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86화 (8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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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조선

술루 술탄국은 필리핀의 남부에 있는 민다나오 섬과 보르네오 섬 사이에 있는 제도에 위치한 홀로섬에 세워진 나라였다.

역사는 짧은 작은 술탄국.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술루 왕국 사람들은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해적질에 눈뜨게 되었다.

무엇인가 팔고 싶어도 작은 섬에서 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뭔가 거래를 하려면 빼앗아야만 했다.

왕국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 해적질이었다.

이들이 주로 노리는 먹잇감 중 하나가 바로 남만 상인들이었다. 남만 상인들은 엄청난 양의 화물을 싣고 움직였다.

한 번 터는데 성공하면 1년 정도는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에스파냐와 포트투갈의 배가 움직이는 항로를 파악하고 털기 위한 작전을 짰다. 그러던 차에 신유성이 에스파냐인들의 소굴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배에 사람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상당한 병력이 땅으로 올라가 일을 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배를 노렸는데 실패했다.

“아주 옹기종기 잘 모여 있군.”

실패의 대가는 매우 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배만 나포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신유성의 함대는 작전 수행을 위해 움직였다. 거대한 캐럭들은 항구를 포위한 상태에서 포격하기 좋은 위치를 점했다. 돌격하는 것은 사선들이었다.

빠르게 돌격한 사선들은 금방 항구에 도착했다.

“사격 준비!”

술루족이 방어를 하기 위해 몰려오는 것이 보였으나 사선에 탄 병사들은 두려움을 떨쳐내고는 쇠뇌를 겨누었다.

“쏴!”

명령과 함께 화살이 일제히 날았다.

“커헉!”

빗나가는 화살은 별로 없었다.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쇠뇌 조작만큼은 훌륭했다.

적군은 쇠뇌공격에도 불구하고 몰려들었다. 두려움을 잊은 것 같았다.

아직 피해가 크지 않아서 그렇게 겁을 먹지 않은 것뿐.

적들이 가까이 밀려오자 덩치 좋은 병사들이 앞으로 나서서 무엇인가 던졌다.

그것은 바로 대나무 폭탄. 화약과 쇳조각을 넣은 것이었다.

던져진 폭탄의 심지는 계속해서 타들어갔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려는 순간 터졌다.

“아아아아아악!”

시간을 계산해 심지를 잘라내고 불을 붙였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폭탄의 폭발에 밀려들던 적들이 멈칫했다. 그러는 사이 또 다시 폭탄이 던져졌다.

이제는 슬금슬금 물러났다.

폭탄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쇠뇌 장전이 끝났다. 자시 쏘아진 화살.

적군은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났다.

“1군은 견제하고 신입들은 적의 배를 나포한다! 실시!”

“실시!”

명령에 따라 선착장에서 완전히 적을 몰아낸 뒤에는 나포가 이어졌다. 적들은 덤비려 했으나 그때마다 가까이 다가온 이들의 몸에 화살이 박혔다.

신입들은 서둘러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배를 움직여 뒤로 뺐다. 이어서 적을 견제하던 1군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후퇴했다.

배를 몽땅 나포해 돌아온 신유성은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밟아놔야 해.’

해적질을 할 정도면 어지간해서는 굽히지 않을 거라는 것이 신유성의 생각이었다. 화는 배를 나포해 온 것으로 풀렸지만 그렇다고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이란 것이 그렇다.

시작은 마음대로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마음대로 끝내기 힘든 것이 전쟁이었다.

종전 협상을 하기 직전까지도 서로를 불신하며 죽고 죽이는 것이 전쟁이다.

단순히 어딘가의 부족을 상대하는 거라면 흡수하거나 노예로 만들어서 죄 값을 치르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상대는 그래도 왕국이었다.

그것도 이십 척이나 되는 해적선을 가진 왕국.

‘전투선의 인원이 없었다면 힘들었겠지.’

배를 조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들 배 조종에 대해서 확실히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의 숫자가 많다보니 병사의 숫자가 약간 모자랐다.

어쨌거나 이십 척의 해적선을 빼앗은 신유성은 사마르 섬의 원주민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을 해군으로 만든다.’

홀로섬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주변 해역을 한 번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쯤 열심히 배를 만들고 있겠지.’

배가 다 만들어지면?

가서 또 뺏을 생각이었다.

사마르섬 원주민들은 배를 타게 되자 굉장히 좋아했다. 자신들이 가졌던 배보다는 훨씬 크고 빨랐기 때문이었다.

“우호적인 부족은 병사로 받아준다. 적대적이면 노예로 삼는다.”

전쟁에는 자고로 보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갈 이유가 별로 없다.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의 보상은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킨다는 보상이 있다. 하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죽는 놈만 손해다.

그렇기 때문에 신유성은 약탈 전쟁을 선언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당연히 원주민 전사들은 기뻐 날뛰었다.

신유성이 가진 거대한 배들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혼자 약탈하고 다녀도 충분했다. 얼마 전에 무서운 해적들의 배를 이십 척이나 빼앗아 온 것만 해도 실력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끼워준다니!

감사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원주민 전사들은 환호하며 신유성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이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에스파냐인들은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세히는 몰라도 분위기가 마치 신유성을 왕으로 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서운 사람이군요. 명나라 도독이란 남자는.”

“그래, 적으로 돌린다면 위험하지. 하지만 우리 제국에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명나라와는 대화가 통한다. 그를 통한다면 오히려 다른 놈들을 견제할 수 있을지도 몰라.”

경비 책임자는 생각을 바꾸었다. 신유성을 죽이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바다에서 경쟁하는 포르투갈을 누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영원한 동반자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위대한 제국의 완성을 위해선 끊임없이 정복해야 했다. 하지만 에스파냐 제국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직은 동방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도 운명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오스만 제국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니 적을 늘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

아주 잠시 동안만 동반자로 만들 생각이었다.

경비 책임자는 바로 신유성을 식사에 초대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별 것 아닙니다. 고귀한 이웃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함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몸이다. 이해해주길.”

신유성이 손을 들어 신호하자 대기하고 있던 호위 하나가 음식들에 독이 있는지 확인해보고는 시식해보았다.

이는 모욕을 주는 행동이기도 했다. 식사 초대를 받고 독이 들었나 의심하는 것은 상대를 신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경비 책임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화내진 않았다. 화를 내면 초대한 의미가 없었다.

“미안하게 됐군.”

신유성은 구워진 고기와 해산물을 먹기 시작했다.

경비 책임자는 화를 가라앉히고 소소한 이야기들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전투에 대한 것을 물었다.

“대체 어떻게 배를 얻으신 겁니까?”

“가서 가져왔지.”

“그게 전부입니까?”

“그렇다.”

신유성은 자세히 얘기해줄 생각이 없었다. 배를 어떻게 빼앗았는지 설명해주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간접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니까.

앞으로 적이 될지도 모를 상대이기에 신유성은 전술적인 면은 최대한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무기와 훈련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알아차리겠지만 일부러 자세히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대화는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신유성은 돌아갔다.

다음 날, 신유성은 함대를 이끌고 주변 원정에 나섰다. 적대적인 부족은 잡아서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유성의 병사들이 전투를 끝내면 원주민 병사들이 뒤처리를 했다. 전리품을 챙기는 것부터 노예를 관리하는 것까지 모두.

신유성은 당연히 이에 대해 배당을 해주었다. 원주민들은 직접 싸우는 일이 없었기에 배당이 적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아직은 초창기이기에 데리고 다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사로잡은 노예들은 노동력으로 이용되었다. 여자들은 원주민들이 데리고 살거나 병사들에게 적당히 주었다. 원정을 와서 여자를 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리고 사는 것에는 조건이 있었다.

“여자를 갖길 원한다면 가져도 좋다. 단, 첩으로 삼아라.”

대부분의 병사들은 첩으로 삼겠다고 했다. 덕분에 아이들까지 책임지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통을 위해 원주민의 말을 배우는 이들이 늘었고 무엇보다 병사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로잡힌 여자들이 열심히 말을 배웠다.

이에 불만을 가진 원주민 여자들의 육탄 공세가 이어졌다. 관계를 가지면 첩으로 삼으라고 했기 때문에 첩을 두 명씩 얻는 이들도 생겼다. 그러자 원주민 병사들이 위기를 느끼고는 사로잡은 노예 여자들을 자신의 아내로 삼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신유성의 함대는 주변 섬들을 돌아다니며 적대적인 이들은 노예로 만들고 우호적인 이들은 부하로 받아들였다.

우호적인 마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원주민 병사들이 약탈을 가서 얻게 된 것들을 설명하니 우호적인 마을의 남자들이 너도나도 병사가 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배가 점점 늘어나자 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사고에게 맡겨버렸다.

졸지에 차돌은 수많은 병사들을 거느린 영주가 되었다.

시간은 계속 그렇게 흘러갔다.

함경도, 나진.

김종수의 아버지는 최고의 치료를 받았다. 이지함은 정말 열성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이때 소요된 약재만 해도 엄청났다. 김종수가 대장장이로 평생 일해도 다 갚지 못할 액수의 약재가 쓰였다.

부담을 느끼면서도 김종수는 멈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종수의 아버지는 결국 사망했다. 마지막 남긴 편지에는 죽기 직전에 호강을 했으니 꼭 대신해 은혜를 갚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는 말도.

“아버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소리내서 울지 않았다. 김종수는 아버지의 무덤에 절을 올리고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선 이제부터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음? 네가 새로 왔나?”

“예, 김종수라고 합니다.”

“오! 네가 소문의 그 녀석이구나.”

“소문이요?”

김종수를 맞이한 것은 북해도에서 건너온 대장장이였다.

“그래, 도독나리의 소꿉친구라며?”

“아, 그렇긴 하지만 어릴 때 잠깐 놀았던 것뿐입니다. 황송한 일이죠.”

“어렸을 때 도독나리는 어떤 분이셨어?”

“그때도 대단한 분이셨죠. 제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분이니까요.”

“캬아!”

참고로 북해도 사람들은 모두 신유성을 섬기는 광신도였다. 여기에 김종수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전설로 기록하기에 딱 좋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만약 신유성에 대한 악담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넘어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일을 하게 된 김종수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뭐든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봐. 대신 뭘 만들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는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해.”

간단한 규칙이었다. 물품 생산을 담당한 대장장이들은 반복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나 자유 생산을 하는 대장장이들은 한가했다.

“뭐든 새 걸 만들어. 잘하면 포상도 받는다고.”

“그럼 저는 다른 일은 안 하나요?”

“안 하긴! 일단 뭘 만드는지 보고. 실력을 뽐내봐. 그래야 뭘 시키든 할 거 아니야?”

할 줄 아는 게 뭔지 보여 달란 의미였다.

이에 김종수는 의욕을 다졌다.

‘내가 이래 뵈도 한 때는 조선 최고의 장인을 꿈꾸던 몸이다.’

뛰어난 것을 만들면 신유성에게 은혜를 더욱 빨리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종수는 최고의 검을 만들기로 했다.

‘다른 건 모르니.’

작업에 들어간 김종수는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한 달 뒤, 수많은 실패작을 만든 끝에 명검이 탄생했다.

명검을 만들어내자 주변 사람들이 김종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건 정말 훌륭한 검이군. 내가 쓸 순 없다. 주군께서 써야 한다.”

후지바야시 켄은 검에 대한 욕심을 접었다. 김종수는 신유성의 소꿉친구였다. 그런 남자가 신유성의 세력에 몸을 의탁하고 처음으로 만든 명검이었다.

검의 품질을 떠나서 검의 주인은 당연히 신유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켄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조정에서 일했다고 하던데 이거 잘하면.......”

부하가 말끝을 흐리자 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장인들과 친분이 있다면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겠군.”

켄은 사악한 생각을 했다.

‘조선의 장인들이 대거 빠져나온다면 곤란을 겪겠지?’

조선의 상인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아보고 있었기에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들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켄은 닌자들을 움직였다.

얼마 후, 조선에서 장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이 이 문제를 파악하게 되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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