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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
두창. 마마. 천연두.
같은 병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들. 공기 감염이 가능한 두창은 공포의 대명사였다.
“으음.”
이지함은 신유성으로부터 한 가지 이야기를 듣고 고민했다.
‘정말 괜찮을까?’
아무리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병을 겪고 치료법을 찾는다고 해도 두창은 예외였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아낸 것은 한 번 걸렸던 사람은 두 번 걸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
위험한 병을 직접 시험해보는 것은 이지함으로서도 두려운 일이었다. 사람인 이상 목숨을 아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지함은 두려움을 의지로 이겨냈다.
‘만약 성공한다면 수많은 백성들이 두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신유성이 가르쳐준 방법은 우두법이었다.
인두법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방법이었으나 그리 안전한 방법은 아니었다. 신유성은 소도 같은 병을 앓으니 다른 방법으로 시험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후 이지함은 고뇌했다.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쉽게 하긴 어려웠다. 잘못되면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니.
“형님. 할 말이 있습니다.”
이지함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방에 남겨둔 이지함은 우두법 실험에 들어갔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진은 떠들썩해졌다.
“하하하하하! 이건 기적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이지함은 엄청나게 크게 웃으며 신유성을 찾았다.
“성공입니다! 성공!”
이지함은 성공한 뒤에 다른 지원자를 받았다. 대부분 꺼려했으나 몇몇 노인들이 나섰다. 이지함을 응원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괜찮다면 써달라며 나섰다.
노인들이 성공하자 조금씩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아이까지 성공한 이후 이지함은 종두법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축하하네. 그럼 나부터 부탁하지.”
신유성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접종은 모든 병사들이 집합한 가운데 치러졌다. 높은 단 위에서 신유성이 접종을 하니 뒤를 이어 가신들이 따라가겠다며 나섰다. 이후 접종 행렬이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진 사람들은 모두 접종을 완료했다.
‘얼른 이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마마로부터의 해방.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아아! 산해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더니. 이것도 그런 건가?’
이지함에게 신유성은 그야말로 한줄기 구원의 빛과 같아 보였다. 특별하게 치료법을 자세하게 알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신유성이 언급한 방법이 치료의 돌파구가 되었다.
‘의술에도 조예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언제 날 잡아서 얘기를 더 해봐야지.’
신유성에 대한 생각을 마친 이지함은 편지를 쓰기 위해 서둘렀다. 그러다 예전에 써놓은 편지들을 보았다.
만약 자신이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써놓은 것들이었다.
“하하하하하하!”
기분 좋게 편지를 찢어버린 이지함은 동문인 박지화에게 편지를 썼다.
신유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보고를 올렸다. 그렇게 조선 조정에도 종두법이 알려졌다. 동시에 명나라와 일본에도 공식적으로 전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신유성이 전한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허허, 이건 분명 사특한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소? 그냥 새로운 치료법이니 기록해두면 그만 아니오?”
“하지만!”
“때가 되면 진위가 가려지지 않겠습니까? 굳이 불확실한 일을 할 필요는 없지요.”
대신들이 직접 본 것도 아니라 믿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우두법 이전에 나왔던 인두법이 문제였다. 방법이 너무나 유사하다보니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럴 때 임금인 명종이 강력하게 나선다면 해결될 문제지만 명종은 물론이고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신유성이 알려준 치료법이 사실이라면 민심이 순식간에 신유성에게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그 놈들은 죽이지도 못하고.’
한차례 조선을 휩쓸었던 니칸와일란을 떠올린 윤원형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신유성은 죽이지도 못했고 비단만 오백 필이나 날아갔다.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비단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보내 따지자니 잘못하면 꼬리를 잡힐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왜구 토벌이 더 중요합니다.”
윤원형은 급히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한편, 박지화는 이지함의 편지를 받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었다.
“준아! 어서 어디 있느냐!”
편지를 품에 넣은 박지화는 서둘러 일어섰다. 이건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접종이란 것을 하루 빨리 하면 한 사람 더 살릴 수 있다.’
두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 하나만으로 세상은 좀 더 나아지는 것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가서 소 한 마리를 사오너라.”
“소를 어떻게 구합니까?”
“아니다. 나랑 같이 가자.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잘 듣거라.”
박지화는 일부러 우두에 걸린 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지함이 알려준 대로 직접 접종을 해보았다. 허준은 크게 놀랐지만 박지화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자 허준을 보며 말했다.
“너도 해야지.”
“정말 괜찮은 겁니까?”
허준은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 너도 보지 않았느냐? 이것만 하면 평생 두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허준은 팔을 내밀었다.
표정은 울상이었다.
한양을 비롯한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접종은 없었다. 단지 나진을 중심으로한 함경도 일대와 박지화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백성들이 접종에 응했을 뿐이었다.
다들 가볍게 우두를 앓고는 정상으로 돌아오자 신기해했다. 불안했었지만 금방 낫게 되자 불안도 없어졌다. 더구나 이젠 더 이상 두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두창에 걸린 사람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어쨌든 살아날 희망이 더 커졌다는 말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접종이 일어났다. 북해도와 대마도 큐슈뿐만이 아니었다.
오와리의 노부나가는 물론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이마가와 그리고 다른 모든 영주들이 신유성이 돌린 편지를 받고는 접종을 시도했다. 정말 걸려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살아난다면 전염병 하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접종법은 계속 퍼졌다. 유구에도 퍼지고 대만섬의 평포족에게도 퍼졌다.
마지막으로 신유성의 보고를 받은 명나라 조정은 이를 실험해보고는 황실부터 시작해 모든 이들에게 접종을 시작했다.
황음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지만 보고를 받은 가정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마로다.”
이젠 아무도 신유성이 정1품 도독이란 것에 불만을 토로할 수 없게 되었다.
두창의 치료법을 알려준 것 하나만 하더라도 엄청난 공적이었다. 자손대대로 이어져 내려갈 영광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선다고 해도 빛바랠 일이 아니었다.
가정제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훌륭한 일을 한 신유성이 바로 자신의 사위니까.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쨌든 가정제의 체면을 제대로 살려준 신유성이었다. 왜구를 토벌하는 일이 조금 느리긴 했으나 종두법 하나만 가지고도 모든 것을 덮고도 남았다.
“이젠 더 올려줄 품계도 없으니 왕으로 만들어줘야 하나?”
“아직은 이르지 않겠사옵니까? 토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왕으로 임명하는 것은 자칫 조선의 반발을 살 수도 있습니다.”
명나라 도독이 들어와 있는 것과 다른 나라 왕이 들어와 있는 것에는 차이가 컸다. 더구나 현재 신유성은 함경도를 중심으로 민심을 얻고 있는 상황. 만약 왕으로 만들어준다면 조선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 것과 같았다.
“흠, 그건 그렇군. 그럼 조금 뒤로 미루겠다.”
가정제는 신유성을 왕으로 만들 결심을 굳혔다. 이에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는 못했다.
신유성의 왜구 토벌이 끝나면 왕이 된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나진은 때 아닌 유리 개발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이지함이 갑자기 만사 제쳐놓고 유리 개발에 뛰어든 탓이었다.
이유는 얼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두법이 성공한 이후, 이지함은 매일 같이 신유성을 찾았다. 그리고 의술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신유성도 읽은 것이 있고 또한 미래의 기억을 통해 가지고 있는 간단한 의학적 지식이 있기에 이지함을 상대해줄 수 있었다.
허나 그것도 슬슬 힘들어졌다. 그래서 신유성은 한 가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물건을 더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게 되지 않겠나?”
“그런 것이 있다면 좋죠.”
당연한 이야기였다.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은 학문의 기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그런 도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
“일단 이걸 보도록.”
신유성은 급조한 유리알을 보여주었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가져다가 대장간에서 녹여 만들어낸 구슬은 매우 탁했다. 하지만 반대편이 희미하게 보였다.
“무엇입니까?”
“유리. 사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걸 잘 보면 반대편이 보이지?”
“그렇습니다.”
탁하긴 했지만 희미하게 구슬의 반대쪽이 보였다.
“이 탁함을 없앨 수 있다면 사람의 눈하고 비슷해질 것 같지 않나?”
“그런!”
눈앞에 눈을 댄다는 생각에 이지함은 호기심이 치밀었다.
‘정말 더 크게 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모래를 이용해 만든 거네. 자세한 것은 대장장이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신유성은 이지함에게 유리 개발을 떠맡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유성이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찾았습니다.”
“그래?”
겨울에 나진을 습격해왔던 이들을 찾았다는 보고였다. 이를 위해 들어간 돈은 상당했으나 신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돈은 아깝지 않았다.
‘누구든 날 건드렸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여.’
건드리면 복수하는 것이 신유성의 성격이었다.
“그래, 어디라고?”
“건주 여진의 부족 중 하나입니다. 습격했던 자는 니칸와일란이라고 합니다.”
입이 무거운 자들을 뽑았던 니칸와일란이었으나 결국 행적이 노출되었다. 니칸와일란이 납치해서 판 노예들을 통해 정보가 흘러나갔기 때문이었다.
조선에서 잡혀간 사람들 중 몇 명은 해서여진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유성의 명령을 받고 여진족을 감시하던 닌자에게 포착되었다.
“당장 간다면 잡을 수 있을까?”
“어려울 겁니다. 보고를 하는 지금도 또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요. 최근 들어 거점을 자주 바꾸고 있다고 하니 아마도 경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 이이제이로 간다.”
신유성은 한 부족에게 사신을 보냈다.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는 손님을 맞이했다.
조선에서 인삼과 설탕을 가져온 아주 귀한 손님이었다.
“이거 이런 것을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
“저의 주인께서 주시는 겁니다. 인사차 드리는 것이니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기오창가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런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은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최근 저의 주인님께서는 니칸와일란이란 자에게 원한을 품는 일을 겪으셨습니다.”
“저런. 고약한 놈한테 걸리셨었군.”
“네, 그래서 족장님께서 그들을 조금 흔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복수를 원한 것이 아니고?”
“주인께서는 직접 복수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은 그저 괴롭게 만들고 싶다고 하셨을 뿐입니다.”
“하하하! 그래야 남자지!”
기오창가는 흔쾌히 허락했다. 원래부터 경쟁 관계에 있던 부족이라 의뢰가 아니더라도 견제하고 괴롭힐 생각이었다.
“그럼 보수는?”
“얼마나 원하십니까?”
“비단으로 받고 싶군.”
“드리겠습니다.”
비단으로 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근 신유성의 교역은 더욱 수월해졌다. 종두법을 전파한 이후 명나라 조정에선 신유성에게 매우 협조적이었다.
대놓고 상선을 가져가도 검사도 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해금령이 내려져 있는 상황이지만 신유성만은 마치 예외라는 식이었다. 사가는 상품들도 교역이 아닌 보급의 일환이라고 바꿔서 위에 보고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도 없었다.
원래라면 문제가 될 일이었으나 가정제의 의향이 확고해지니 동창에서도 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신유성은 그야말로 거금을 벌어들이는 중이었다.
일본의 은을 박박 긁어모은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벌어들였다.
은이 많으니 비단을 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하하! 그럼 돌아가서 전하게. 이 일은 책임을 지고하겠다고.”
이로써 니칸와일란과 기오창가의 악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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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