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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파도
신유성의 결정은 빠르게 조선 조정에 전해졌다. 병사가 많아져 주둔하기 힘드니 두만강 건너에 새롭게 주둔지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었다. 문제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준비할 시설이 필요하니 강 건너기 직전의 장소를 주둔지로 쓰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배를 타고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신유성이 배가 많다는 것은 조정 대신들도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일본과 나진을 오가는 수많은 선박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들은 모두 신유성의 배라는 깃발을 달고 있었고 명령서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다.
명나라 도독나리의 배를 건드릴 간 큰 조선 수군은 없었다.
“내줍시다. 그곳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그보다 함경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겁니다.”
“어차피 필요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도 세를 내던 조선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함경도에 대한 차별은 확고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함경도 사람들이 몽땅 사라진다고 해도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였다.
윤원형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젠장! 이걸 막을 수도 없고.’
대놓고 막는 행위는 금물이었다. 얼마 전에 명나라에 다녀온 사신이 말하길 가정제의 신유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했다. 협조를 잘 하라며 평소보다 더 많은 답례품을 베푼 것이었다.
받은 것은 많지만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신유성은 이제 명종의 지위마저 뒤흔들 지경이었다.
함경도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어떻게 막는 게 가능했으나 함경도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함경도 양반들마저 조선에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양반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하나 함경도에도 양반은 있었다. 허나, 이들은 두창이 창궐하고 마음이 변했다. 전에는 조정의 뜻에 따라 접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창 때문에 양반과 지주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자 완전히 돌아섰다.
병에 걸렸던 이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걸리지 않은 이들은 접종을 하고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죽다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이 신유성에게 기울어진 것은 당연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방관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군역을 하는 이들도 함경도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그냥 신유성의 편을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이 함경도의 왕을 자처해도 함경도 내에서는 반발이 없을 정도로 민심이 기울었다.
“보내줍시다. 최대한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속이 쓰렸지만 결국 신유성이 원하는대로 해줘야만 했다.
‘이 놈이 왜 강을 건너겠다는 거지?’
자신이라면 왕을 자처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강을 건넌다고 하니 신유성의 꿍꿍이가 몹시 궁금해지는 윤원형이었다. 허나, 윤원형은 신유성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민심을 보건데 함경도 전체를 주둔 지역으로 선포해도 되실 텐데 왜 강을 건너신다는 겁니까?”
“폐하께서 명을 내리셨다. 북방의 오랑캐도 나중에 정리하라고. 강 건너에 정착하는 것은 이를 위해서다.”
“그럼 위험하지 않습니까?”
“정리하라고 했다고 꼭 싸울 필요는 없다.”
해서여진은 이미 신유성에게 우호적이었다. 더구나 연해주에 자리를 잡고 자유롭게 교역을 할 수 있는 시장을 연다면?
신유성이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털어버리는 것보다 계속 교역을 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것을 이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털면 그것으로 끝이다. 닭의 배를 가른다고 달걀이 수천 개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약한 부족들은? 순차적으로 정리하며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신유성의 설명을 들은 이지번은 감탄했다.
‘물욕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니.’
부자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방법이었다. 확실히 조선 방향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쪽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지번은 신유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거점이 두 개가 더 세워지게 되었다.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로 가기 직전에 있는 곳에 세워진 이름은 녹둔이 되었다. 그리고 녹둔도를 건너 닿게 되는 곳에 세워진 곳은 신녹이라 명명했다.
세워진 거점에는 나진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이 보내졌다. 아울러 식량 소모가 빨라지자 신유성은 명나라에서 직접 곡식을 사오도록 시켰다. 또한 어선을 늘려 해산물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인구가 갑자기 늘었지만 심각한 식량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얻어먹는 판에 먹는 것이 좀 적다고 성질을 부릴 순 없었다.
새로 정착하게 된 이들은 주변을 벌목하고 창고와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강 건너에 있던 여진족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놈들을 털면 어떨까?”
“좋지 않을 텐데? 봤잖아. 무장 한 거.”
“그래도 한 번만 성공하면 우린 더 많은 말을 살 수 있어.”
유목민족에게 말은 중요했다. 이동 수단이며 생존 수단이었다. 사냥을 하러 다니거나 싸우기 위해선 말이 필요했다.
“알았어. 해보자.”
결국 몇몇 소수 부족들이 신녹을 털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 허나, 이들의 시도는 무참하게 깨졌다.
녹둔에 자리 잡은 이들이 평범한 양민이었다면 신녹은 나진에서 구르고 굴렀던 정예들만 모아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한 여진족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조선이 강을 건넌 것인가?”
작은 부족들이 고전하고 있을 때 대부족들은 이를 관망하며 머리를 굴렸다.
“조선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어디지?”
“명나라의 도독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명이 쳐들어온 건가?”
“그럴 수도 있죠.”
“으음.”
많은 이들이 신유성의 행보에 자극을 받았다. 가만히 내버려두자니 손에 박힌 가시처럼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신유성을 치자지 망설여졌다.
“대체 명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지금 황제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위도 미쳤나보죠.”
“으음.”
다시 고민. 공격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이들은 많았다. 그래서 몇몇 대부족은 치기 위해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당연히 신유성을 칠 생각이 없던 대부족들이 자극을 받았다.
그 중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해서여진의 타이란이었다.
“뭐야? 그 놈들이 감히?”
이젠 타이란도 자신이 누구와 거래를 하고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신유성은 그야말로 복덩어리였다. 구하기 힘든 것들도 요구만 하면 척척 구해다 주었다. 그것을 가죽으로 계산해도 다 받아주었다. 값도 잘 쳐주었다. 반면 파는 것들은 비싸게 부르지도 않았다.
덕분에 타이란의 힘은 막강해졌다.
타이란의 거래로 인해 힘을 얻은 부족민들은 모두 타이란을 칭송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부유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했다.
“놈들을 쳐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세워진 곳까지 길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지. 그래야 더 장사하기가 편해질 거야. 안 그래?”
“옳으신 말씀입니다.”
신유성은 명나라와 달랐다. 명나라는 조공을 이용해 분열책을 쓰려 했지만 신유성은 거래를 통해 원하는 것을 내주었다.
명나라보다는 훨씬 나은 상대였다. 너무나 고마워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그럼 치워버리자고. 그리고 놈들을 잡자고. 그럼 노예와 말을 팔아서 생기는 것도 있으니 좋지 않겠어?”
“옳으신 말씀입니다.”
타이란이 움직이자 해서여진은 신녹까지 가는 길을 그야말로 청소해버렸다.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두만강 인근의 대부족들이긴 했지만 타이란에게 대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탄 대규모 전사들이 쳐들어오자 신유성을 치려했던 대부족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1555년이 되었다. 조선은 그야말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함경도의 민심 이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에서 나진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제대로 잡지 못한 두창이 계속 난리였다.
이를 해결하느라 조정은 왜구 토벌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지경에 빠졌다.
그런 가운데 결국 누군가 외쳤다.
“빨리 그 접종이란 걸 합시다! 이래서는 끝이 없어요!”
결국 버티던 윤원형은 이를 허가했다. 덕분에 두창으로 인한 피해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되었으나 다른 문제가 일어났다.
접종이 명나라 도독인 신유성 덕분에 태어난 것이란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윤원형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대체 누가!’
소문이 퍼지는 속도를 보아 인위적으로 누군가 퍼트리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설마 명나라가?’
위기를 느꼈으나 윤원형은 더 이상 뭔가 하기 힘들었다. 신유성은 이젠 건드리기도 힘들 정도로 커버렸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세력이 약해 찌를 구석이 좀 있었으나 이젠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신유성이 명부에 등록시킨 공병들을 빼고 진짜로 키운 정예병만 해도 2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파악된 것에 불과했다.
신유성이 거느린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조선 조정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러지 말 걸!’
윤원형은 자신의 손으로 신유성에게 왜구토벌허가를 내준 사실을 깊이 후회했다.
‘벗어나고 싶구나.’
이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모친상은 끝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첩, 서모인 권씨의 행동은 이이를 힘들게 했다.
‘미쳐버리면 편해지나?’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권씨를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마음 한 구석에 불타오르는 권씨를 향한 미움. 하지만 그것은 품어선 안 되는 마음이라고 이성이 계속 외쳤다.
아직 젊은 이이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것도 슬퍼 죽겠는데 권씨마저 힘들게 했다.
서모라도 모친이니 함부로 대하는 짓을 이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세상도 어지럽고 나도 어지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이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잊기 위해 일부러 외부의 일에 집중했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슬픔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다. 성혼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마 도독께서는 강을 건너 북진하지 않을까 싶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라면 나진에 자리 잡을 이유는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해서네.”
성혼에게 소식을 들은 이이는 신유성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금방 파악했다. 왜구 토벌만이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부산포에 자리를 잡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부산포가 아닌 나진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을 보고 이이는 신유성의 목적이 왜구토벌이 전부가 아님을 유추해냈다.
“그럼 왜구는?”
“내 생각에는 이미 상당히 진척 되지 않았나 싶네. 어쩌면 왜인들을 모두 굴복시킬지도 모르지.”
“싸우지 않고?”
“그는 해금령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물이네.”
성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구들이 설치는 이유가 쉽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만만치 않은 상대. 만약 토벌을 하려 한다면 죽기 살기로 싸우겠지만 교역을 하자고 손을 내밀면 안 잡을 영주는 거의 없었다.
“그럼 그가 조선을 어찌 대할 것 같나?”
“지금까지 한 것으로 보아 누구 밑에 있을 사람은 아닌 거 같네.”
“좋지는 않군.”
성혼의 말에 이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좋지 않지는 않지만.’
성혼을 통해 자세히 듣게 된 신유성의 소식은 파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우두법을 아무런 조건 없이 널리 알린 행위 그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칭송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허나 성혼은 신유성을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이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유성은 존재 자체가 명종에게 위협이었으니까. 지금도 신유성의 행동으로 인해 조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혼란을 가져올 걸세. 지금은 좋은 일을 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본색을 드러낼 거야.”
“그렇긴 하지.”
성혼의 우려를 이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이는 신유성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바꿔도 좋지 않을까?’
이이는 신유성이 한 일들을 곰곰이 살폈다. 전부 다 알 수는 없었으나 약간의 정보만으로 신유성이 어떤 인물인지 유추해낼 정도였다.
‘그는 항상 효율적이다.’
개인적인 욕망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을 마구 부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지번이 합류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지번의 집안은 유명한 집안이었다. 그런 사람이 합류했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면 어쩌면 믿을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나 하지.”
이이는 술을 권해 입을 막았다.
이후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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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