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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92화 (9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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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의 전쟁

조선이 칼을 뽑아들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기근과 민심의 이탈이 문제였다. 국가 재정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비가 늘어났다. 그리고 땅을 잃은 사람들의 땅은 지주들이 흡수했다.

부익부 빈익빈.

지주들은 노비들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땅을 개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은 계속 이탈했다. 그리고 함경도가 넘어갔고 전국에서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탈하려는 이들을 잡아 더욱 많은 노비를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파탄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했다. 대장장이를 비롯해 백정들 그리고 장인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인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점점 일을 시킬 사람들이 줄어드니 양반들은 할 일이 많아졌다. 원래 중인들은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이들이 있어야 조선이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가 줄어들어 사라지기 시작하니 양반들이 일을 직접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대론 끝입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조정 대신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조선은 끝이었다.

민심을 잃은 왕은 왕일 수 없다.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추락할 뿐.

왕이 인간으로 추락하면 왕을 보좌하던 이들도 마찬가지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민심을 잃은 왕을 타도하는 것, 하극상이었다.

또 하나는 타 세력과의 전쟁이었다.

왕에게 향할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왕에게 반기를 들만한 이들을 쳐낸다. 하지만 이는 시간제한이 있는 방법이었다.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나라는 쓰기 힘든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악재가 겹치며 힘이 약해진 조선은 제대로 된 전쟁을 치르기 힘든 상황에 도달했다. 군역을 치러야 할 백성들이 상당수 노비가 된 것도 원인이었다.

기근도 문제였다. 그리고 수탈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였다.

또한 전쟁을 치르려면 자원의 확보가 중요했다.

‘빌어먹을.’

윤원형은 결국 재산을 풀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망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명종이 무너지면 윤원형도 무사할 순 없었다.

윤원형은 절대 모반을 일으킬 수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모반을 일으키면 결국 자신의 혈육을 죽여야만 했다. 이는 가문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양반에게 있어 가문은 하나의 나라, 가문을 잃게 되면 양반 또한 힘이 사라지게 된다.

때문에 윤원형은 큰 맘 먹고 재산을 쓰기로 했다.

‘언젠가 꼭 받아낸다!’

그렇게 해서 윤원형은 니칸와일란과 동맹을 맺었다. 니칸와일란의 입장에서는 꼭 재물이 없어도 동맹에 응할 생각이 가득했다. 건주여진의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 때문이었다.

기오창가가 신유성에게 딸을 보낸 이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양질의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은 물론 기오창가를 중심으로 건주여진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니칸와일란은 윤원형의 동맹제안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동맹의 실체였다.

“조선에 경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둘러 나진으로 온 이지번은 회의에 참석했다.

“경고라. 하는 것도 좋겠지.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신유성의 상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반면 조선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먼저 국명을 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유성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나진에 쫙 퍼졌다. 아직 공식적으로 선포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국명은 ‘신’으로 하겠다.”

‘새로울 신’을 선택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정한 글자였다.

이지번과 이지함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 어울리는 국명이로군.’

남사고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신유성은 항상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그것이 학문을 하는 이지번을 비롯한 선비들에게서 호감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이치를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그런데 신유성은 항상 그 이상을 해냈다.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이지번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신유성에게 절을 했다.

후지바야시 켄과 큐슈의 요시시게 그리고 북해도의 신페이도.

전쟁을 준비한다니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넘어온 것이었다.

“주군! 소신을 선봉으로!”

켄이 나섰다. 허나, 신페이도 지지 않았다.

“검을 잡아본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이제 검으로 전쟁을 하는 시대는 지났소. 소신을 선봉으로 세워주시면 조선을 바치겠습니다.”

요시시게도 지지 않고 나섰다.

하지만 신유성은 모두 물리쳤다.

“그대들은 원래 하던 일을 하도록.”

“주군!”

“다른 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다.”

신유성의 눈은 한쪽에 조용히 있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사신들에게 향했다. 기오창가는 니칸와일란의 견제했기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고 타이란은 부족 회의를 여느라 참석 못했다.

“가서 전하라. 군을 이끌고 오면 선봉에 설 기회를 주겠다고.”

여진어로 말해주자 사신들은 인사를 하더니 급히 떠났다. 한시라도 빨리 사실을 알려 전사들을 이끌고 오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영주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으니까.’

조선과 전쟁을 하는 도중에 일본의 영주들이 움직인다면 치명적이었다. 행여나 북해도나 큐슈를 잃게 되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란 것을 알지만 전쟁 때문에 전력을 빼낸다면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전력의 공백은 곧 빈틈이었다.

‘모리 모토나리 같은 자는 조심해야지.’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는 모토나리를 견제하는 신유성이었다. 지금 당장에는 성장하고 있는 노부나가보다 모토나리가 더 껄끄러웠다.

거대한 은광을 가진 모토나리는 최고의 고객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고객이 적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야심이 있는 자를 경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때문에 큐슈와 북해도의 전력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는 계속해서 바다를 장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남는 선택은 결국 여진족이었다.

“뭐라고? 신국이라고?”

“그렇습니다. 신국의 사신이란 자가 왔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게.......”

명종의 질문에 도승지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도승지의 임무는 바로 말을 전하는 것.

전해야 할 말을 숨기는 것은 죄악이었다.

“명에서 도독을 왕으로 봉했다 합니다.”

쿵.

명종은 뭔가 뒷목을 강타한 느낌을 받았다.

“으으으!”

목을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 놈이. 그 놈이 왕이라고!’

역관의 자식이 왕이 결국 왕이 되었다. 그리고 사신을 보냈다.

‘찢어죽일 놈!’

조선의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유성의 존재였다. 바로 옆에서 계속 민심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백성을 병사로 쓴다며 빼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진의를 알게 된 뒤에는 너무나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어의! 어의를 불러라!”

명종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자 소란이 일었다.

쓰러진 명종을 대신해 사신을 만난 것은 결국 윤원형이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나?”

“조선에서 여진인들과 동맹을 맺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맹이라니? 무슨 소린가? 우리가 왜 그런 야인들과 손을 잡는단 말인가?”

“그거야 대감께서 잘 아시겠죠.”

사신은 이미 들은 내용이 있는지라 윤원형을 콕 찍어서 물고 늘어졌다.

“거 참. 내가 뭘 어쨌다는 건가?”

“대감의 사람이 강을 건너 여진인들과 만난 것을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여진인들이 대규모로 말을 조선에 보냈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말을 사기 위한 것이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

신유성이 보낸 사신의 행동은 무례했다. 자칫하면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사신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신유성에게 목숨을 바치기로 결정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죽으면 가족 모두 잘 보살펴줄 거란 말을 믿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사신은 오래 전부터 신유성의 측근인 매화가 닌자였던 레이의 가르침을 받아 조금씩 키웠던 정보조직에 속했던 인물이었다.

평범한 양민에서 계속해서 지위가 상승해 결국 한 자리 하게 된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죽을 임무를 받은 자리였지만 사신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신유성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무장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쟁이라도 하는 겁니까?”

“부국강병이야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것이네.”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아무리 동요시키려 해도 윤원형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젠장. 무서운 놈들.’

니칸와일란과 동맹을 맺은 것을 파악하고 있다니 등골이 서늘했다. 마치 조선의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놓고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두려움을 표시하기에 윤원형은 살벌한 조정에서 오래도록 구른 인물이었다.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네.”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그렇다고 해두죠. 어쨌든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함경도 인근에 병력을 뒤로 물리란 것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적들이 도독이 있는 지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막은 것뿐이네.”

“도독이 아니라 전하이십니다.”

“미안하게 됐군.”

윤원형은 일부러 실수를 해놓고 사과했다. 어떻게 해서든 폄하해 은근히 우위를 점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신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감히 주군을!’

자신을 욕하는 것은 웃어 넘겨도 신유성을 욕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위인이 바로 사신이었다.

“열흘 안에 병력을 물리지 않으면 전쟁입니다.”

“뭐라고?”

“그리 아십시오.”

사신은 그대로 물러났다. 애초에 전쟁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선전포고를 마음대로 한 것은 문제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신으로 오기 전에 신유성이 원하면 선전포고를 해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부글부글했으나 사신의 목을 베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신의 목을 베서 돌려보내면 다음에 조선의 사신이 신유성에게 갔을 때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계속되면 대화란 것은 아예 없고 그저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된다.

“좀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이미 조선 조정은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급하게 한 감이 있었으나 그만큼 민심은 최악이었다. 폭동이라도 일어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었다.

그래서 모두 전쟁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물론 반대하는 대신들도 있었다. 허나,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쟁은 일어날 뿐이었다.

“날씨가 참 좋군.”

추웠다. 1557년이 되었을 뿐이었다. 봄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자 먹어보자고. 떡국지옥이다.”

새해를 맞이해 만든 음식이었다.

동남아에서 가져온 고추를 곱게 갈아 떡국에 넣었다. 엄청나게 매워서 고춧가루는 아주 조금만 넣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악!”

다들 매워서 물을 찾았다.

“크크크크크.”

신유성 또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이 맛이야!’

매운 맛. 참으로 그리운 맛이었다. 사실 맛이 아니라 고통에 가까워서 고문이라고 해도 좋았으나 그리운 맛을 경험한 신유성은 웃을 뿐이었다.

“상공. 이건 뭔가요? 설마 제게 독을 먹인 건가요?”

“이건 향신료야. 매운 맛이 특징이지.”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

“왜? 개운해서 좋지 않나?”

신유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떡국지옥이라고 명명한 떡국을 떠먹었다.

쫄깃쫄깃한 떡과 매콤함이 혀에 퍼졌다.

‘아 다음에는 떡볶이라도 한 번 해야겠군.’

신유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떡국을 해치웠다. 이를 본 주녹정과 소녀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 마귀 같은 열매가 자라는 땅을 없애버려야 할 텐데!’

신유성이 고추를 키우겠다며 만든 밭이 있는 방향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 소녀들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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