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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치열한 해전이었다. 포르투갈 함대는 엄청나게 활약했다. 수많은 연합함대의 배를 침몰시켰다. 하지만 포르투갈 함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계속 이어진 전투에 누적된 피해 때문에 한 척씩 반파되거나 나포 당했다.
함선의 수가 줄어들면서 포르투갈 함대의 전투는 더욱 힘들어졌다.
“후퇴! 후퇴한다!”
결국 함대를 모두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제독은 후퇴를 명령했다.
“이겼다!”
포르투갈 함대가 물러났지만 신유성은 병사들처럼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적의 함대는 아직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재정비해서 다시 덤빈다면 막아낼 수 없었다.
“적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우린 추격한다. 뒤를 따라오라고 전해!”
술탄들을 대신해 참전한 선장들은 갈등했다. 이대로 믈라카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적하게 된다면 믈라카 함락의 달콤한 과실을 빼앗길 우려가 있었다.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신유성은 혀를 찼다.
“적을 완전히 잡지 못하면 어차피 다시 빼앗길 거라고 해! 빨리!”
신유성의 함대는 그대로 포르투갈 함대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뒤늦게 출발해서 거리는 좁히지 못했다.
“해도를 가져와!”
‘어디로 갈까?’
이제부터는 예측해야만 했다. 적이 어디에서 재정비를 하게 될지 그것을 알아내서 기습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해도에는 많은 정보가 있었다. 포르투갈에 당한 술탄들은 해적질을 하며 적의 약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주요 항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전력이 되지 않아 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어디에 적이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아체가 있었다. 먼 곳으로는 페구가 있었다.
‘아체? 페구?’
추격전은 결국 머리싸움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예 놓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시간을 주게 된다.
‘아체일수도 있고 페구일수도 있다.’
페구는 따웅우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반면 아체는 술탄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포르투갈인들과 술탄들과의 관계를 보자면 페구가 정답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아체는 예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자주 활용한 항구란 점이 마음에 걸렸다.
‘둘로 갈라지면 힘든데.’
뒤를 보니 멀리서 겨우 쫓아오는 배들이 보였다.
‘도박이군.’
운명을 건 도박이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한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활동하긴 힘들게 생겼다.
‘아체도 유력하지만 일단 페구로 간다.’
신유성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술탄들과의 관계가 틀어졌길 바라며 페구로 향하는 최단 거리 항로를 짰다.
해가 뜨고 지고. 해상 추격전은 계속 이어졌다. 적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방향만 잡고 그냥 가는 것이었다.
확신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냥 계속 추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틀리면 허탕.
하지만 맞으면 대박이었다.
“좀 쉬십시오.”
배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식에 들어갔다. 전투가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바로 추격했으니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쉬지 못하고 해도를 들여다 봤다.
“전투가 끝날 때까진 쉴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겠습니다.”
임거정의 재촉에 결국 신유성은 잠시 누웠다.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수마가 정신을 집어삼켰다.
결국 신유성은 페구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전투 준비!”
적이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있다면 바로 싸워야 했다.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 병사들은 체력을 상당히 회복한 상태. 신유성 또한 계속 수면을 취하며 피로를 풀었다.
‘제발 있어라!’
틀렸다면 돌아가는 길이 매우 피곤해질 수 있었다.
페구.
항구에 도착한 포르투갈 함대는 일단 수리에 들어갔다. 부서진 부분을 고치고 보급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땅을 밟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곧 전투를 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데 병사들을 땅에 풀어주면 출항에 지장이 생긴다. 땅에 내려간 병사들이 제일 잘 하는 것이 술집에 짱박히기였다. 그 다음으로 어딘가의 여자와 짱박히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탈영이 있었다. 그냥 숨는 것이다. 배가 출항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그 다음에는 적당히 다른 배에 타고 다른 곳으로 간다.
혹은 그냥 원주민들과 살림 차린다.
“서둘러라!”
그러니 병사들은 항구에 도착하고서도 계속 배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오로지 간부들만이 잠시 배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젠장. 이게 뭐야.”
“그러게 해전도 패하고. 쉬지도 못하고.”
“아, 그냥 돌아가면 안 되나?”
병사들은 저마다 푸념했다. 간부들이 쉬는데 자신들은 못 쉬니 불만이 폭주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어?”
항구 앞바다에 배들이 나타났다.
“저건?”
망원경으로 살핀 병사는 경악했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신유성의 함대를 보고 기겁했다. 배를 빨리 출항시켜 싸워야 하는데 간부들이 내린 상황.
명령을 내릴 간부들이 없었다.
결국 간부들이 배에 탈 때까지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시간만큼 신유성의 함대는 더 가까워졌다.
고작 캐럭 5척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함대는 제대로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두드려 맞기 시작했다.
“쏴! 무조건 쏴! 닥치는 대로 쏴!”
기회였다. 포르투갈 함대는 항구에서 빠져나오느라 힘겨운 상황. 가장 먼저 나온 배부터 집중 포격으로 반파시켰다. 그리고 한 척씩 반파시키자 항구가 혼란스러워졌다.
먼저 나가야 할 배들이 바로 앞에서 멈추니 제대로 나가질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차례차례 벗어나지 못하고 포격을 당한 포르투갈 함대는 딱 3척만이 도망쳤다.
“나머지는 경계한다. 그리고 하나씩 포로로 잡는다.”
포르투갈 함대의 남은 배들이 도망쳤다. 신유성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딱 1척으로 정리해야 했기에 무척이나 속도가 느렸다. 페구에서는 아무도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접근했다가는 적으로 오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벌벌 떨었다. 행여나 신유성이 자신들을 공격할까 두려워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정리가 대충 끝났다. 무기를 모조리 수거하고 포로들을 포박했다. 그리고 신유성은 항구로 들어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항구 관리인과 여러 말로 대화를 시도하다가 결국 에스파냐 말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대명제국에서 왔다.”
“저들과는 무슨 일입니까?”
항구 관리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반파된 포르투갈 함선을 가리켰다.
“날 공격했다. 그래서 돌려줬을 뿐이다.”
사실과는 달랐으나 신유성은 솔직히 말할 생각이 없었다. 믈라카에서 공격 받았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나중에 적당히 변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항구 관리인은 공격 받았기에 추격해 잡았다는 말에 꼬투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럼 이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바로 앞에서 해전을 벌였던 인물이니 조심스러워졌다.
“배를 수리하고 떠날 생각이다. 보급을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을 불러줬으면 좋겠군.”
신유성은 포르투갈 상인들을 불러서 선언했다.
“난 대명제국의 도독인 신유성이다. 포르투갈 함대는 나와 적대한 포르투갈인 때문에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유성을 따르는 이들이 거짓말이라고 증언을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사람은 없었다.
“상인들에게 원한은 없다. 하지만 떠날 때까지 적대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항구를 벗어나려 한다면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가만히 있으란 요구만 하고 물러가자 포르투갈 상인들은 안도했다. 자신들의 배를 빼앗기거나 했다면 정말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수리는 빠르게 이뤄졌다. 항해가 가능할 정도만 고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따라온 사선의 병사들이 배를 운용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병사들은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모조리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다.
이후 믈라카에 도착한 신유성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하! 역시 명나라 사람은 다르구려!”
조호르 술탄은 크게 기뻐했다. 신유성 덕분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술탄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신유성 외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조호르 술탄의 군대였다.
해전을 마무리한 이후 조호르 술탄의 병사들이 빠르게 투입된 덕에 말라카를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다. 다른 술탄들보다 조호르 술탄의 왕국이 가까웠기에 배로 실어 나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신유성이 도착하자마자 환영식은 물론 연회를 열었다. 신유성은 피곤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을 순 없었다.
수많은 요리가 나왔다. 향신료를 듬뿍 사용한 요리들이었다. 조금 과격하다고 여겨질 양이 사용되어 신유성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가?”
“그냥 피곤해서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신가? 이거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조호르 술탄은 주변에 과시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행동에서 신유성은 뭔가 느꼈다.
‘나와의 친분을 과시할 셈인가?’
은근히 이용하려 했지만 일단 넘어가 주었다.
하루 푹 쉬고 나자 조호르 술탄은 식사에 초대했다.
“어제는 미안하게 되었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술탄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지만 지킬 힘이 없다. 도와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곳에 계속 있을 순 없다.”
“그래도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나? 더구나 조금 있으면 태풍이 불 시기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태풍이 불어도 이곳에 있으면 배는 안전할 거다.”
“생각해 보겠다.”
확답을 주지 않자 조호르 술탄은 애가 탔다. 신유성이 오래 있으면서 재건을 도와주길 원했던 것이었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차라리 이곳의 땅을 가지는 건 어떤가? 과거의 인연을 생각한다면 도와주었으면 한다.”
“응?”
갑자기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인연이라니?”
“모르나? 예전에 명나라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우리의 기록에 남아있다. 그 또한 우리와 같은 이슬람이었다.”
신유성은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정화라고 알고 있다.”
정화의 함대가 들렸었다는 이야기에 신유성은 계속 질문했다. 그러자 정화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화의 원래 이름은 마삼보, 무슬림의 자식이었다. 운남성에 살았으나 소년이던 시절 붙잡혀 거세된 뒤 환관이 되어 연왕에게 바쳐졌던 것. 이후 공을 거듭 세운 정화는 함대를 만들어 해양 원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으나 조호르 술탄은 기록을 뒤져서 접점을 찾았었다.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이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정화에 대한 기록들은 넘겨줄 수 있나?”
“그거야 어렵지 않다.”
신유성은 정화의 기록을 넘겨받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언제 와서 언제 갔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함선 정보라도 있었으면 좋았는데.’
아쉬움이 흘러넘쳤다.
다음 날, 신유성은 결국 말라카에 잠시 머무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서둘러서 돌아가려고 하다가 태풍을 만나면 답이 없었다. 위험한 계절에 위험한 지역을 항해하는 것은 무모했다.
더구나 구름을 보던 이들이 심상치 않다고 계속 겁을 주니 바다로 나갈 수 없었다.
“배를 파시게나.”
“이건 가져갈 거라니까.”
“그러지 말고 파시게나. 후하게 값을 쳐줄 테니.”
조호르 술탄은 계속 나포한 포르투갈 선박을 넘기라고 졸랐다. 방어를 위해서는 큰 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더 나아가 바다에서 적을 해치우려면 수상 전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포한 함선들은 꼭 필요했다. 반파되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수리해서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조호르 술탄은 포르투갈 선박을 전투에 쓰기보다는 연구에 쓰려는 것이었다. 배를 해체하면서 조선공들이 경험을 쌓게 하고 더 큰 배를 만들려는 것.
“팔면 노예들을 데려가기 어렵다.”
“값을 후하게 쳐주지. 우리 배도 주고. 배에 가득 항신료도 주겠다.”
“아직 이곳 지분도 다 계산하지 못했는데 무슨.”
“어떻게 안 되겠나?”
조호르 술탄은 계속해서 신유성에게 졸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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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