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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욕망
홍콩을 떠났던 에스파냐 상인들은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나?”
“아닌 것 같은데? 잘못 찾아왔나?”
주변에 지나가던 남만인, 포르투갈 선원을 붙잡았다.
“여기가 나가사키 맞는가?”
“맞는데? 홍콩에서 왔나?”
“잠시 얘기나 좀 하지.”
“맨 입으론 안 되는데?”
에스파냐 상인은 선원이 가리키는 곳에서 햄버거를 사줘야만 했다.
“이게 정말 맛있는 거란 말이지. 한 번 잡숴봐. 아웅!”
얼마 전부터 나가사키에서 햄버거가 팔리기 시작했다. 빵 사이에 햄버거 패티를 넣고 야채와 소스를 넣은 음식.
“허어. 이런 맛이!”
햄버거는 맛있었다. 에스파냐 상인은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는 한 개 더 샀다. 가격은 상당히 비쌌지만 그만한 값을 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놀라면 안 되지. 고급 음식점에 가면 튀긴 닭이 나오는데 이건 정말! 아아, 생각했더니 또 먹고 싶네.”
“튀긴 닭? 그런 것도 있나?”
“나중에 가서 먹어보면 뭔지 알게 될 거야. 그런데 물어볼 게 뭔데?”
“내가 듣던 나가사키랑 너무 다른데 무슨 일 있나?”
“아, 그거? 얼마 전에 여기 영주가 바뀌었어. 전쟁하던데 정말 무서운 인간들이야. 얼마 전 요 섬을 완전 정복했으니까 밉보이지 않는 편이 좋아. 참고로 전에 있던 상인들이 다른 쪽 편을 들어서 그냥 다 잡아버렸다고 해. 우린 말려들기 싫으니까 허튼 짓 하지 말고.”
선원은 대답을 하고는 떠났다.
어떻게 잡을 틈도 없었다.
“일단 상인 회관으로 가보는 게 좋겠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에스파냐 상인은 상인 회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밀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왔다! 한정판 나왔다!”
“뭣이?”
회관 안에 있던 상인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뛰었다. 에스파냐 상인은 무시무시한 돌격에 옆으로 피해야만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따라가 보자.’
상인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호기심이었다. 상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큰 손해였다.
남들 다 이득 볼 때 혼자 손가락 빠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인 정신!
갤리온을 타고 온 에스파냐 상인들은 함께 뛰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을 보았다. 에스파냐 상인들은 뭔지도 모르고 일단 줄을 섰다.
“대체 이게 무슨 줄이지?”
“뭐야? 그것도 모르면서 줄 섰어?”
“뭔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림 화보를 사기 위해 선 줄이야.”
“그림 화보?”
에스파냐 상인이 호기심을 보이자 앞에 선 남자는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요즘 들어서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그렇게 야릇하단 말이지. 심심할 때 보면 딱 좋아.”
“대체 뭔데?”
“여자 나체 그림을 기가 막히게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야.”
“뭐?”
기가 막혔다. 벗은 여자의 그림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니. 하지만 일단 호기심을 풀기 위해 꾹 참았다. 그리고 책을 겨우 샀다.
“마지막입니다.”
에스파냐 상인들이 사자 딱 떨어졌다.
“아아아아아악! 안 돼!”
바로 뒤에서 절규가 흘러나왔다.
‘이거, 팔면 돈 좀 되겠는데?’
누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파는 것. 이 또한 상인이 가져야 할 정신이다.
욕망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
어쨌거나 팔기 전에 확인이라도 해볼겸 책을 펼쳤다.
“헛!”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얼굴 표정이 살아있었고 선이 살아있었다. 부드러운 선은 절로 손으로 더듬어보고 싶어지는 곡선. 눈이 선을 따라 은밀한 곳으로 향했다. 허나!
“아아!”
안타깝게도 은밀한 곳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장난치는 것처럼 웃고 있는 모습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이런 그림이.”
“좋지? 진짜 만나고 싶으면 유곽에 가봐.”
“뭣이?”
“돈으로 길을 열어야 할 거야. 아무나 만나주지는 않는 여자니까.”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에스파냐 상인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은 유곽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슴에는 화보를 품고.......
유곽은 성황이었다. 시끌벅적 했는데 가게마다 등급이 있었다. 돈이 부족한 선원들을 받아주는 곳부터 부호들만 들랑거릴 수 있는 최고급 가게까지.
화보의 주인공은 최고급 가게의 최고 대우를 받는 기녀였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돈을 받았다. 대화에도 술자리에도 요금이 따로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하룻밤 같이 자는 것에는 엄청난 금액을 내야만 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몇 년 지나면 시들어버리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 가격에 불만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화보의 주인공을 찾는 부호들은 금액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알려진 여인을 품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려는 것이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아름다움은 한 번 시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얼마냐? 얼마면 내 여자가 될 거냐? 응?”
에스파냐 상인은 먼발치에서 술을 마시며 여인이 남자들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시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매혹적이구나.’
에스파냐 상인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으나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는데 요금이 들었다. 더 가까이 가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화보의 주인공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돈으로 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아아!’
미소를 보는 순간 화보가 떠올랐다. 펴보니 정말 비슷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다 보았을까?’
에스파냐 상인은 홀린 듯 그림과 화보의 주인공을 번갈아 보았다.
이후 에스파냐 상인은 열심히 일했다.
일본과 명나라를 오가며 열심히 다기를 비롯한 상품들을 실어 날랐다. 일본에서는 은이 나오고 명나라에서는 일본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중간에 몇 번 오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은을 벌 수 있었다.
이후 모국에서 잘 팔릴 것 같은 상품들을 사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갤리온을 타고 에스파냐에서 온 상인들은 좀처럼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길을 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하룻밤의 영광을 위해서 악착 같이 돈을 벌었다. 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갤리온으로 움직이니 금방이었다.
요시시게는 보고를 받았다. 갤리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배를 가진 에스파냐 상인들에 대한 보고였다.
“그들과 접촉해보도록.”
신유성이 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시시게도 마찬가지였다.
‘남만인의 배는 먼 곳으로 가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해.’
더 먼 곳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아주 중요했다. 섬이기 때문에 바다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시게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에 탔던 조선공이었다. 에스파냐 상인에게 파격적인 양의 은을 내놓았다. 은을 보자 상인은 조선공을 남기기로 했다.
이렇게 갤리온에 탔던 조선공, 알폰소는 그렇게 나가사키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북해도에서 온 미구엘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부가 늘어나자 사람들의 욕망은 폭발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울 땐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못한다. 하지만 생활에 여유가 생기니 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남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거나 술을 마시는 데 쓰는 것이 고작인 삶은 지루할 뿐이었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신녹에 정착한 여진인들은 경마장에 열광했다.
한 달이 지나자 ‘이 달의 챔피언’ 상패가 주어졌다. 해당 날짜와 지명 그리고 이룬 업적이 적힌 상패였다. 이것이 주어지자 상패의 주인이 된 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러자 별 것 아닌 상패는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도 갖고 싶은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훔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상패가 인정해주는 명예가 중요했다.
더 빠른 말을 소유했었다는 명예.
그것을 갖기 위해 말 소유주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더 잘 먹이고! 가끔 달려주고!”
“넌 너무 커! 네가 타면 말이 빨리 못 달릴 거다!”
여러 가지 연구가 거듭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말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돈 좀 번 사람들은 저마다 최고의 말을 소유하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가지고 있던 욕구가 상패로 인해 더욱 불붙은 것이었다.
경마장을 지나가던 신유성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경주가 없는 시간에는 이렇게 훈련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뭐 더 필요한 거 없는가?”
“관중석을 좀 더 늘리면 어떨까요? 먹는 것도 좀 더 많이 팔고요.”
“그렇게 하라.”
신유성이 허락하자 바로 가신들이 나서서 일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하지만 서두른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들이밀어 봐야 역효과가 나기 쉽다. 그러니 신유성은 불만이 어느 정도 차오르기 전에 다른 것을 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아껴두었다가 조금씩 풀 생각이었다.
신녹을 다 둘러본 신유성은 배를 타고 다시 나진으로 돌아갔다.
신유성이 신경 써서 만든 경마장의 소문은 빠르게 여진족 사이에 퍼졌다. 거래를 위해 신녹에 들렸다가 들려본 경마장은 여진인들에게는 멋진 장소였다.
최고 수준의 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맛있는 음식들을 쉽게 사먹으니 정말 재미있었다.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계속 경주해서 최고 점수를 내면 상패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상패?”
“네, 그 달의 최고 경주마라는 칭호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타이란은 진한 흥미를 느꼈다. 최고의 경주마를 보유한 마주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입증 받는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우리도 할까?”
“하는 거야 나쁘진 않지요. 하지만 신녹의 명성을 능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쪽에는 여러 곳에서 모이니까요.”
야인 여진을 비롯해 해서 여진 그리고 건주 여진까지 신녹에서 거래를 할 정도였다.
모든 여진족이 먼 곳에서 찾아가는 곳, 신녹.
해서 여진의 영역에는 다른 여진족이 들어오기 힘드니 경마장을 만들어도 반쪽짜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럼 신녹에 가봐야겠군.”
타이란은 움직이기로 했다. 멋진 곳으로 변했다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인들과 함께 대군이 타이란과 함께 움직였다.
남사고는 나진에 도착했다.
‘여기가 그곳인가? 참으로 활기차구나.’
이이가 느꼈던 것을 남사고도 그대로 느꼈다.
‘왕이 나올 징조로구나.’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가득한 것을 보며 남사고는 불현듯 느꼈다. 그리고 친우의 편지를 이해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남사고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우를 만나게 되었다.
“어서 오게.”
“정말 대단한 곳이야.”
“자네가 도와준다면 더 대단한 곳이 되겠지.”
나이를 떠나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두 사람이었다.
“자, 이리 와서 앉게.”
이어서 다과가 나왔다. 용정차와 카스테라였다.
“이건 처음 보는 것이군.”
카스테라는 부드러웠다. 이어서 용정차를 마시니 입안이 개운해지며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스테라를 또 먹었다. 그리고 차를 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와 카스테라가 모두 사라졌다.
“허허, 요망한 음식이군 그래.”
“하하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많다네.”
“이거 정말 겁이 나는구만.”
격의 없는 웃음이 이어졌다.
“지금은 도독나리께서 자리에 안 계시니 며칠 기다려야 되는데 괜찮겠나?”
“그야 이를 말인가? 여길 좀 더 둘러봤으면 싶네.”
“내 사람을 붙여주지.”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지번의 일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사고는 실망하지 않고 물러났다.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실례니까.
‘참으로 훌륭한 곳이군.’
남사고는 여기 저기 둘러보다 감탄했다. 특히 학교란 곳을 보고는 함께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남녀노소 배움을 원하는 이는 누구든 배울 수 있다니.’
한자가 아닌 한글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남사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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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