않는 이상 한꺼번에 많은 병력을 이동시킬 순 없었다. 꾸준히 배를 건조하면 언젠가 10만이든 20만이든 수송하는 것이 가능해지겠지만 그 정도 재력이면 다른 곳을 점령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굳이 북해도와 척을 질 필요는 없지.’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 싹튼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북해도의 해상 전력이 너무나 두려웠다. 단기간에 엄청나게 불어난 해상 전력은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주군께서 보내는 선물입니다.”

북해도의 사신으로 온 무사는 조용히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은?”

상자를 연 하루마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명나라 항주의 청하방에서 사온 것이라고 합니다!”

“청하방?”

“청하방에는 항주의 부자들이 드나들며 차를 마시는 곳이 즐비한 곳이라고 합니다.”

“오오오오오!”

“그리고 놀라지 마십시오.”

또 다른 상자 하나가 더 내밀어졌다.

“이건 또 뭔가?”

“이것은 최상급 용정차라고 합니다. 명나라 황실에 진상되는 것입니다!”

두둥.

하루마사의 심장은 벌렁거렸다. 모여 있던 가신들도 마찬가지.

“이런 귀한 것을!”

다도를 최고의 사치로 여기는 일본의 영주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깊은 관계가 되길 바라신다며 보내셨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정말 감사히 받겠네. 하하하하!”

선물을 받은 하루마사는 상자를 옆에 챙기고는 사신을 보았다.

“이런 귀한 것을 받고 그냥 있기는 뭐하고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 없나?”

“여유가 있으시다면 쌀이나 다른 곡식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쌀을?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선물에 기분이 좋아진 하루마사는 단숨에 이를 허락했다.

여진의 땅 만주에는 수많은 부족이 있었다.

명에서 분류하는 세 부류는 바로 건주, 해서, 그리고 야인.

이중, 해서 여진 중 강력한 부족 중 하나였던 훌룬국의 수장 지위를 이어받은 남자가 있었다.

타이란은 야심이 넘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얻게 된 수많은 물품들은 그의 지배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정도면 언젠가 칸이 될 수도!’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칸이란 칭호에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다.

“타이란님. 조선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설탕 자루를 세어보던 타이란은 조선의 손님이란 말에 눈썹을 꿈틀했다.

“무슨 일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고만 말할 뿐입니다.”

“끙.”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조선은 여진에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무역소를 설치해 교역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여진족이 강해지지 못하게 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수시로 여진족을 조선으로 귀화시키는가 하면 이를 거부한 조금 큰 부족들은 아예 박살을 내버렸다. 그렇다고 귀화한 여진족이 조선에서 편히 사는 것도 아니었다.

남쪽은 내려가지도 못하게 하며 북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겨울에는 만주보다 살만하기에 약한 부족 출신들은 그냥 눌러 산다고 했었다.

‘설마 협박을 하러 온 건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이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조선 기병들은 독했다. 부딪히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아울러 꼭 본대를 공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타이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슨 일이신가?”

“잠시 단 둘이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된다.”

타이란은 부족을 이끄는 중요한 인물.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남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그냥 얘기하죠.”

손님으로 온 남자는 한 가지를 의뢰했다. 그것은 조선의 한 지역을 약탈해달라는 의뢰였다.

“기괴한 얘기군. 조선 사람이 조선을 약탈해달라고 하는 건가?”

“해주신다면 보상으로 비단 오백 필을 드리죠.”

“오백 필?”

타이란은 침을 꿀꺽 삼켰다. 탐이 났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이 놈들이 대체 왜?’

자기네 나라를 치는데 비단 오백 필을 준다니 누가 봐도 수상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은 지금 주시죠.”

“안 한다고 하면?”

“다른 부족에 가봐야죠. 그나마 여기가 가장 크기에 먼저 온 겁니다.”

“끙.”

놓치면 바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소리.

‘하고 싶은데.’

눈 딱 감고 조선에 한 번 쳐들어가면 비단 오백 필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어쩌면 조선에서 거병해 쳐들어 올 수도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자.’

엄청나게 욕심이 났지만 결국 타이란은 제안을 거절했다.

“딴 데 가봐라.”

손님을 보낸 다음에는 얼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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