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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의 전쟁
“이건 못 먹겠어요.”
“그럼 놔둬. 나 혼자 먹을 테니까.”
소녀들은 결국 고추를 멀리 했다.
이번에 신유성이 만든 것은 바로 떡볶이였다. 기억의 떡볶이처럼 붉은 것은 아니었다. 말라카에서 가져온 고추는 너무나 매웠다.
손톱 정도만 잘라서 커다란 냄비에 넣었는데도 매운 맛이 확 느껴질 정도.
기억처럼 붉게 만든다면 목숨이 위험한 독극물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이 만든 떡볶이는 하얀 색이었다.
색만 보고 무심코 먹다가는 매운 맛을 볼 수 있는 떡볶이.
“한 번 먹어보지?”
신유성은 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
“큭!”
매운 맛을 본 가신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무도 뱉지 않았다. 신유성이 태연하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삼킨 뒤 물을 마셨다.
‘대단하시다! 이것은 무슨 수련인가?’
몇몇은 신유성의 모습에 감탄했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달라보였다.
“후우!”
땀을 흘리며 먹은 신유성은 피식 웃었다.
‘좋구나.’
자극적이었다. 그렇기에 좋았다. 심심한 이 시대를 살아가려니 자극이 많이 필요했다.
“보고 하도록.”
간단한 요기 이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여진족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정리 되었다. 이젠 완전히 통일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명나라에 알려지진 않았나?”
“알려졌을 겁니다.”
“뭐, 알려져도 상관없다. 그쪽에서도 넘어오진 못할 테니까.”
문제는 거래가 끊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신유성이 왕으로 봉해지며 거래가 끊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도독이었을 때는 명나라의 군인이라는 이유로 자유롭게 배를 오가게 했지만 왕이 된 이상 해금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눈속임을 한다면 가능하지만 만약 명나라에서 간섭을 해온다면 상거래 자체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터는 수밖에 없지 뭐.’
일본 영주들이 자유롭게 약탈하도록 놔주면 끝이었다. 아니, 약탈을 하도록 부추기면서 항구 이용료를 받을 생각도 있었다.
사략 행위를 권장할 생각도 있었다.
“조선은 어떻게 하고 있지?”
“아직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조선을 공격할 준비는?”
“거의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을 공략하는 것은 이지번에게 일임했다. 신유성이 나서기 전에 이지번이 해보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빨리 결과를 보았으면 좋겠군.”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신유성은 곧바로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원정에서 돌아온 뒤 하지 못한 일이 상당히 쌓여 있었다. 우선 포르투갈 포로들의 처분이었다.
“남만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얌전합니다.”
“그들을 북해도로 보낸다.”
북해도에는 미구엘이 있었다. 미구엘이라면 포르투갈 포로들을 잘 활용할 수 있었다. 복잡한 일을 시키려면 말이 통해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단순 노동 이외에 시키는 것이 어렵다.
포로들을 처리한 이후에는 말라카에서 따라온 학자들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진은 이들에게 굉장히 추운 곳이었다.
“많이 추워했습니다.”
“옷을 더 주고. 최대한 편의를 봐줘. 그래도 버티지 못한다면 돌려보낸다.”
학자들이 오래 머무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아랍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많은 이들이 배우는 것이 좋았다.
‘못 버틴다면 어쩔 수 없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의 체질을 억지로 개조하는 것은 신유성에게도 무리였다.
약초와 의서들은 이지함이 전부 가져가서 보는 중이라 따로 정리할 것은 없었다. 다른 책들은 잘 모아서 서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향신료들이 남았다.
“향신료들은 요시시게를 통해 일본 영주들에게 알리는 편이 좋겠군. 반은 큐슈로 보낸다.”
개인적인 일을 모두 끝내자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이건?”
“주군의 친구분께서 만드셨습니다.”
“친구?”
가신의 설명에 신유성은 김종수를 떠올렸다.
“그가 여기 있다고?”
“불러올까요?”
고개를 끄덕이려던 신유성은 손을 흔들었다.
“됐다. 검을 다오.”
검집에서 검을 빼자 모습을 드러내는 검신. 차가운 칼날 위에 흐르는 광택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명검이군.”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함께 놀던 나이 많은 친구. 그때는 서로 신분이 비슷했다.
중인의 자식.
하지만 이젠 달랐다.
왕과 평민.
친구라고는 하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존재했다. 이것은 신유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친구인 김종수의 신분을 끌어올려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김종수는 신유성과 대등해질 수 없었다. 김종수가 왕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결국 대등한 상황에서 마주할 수 없었다.
친구가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직접 만나게 된다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왕과 백성으로 갈라질 것 같았다.
그러니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우정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답례는 하지 않는다. 나 없는 동안에 치료를 받았었다고 했으니 검은 그 값으로 받는다고 전해라. 그리고 언젠가 세계 최고의 장인이 돼서 꼭 날 돕기 바란다는 말도.”
“알겠습니다.”
신유성은 검을 들고 수련에 들어갔다.
이지번은 켄에게 부탁해 정예병들을 추렸다. 정예병들은 모두 상인으로 신분을 감추고 조선으로 스며들었다.
조선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정보 조직 덕분에 침투는 너무나 쉬웠다.
‘아직도 거래를 하고 있다니.’
조선에서는 신국의 상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사를 치르기 전에 경계를 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며 중요한 순간에 한꺼번에 잡으려 하고 있었다. 허나, 이러한 수는 이미 다 읽히고 있었다.
이미 돌아선 조선의 상인들이 물어다 주는 정보는 매우 정확했다.
‘일이 쉽게 풀리는 군.’
상인들이 아직도 운신이 가능하다면 일은 쉬웠다.
이지번은 끊임없이 정예병들을 조선에 침투시켰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한양의 곳곳에 숨어있게 했다.
‘명분을 얻게 되면 바로 친다.’
죽여야 할 자들을 기록한 살생부도 작성했다.
‘독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신유성이 나서게 된다. 그리고 신유성이 나서면 얼마나 많으 이들이 피를 흘리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주군은 성인군자는 아니시다.’
패왕에 가까웠다. 만약 전쟁을 하게 된다면 우물쭈물할 성격이 아니었다. 조선이 전쟁을 벌일 기미를 보이자 바로 여진족을 이용해 조선과 동맹을 맺었던 부족을 박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해.’
피를 덜 흘리기 위해 이지번은 이를 악물었다.
“허어! 대체 왜 소식이 없는지!”
윤원형은 애간장이 탔다. 나진을 치기 위해 준비는 거의 다 마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니칸와일란이 이끌 기병들이었다.
기병이 있어야 빠르게 장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니칸와일란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똥줄이 타는 느낌이었다. 시일이 늦으면 늦을수록 조선의 힘은 빠지게 되어 있었다. 신국의 상인들 덕분에 부는 쌓이고 있으나 이는 모두 상류층에만 집중된 것.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힘들 뿐이었다.
위에서 아무리 재산을 불리고 발전을 해도 밑에까지 내려오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민심 이탈이 빨라지고 있었다.
힘이 더 약해지기 전에, 딴 생각하는 놈이 나오기 전에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 놈만 죽이면 되는데!’
신유성만 죽이면 만사형통이었다. 구심점이 사라지면 끝이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자식도 없었다.
암살자를 여러 번 보내려고 했었지만 쉽지 않았다. 목표를 밝히는 순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암살자들이 윤원형이 심부름 보낸 자의 뒤를 밟기도 했다. 결국 보안을 위해 뒤를 밟은 암살자들은 모두 처리해야만 했었다.
“강 건너로 보낸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어서 불러와라!”
초조하게 마당을 서성거릴 때 심부름 보냈던 자가 왔다.
“어찌 되었느냐?”
“니칸와일란은 죽었습니다.”
“뭣이?”
“여진족들끼리 싸웠다고 합니다. 패배한 니칸와일란은 죽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니칸와일란이 그저 그런 수준의 작은 부족을 이끄는 족장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니칸와일란의 병력은 상당한 수를 자랑했다. 비슷한 수준이 아니고서는 자웅을 겨루기 힘들다는 것이 윤원형의 생각이었다.
“건주와 해서가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뭔가 있습니다.”
“설마?”
그제야 윤원형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놈이 여진과 손을 잡았나?’
그렇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명에 알릴까?’
명나라에 알린다면 어쩌면 신유성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반대로 신국을 쥐고 흔들 수도 있었다.
조선에 비하면 역사가 상당히 짧은 신생 국가가 바로 신국이었다. 강력한 군주의 영향력으로 잘 나가고 있지만 명나라와 적대하게 된다면 불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섣부른 모함은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물증이 없다.’
여진족과 내통했다는 물증이 없으면 소용없었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제가 이야기를 듣고도 신유성 편을 든다면 물증이 있어도 소용없었다.
‘젠장!’
막막했다. 믿었던 패가 사라졌다. 이젠 정말 힘겨운 싸움을 하게 생겼다.
‘어쩔 수 없지.’
윤원형은 먼저 군자금을 더 마련하기 위해 신국의 상인들을 잡기로 했다.
“드디어 움직였습니다.”
“사람은?”
“구출했습니다.”
조선이 드디어 신국의 상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아들인 상인들은 모조리 구출되었다.
재물은 함께 움직이면 느려지니 오직 사람만 구했다.
“일단 숨어 있도록 하고.”
침투해 있던 지휘관은 미소를 지었다.
“우린 궁으로 간다.”
한양 인근에 숨어있던 신국의 병사들은 새벽이 오기 전,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 아직 추운 겨울이라 해가 없어 어두운 시각이었다.
신국의 병사들은 달빛에 의존해 빠르게 이동했다.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든든하게 속에 받쳐 입은 덕분이었다.
장애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궁 앞에 도달하자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창을 겨눴다.
“웬 놈들이냐!”
신국의 병사들은 말 대신 무기로 답했다.
순식간에 무기가 번뜩이자 보초를 서던 병사들은 쓰러졌다.
“가자.”
성문을 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빨리 왕을 잡는다.”
신국의 병사들은 빠르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중간에 가로막는 자들은 모조리 베어버렸다.
“역모다!”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이들은 역모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빨리 움직여!”
저항은 꽤 강했다. 하지만 신국의 병사들은 강했다. 더 긴 창을 비롯해 쇠뇌와 활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궁 안에 지키는 병사가 많다고 해도 이들은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신국의 병사들은 대나무 폭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척탄병들이 불을 붙여서 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밀집된 곳으로 던지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궁 안에서 폭탄까지 쓰며 신국의 병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직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명종을 비롯한 왕가의 사람들을 모조리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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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