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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80화 (8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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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욕망

기오창가의 딸 체첵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진에 도착하긴 사르나이보다 먼저 했지만 결국 신유성의 품에는 뒤늦게 안기게 되었다.

‘상관없겠지. 나만 잘 하면 돼.’

행여나 사르나이가 심하게 군다면 피곤한 일이었다. 체첵이 걱정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신유성에 대한 것은 별 걱정이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섬기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르나이를 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신유성은 체첵을 안았다. 사르나이가 육감적이라면 체첵은 가냘픈 꽃과 같았다. 심하게 대하면 꺾일 것 같은 느낌.

‘한 송이 꽃과 같은 느낌이네.’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리고 신유성에게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 그렇게 필사적이지?”

“이제부터 제가 모실 분이니까요.”

“그게 전부인가?”

관계가 끝나고 신유성은 궁금해졌다. 체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

“부족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이젠 도독님의 여자입니다. 부족을 챙겨주신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진짜?”

“네.”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말을 확인하자고 기오창가를 비롯해 오도리족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는 일이었다.

“말만 가지고 믿기 힘든 건 알지?”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제 도독님과 도독님이 안겨주실 아이들을 위해 살 테니까요.”

말을 마친 체첵은 신유성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전까지 처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행동을 했다.

얼굴이 점점 아래로 향하더니 남자의 보물을 머금었다.

신유성은 천국을 보았다.

연이어 두 명의 여진 여인을 취한 신유성은 슬슬 때가 무르익은 것을 느꼈다.

‘여진만 정리한다면.......’

명나라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일부러 전쟁을 할 필요는 없지.’

가정제는 무능했다. 그래서 좋았다.

경쟁 국가의 수장이 무능하면 무능할수록 박수를 쳐주고 싶어지는 법이다.

조선?

조선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정은 명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명종은 임금이다. 그러나 명종이 군왕으로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정왕후를 등에 업은 윤원형 때문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대신을 중히 쓰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꼼수 100단의 윤원형을 잡기란 힘들었다.

무엇보다 윤원형을 쳐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문정왕후가 가만히 있질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세상을 뒤집을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거느렸다고 한들 우두머리가 제대로 쓰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진 말아야지.’

이율곡이란 천재를 놓쳤지만 그렇다고 신유성의 곁에 천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지함은 천재였다. 이산해도 천재였다.

천재가 두 명이나 있으니 끝내줬다.

여기에 박지화와 남사고도 합세했다. 이지번도 있었다. 천재라고 하기에 부족할진 몰라도 열정하나만큼은 진국이었다.

또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었다. 신페이가 대표적이었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많이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순 없다.

‘그리고 세계를 꿀꺽!’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세상을 이용하면 될 뿐.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는 정말 맛있는 것이었다.

신유성은 침을 닦고는 다음 수를 생각했다.

‘남사고가 아메리카까지 뚫어줄 것이다. 지금 할 일은 무조건 베링해까지 길을 트는 것.’

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순 없었다.

‘이제 슬슬 일본 영주들을 구슬려 볼까?’

전쟁? 필요하다면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끊임없이 일본 영주들이 원하는 상품을 쏟아 부었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준다. 그리고 끊어버리면?’

미래의 기억에 존재하는 마케팅 기법이었다. 일단 공짜 혹은 아주 싼값에 마구 물건을 푼다. 그리고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가격을 올려버린다.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안 쓴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쓰는 것을 보면 안 쓰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다들 노예가 된다.

신유성도 경험했던 마케팅이었다.

‘좀 더 풀어야지.’

상거래를 더욱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필리핀으로 서둘러 내려가야 해.’

나가사키에 나타났던 갤리온을 탄 상인이 물어다 준 정보가 신유성의 신경을 자극했다.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 제독이란 자가 계속해서 필리피나스, 필리핀 정복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가야만 한다.’

정복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다. 필리핀에 대한 정보도 사실 부족했다. 미래의 기억 속에 필리핀은 못 사는 나라 중 하나로 기억될 뿐이었다.

‘항주에 들렀다가 가봐야겠군.’

에스파냐에 필리핀을 빼앗길 순 없었다.

갑작스러운 신유성의 항주행이 결정 되었다. 직접 배를 타고 필리핀까지 간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만류했다.

“그냥 계시면 안 되나요? 위험한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해야죠.”

주녹정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항해는 언제나 위험한 것이었다.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뱃사람은 그냥 목숨을 바다에 맡기고 산다고 생각하는 직종이었다.

“가야한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을 보내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의사 결정이 오래 걸린다.

‘가는데 한 세월. 오는데 한 세월.’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보면 늦는다.

에스파냐가 필리핀을 정복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불리해진다고 신유성은 판단했다. 그래서 먼저 가려는 것이었다.

“위험한 곳이라 들었습니다.”

“괜찮아.”

나츠의 만류에도 신유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안 가면 안 되나요?”

매화의 울먹거림도 신유성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여자들은 신유성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물러났다. 걱정이 되지만 신유성의 뜻이 확고한 이상 더 막을 순 없었다.

“그대에게 이곳을 맡길 테니 잘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신유성은 나진을 이지번에게 맡기고는 배에 올랐다. 그러나 신유성이 탄 배는 일반적인 배가 아니었다.

북해도의 미구엘이 가르친 조선공들이 나진에서 소나무로 만든 전투용 캐럭이었다.

전투용 캐럭만 5척. 나머지 5척은 북해도에서 삼나무로 만든 수송용 캐럭들이었다.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북쪽으로 가야하지 않나?”

남사고가 나섰다.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야 할 양반이 갑자기 따라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탐험은 어찌하고?”

“아직 준비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핑계로 남사고는 필리핀을 먼저 가보고자 했다. 옆에선 이지번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사고가 없으면 이지번의 일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같이 가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설득했으니 남사고를 물리칠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신유성은 배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선.

“드디어!”

판옥선 건조가 끝나 배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왜구토벌허가를 받은 사대부의 자식들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사병 조직에 나섰다. 허나 맨입으로 목숨 걸고 토벌에 나설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노비들을 꼬드겨 배에 타게 했다. 공을 세우면 면천시켜준다고.

허나, 바다로 나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어졌다.

오가는 배가 많긴 했다. 하지만 왜구로 보이는 배는 없었다.

대부분 신유성의 상선이었다. 간혹 군선이 있었지만 이들이야말로 왜구 토벌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진 신유성의 해군이었다.

“왜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입니다.”

“분명 이쪽이 맞습니까?”

항구로 돌아온 사대부의 자식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많이 썼다. 그런데 결과가 안 나오니 속이 터졌다. 배를 바다로 보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돈이 상당히 깨졌다. 배에 탄 사병들이 먹을 것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일을 시키는 노비라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싸워야 하는 이들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안 먹였다가 힘없어서 항복해버리는 일이 생기면 매우 좋지 않았으니까.

침몰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지만 나포 당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수치이며 큰 손실이었다.

“이쪽에서 자주 나온다고 하던데.”

“하지만 안 보이지 않습니까?”

왜구들은 더 이상 조선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명나라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의 영주들은 어느 순간부터 해적질을 포기했다.

배를 만들어서 빼앗아오라고 시켰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산동에서 명나라 수군에게 털리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다고 유구 왕국을 거칠 수도 없었다.

유구 왕국은 이미 신유성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 남부를 터는 것도 어려웠다. 한 번도 섬을 들리지 않고 바로 항해를 할 수 있다면 별개의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항해는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다들 하지 않으려 했다.

이 때문에 문제가 심각했다.

배도 돈이다. 자원을 들이고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이들을 잃게 되는 것은 곧 엄청난 손실을 의미했다.

가끔 약탈에 성공하고 돌아오는 배가 있었으나 이들은 극히 소수. 이들이 털어온 돈을 배를 만들고 병사를 징집하는 비용으로 쓰면 남는 것은 별로 없다고 봐야했다.

그렇지만 신유성하고 거래하면 편하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신유성은 고급 물품 이외에도 안 다루는 것이 없었다.

신유성의 허가를 받은 상인들은 부탁만 하면 뭐든 가져다 줬다. 비용을 지불하기만 하면 뭐든 구해다 주려고 했다.

이렇다보니 딱히 해적질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영주가 많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명나라에는 왜구가 나타났다.

수수께끼 같은 일.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속임수가 있었다.

왜구라고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왜구가 아니었다. 명나라 해적들도 있었고 혹은 자작극을 벌이는 자들도 있었다.

옷차림과 일본도를 이용하면 남들이 왜구로 생각하게 만들기 딱 좋았다. 그냥 남한테 누명을 뒤집어 씌워서 자신들을 쫓기 못하게 하려는 시도에서 벌이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대부의 자식들은 얼른 왜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론 안 되겠으니 일단 왜구들과 한통속인 놈들부터 찾아봅시다.”

“그럽시다.”

사대부의 자식들은 의기투합했다. 술을 마시며 새로이 출정식을 다시 한 이들은 기분이 좋았다. 무엇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다에 나와 한 일은 간단했다.

일본을 오가는 배를 찾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상선들이 일본을 오갔기 때문이었다. 부산포에 가면 널린 것이 왜선이었다.

“저 놈들이 대부분 대마도로 가는 모양입니다.”

“대마도 놈들이 중간에서 눈치만 보고 이리 저리 붙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어쩌면 그 놈들이 왜구와 한통속일지 모릅니다.”

누군가 던진 말에 사대부의 자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럼 일단 하나 잡아서 족쳐봅시다.”

혈기에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부산포를 떠나 대마도로 향하선 상선을 나포한 것이었다.

“바른대로 고하라! 네 놈들이 왜구와 내통한 놈들이렸다!”

배에서 이뤄진 즉석 고문. 하지만 상선의 선장은 죽어도 아니라고 외쳤다.

이를 본 선원들은 분노했다.

‘선장이 무슨 잘못이라고.’

선장은 선원들을 꽤나 대우해주던 비교적 좋은 선장이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선장 밑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일이 고된 것은 변하지 않지만 좋은 선장 밑에 있다는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복이었으니까.

누군가 배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선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움직였다.

물에 뜰만한 것을 가지고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엇?”

파도에 휩쓸린 이들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괜찮을까요?”

“저러다 죽는 거지 뭐 있겠습니까?”

사대부의 자식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문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곳에는 선장 다음으로 탈출하지 못한 선원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특별히 데려온 역관은 사대부의 자식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선원들은 선장과 똑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결국 사대부의 자식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배와 상품은 팔아치웠다.

“이거 짭짤하군요.”

돈을 나눠 가진 사대부의 자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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