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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59화 (5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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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코가 출신의 닌자인 켄타는 조용히 마유주를 마시며 고기를 씹었다. 해서 여진과 교역을 하기 위해 북해도에서 파견된 상단을 따라온 켄타는 지루하게 흥정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 빨리 돌아가고 싶다.’

교역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해서 여진은 언제든지 북해도의 상품을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해본 일이라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경계할 일도 별로 없었다. 켄타의 임무는 혹시 모를 변화를 살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으나 해서 여진의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멍하니 기다리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루함이 싹 달아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선에서 온 사람이 조선을 약탈해 달라는 요구를 했답니다. 비단 오백 필을 준다고 했던데요.”

“그게 진짠가?”

“네, 말에는 경원의 어디라고 한 것 같은데.”

순간 켄타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얼마 전 닌자들에게 내려온 정보에 의하면 경원의 나진에는 신유성이 있었다.

‘감히 어딜.’

신유성과 조선과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다는 것도 알기에 켄타는 금방 음모를 파악했다.

“당장 타이란을 만나야겠다.”

켄타는 어렵지 않게 해서 여진을 이끄는 타이란과 얘기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여진 말을 모르는 켄타는 따라온 상인에게 통역하는 말을 듣고 대답했다.

“조선의 손님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상세히 얘기해주시죠.”

“왜 무슨 일 있는가?”

“그 남자가 약탈해달란 곳이 경원 맞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수락하신 겁니까?”

켄타는 주먹을 꼭 쥐었다. 만약 타이란이 받아들였다면 해서여진과의 교류는 끝이었다.

“하지 않았다. 손님은 다른 부족으로 간다고 했다.”

“그 손님을 죽이십시오.”

“왜?”

“현재 경원에는 우리를 이끄는 분이 계십니다.”

“뭐라고?”

타이란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북해도는 엄청난 세력이었다. 무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 북해도와 조우한 해서여진이 있던 곳은 야인여진들의 영역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해서여진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있던 커시너가 일족인 바다이 다르한이 커시너와 커시너의 장남인 처처무를 죽었다. 이때 직계 후손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 중 하나가 야인 여진의 영역에 있다가 북해도에서 넘어온 신유성과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교역으로 큰 이익을 본 커시너의 후손은 다시 해서여진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반란을 일으켰던 바다이 다르한은 이미 죽었고 그 뒤를 커시너의 사촌 동생인 쿠터이 주얀이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돌아가지 않고 야인 여진의 영역에 남았던 것은 큰 세력 없이 돌아가 봐야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북해도와 교류하게 되자 다른 생각을 했다.

해서여진의 영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돌아가려면 흑룡강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바다와 이어진 흑룡강 북쪽은 야인여진들의 영역이라는 것.

북해도의 상단이 해서여진과 교류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해도의 상단은 습격을 물리쳤다. 이후 북해도의 전력이 근방의 야인 여진들을 한 번 쓸어버리곤 경고했다. 이후, 북해도 상단이 공격 받는 일은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일을 전해들은 타이란은 절대 남쪽 어딘가에서 왔다고만 말하는 세력인 북해도 상인들을 얕보지 않았다.

‘설마 조선의 상인들이었단 말인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역소를 놔두고 어려운 길로 교류를 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을 약탈하라고 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무엇인가 사연이 있다는 것은 짐작이 갔다.

‘건드려서 좋을 일은 없지.’

비단 오백 필이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북해도의 상인들과 꾸준히 거래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북해도 상인들은 언제나 풍족하게 상품을 가져왔다.

“금방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타이란은 켄타의 요구에 바로 답했다. 그러자 켄타는 표정을 풀었다.

“만약 그 자를 죽이고 그 자와 내통한 부족을 없애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걱정 말게!”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말에 타이란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얼마 뒤, 조선에서 온 손님은 해서여진에게 사냥 당했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했던 부족의 족장은 살해당하고 부족은 흡수당했다.

‘역시 수작을 부린다 싶더니.’

의외의 곳에서 윤원형이 꾸민 음모는 발각 되었다. 해서여진으로 간 북해도 상단과 함께 움직이던 닌자가 타이란을 움직여 일단 막았다는 이야기였다.

‘이건 임시에 불과해. 놈은 또 사주하겠지.’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막을 수 있었으나 두 번은 어려울 수 있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은 있었다.

‘따져봐야 소용없어.’

윤원형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주했다는 것을 따져봐야 소용없었다. 무엇보다 타이란은 증인으로 내세울 수 없었다. 타이란이 증인으로 나서는 순간 교역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북해도는 그만큼 빨리 발각된다.

‘확 죽여 버려?’

하지만 윤원형 하나 죽인다고 끝이 아니었다. 윤원형의 여자인 정난정도 죽여야 했고 문정왕후도 죽여야 했다. 여기까지 죽여도 끝이 아니었다.

결국 명종을 죽여야만 했다.

한 명을 죽이게 되면 나머지를 모두 잡기 전에는 쉴 수 없었다.

‘아니야. 전쟁은 아직 일러.’

모두 죽이기 위해선 전쟁 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나 당장 조선과 전쟁을 할 순 없었다. 가정제에게 받은 명령이 왜구토벌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을 치라는 말은 없었다.

제대로 된 명분이 없다면 건드리지 않는 편이 이로웠다.

윤원형이 대놓고 건드리지 못하듯 신유성도 은밀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해보자.’

신유성에게는 닌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의 사정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올해 기근은 심하겠군.’

날씨가 좋지 않은 것만으로도 재해였다.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괜히 기우제를 지내니 뭐니 하면서 덕을 쌓아올려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까지 겹쳤다.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청백리들과 뜻있는 선비들은 아끼며 선정을 베푸는 데 힘을 쏟았으나 탐욕이 많은 사람이 더 많았다. 혹은 자신들의 집안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지고 힘없는 이들은 소외되어 살기가 팍팍해질 뿐이었다.

‘불을 붙여주지.’

신유성은 공병들로 받아들인 함경도 주민들 중에서 사람을 뽑아오라고 시켰다.

공병으로 일하던 남자들은 갑작스러운 조사에 어리둥절해졌다.

“믿을만한 사람을 말해보라고요?”

“그래. 말해봐라.”

불안해지는 조사였다. 믿을만한 사람을 말해보라니 마치 자신들을 믿지 않고 있다는 소리로 들려서였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도독께서 시키실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입이 무거운 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이 펴졌다. 이윽고 남자들은 하나둘 주변 사람들을 추천했다.

이와 같은 조사가 이뤄지자 몇몇 남자들이 돌아다니며 자신을 추천해달라며 돌아다녔다.

신유성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정 처음 공병이 되었던 무리에 속해 있던 노인들은 혀를 찼다.

“뭔 놈들이 이리 설치는지.”

“거 새로 온 놈들이 그렇게 설친다던데?”

조사는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쉴 때마다 조사가 이루어지자 이제는 일할 때도 친근한 척 구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는 노인들의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썩을 놈들. 일이나 제대로 하지.”

노인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일은 안 하고 출세하려고 신유성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몹시 안 좋게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일 잘 하고 됨됨이가 괜찮으면 알아서 말해줄 텐데. 저러고 다니는 놈들 중에 제대로 된 놈 별로 없지.”

“내 말이.”

불만이 커지자 잘 보이려고 돌아다니는 이들의 모든 것이 나쁘게 보였다. 그러다 한 노인이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데 저 놈들 이제 보니까 여기 온지 얼마 안 된 놈들 아닌가?”

“응? 듣고 보니 그러네?”

가장 처음 나진에서 지내며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초기의 3천에 속했던 노인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놈들 혹시 이상한 놈들 아니야?”

누군가의 한 마디가 불씨가 되었다. 그때부터 노인들의 눈은 집요하게 친근하게 굴고 다니는 자들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역으로 캐고 다녔다.

“저기 저 놈은 어디서 온 녀석인가?”

“네? 잘 모르겠는데요?”

“응? 몰라?”

친한 척 하고 다니는 인간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나진에 오는 이들은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욱 수상해 보였다.

노인들은 조사하고 또 조사했다. 뒤를 집요하게 캐고 다녔다.

“그놈들. 이상한 놈들이 틀림없어. 아무도 모른데.”

“그래? 그럼 혼자라서 친하게 구는 거 아닐까?”

“에라이! 그럴 거면 도독님이 사람 구하기 전부터 그랬어야지. 저 놈들은 아니야.”

“듣고 보니 그러네?”

노인들은 조용히 병사에게 사실을 고했다. 이후 친한 척 하고 다니던 이들은 모조리 집중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발표가 나왔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들어온 간자라는 발표에 분위기가 단숨에 험악해졌다.

반면 신고한 노인들에게는 포상이 내려졌다.

이 일을 계기로 새로 들어오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철저한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유성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을 몇 명 뽑을 수 있었다.

신유성에게 뽑힌 이들은 밀명을 받았다. 무역소로 가는 상행에 동행한 뒤 각지의 사람들에게 나진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란 것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많은 물자가 필요했고 신유성을 이를 빨리 보급하기 위해 무역소에서 여진과 직접 교역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해서여진과 교역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쪽 교역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교역이었다. 그래서 많은 길을 돌아서 보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이 세운 무역소에서 직접 교역을 한다면 보다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모피였다. 병사로 삼은 이들에게 털옷을 하나씩 해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피 이외에도 수입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말이었다.

말이 나진에 들어서자 신뢰할만한 사람들 중에서 기병 훈련을 받는 이들이 생겨났다. 원래 여진 출신이던 자들은 신이 났다. 말을 다시 타게 되자 오래 전에 말을 타고 달리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기병 훈련이 시작되었다. 젊은 장정들 중 노인들의 검증을 통과한 이들만이 기병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진 기병의 탄생이었다.

귀화한 이후에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삶을 살다가 다시 말을 타는 기병으로 뽑힌 나이가 좀 있는 귀화인들은 신유성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어서 구입한 모피를 털옷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만들어지는 대로 중요한 기병부터 시작해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지급했다. 그러자 충성심이 부쩍 올라갔다.

이제 신유성은 인심을 산 정도가 아니었다. 믿고 따라야만 할 상전이었다.

“아이고. 이 귀한 것을.”

모피. 구하려면 못 구할 것은 없다. 하지만 신유성이 직접 돈을 들여 산 뒤에 만들어서 나누어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가족들이 겨울에 춥지 않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장정들은 더욱 힘이 났다. 또한 계속 모피를 사들이고 있다니 자신들의 차례가 곧 올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가장 감격한 것은 역시 노인들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노인들은 충성심은 극에 달해 이제는 광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었다.

함경도는 그 동안 극심한 차별을 받아온 땅.

조선 조정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곳이었다. 그런 속에서 자신들을 이끌 누군가를 염원하는 열망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타났다.

신유성 덕분에 공납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 겨울을 따스하게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유성이 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이들은 모두 적으로 보였다. 게으름을 부리는 자들을 나서서 호통 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놈들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신고했다. 이들 때문에 윤원형이 보낸 밀정들은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무역소를 오가는 이들을 통해 사방으로 퍼졌다.

“이보게.”

“왜 그러나?”

“내 말 좀 들어봐.”

“힘 빼지 말고 말해. 듣고 있어.”

일을 하다가 농땡이를 부리던 남정네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나진인가 하는데 알아?”

“그게 어딘데.”

“저어기 그 명나라 도독 양반이 있다는 곳 있잖아.”

“아, 근데 거긴 왜?”

“거기가 그렇게 살기 좋데.”

“뭐가 좋은데?”

“공납도 없고 먹여주고 재워준데. 요즘에는 월동준비한다고 털옷도 준다던데.”

“에이, 그런 건 당연히 헛소문이지.”

“아무튼 난 갈 거야.”

“괜히 힘 빼지 말고. 가서 아니면 뭐하게.”

“그냥 눌러 살지 뭐. 아무튼 난 간다.”

소문을 믿지 않는 자들은 남고 믿게 된 자들은 나진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다시 나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아는 누군가가 나진으로 가서 안 오게 되었다고.

이런 식으로 소문은 함경도에서 평안도 그리고 황해도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작황이 안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민심에 이와 같은 소문은 기름과 같았다.

아직 타오르지는 않았지만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여기 저기 퍼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나진으로 향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다만 도망친 노비들이 나진으로 향하긴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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