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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의 전쟁
사신은 살아서 돌아왔다.
‘미끼를 물진 않은 건가?’
시간을 끌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할 생각도 없었다. 사신에게 목숨을 걸고 강하게 나가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죽였다면 바로 공격하는 건데.’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싸우잔 소리일 뿐. 전쟁의 명분으로는 충분했다.
무슨 죄목을 갖다 붙여서 처형해도 결국은 전쟁이다. 하지만 조선은 사신을 살려보냈다. 더불어 자신들의 사신도 보내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들어 도적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이것이 공식적인 조선의 입장. 하지만.
“군대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앞에선 적대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뒤로는 군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빠르게 물자를 국경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
“어디가 목표일 것 같나?”
“육로로는 함흥. 바다로는 나진을 목표로 삼을 것 같습니다.”
“흠.”
가신들의 보고를 받으며 신유성은 고민했다.
‘어떻게 요리해야 유리할까?’
조선과 사생결단을 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조선 말고도 상대해야 할 자들은 많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승리를 이루어야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진다. 사람들이 충성하게 되고 원정을 가는 것에 긍정적이게 된다.
“명에는 사신을 보내지 않은 건가?”
“보내지 않았습니다.”
중재를 요청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이때, 이지번이 나서서 간청했다.
“주군! 부디 조선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전쟁을 치르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지번은 깨달았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했다.
“조선 왕실과 왕실의 편을 든 사대부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자비는 없다.”
“허면! 소신에게 조금만 맡겨주십시오!”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단숨에 목을 치는 겁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전쟁을 지휘하는 머리를 잘라내는 것이 가장 빨랐다. 머리가 없으면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그렇게 되면 조직적인 저항은 줄어들게 된다.
이지번은 조선 왕실과 사대부를 단숨에 쳐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법은 있나?”
이지번은 켄을 슬쩍 바라보았다. 군사에 대해서는 이지번보다 켄이 훨씬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법이라면 있습니다.”
켄은 자신의 방법을 설명했다. 적의 심장을 쳐내고 손발을 묶는다.
“나쁘지는 않군. 그리 하라.”
허락이 떨어지자 가신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기오창가와 타이란에게 명령이 전해졌다.
“니칸와일란을 치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타이란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드디어 조선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그리고 다음 수순이라면 당연히 다른 여러 부족, 그리고 명나라였다.
엄청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마구 벌렁거렸다.
“전사들을 모아라!”
정벌의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낀 타이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좋구나.’
차가운 바람이 전혀 시리게 느껴지지 않았다.
뜨거운 심장이 모든 것을 녹여냈다.
한편, 같은 명령을 받은 기오창가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드디어 때가 되었다!”
숙적과도 같은 니칸와일란을 쳐내고 건주를 하나로 통일할 기회가 왔다. 지금까지는 명나라의 분열 정책 때문에 여진은 하나로 힘을 모으지 못했다. 만약 여진이 하나로 힘을 모았다면 원나라의 영광은 벌써 재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는 초원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속적인 분열책을 이용했다.
하지만 현재 명이 약해진 틈이 최대의 적기였다.
연속으로 이어진 황제들의 삽질과 알탄 칸 때문에 명나라는 많이 약해진 상황.
여기에 신유성이 뒤에서 지원해주고 있었다.
‘해서와 힘을 합친다면 어려울 것 없다.’
원래라면 진정한 여진의 주인을 가리는 일이 남게 된다. 하지만 신유성의 밑에 있는 이상 서로 싸우는 것은 금물이었다.
‘이번에 잘하면.......’
건주를 통일하고 더 나아가 더 좋은 땅에 정착할 수도 있었다. 신유성의 명령을 전한 전령은 체첵의 편지도 가져다주었다. 체첵의 편지에는 신유성이 먼 곳에 또 다른 영역을 점령했다는 소식이었다.
체첵이 전한 것은 편지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향신료와 키나 나무껍질이었다.
‘이것이 학질의 치료제.’
만약을 대비해서 보낸 것이었다. 기오창가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울러 향신료에 대한 욕망이 치솟았다.
‘주군과 함께 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유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좁은 곳에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기오창가의 마음은 어느새 신유성에게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기오창가에게도 전해진 것이었다.
‘신국이라. 좋은 이름이야.’
새나라. 신나라. 신국.
기오창가는 신국의 선봉이 자신이란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공을 세워 계속 나아간다.’
세계를 향한 질주가 기오창가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말들이 모였다. 수는 7만.
기오창가와 타이란이 모은 정예 전사들의 숫자였다. 두 사람은 신유성과의 거래에서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력은 곧 전사의 숫자로 이어졌다.
“내가 더 많군.”
타이란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의 전사가 5만이었다.
“그래도 선봉은 나다.”
“그래? 하지만 선봉은 양보하고 싶지 않군.”
“싸우자는 건가?”
“그건 해선 안 될 일이지.”
예전이라면 싸웠다. 하지만 신유성의 휘하에 있는 상황에서 싸우는 것은 어려웠다. 신유성이 특별히 허락을 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제멋대로 싸운다면 신유성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럼 따로 싸우는 건 어떤가? 더 많은 공을 세운 쪽이 이기는 거다.”
“그거 좋군.”
따로 뭔가 걸지는 않았다. 경쟁에 걸린 것은 부족의 자존심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기 성립이 알려지자 부족의 전사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뒤진다는 것은 약자라는 의미.
약자의 삶은 언제나 가혹하다. 그것을 알기에 전사들은 최선을 다하겠다 마음 먹었다.
“그럼 가도록 할까?”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전사들을 바라보았다. 전사들은 털옷 위에 모두 같은 색의 조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붉게 물들인 옷은 모두 하나의 군대라는 통일감을 안겨주었다. 적어도 전장에서 아군을 혼동할 일은 없어 보였다.
“가자.”
기오창가와 타이란의 부대는 달리기 시작했다. 7만의 기병이 달리자 초원이 뒤흔들렸다.
거칠게 달리는 말의 숨소리. 말발굽 소리.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며 심장 박동을 더욱 빠르게 했다. 전사들의 마음은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하나로 녹아들었다.
전투를 향한 흥분.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누군가 길게 소리를 내지르자 하나둘 이에 동참했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추운 겨울의 공기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흥에 겨운 전사들은 그렇게 니칸와일란의 부족이 있는 곳을 향해 진격했다.
한편, 신국군의 진격을 알아차린 니칸와일란은 당혹스러웠다.
‘젠장, 하필 이럴 때에!’
조선의 도움으로 전투 준비는 이미 끝나있었다. 그리고 출격하려고 했다. 함경도를 향해. 그런데 의외의 걸림돌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대로 떠난다면 끝이다.’
출정은 뒤로 미뤄졌다. 본거지를 털리게 놔두고 가자고 해봐야 따를 전사는 없었다.
결국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상대의 숫자가 문제였다.
니칸와일란의 병력은 총 4만. 박박 긁어모은 숫자였다. 반면 신국군은 훨씬 더 많았다.
‘싸운다면 질지도 모른다.’
정확한 수가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어느 정도 될 거란 보고만 올라왔을 뿐. 대충 본 숫자가 약 5만이었다. 덧붙이는 말에는 5만을 넘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후퇴도 불가능했다.
후퇴하기 위해서 함께 움직인다고 해도 기병이 아니면 이동 속도가 느려 따라잡히게 된다.
그러니 싸워야만 했다.
“이곳에서 매복한다.”
니칸와일란은 언덕을 이용해 매복하기로 했다.
“전방에 매복 가능한 지형이 보입니다.”
“살피고 와.”
니칸와일란의 매복은 금방 발각 당했다.
“얕은 수를 쓰는 군.”
매복이 실패하자 뒤로 슬쩍 물러나는 니칸와일란의 병력을 보며 기오창가는 비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저!”
타이란의 병력이 먼저 뛰쳐나갔다.
“가라!”
질 수 없었다. 누가 더 큰 공을 세우느냐 하는 순간. 이미 숫자에서는 앞서가니 진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쏴!”
니칸와일란의 병력은 활을 쐈다. 타이란 부대의 전열에 피해자가 조금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미 널리 분산된 타이란의 부대는 니칸와일란의 부대를 포위하듯이 끼고 돌았다. 그리고 화살이 날았다.
기오창가의 부대도 타이란의 부대와 합류했다.
완벽하게 니칸와일란의 병력을 가운데 포위하고 사방에서 화살을 날려대니 순식간에 피해가 쌓이며 병력이 줄어들었다.
“돌격!”
잠깐 머뭇거린 틈에 생긴 피해는 엄청났다. 벗어나지 못하면 끝이었다. 그렇기에 돌격을 명령했으나 소용없었다.
괜히 기마민족이 아니었다.
말을 타고 하는 싸움에 익숙했다. 니칸와일란과 그의 병력도 대단했지만 타이란과 기오창가의 병력은 더 대단했다.
신유성과의 거래를 통해 정예 중에 정예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보급도 훌륭했으며 훈련도 자주 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삶이 윤택해지니 정예병들의 실력은 더욱 높아졌다.
보통은 게을러지기 마련이었으나 은근히 퍼진 소문 때문이었다. 언젠가 신유성을 따라 원정을 가게 되면 크게 한 몫 잡게 될 거라는 소문이었다.
원정에 따라가서 거금을 벌고도 죽게 되면 한 푼도 쓰지 못한다. 정말로 원통한 일이다. 그러니 죽지 않기 위해 훈련에 몰두했다.
“더 빨리!”
니칸와일란은 속도를 높였다. 활을 쏘았다. 그러나 포위는 풀리지 않았다. 니칸와일란의 병력이 돌진하면 기오창가와 타이란의 병력도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포위망을 유지했다.
‘동시에 끊어야 한다!’
“셋으로 나눈다! 돌격!”
니칸와일란은 셋으로 부대를 나누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격하도록 했다.
“죽어라!”
“어딜!”
병력이 나뉘어 돌격하니 포위망은 풀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숫적 우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돌격을 하며 누적된 피해로 병력이 빠르게 줄어든 탓이었다.
“젠장!”
니칸와일란은 다른 두 부대에 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흩어진 이상 흩어진 부대의 지휘관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다.
‘제발 이쪽으로 와라!’
신국군도 어느새 셋으로 나뉘었다. 허나 수적 우위는 계속 유지되었다. 하지만 셋으로 나뉜 이상 빈틈은 존재했다.
‘빨리 이쪽으로!’
흩여졌다가 모이면서 삼등분 된 신국군을 차례로 공격해 각개격파를 하려는 것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전투 도중에 적은 숫자의 병력을 가지고 우위를 만드는 시간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니칸와일란의 기대와 달리 흩어진 다른 두 부대는 기대에 응해주지 못했다.
“빌어먹을!”
결국 모두 죽게 생기자 니칸와일란은 도망쳤다.
그 뒤를 신국군은 맹렬하게 뒤쫓았다. 공을 세울 기회를 놓칠 이들이 아니었다.
“죽여라!”
드넓은 초원에서 도망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니칸와일란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사로잡히거나 목이 베였다.
니칸와일란은 최후까지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은 낙마였다.
가슴에 꽂힌 화살이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의 승리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승리한 신국군, 기오창가와 타이란의 부대는 니칸와일란의 부족을 모조리 사로잡아 노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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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