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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89화 (8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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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협상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신유성은 포르투갈 함대의 배들을 넘기기로 했다. 대신 상선과 향신료를 비롯해 다른 것들을 받기로 했다. 우선 말라카에 거주하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을 모두 받기로 했다.

이들은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었다. 술탄들은 모두 죽이는 대신 노예로 만들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은 큰 관심은 없지만 책과 장부 항해일지와 해도는 넘겨야 한다.”

“주겠다.”

재물은 교역을 통해 얻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었다.

“그리고 그쪽이 가진 의술 서적을 비롯한 역사서들도 받았으면 좋겠군. 다른 책들도 좋고.”

“책을 좋아하나?”

“좋아한다.”

“주겠다. 책 많다.”

신유성은 책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학자도 받았다. 노예처럼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책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학자 스스로 신유성을 따라 먼 곳으로 가길 자청한 것.

어찌 보면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먼 곳까지 따라 나설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중에 경고하면 될 일.’

종교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신유성은 그런 것을 막을 생각 따윈 없었다. 하지만 정해진 법 위에 종교를 두는 행위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곧 질서를 어지럽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포르투갈 선박을 건네고 신유성은 막대한 보상을 약속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바로 말라카에 대한 지분. 조호르 술탄은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신유성은 다 물리쳤다.

조호르 술탄과 다른 술탄들이 약속을 안 지킨다면 물론 끝이다. 지분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받아낼 길은 오직 하나, 전쟁 밖에 없었다.

신유성의 함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했으니 웬만하면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였다.

‘안 지키면 뭐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

아직은 미약하지만 신유성의 영역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

술루 술탄의 가족 중 대표가 만남을 요청했다.

“제발 풀어주십시오.”

약속한 것이 있으니 신유성은 두 말 하지 않고 풀어주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이제 이곳에서 평생 살 거니까요.”

술루 술탄의 가족들은 연신 감사를 표했다. 노예로 삼지 않고 풀어줬다는 것에 안도했다. 이러한 신유성의 행동은 다른 술탄들에게도 알려졌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좋은 인상을 받은 술탄들은 신유성을 더욱 신임했다. 이후 조호르 술탄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은근슬쩍 권했다.

“내 딸과 만나 볼 생각 없나?”

“만나면 나도 무슬림이 되어야 하지 않나?”

“형제가 되면 더 좋지 않겠나?”

“됐다. 난 대명제국의 도독이다.”

혼인 권유를 모두 거절해버렸다. 조호르 술탄의 딸과 결혼한다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 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면 다른 종교와 충돌은 필연이었다.

술탄들은 아쉬워했다.

“그들을 감시하도록.”

술루 술탄의 가족들을 풀어준 신유성은 말라카에 남을 부하들을 골랐다. 충성심이 높은 이들은 남겠다고 했다. 남아서 신유성의 재산을 보호하며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한 것.

“돈을 벌면 좀 쓰고 그래도 좋다. 허락한다. 너무 없으면 일하기 힘드니까.”

정보 수집에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으면 쉽게 수집할 것도 없으면 어렵게 구하게 된다. 돈을 주었다고 항상 질 좋은 정보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술탄들에 대한 것도 마냥 호의에만 기댈 순 없었다. 발전 상태와 성향에 따라 또 언제 어떻게 신유성을 적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쪽에서 사람도 고용해서 조선소를 짓도록.”

조선소도 필요했다. 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모든 배를 나진이나 북해도에서 만들 순 없었다.

조선소를 짓고 점포를 몇 개 구했다. 광장의 건물을 구해 점포로 만들었다. 동시에 어선을 구해 말린 생선과 어육을 만들게 했다. 노예들이 있으니 먹여 살리는 것은 이제 신유성의 몫. 이들에게 줄 식량을 사는 것보다는 말라카 주민들이 직접 구한 것을 사다가 식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상인 한 명을 덜 거치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병사들은 교대로 땅에 올라와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동안 신유성은 노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너희들 중에 기술이 있는 자는 나서라. 지금보다 더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조선공들과 대장장이들이 나섰다. 목수도 있었고 상인도 있었다. 항해사도 있었다.

신유성을 이들을 따로 저택을 구해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포르투갈 기술자들은 신유성에게 감사했다. 노예가 아닌 사람대접을 해주니 희망을 품은 것이었다.

남은 이들은 군인이거나 선원이었다.

딱히 다른 기술들은 없었다.

“너희는 일해라.”

포르투갈 조선공에게 시켜 조선소를 짓는데 투입했다. 그러자 일의 효율이 더욱 올라갔다. 이에 조호르 술탄이 찾아와 또 애원했다.

“나한테도 좀 빌려주지?”

“일단 나부터 짓고.”

“그럼 늦지 않나!”

“사람을 더 쓰면 더 빨리 지어지겠지.”

결국 조호르 술탄이 사람을 더 보탰다. 조선소를 짓는데 필요한 목재를 제공하며 일꾼도 더 빌려주었다. 덕분에 신유성은 빠르게 조선소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조호르 술탄의 조선소가 바로 옆에 크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나 싶더니 태풍이 불었다. 엄청났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바다가 요동치고 집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신유성은 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배가 망가지는 거 아냐?”

“그러진 않을 겁니다. 떠내려 갈 일도 없죠.”

단단히 준비를 해뒀다. 돛을 일찌감치 접었고 닻은 단단하게 내렸다.

“이거 정말 피곤하군.”

걱정만 하는 것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정말 골치 아픈 곳이야.’

적과 싸우는 거라면 문제가 없었다. 싸워서 죽이면 되니까. 하지만 태풍은 그저 지나가길 기다려야만 했다. 싸워서 이기고 어쩌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흘려보내야 할 현상.

신유성은 아예 가을까지 말라카에서 죽치고 있기로 결정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태풍이라도 만나면 죽은 목숨이니까.

태풍은 어느 덧 지나갔다. 날씨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신유성은 방심하지 않고 그냥 지내기로 했다.

“병사들을 돌아가면서 훈련시키고. 여기 남고 싶다는 녀석들 있으면 남기고.”

남는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이나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고 다니지 나머지는 손짓발짓해가면서 말을 배워야 하는 형편이었다.

일을 시키고 신유성은 거리로 나섰다.

태풍이 지나가고 화창한 햇살이 세상을 말리기 위해 힘을 쓰는 중이었다.

“거참 덥구만.”

더웠으나 가만히 늘어져 있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심심하니까.

발걸음은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신유성을 보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술탄과 동급인 신유성은 말라카에서 아주 유명했다.

건성으로 응답을 해주며 신유성은 물건들을 빠르게 감상했다. 뭔가 흥미를 끌만한 것을 찾는 것이었다.

“음?”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바로 악어였다.

한쪽에 죽은 악어가 쌓여 있었다. 간이식당에서는 죽은 악어를 토막 내 손질하는 중이었다.

‘가죽은?’

가죽은 따로 정리해서 손질하는 것이 보였다.

“이거 팔지 않겠나?”

신유성은 악어가죽을 손쉽게 살 수 있었다.

‘악어가죽으로 된 장화를 만들어볼까?’

기분이 좋아진 신유성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장 한 구석에서 그것을 보았다.

‘저것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았다. 살짝 맛을 보니 엄청나게 매웠다.

“퉤!”

재빨리 뱉어냈지만 엄청나게 매웠다.

‘미치겠군.’

입이 마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팠다. 그러나 신유성은 웃었다.

‘고추를 보게 되다니.’

신유성은 고추를 몽땅 샀다. 그리고 고추를 키우는 사람을 소개 받아 모조리 사겠다고 계약한 것은 물론 키우는 방법에 대한 것도 자세히 들었다.

‘이걸 가지고 조선에서 심으면 맛이 좀 약해지겠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될 때까지 할 생각이었다.

밖을 한 바퀴 돈 뒤에는 공부 시간이었다. 신유성은 최대한 많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인도어까지 배웠다. 포르투갈 상인중에 인도어를 할 줄 아는 상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도어와 아랍어까지 배우느라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말을 배웠다.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편해져.’

말이 통해야 거래를 하기가 쉽다. 그리고 좀 더 빨리 현지에 대해 파악이 가능했다.

공부가 끝난 뒤에는 식사였다. 저녁은 항상 술탄의 대접을 받았다. 조호르 술탄의 입장에서 신유성은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패였다.

명나라는 거대한 나라였다. 이는 상인들을 통해 꾸준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

신유성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진짜 실상을 알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었으나 그런 것을 설명해줄 신유성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귀한 대접을 받는 신유성은 술탄의 가족들, 정확히는 가족들 중 남자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매일 시장을 가시던데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그냥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 돌아보는 것뿐이다.”

“그렇습니까? 심심하면 사냥을 함께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냥은 더워서 됐다. 그냥 시장 구경 정도면 충분하다.”

이후 술탄의 자식들 몇 명이 신유성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는 술탄의 자식들도 같이 공부하자며 끼어들었다.

언어란 공부만 해서는 빠르게 늘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서 직접 써야 더 빨리 는다. 그런 의미에서 술탄의 자식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 직접 싸우기도 하셨나요?”

“그래, 처음에는 싸워야 했지.”

술탄의 자식들은 신유성의 검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하지만 귀빈에게 실력을 보이라며 싸우라고 요청하긴 어려웠다. 신유성의 부하라면 모를까 신유성에게 직접 뭘 하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결례가 될 테니까.

신유성은 눈치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임거정을 불러 실력을 보여주게 했다. 임거정의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봉을 휘두르니 대련에 임했던 병사들이 다 나가떨어졌다.

“우와!”

“정말 대단합니다!”

“난 더 대단해.”

신유성이 덧붙였다. 그러자 술탄의 자식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알았다고 했다.

안 믿는 눈치였으나 신유성은 굳이 믿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웃으면 그걸로 족할 뿐이었다.

조호르 술탄이 붙여준 학자는 의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옆에선 신유성과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 부하들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문득 신유성은 질문을 던졌다.

“여긴 전염병 없나?”

“있죠.”

설명을 듣던 신유성은 말라리아, 학질임을 알게 되었다.

“치료약은?”

치료약은 있었다. 키나라고 불리는 나무의 껍질이었다. 그제야 신유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약이 없어서 그냥 죽지는 않겠구나.’

만약 약이 없었다면?

모기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었다.

세계를 정복하고 다닌 정복자라고 해도, 수많은 인간을 죽인 학살자라고 해도, 칼싸움의 달인이라고 해도 약이 없으면 학질모기 한 마리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다음날부터 신유성은 키나 나무를 많이 키우라고 했다. 더불어 키나 나무의 껍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말라카의 사람들도 써야 하는 것이니 매점매석을 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많이 구하고 싶다. 세상에는 약이 없어 아픈 사람이 많으니까. 그리고 더 많은 키나 나무를 심도록.”

신유성은 키나 나무의 묘목을 구하는 한 편 더 많은 나무를 심으라며 돈을 풀었다.

‘없어져선 안 될 나무야.’

말라리아의 다른 치료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갈홍의 주후비급방에 학질 치료제로 청호, 개똥쑥이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개똥쑥을 설명하고 찾아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니 신유성은 키나 나무껍질에 의존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새로운 치료제를 찾았으니 이득이다.’

이후 신유성은 끊임없이 학자에게 의술에 대해 물어보았다. 특히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은 전염병이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서도 지식을 모았다.

열대 지방에는 열대 지방의 의술이 나름 존재했다. 신유성은 이러한 것들을 정리해 책으로 엮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모기 한 방에 죽을 순 없어! 질병에 지지 않겠다!’

집념을 가지고 의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학자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동기야 어떻든 의술에 힘을 쓴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 학문이니까.

덕분에 신유성의 곁에는 학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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