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85화 (8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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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조선

신유성이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조선에서는 민심이 동요하고 있었다.

“젠장! 이게 무슨 소리야!”

“다 죽으란 건가!”

북쪽에서 남쪽까지. 불평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재작년에 기근이 있었다. 작년에도 기근이 발생했다. 연속으로 기근이 이어져서 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수탈이 더 심해지니 민심이 폭발 직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소문이 돌면서 결국 폭발한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엿 같이 사느니 차라리 산에서 죽겠다!”

소문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세금을 이용해 군선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왜구를 턴 것이 아니라 신유성의 배를 공격했다는 소문이었다. 상선을 털어 사대부 양반가의 자식들이 배를 불리다 걸렸다는 것.

“왜구 잡는다더니 노략질이나 하고! 에이!”

산으로 들어간 이유? 간단했다. 함경도로 가기 위해서였다.

함경도에 가서 신유성의 병사가 되면 먹고는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린 소문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또 다시 수탈을 감행하고 있다.

처음의 두 개의 소문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은 헛소문. 하지만 두 개의 소문이 사실이니 그 사이에 끼어있는 헛소문도 사람들은 믿어버렸다. 애초에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불만이 팽배해진 시점에서 그저 불이 붙은 것뿐.

이성을 홀라당 타버리고 분노가 자리를 차지했으니 진실 여부 따윈 신경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조선을 벗어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군역을 치러야 할 사람들까지 여기에 동참해 함경도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이탈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민심이 동요하고 있었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다.

“막아야 합니다! 이건 역모입니다!”

각지의 지방관들에게 인구의 이동을 막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병사들이 동원되었다.

함경도로 가는 모든 길을 막은 것은 물론 거주지를 떠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노비로 만들어버렸다.

죄인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노비가 되었다.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힘듭니다.”

세금을 낼 사람이 확 줄어버렸다. 양반들은 이 문제에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까.

“그럼 걷어야지요.”

윤원형은 결국 양반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청계천.

“아버지 괜찮으세요?”

“콜록! 괜찮다.”

김종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장이로 조정에서 일하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병자에 지나지 않았다. 폐가 망가진 탓이었다.

“기다리세요. 제가 약을 구해올게요.”

“아니다. 됐다. 그냥 둬라.”

“아버지.”

“됐다. 이것도 다 운명인 거지.”

김종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을 못하게 된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집안은 빠르게 기울었다. 이에 김종수는 그간 배운 기술을 이용해 일을 했지만 병세가 워낙 위중해 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아버지.......”

“난 됐다. 네가 이제 집안을 이끌어야지.”

“죄송합니다.”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김종수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놈들.’

향할 곳 없던 분노는 조선의 왕과 양반들에게 향했다.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한 게 다 그들 탓으로만 느껴졌다. 소문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곳으로 가면 사실 수 있을까?’

문득 김종수는 신유성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서 같이 놀던 꼬마 친구. 그 꼬마 친구가 이제는 한 없이 올려다보아야 할 위치에 섰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이제는 말 붙여보기도 힘든 상대. 원래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흘려보낼 일이었다. 너무나 차이가 나니 만나봐야 대등하게 마주할 수 없으니까. 신분의 격차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앓아누우니 멀리하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얘기라도 해봐야지.’

어린 시절 추억을 조금이라도 떠올려준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준다면.

그렇다면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의원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되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저 함경도에 다녀오겠습니다.”

“왜?”

“도독나리께서 어릴 적에 저랑 어울리셨잖아요. 부탁 좀 해보려고요.”

“아서라. 가서 괜히 혼쭐난다.”

김종수의 어머니는 말렸다. 그러나 김종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아버지 못 보냅니다.”

“이 놈아. 너까지 잘못되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다 방법이 있어요.”

다음 날 김종수는 나루로 향했다.

나루에 도착한 김종수는 상인을 찾았다.

‘분명 상인들과 연관이 있어.’

사대부의 자식들이 신유성의 상선을 털었다가 쫄딱 망한 일은 조선 전체에 퍼졌다. 김종수도 익히 들어 아는 일. 그렇기 때문에 바로 함경도로 움직이지 않고 상인을 찾았다.

“혹시 함경도에서 온 상인이 누군지 아시나요?”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닌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함경도에서 왔다는 상인은 거래를 하느라 무척 바빴다.

김종수는 말을 걸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왔다.

“남 장사하는데 왜 그러고 계슈?”

“아, 저 분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요.”

“내가 저 사람하고 친군데 말해보슈.”

“진짜 친구 맞습니까?”

김종수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싫은 말구.”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이런 곳에서 갑자기 그러면 믿기 힘든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거야 그런데. 대체 뭔 일이슈?”

“그게 함경도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요.”

순간 남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거긴 무슨 일로?”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알았수다. 좀만 기다려보슈.”

남자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몇 마디하자 남자가 상인을 대신해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진짜 친구였나보네.’

상인은 김종수에게 다가와 용건을 물었다. 김종수는 보는 눈을 의식해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허허, 아버지를 살리고 싶으시다고?”

“네, 부탁드립니다. 무리인 건 알지만 꼭 좀 부탁드립니다.”

김종수는 길 위에서 넙죽 절을 하며 애원했다.

“어려운 건 아닌데.......”

상인은 머리를 굴렸다. 원래 상인의 정체는 닌자들에게 포섭된 상인이었다. 조선의 상인들은 하나둘 후지바야시 켄이 보낸 상인들에 의해 포섭 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유성의 밑에 있게 되면 하게 될 거래를 생각해보라는 말 때문이었다.

조선에서는 상인을 좋지 않게 여기는 문화가 존재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돈 얘기를 하는 것을 나쁜 것이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유성은 상인들을 적극 활용했다.

왜관을 통해 퍼진 소문. 그리고 사대부의 자식들이 털어먹은 상선들의 가치.

소문이 겹치고 확인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상인들은 신유성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물건을 팔아치우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한 방에 거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에 작업이 들어왔을 때 응한 상인들이 넘쳐났다. 조선의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상인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소비를 해줄 소비자인 백성들이 가진 게 없으니 물건을 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 돈 있는 지주들이나 양반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에만 몰렸다. 이것이 피 말리는 경쟁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지주들과 양반들이 돈이 많아도 소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팔려는 이들은 정말 피가 마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벼슬에 오른 집안에 돈을 찔러주며 경쟁자를 내치는 짓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는 누가 고통 속에 괴로운 상황에 처하든 말든 매점매석을 행했다. 뒤를 봐주는 양반들에게 상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의 상인들은 유혹에 쉽게 넘어왔다.

조선을 뒤흔드는 소문을 퍼트리는데 협조했으며 함경도와 거래를 트기 위해 정보를 파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후지바야시 켄은 손쉽게 조선 전국에 정보망을 만들 수 있었다.

“제발!”

상인은 김종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전해보겠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함경도에 가는 건 나중에 천천히 하자고.”

김종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일 경우도 생각해야 했기에 상인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이후 함경도에 있던 신주성이 확인해 주자 김종수 일가는 배를 타고 함경도로 가게 되었다.

필리핀, 사마르섬.

기다리는 일은 지루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에스파냐인들의 거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척가군을 비롯한 병사들이 총 동원 되었다.

“아, 힘들다.”

“얼른 끝내고 쉬자.”

공사는 별 것 아니었다. 나무를 잘라 목책과 병사들이 쉴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배가 들어왔다.

“전투 준비!”

에스파냐인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신유성의 병사들도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척의 배가 신유성의 배를 향해 움직였다.

“뭐야 저 놈들은?”

“모르겠습니다.”

배들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모양을 보아하니 굉장히 빠를 것처럼 보였다.

중간 크기의 배들은 사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이들은 곧 지옥을 봐야했다.

“쏴!”

병사들이 땅으로 올라왔지만 배에 병력을 남겨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배가 없어지면 신유성은 고립된다. 그러니 병력의 삼분의 일은 항상 배에 남겨두었다.

포성이 울리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정확히 타격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적선이 흔들리며 배에 탔던 사람들이 떨어졌다.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군.”

신유성은 매우 불쾌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들이 자신의 배를 노리고 있었다.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정체불명의 적은 배에 오르려고 했으나 쇠뇌를 쓰니 오르던 이들은 떨어졌다. 더구나 대포를 쏠 각이 나오지 않자 병사들은 화약통에 불을 붙여 적선을 향해 던졌다.

화약통이 터지며 사람들이 치솟고 적선에 불이 붙었다.

결국 적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덤볐던 배들 중 몇 척이 반파되거나 침몰했다.

전투가 끝난 것을 본 신유성은 인상을 구겼다.

“살아남은 놈을 찾아서 잡아와. 침몰하지 않은 배는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하던 일을 내던지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적이 오는 것에 반응해 경계를 했던 에스파냐인들은 안도하면서도 두려워하며 신유성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온 놈이냐?”

“술루!”

심문을 하자 대답이 나왔다. 원주민들의 말을 어느 정도 배웠더니 말이 조금 통했다. 아직 유창하진 않아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어디서 왔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었다.

“술루?”

신유성은 필리핀의 지도를 대충 그렸다. 그리고 어디가 술루인지 물었다. 그러자 포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쳐.”

주먹이 날아갔다. 병사의 주먹질에 포로의 이빨이 떨어졌다. 그냥 주먹도 아니고 에스파냐인들에게서 빌려온 건틀릿을 착용한 주먹이었다. 그냥 주먹이 아닌 흉기다.

포로는 답하지 않고 버텼지만 고문을 지켜보던 다른 포로들은 아니었다.

똑같은 질문을 하자 맞기 싫어서 결국 대답했다.

신유성은 대답한 포로를 풀어주고는 맛있는 것을 먹여주었다. 그러자 포로는 더욱 열성적으로 물어보지 않은 것도 마구 떠들었다. 신유성은 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잠시 멈추고는 내보냈다.

“다음.”

결국 포로들은 너도나도 신유성의 말에 답했다.

“모두 따로 격리해서 가둬놔라.”

심문이 끝나자 신유성은 바로 에스파냐인들을 찾아갔다.

“오늘 온 자들에 대해 아는가?”

“압니다. 술루족들이죠.”

“그들이 어디 있는지 해도를 그려주면 좋겠군.”

“치시려는 겁니까?”

신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스파냐의 경비 책임자는 바로 해도를 넘겨주었다.

다음 날, 신유성은 사선 한 척만 뒤에 남기고 전군을 이끌고 술루 왕국을 찾아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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