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1 / 0271 ----------------------------------------------
흔들리는 조선
처음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 실수해서 배가 침몰한 것이라고 다들 여겼었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배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날씨가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돌아오지 못하는 배들이 늘어나니 조사에 들어갔다.
“분명 어떤 놈들이 털고 있을 거다! 잡아야 한다!”
후지바야시 켄은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어떤 놈이!’
의심이 가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켄이 의심하는 자들은 일본의 영주들이었다. 조선이 아니었다.
“놈들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알려지면 끝입니다.”
만만해 보이면 엉긴다. 이지번도 켄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진을 비롯해 녹둔과 신녹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필요한 물품이 많아져서 이에 맞는 경제력을 갖춰야만 했다. 모든 것을 자급할 수 없는 상황이니 교역은 필수였다. 그런데 해적 행위로 교역이 타격을 받으면 힘들어진다.
“일단 경고를 보내도록 합시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요.”
“오래 참지는 못합니다.”
이후 일본의 영주들은 신유성의 이름으로 경고가 날아갔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굴 쳐?”
“미친놈들이! 누구냐! 누구야? 엉! 지금 날 죽이려는 놈들이 있다!”
힘이 약한 영주들은 기겁했다.
큐슈가 요시시게에게 넘어간 것과 요시시게가 신유성의 가신이란 것을 모르는 영주는 이젠 없었다. 큐슈와 거래를 했던 상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싸우면 필패입니다.”
요시시게는 계속해서 군선을 찍어냈다. 멈추지 않았다. 선원은 곧바로 채워졌다. 선원이 되면 돈을 많이 벌 기회가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군선에 탔던 이들은 약탈을 해서 배당을 받고는 은퇴해버렸다. 이들의 무용담은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배를 타려는 젊은이들이 큐슈에는 넘쳐났다.
일부 돈을 탕진한 숙련 선원들은 선원 학교라는 것을 세웠다. 신유성이 학교를 만들자 허가를 받아 선원을 키우는 일을 시작한 것.
이것이 대박을 났다. 배당 받는 것보다 더 버는 이들이 늘어났다.
초보 선원이 넘쳐났다. 이것이 요시시게가 멈추지 않고 배를 찍어낸 이유였다.
이런 사정은 일본의 영주들에게 알려져서 아무도 큐슈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 요시시게의 싸움 방법이 얼마나 질척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일단 탈탈 턴다. 재물만 털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털어간다. 집도 해체해서 가져갈 정도로 지독하게 턴다.
그렇게 해서 약해지면 기병으로 쓸어버린다.
기병은 일본 영주들이 키울 수 없는 병종이었다. 말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었다.
결국 일본 영주들의 선택은 멍청한 짓을 저지른 해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적은 잡히지 않았다.
간단했다.
정말로 없었으니까.
허나, 이지번과 켄은 이를 믿지 않았다. 결국 해안선을 털리기 싫은 영주들은 계속 거래를 하는 조건으로 해금령을 내리기로 했다.
“직접 와서 감시하시오!”
항구를 아예 내주었다. 그것이 털리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영주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존심이 강한 영주들은 조금 더 버텼고 이 때문에 이들은 의심을 사게 되었다.
한편, 신유성은 항주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필리핀으로 가기 전에 준비를 더 하기 위해 들린 것.
수송선에 가득 싣고 온 상품을 처분해 사선을 더 사들였다. 그리고 사선에 태울 선원을 구하기 위해 항주의 수군 책임자와 조율을 하는 중이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토벌을 위한 것이라니까.”
“그래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척계광은 진땀을 흘렸다.
‘그냥 좀 가지.’
공을 세워 절강도사첨서에 올랐지만 이번에 맞이하게 된 임무는 그 어떤 전투보다 힘들었다.
‘지켜야만 해.’
병사를 지켜야만 했다. 척계광의 상관은 모든 일을 척계광에게 떠맡기고는 잠적했다. 이유? 간단했다.
신유성이 병사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병사들을 그냥 달라고 했나? 보수와 보급은 다 내가 책임진다고 했지 않나? 그런데 왜 안 되는 건가?”
“갑자기 그렇게 수군을 빼 가시면 이쪽에 공백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내가 대신 싸우러 간다고 하지 않나?”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여기 방어가 약해지면 전부 제가 책임지게 됩니다.”
신유성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척계광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젠장. 그냥 가주세요. 제발.’
척계광에게 내놓으라고 하는 병사들은 척계광이 신경 써서 키운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내놓으라고 하니 미칠 것 같았다.
허나 신유성은 그냥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범상치 않은 인간이야. 힘을 좀 뺄 필요가 있겠어.’
명나라의 황제인 가정제가 헛짓을 하고 간신 엄숭이 날뛰며 명나라 군대가 많이 약해졌지만 역시 인물이 많은 나라였다.
척계광은 그만큼 뛰어난 장수였다.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무너지는 명나라의 수명을 수십 년은 더 연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신유성은 판단했다.
“그렇다면 말이네. 만약 내가 토벌에서 실패하면 자네가 책임지겠나?”
펄떡.
척계광의 심장은 죽어라 뛰었다. 신유성이 장계에 ‘병사를 지원 받지 못해 패했습니다!’하고 쓰기만 하면 날아가는 건 척계광의 목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키운 병사들을 내놓는 것은 상당히 아까웠다. 자신이 키운 병사들을 타인의 손에 넘기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젠장.’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상대는 정1품 도독이자 황제의 부마.
계급으로 찍어 누를 순 없는 상대였다.
“그럼 조금만.......”
결국 선택은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뿐.
‘걸렸군.’
상대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유성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척계광의 뜻에 순순히 따라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일단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긍정일 뿐!
“그래 얼마나 지원해줄 텐가?”
“오.......십 정도면 되겠습니까?”
“오십? 지금 오십이라고 했나?”
50명. 배 한 척에 태우면 끝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럼 좀 더 해서 육십은 어떻습니까?”
척계광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지금 새로 산 사선이 10척이네. 육십 가지고 뭘 어쩌란 건가?”
사선 하나에 100명은 탈 수 있다. 60명 가지고는 사선 한 척 움직이는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10척에 필요한 1000명을 내줄 순 없었다. 1000명을 내주면 척계광에게 남는 병력은 그야말로 한줌에 가까웠다.
“그럼 어느 정도.......?”
‘두렵다. 듣고 싶지 않다. 두렵구나. 아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척계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답을 기다리면서도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모순적인 마음을 품고.
“최소한 칠백은 내주시게나.”
“헉!”
‘도둑놈!’
척계광의 마음속에서 신유성은 순식간에 도독님이 아니라 도둑놈으로 격하 되었다.
“왜? 어렵나?”
“안 됩니다. 그렇게 많이 데려가시면 이곳에 공백이 너무 크게 생깁니다.”
“흐음. 그럼 육백?”
척계광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흔들었다.
“그렇게 힘든가?”
“네. 힘듭니다.”
‘당신 때문에 힘듭니다.’
신유성은 힘들어하는 척계광은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래, 그렇게 계속 힘들어 하시라.’
“그럼 딱 잘라서 오백으로 하지. 더 이상은 내릴 수 없네. 만약 이마저 거부한다면 내가 원하는 숫자의 병력이 나올 때까지 여기 있겠네.”
신유성은 명목뿐이라고는 해도 명나라의 도독이었다. 그렇기에 항주에 있는 동안에 드는 비용은 모두 항주에서 계산해야만 했다. 신유성에게 달라고 할 순 있었다. 그러나 돈 달라고 했다가 또 뭔 소릴 할지 모르니 그게 두려웠다.
“힘들지만....... 준비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생각했네.”
신유성은 그렇게 척가군 500명을 뜯어냈다. 척계광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준비에 들어갔다.
새로운 상관을 맞이하게 된 척가군 500명은 처음에는 꽤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도독인 신유성에게 함부로 할 순 없는 법. 결국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했다.
“한 명씩 거느려서 확실히 가르친다.”
신유성은 500명은 인근의 다른 지역의 병사들로 채웠다. 이들은 모두 파릇파릇한 애송이들. 신입들을 본 척가군의 표정은 더욱 썩어 들어갔다.
‘저것들을 어느 세월에 가르쳐?’
하지만 해야만 했다. 척가군은 결국 신입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배를 타기 전에 기초적인 것이라도 가르쳐야만 했다. 안 그러면 배에 탄 뒤에 고생하니까.
“뭣이? 누군가 약탈을 하고 있다고?”
항주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진에서 연락이 왔다. 상선이 털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습니다. 신출귀몰해서 잡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영주들은 조사해봤고?”
“했습니다만 수상한 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강탈당한 물품들은 시장으로 나오지 않았답니다.”
“으음.......”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신유성의 세력이 금방 쪼그라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범인 색출에 전력을 기울이라고 전해. 그리고 모든 지휘는 이지번과 후지바야시 켄이 맡아서 한다. 범인 색출과 최악의 경우 전쟁 결정은 이지번이 그리고 군사 작전은 켄이 책임자다.”
“안 돌아가십니까?”
신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정도의 문제는 내가 아니어도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해.’
모든 것을 신유성이 해결하다보면 결국 신유성에게만 의존하려는 성향이 생기게 된다. 책임을 신유성에게 미루고 아무 것도 안 할 가능성도 있었다.
작은 조직이라면 신유성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꿈꾼다면 그럴 순 없었다.
누군가를 믿고 써야만 했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순 없었다.
‘잘 할 거야. 우린 그렇게 약하지 않아.’
신유성은 자신이 해온 일을 믿기로 했다.
‘믿어야 해.’
불신한다면 거대한 제국은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내가 없어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난 지금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20척이 전력이라고 봐야 하나?’
얼마 뒤, 신유성은 20척으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고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다.
“저는 모리타씨의 배에 탔던 선원입니다.”
신유성이 필리핀으로 떠나고 얼마 뒤, 나가사키에 귀환한 선원이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선 약탈 속에서 드디어 증인이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모리타? 어디의 모리타지?”
“북해도입니다.”
“음.”
질문을 하던 후지바야시 켄은 표정을 굳혔다.
“모두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예, 그러니까 조선인들이 탄 배였습니다. 왜구의 소굴 어쩌구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선원들은 조선어를 익혔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선인들이 탄 배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영주들이 아니었군.’
엉뚱한 곳을 협박하고 조인 결과가 되었다. 좋지 않았다.
선원은 계속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에서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고 하더니 이런 곳에 쓸 줄이야.’
후지바야시 켄은 곧바로 북해도의 신페이에게 정보를 전했다.
연락선을 통해 전해진 소식에 신페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허허. 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
화가 잔뜩 났는데 욕이 나오질 않았다. 입을 벌렸더니 실없이 웃음만 나왔다.
“왜 그러세요?”
“우리 상선 건드린 놈들이 어디 사람인지 밝혀져서.”
“그래요? 그럼 얼른 잡아야죠.”
“조선 사람이라고 하는데?”
신페이의 부하는 표정을 구겼다. 일본 영주였다면 자체적으로 탈탈 털어버려도 누가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선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신유성이 공을 들여서 무너뜨리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조사한다. 어디의 어떤 놈이 무슨 생각으로 털었는지 알아내.”
“알겠습니다.”
“여유 정보원은 모두 이 일에 투입한다.”
부하가 나가고 난 뒤 신페이는 이를 뿌득 갈았다.
‘감히 주군의 배를!’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