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6 / 0271 ----------------------------------------------
꿈틀거리는 욕망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세요?”
“그냥 인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유성이 항상 잘 먹던 햄버그를 먹다 말고 다른 생각을 하니 주녹정으로서는 걱정이 됐다. 행여나 음식이 잘못되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가요?”
주녹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모자라지.’
일하겠다는 사람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하고나 같이 일하자고 할 순 없었다. 지금도 명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거나 경비를 서는 일을 할 뿐이었다. 주녹정을 시중드는 이들은 따로 감시를 할 정도.
명나라에 가면 인재는 널렸지만 믿고 쓸 사람이 아니면 곁에 두기 어려웠다. 자칫 신유성의 야망이 알려지는 날에는 온갖 방해가 들어오니까.
이지번과 이지함이 있어 일을 많이 처리하는 게 가능했지만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니 사람이 부족했다.
주먹구구로 대충 일을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중간에 누군가 착복을 하게 된다. 주먹구구로 일하면 그러한 자들을 잡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신유성이 움직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살짝 떼먹어도 일반인들은 엄청나게 잘 살 수 있었다.
“이번에 날 만나겠다고 온 사람이 있는데. 신동이라고 소문났던 사람이야. 그런데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상공과 맞을 사람이라면 평범하게 대해도 따라올 거고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쓸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역시 뛰어난 사람이 많으면 편하니까 그렇지.”
“그럼 명나라에 한 번 가볼까요? 그쪽에도 뛰어난 사람은 많아요.”
“아니, 그건 사양하겠어. 인재 때문에 동창과 연관 있을지도 모를 사람을 끌어오고 싶진 않으니까.”
“힘내세요. 언젠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겠죠. 정 부족하면 성암이나 토정에게 얘기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겠지. 그나저나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는데?”
“그래요?”
슬쩍 손을 잡아주니 주녹정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침실로 향했다.
사랑의 비명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조용한 방안, 그윽한 차향과 고소한 향기가 함께 어우러졌다.
버터를 이용해 만든 빵의 맛은 향기만큼이나 고소했다. 이어서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쾌감이 증가한다.
이이는 조용히 빵과 차를 즐기다가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정말 맛있군요.”
“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이유다.”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움직인다.
“공정한 거래는 절대 천한 것이 아니다.”
이이와 만난 신유성은 질문을 받았다. 어째서 백성들에게 잘해주는 것이냐고. 신유성은 속이지 않았다.
“과연 그렇군요. 공정하다면 천하다고 할 순 없죠.”
“하지만 경전의 말을 따르자면 상행위는 그다지 권장할 것은 못 되는 것은 확실하다. 물욕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법이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경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경전을 읽었다고 해서 탐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으로?”
이이는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길어지자 신유성은 차를 다시 내오게 했다.
한참 지나서야 이이는 입을 열었다.
“법을 만들고 법을 수호할 힘을 세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 법을 만드는 사람과 수호하는 사람들도 욕망이 있다. 온 세상이 탐욕에 물들어버리면 과연 무엇으로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지요. 그리고 그런 일이 있다면 싸워야 하고요.”
“과연 탐욕을 억제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중도를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학문에 정진하여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전은 계속 이어졌다. 이이는 학문을 중요시했다. 진리를 찾아 거기에 맞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설파했다.
하지만 신유성의 의견은 달랐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법을 어기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욕망을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람이 욕심대로 행하면서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지르니 역시 좋지 않다고 봅니다.”
이이와 신유성은 평행선을 그었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욕망이 있기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는 것 아닌가? 아니면 죽지 못해 그냥 사는 것인가?”
“당연히 조상을 모시며.......”
가치관이 다르니 생각도 달랐다.
‘나와는 다르다.’
이이와 신유성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이는 신유성이 해낸 일을 폄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위험한 줄타기를 하시는구나.’
욕망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서 옮기는 것과 같아 보였다. 조금만 실수하면 찰랑거리면서 넘치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
‘부족하더라도 좀 더 비우는 것이 좋지 않은가?’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다. 넘치면 어떻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넘치는 것은 낭비이기에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생각은 자유다.
이이는 결국 더 얘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간극을 좁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유성은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구나.’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지번의 경우에는 가는 길이 같으니 갈라서게 될 갈림길을 만나기 전까지는 같이 걷겠다는 마음으로 돕고 있었으나 이이는 달랐다.
“편히 쉬시다 가시게.”
“감사합니다.”
결국 이이는 나진을 떠나 원래 계획대로 절에 들어갔다.
이이를 놓친 신유성은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놓친 물고기를 아쉬워 할 순 없는 법.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군.’
이이와 같은 천재는 아니더라도 똑똑한 사람은 존재했다. 조금 부족하다하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었다.
‘조직력! 조직력으로 행정을 더욱 발전시킨다.’
신유성은 이지번을 불러 사람을 천거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지번은 친우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한 가지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신녹에 거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어들인 것을 쌓아두기만 할뿐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건 문제군.”
신녹에 자리 잡은 야인 여진들은 모아놓은 것들을 팔아 부를 거머쥐었다. 약소부족이라고 해도 재력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신녹에 자리 잡으며 일하면서도 돈을 벌었다.
노동력을 제공하기만 해도 먹고 사는 것은 물론 여가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생겼다.
문제는 부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일을 하고 나서 하루의 시름을 씻어낼 정도의 맛있는 음식과 술 정도로 만족했지만 부자들은 달랐다.
맛있는 음식과 술은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다. 실제로 너무 많이 먹고 마셔서 질린 사람들도 있었다.
‘지루하다 이거군.’
다도는 취미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뭔가 더 즐길 수 있는 것이라.’
그때 문득 말과 관련된 것이 떠올랐다.
‘경마.’
여진인들은 말을 타는 기술을 겨루기도 했다. 말을 타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말을 타며 승마 기술을 습득하는 여진인들이었다. 그렇기에 무서운 기병으로 전환이 가능했다.
‘마창 시합 같은 건 위험하니까 안 되고. 역시 경마가 좋겠지. 약간의 돈만 걸게 하고. 상한선을 두면 되겠지?’
그냥 지켜보기만 해서는 금방 질리게 된다.
무엇인가를 걸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하나가 된 느낌.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도 같이 하는 편이 좋겠지.’
신유성은 바로 간단한 경마장 건설에 들어갔다.
신녹에는 때 아닌 경마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넓은 공터에 울타리를 쳤다. 그리고 한 쪽에는 급조한 관중석을 만들었다.
인력이 많다보니 만드는데 든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배를 만들기 위한 벌목은 계속 이뤄지고 있었기에 목재를 구하는 시간도 짧았다.
“시합을 하자. 누가 가장 빠른 말을 가졌는지. 가장 말을 잘 다루는지 겨루는 거다.”
“그거 재미있겠군요!”
여진족들은 하나 같이 호응했다. 원래 하던 일이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짝 내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말에도 급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최고의 말을 가지는 것 또한 명예 아니겠나?”
신유성은 슬슬 명예욕을 자극했다. 이에 다들 쉽게 넘어왔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경마장에서 시합을 하는 거네. 그래서 최고의 경주마는 기록에 남기는 거지.”
아예 책으로 만들어 기록까지 한다고 하자 여진족 부자들의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그럼 일단 한 번 해보자고.”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기수들은 금방 알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번로를 새긴 옷을 입고는 말 위에 올라탔다. 멀리서 봐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부자들은 돈을 걸었다. 야인 여진뿐만이 아니라 거래를 하러 왔던 해서 여진의 상인들도 슬쩍 참가했다.
“시작!”
징소리가 울리자 경주마들이 일제히 튀어나갔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약간 웅성거리는 정도. 하지만 경기장을 반쯤 돈 상태에서부터는 달라졌다.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점점 커졌다.
“달려!”
“더! 더! 더!”
응원은 갈수록 더욱 커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급기야 관중석을 뒤흔들 정도로 응원 소리가 커졌다. 경주가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말 하나가 독보적으로 질주하고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몰랐다.
허나, 비슷비슷한 상황.
말들이 결승선에 다가오자 심판은 눈을 부릅뜨고 결승선을 바라보았다. 어떤 말이 가장 빨리 들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들이 달리는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박력 있는 말발굽 소리가 공기를 진동케 했다.
“하하하하하!”
승리한 말이 선언되자 내기에서 이긴 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작은 행운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말의 주인인 남자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제일 빨라!’
물론 어쩌다 한 번 이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경주를 통해 진짜 가치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럼 다음 조가 시작하기 전에 일단 뭐 좀 먹지.”
신유성은 종이로 포장된 햄버거를 들었다. 살짝 식긴 했지만 먹는데 문제는 없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차를 마시자 주변에서는 너도나도 신유성을 따라했다. 그러면서 극찬했다.
“이것을 이렇게 먹는 방법도 있군요!”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햄버거 패티를 본 여진인들은 감탄했다. 야외에서 먹기에 딱 좋았다. 더구나 종이에 싸서 나오니 사치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이러면 손을 씻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겠습니다!”
신유성은 항상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을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정상 손을 씻기 어려운 상황은 존재했다.
하지만 종이에 싸놓은 음식이라면 직접 안 씻은 손으로 음식을 집는 것이 아니니 조금 더 괜찮게 느껴졌다.
“간단하게 먹기 좋지.”
빵이란 것 자체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신유성은 계속해서 군것질거리를 팔게 했다. 여진인들은 이것을 사먹으면서 경주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잘 풀리는 군.’
이이를 얻지 못했으나 미련을 떨쳐낸 신유성은 환하게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맑고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신유성은 하늘을 가슴에 품었다.
“으음.”
이지번의 편지를 받은 박지화는 고민에 빠졌다.
신유성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니 고민하는 것이었다.
‘가고 싶지만.’
하지만 현재 사는 곳을 벗어나면 인근의 돈 없는 양민들은 진맥 한 번 제대로 받아보기 힘들었다.
‘어찌 해야 하나?’
박지화는 고민에 휩싸였다.
한편, 박지화가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똑같은 편지를 받은 남자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잘 됐네.’
남사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