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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90화 (9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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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계절이 바뀌었다. 태풍이 몇 번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말라카의 가을은 비도 많이 왔고 더웠다. 가을이라 느껴지지 않는 날씨였다.

“돌아가자.”

이제는 떠나야 할 때였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의술을 정리하는 것도, 식물들에 대한 것을 기록하는 것도. 그러나 신유성은 돈으로 학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내가 없는 동안 기록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연구는 꾸준히 하고.”

“감사합니다.”

조호르 술탄도 신유성의 행동에 감동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 발달하면 자신도 혜택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학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유성은 배에 올랐다.

가을까지 만들어진 배는 상당했다. 수송용 캐럭에 비하면 작은 배들이었으나 수가 많았다. 여기저기 부탁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배를 구할 수 있었다. 조호르 술탄의 배려가 느껴졌다.

“무운을 빌겠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 동안 많이 친해진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고했다. 조호르 술탄은 많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신유성을 붙잡을 순 없었다.

노예와 향신료를 실은 배들의 수는 상당했다. 신유성의 함대는 올 때보다 돌아갈 때 더 숫자가 많았다.

돌아가는 길에 필리핀에 들려 차돌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차돌은 죽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열이 나면서 춥고 하여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살았다. 차돌 또한 키나 나무껍질 달인 물을 마시고 살아난 것이었다.

“병을 조심해야 한다. 여기 약으로 쓸 키나 나무껍질은 좀 나눠주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말은 좀 배웠나?”

“이제 어느 정도 합니다.”

“그래, 자주 항주로 연락을 보내도록 하고. 정기선이 계속 오갈 테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요청해라.”

“네, 주군.”

“그럼 가보겠다.”

신유성은 차돌만 남기고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는 남사고도 함께였다.

배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는 동안 남사고는 선실에 가득한 책들을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 시키느라 혼났다.

‘대체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언어도 제각각이었다. 남사고는 내용이 알고 싶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신유성에게 도움을 청했다.

“의술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선창에 아직 많다.”

“더 있습니까?”

“몽땅 털어왔다.”

남사고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화가 나서? 아니다. 좋아서였다.

“그럼 말을 배워야겠군요.”

“일단 돌아가면 차근차근 정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술이니 그쪽에 좀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군.”

“그 일이라면 토정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렇다. 토정 이지함이라면 시키지 않아도 새로운 의술이란 말에 덤벼들 사람이었다. 치료법을 알아내겠다고 자신의 몸을 가지고 실험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치료법이 적힌 책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읽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군. 참, 그 중에 해도와 항해일지가 있으니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면 되겠어.”

“해도와 항해일지요?”

이번에는 남사고의 눈이 반짝였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해도는 세계를 그린 지도. 있으면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항해일지는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나중에. 지금은 항해에 전념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남사고는 얼른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항주.

신유성의 함대가 도착하자 빌렸던 척가군에게는 선택이 주어졌다.

“나를 계속 따르고 싶다면 남아라. 하지만 돌아가겠다면 막지는 않겠다.”

척가군은 갈등했다. 남쪽으로 가서 꽤 오랫동안 고생을 하긴 했다. 죽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감동했다.

신유성은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전리품의 반을 분배했다. 척가군은 배당을 받고는 어쩔 줄 몰랐다. 땅을 사면 지주로 떵떵거릴 수 있을 정도였다.

현재 명나라의 군기는 정말 바닥이었다. 엄숭을 비롯한 간신들이 엄청나게 빼먹어서 병사들은 생활은 힘겨웠다.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 그런데 황제의 부마인 신유성 밑에서 싸웠더니 평생 놀고먹어도 될 길이 열려버렸다.

반이 넘는 이들은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한쪽에 섰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150명. 이들이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함께 한다면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으리란 계산 때문이었다. 특히 신유성의 직속 부대에서 흘러든 소문. 원정군에게는 항상 배당을 준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면 나이가 먹은 뒤에는 지주가 아니라 갑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반면 척가군이 아닌 신입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돌아가고 싶은데.’

그때, 신유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리고 신입으로 싸웠던 병사들도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좋다. 조건은 같다.”

신유성은 잡지 않았다. 오히려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래야 더 날 위해 싸울 사람이 모이지.’

돈을 가진 사람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잃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주가 될 정도로 큰돈이라면? 더 싸우기 싫다. 야망이 있는 이들이나 계속해서 싸운다.

때문에 신유성은 억지로 명나라 출신 병사들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풀어주었다.

‘소문이 나겠지. 그러면 항주에 들릴 때마다 지원병을 금방 받을 수 있다.’

신유성이 원하는 소문은 간단했다.

도독의 병사가 되면 지주가 될 수 있다!

이 한 마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신유성은 병사들을 풀어주었다. 전투 경험이 있는 숙련 병사들을 놔주는 것은 조금 아깝긴 했으나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함께 해서 즐거웠다. 모두 수고했다. 앞으로 그대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다.”

인사까지 좋게 해주니 척가군과 명나라 출신 병사들이 일제히 호응했다.

“영광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배당 받은 것들을 가지고 떠났다. 그러자 한쪽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다가왔다.

“부마도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시겠습니다.”

“응? 부마도위?”

이야기는 간단했다. 척계광이 청교공주 주여화와 혼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척계광은 단숨에 참장에 올랐다.

‘그래도 나보다는 덜하군.’

하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있었다. 신유성은 도독이란 지위를 얻었었지만 지원은 별 볼 일 없었다. 반면 척계광은 참장이라 신유성보다는 낮은 지위였으나 실속이 있었다. 명나라 군대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실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단숨에 도독으로 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너무 큰 힘을 쥐어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어쨌거나 이제는 같은 부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독의 신분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병사들은 남겠다는 이들 빼고 먼저 돌려보냈다.”

“네, 들었습니다.”

척계광은 여전히 신유성을 상전으로 모셔야 했다. 참장에 올랐다고 도독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 품계에서 여전히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왜구 토벌은 하셨습니까?”

“아, 왜구 소굴인줄 알고 갔더니 남만인들이 터를 닦고 있더군. 그래서 일단 조공을 바치라고 했다.”

“그건 조정에서 말이 좀 나오겠군요.”

“폐하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속죄하는 의미에서 그들을 쓸어버리겠다.”

과격한 발언에 척계광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유? 간단했다. 또 원정을 간다면서 얼마나 뜯어갈지 걱정되니까.

신유성이 절대 그냥 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셨으니 장계는 올리셔야죠.”

“그래야지.”

모든 일에 앞서 신유성은 장계를 먼저 올렸다. 그리고 항주에서 좀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아직도 항해가 많이 남아있으니 중간에 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신유성의 장계를 받은 명나라 조정은 시끄러워졌다.

“이건 경우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조공 문제를 마음대로 정하다니.”

“그게 왜 경우에 어긋납니까? 남만인들이 차지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허어!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가 아닙니까! 수고를 하고 돌아온 도독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엄숭을 비롯한 간신들은 신유성을 편들었다. 이는 가정제가 조공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란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가정제는 알아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별로였다. 불로장생을 위해 몸을 단련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그래서 얘기를 들었을 때도 신유성을 칭찬했다. 남만인들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한 것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향이 반영되었기에 엄숭의 세력은 힘을 얻었다.

반면 서계를 비롯한 이들은 치를 떨었다.

“어쨌거나 폐하께서도 그냥 넘어가셨으니 이쯤 합시다!”

결국 신유성의 공에 대한 포상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제 신유성에게 줄 수 있는 지위는 하나였다.

왕.

신유성은 시간이 되는 대로 북경으로 올라오라는 명을 받았다.

휴식을 취하던 신유성은 청교공주와 만나게 되었다. 같은 황실의 가족이라면서 식사에 초대한 것이었다.

신유성은 당연히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청교공주와 척계광 사이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꽉 잡혀 사는군.’

청교공주는 사나웠다. 전장에서는 사나운 척계광이 청교공주 앞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청교공주는 황제의 딸이었으니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자신의 지위가 날아갈 수 있는 일. 더구나 청교공주는 안하무인이었다.

척계광을 자신의 아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척계광의 위신이 많이 깎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의 약점을 헤집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그래도 그냥 두고 보기는 안쓰럽군.’

척계광을 경계하던 신유성이었지만 갑자기 공처가가 된 모습에 연민을 느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방법 하나를 알려주지.”

신유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환심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이건 내가 들은 여심을 녹이는 법인데 들어보겠나?”

“들려주십시오.”

일부러 여자 얘기를 꺼낸 뒤 대화가 여심을 공략하는 부분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척계광도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으나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 것에서 배려를 느꼈다.

“일단 분위기가 중요해. 선물을 하는 거야. 그리고 달콤한 말을 해주고.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말. 그리고 밤에 침상에서 여심을 녹이는 거야.”

‘정말일까?’

척계광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신유성이 알려준 말들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한 말들이었다. 그러나 청교공주의 마음을 제대로 얻기 위해서 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 해가 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온 척계광은 화사한 꽃을 한 다발 품에 안고 들어섰다.

“그게 뭔가요?”

“그대에게 바치려고 가져온 꽃이라오. 하지만 쓸모없게 됐구려.”

“왜죠?”

“세상의 꽃들을 전부 가져온다 해도 그대보단 못할 테니까. 이건 쓸모없어졌으니 버려야겠소.”

“주세요.”

퉁명한 말투였으나 청교공주의 입은 웃고 있었다.

‘그래! 희망이 보이는구나!’

이어서 식사 시간.

식사는 부드럽고 달콤한 것들 위주로 만들어졌다. 특히 식사가 끝난 뒤 나온 후식은 달콤함의 결정체!

척계광은 정말 먹기 힘들었지만 청교공주는 맛있다고 먹었다.

‘이런 게 먹힐 줄이야.’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신유성이 말한 대로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찍 침상으로 청교공주를 이끌었다. 부드러운 분위기와 연신 이어지는 칭찬에 청교공주는 끌려갔다.

그리고 침상에서 천천히 벗겨지면서 애무 당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건 처음.’

척계광은 온 힘을 다해 애무에 집중했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청교공주가 느낄 수 있도록.

신음이 흘러나오고 질척한 계곡의 물소리가 흘렀다.

준비가 되자 척계광은 부드럽게 청교공주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응!”

예전에는 아프기만 했던 행위. 하지만 청교공주는 처음으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밤새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쾌락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이후 청교공주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당연히 척계광은 신유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예전에는 얄밉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은인으로 보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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