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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62화 (6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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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거정

여자들이 친해지고 있을 때 신유성은 보고를 듣고 있었다.

“조정에서 도적들에 대한 문제로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디지?”

“황해도라고 했습니다.”

“그래?”

예상대로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기근과 군사력 증강에 따른 세비 증가, 그리고 수탈까지.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가 겹치니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날씨가 상당히 춥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식량 때문에 전쟁이 더욱 심해질지도.’

신유성은 다음 해도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 기후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기후가 안 좋으면 작황이 나빠진다. 작황이 나쁘면 굶주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내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교역을 더 늘려야 해.’

항해 기술의 발전이 더더욱 필요한 이유였다. 교역을 늘려 부족한 것을 채워야 했다.

‘설탕 생산도 더 늘리도록 해야 해.’

설탕은 좋은 것이다. 많이 먹으면 건강에 나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설탕을 먹기 힘들었다. 허나 기후가 나빠지면 얼마나 설탕을 생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아, 아메리카도 빨리 가봐야 하는데.’

하지만 아메리카로 가는 것은 지지부진했다. 좋은 배가 있어야 아메리카를 드나들 수 있으니까. 캄차카 반도에서 북동쪽으로 더 가면 베링 해협이 나온다.

거칠기 짝이 없는 사나운 바다지만 이곳을 건너면 아메리카에 발을 딛게 된다.

‘알류산 열도는 확실치 않으니까.’

하나씩 확인하며 징검다리처럼 건너기에는 위험이 컸다.

“주군?”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던 신유성은 곧 정신을 차렸다.

“일단 계속 주시하도록 하고. 그리고 도적들의 움직임은 무리해서 쫓지 말고. 괜히 도적으로 오인 받을 짓도 하지 말고. 무리한 짓은 금지다.”

“알겠습니다.”

사람은 중요했다. 특히 충성을 바치는 신뢰할만한 사람은 더더욱 중요했다. 그런 이들을 잃게 되면 결국 세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신유성은 명령을 내리고는 주녹정을 찾아갔다.

1554년. 새해가 밝았다.

추운 겨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진의 분위기는 훈훈하기만 했다. 겨울이 길어지자 인근 주민들이 하나둘 나진을 찾는 일이 더욱 늘어났다. 때로는 멀리 평안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조정에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뭐라고 하질 못했다.

신유성의 함대는 꾸준히 왜구를 토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후지바야시 켄이 지휘한 함대가 돌아올 때면 왜구의 선박을 여러 대 끌고 왔다.

정말 왜구와 싸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예전에 잡았던 배들을 끌고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바다에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는 일.

조선도 명나라도 신유성이 계속 왜구를 토벌하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다만 조선에서는 하루빨리 왜구 토벌을 끝내달라는 요구가 계속 들어왔다. 반면 명나라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황제가 가만히 있으면 상관없지.’

현재 신유성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명나라 황제였다. 그래서 조선의 요구는 계속 무시했다. 급할 것이 없었으니까.

반면 조선의 입장에선 신유성이 계속 나진에 붙어 있는 것이 몹시 불안했다. 잘못하면 함경도가 넘어가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나진을 포위하고 함부로 사람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지고 있었다.

임거정은 어느덧 거대한 세력을 거느린 산적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관청을 털었다.

관청을 털어서 백성들에게 도로 뿌렸다.

이 때문에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의적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돌았다.

이 때문에 조선 조정은 비상이 걸렸다. 양반집이 털리는 것과 관청이 털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토벌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수군 양성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임거정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황해도.

“하하하하하! 그 자식들 꼴 봤냐?”

“봤지!”

산속은 시끌벅적했다. 관청을 털어서 가져온 곡식과 옷감에 모두 웃음이 넘쳐났다. 하지만 임거정은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관군이 곧 뒤를 쫓을 텐데.’

삶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다만 죽기 직전에 더 많이 털고 싶었다. 가진 자들을 털어 양민들에게 나눠주었을 때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웃음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천대 받아오던 백정인 임거정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마약과 같았다.

‘슬슬 다른 곳으로 거점을 옮겨야 해.’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잡히기 쉬웠다.

그렇게 맹수는 터를 옮겼다. 평안도로.

도적들의 행동은 곧 신유성에게 보고되었다.

‘잘 됐어.’

조정의 관심이 임거정에게 향했다. 임거정의 행동은 양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더구나 관청까지 털어서 재정에 차질이 생겼다.

왜구 토벌을 위한 수군 양성에 차질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내탕금이나 윤원형의 사재를 턴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정왕후도 윤원형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정은 더욱 더 악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도 날씨가 안 좋을 것 같은데.’

예상이 그랬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민심이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겠지.’

명나라의 기후가 나빠지고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어도 신분이 높은 이들은 죽지 않는다. 단지 조금 손해를 볼 뿐.

하지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서두르지 말자.’

기분 같아선 반란을 일으켜 한꺼번에 뒤집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조금 흔들렸다고 쉽게 쓰러질 명나라나 조선이 아니었다.

여유를 가질 필요를 느낀 신유성은 잠깐 북해도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나츠도 봐야하고.’

유구왕국에서 화진까지 온 이상 나츠를 계속 혼자 두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주녹정에게 양해를 구한 신유성은 켄과 함께 북해도로 향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한 명도 배에 타지 않아서 정보가 샐 일은 없었다.

“서방님.”

다시 만난 나츠는 홀쭉해져 있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이 야윈 것.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

“정말 미안하다.”

“아니에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드는 나츠. 신유성의 손은 자연스럽게 눈물로 향했다.

“계속 널 울리기만 한 것 같구나.”

“제가 좋아서 그런 걸요.”

살짝 품에 안자 파르르 떠는 몸.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이제 같이 가자.”

“괜찮은 건가요?”

“그래, 허락을 받았다.”

나츠의 표정이 밝아졌다. 명나라 공주인 주녹정이 다른 여자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란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한 집에선 죽어도 같이 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주녹정이 인정한 이상 크게 문제 될 것은 별로 없었다. 가정제와 유학자들이 발목을 잡을 순 있으나 현재 가려는 곳은 나진. 명나라가 아니었다.

나츠와 짧게 대화를 나눈 신유성은 신페이와 마주했다. 신페이를 비롯한 가신들은 모두 칭찬을 바라는 눈을 하고 있었다.

북해도는 엄청나게 발전한 상태였다. 일본을 비롯해 여기저기 기근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북해도는 풍족했다.

더구나 병력은 모두 정예들이었다.

이젠 일본의 영주가 쳐들어오는 것을 걱정할 수준이 지났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모두 주군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겠습니다.”

신페이와 가신들은 자신 있었다. 신유성이 알려준 전술을 이용한다면 어느 누구든 격파할 수 있었다. 더구나 북해도 기병은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들만 있으면 못 이길 군대가 없을 것 같았다.

“만용은 금물이다.”

신페이와 가신들의 표정에서 만용이 보였다. 그래서 막았다.

“항상 적을 경계해라. 신중하게 생각해라. 방심이 우리의 가장 큰 적임을 잊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해줄 일이 있다.”

“하명하소서.”

“개척 마을을 만들었으면 한다.”

신유성은 조금 여유를 갖는 김에 탐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메리카로 넘어가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했다.

“동북쪽 해안선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어촌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역을 하고.”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땅입니다.”

‘아무 것도 없긴. 거기가 미래에는 얼마나 중요한 땅인데.’

지하자원이 풍부한 땅이다. 척박하다고 무시해선 안 된다.

당장 개발할 여력은 없지만 딱히 이렇다 할 임자가 없을 때 선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지금 신페이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순 없었다.

“더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한 조사다. 북해도의 위쪽으로 가면 사람이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있었다. 그러니 더 살피려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벌은 어찌 하시려는지.”

“정복을 너무 빨리 이루면 앞으로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여진을 비롯한 초원의 부족들과 싸워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나만 손해다.”

부족 한둘 박살낸다고 몽골이나 여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강력한 군대가 있다면 그나마 좀 낫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빨리 왜구 토벌이 이뤄지면 나만 손해지.’

가정제가 몰래 내린 밀명에는 초원의 토벌도 포함되어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명령을 내린 신유성은 며칠 뒤, 나츠를 데리고 나진으로 돌아갔다.

북해도에 여자들이 모였다. 인사까지는 쉬웠다. 하지만 이들은 곧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화진의 경우에는 명나라 말도 어느 정도 배워서 주녹정과 소통이 가능했다. 이야기 상대 정도는 되었다. 그런 나츠와 매화 그리고 레이는 달랐다.

주녹정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간에 통역을 둔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나 여자들끼리의 은밀한 이야기를 남에게 통역하라고 시킬 순 없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대화를 할 때 통역을 대동하는 것은 위험했다.

“조선말로 통일하자.”

“그게 좋겠군요.”

주녹정의 입장에선 명나라 말이 편하지만 그래선 발전이 없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이 조선말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 주녹정은 조선어를 배울 생각이었다.

앞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와 조선어로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래야 신유성과 연결고리가 더 튼튼해질 것 같았다.

다들 이견은 없었다. 덕분에 편해진 것은 조선 출신인 매화였다.

‘빌어먹을? 어쩌지?’

봄이 찾아왔다. 조선 조정은 여전히 임거정을 잡지 못했다. 워낙 신출귀몰하기 때문이었다.

윤원형은 골치 아픈 문제들 때문에 봄을 즐길 여력이 없었다.

도적을 잡지도 못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릴 들었다.

‘올해도 기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연속으로 기근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았다.

‘신유성 그 놈도 그렇고.’

신유성의 행동은 윤원형의 입장에선 사악해 보일 뿐이었다.

백성들을 병사로 만들어 빼돌리고 있었으니까. 이 때문에 함경도의 세금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어떤 놈이 빼먹고 있는 거 아냐?’

의심은 사실이었다. 누군가 빼먹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기근 이전에도 하던 일이었다. 다들 윤원형을 보고 배웠기에 하는 일.

‘아무래도 그 놈이 위험해.’

신유성은 함경도에서 소문이 파다했다. 인심 좋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도 빨랐고 나진의 발전도 더욱 빨라졌다.

‘대체 뭔 수를 써서 그렇게 간자를 잡는 거야?’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순간이 오면 암살하려 했다. 하지만 신유성에게 접근할 기회는 없었다.

닌자들과 나진의 노인들이 똘똘 뭉쳐 간자를 색출해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다른 쪽으로 보내봐야지.’

해서 여진 쪽으로 보낸 사람들이 계속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윤원형은 다른 방향을 택했다.

‘건주 여진이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지나가는 김에 도적들도 좀 잡았으면 좋겠는데.’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해결하려는 욕심이 샘솟았다.

윤원형은 자신의 머리를 자찬하며 건주여진으로 사람을 보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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