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5 / 0271 ----------------------------------------------
신국의 전쟁
왕족들을 사로잡았다고 전쟁이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사라지면 지방의 군사들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는 일은 흔했다. 오히려 복수를 천명하며 신유성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도 있었다.
진압 못할 존재들은 아니었으나 전쟁을 오래 끌면 낭비가 심해진다. 낭비가 심해지면 결국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이지번은 이를 막기 위해 작전을 세웠다.
“시작한다.”
각 지방의 수영의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신국의 함대는 동시에 움직였다. 봉화는 올라오지 않았다. 조선의 전령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약속한 날의 거사.
시간이 되자 신국의 함대는 움직였다.
각 지역의 수영을 동시에 타격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리 작전 시간을 정해두었기 때문이었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장수들을 사로잡자 조선 수군은 쉽게 항복했다. 전문적인 군인이 아닌 탓이었다. 정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저 군역 때문에 나와서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이런 부분은 장수들이 사기를 진작 시키면서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결국 모두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했다.
빠르게 수영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작전은 계속 되었다.
각 지방의 지방관이 있는 곳에서도 작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빠르게 지방의 지주들을 토벌했다.
병사들의 숫자는 적었으나 제대로 무장도 하지 못한 이들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은 지주들이 잡혀간다고 해서 난리를 치거나 하지 않았다. 불안해했지만 신국의 병사들이 안심시켜주었다.
“우린 신국의 병사들이다. 앞으로 당신들은 신국의 백성이다. 걱정할 것 없다.”
신국의 백성이란 말에 기회주의자들은 잽싸게 도울 일이 없는지 붙었다. 신국의 소문은 이지번에 의해 여기저기 퍼진 상태였다.
신유성이 함경도에 세운 나라라고.
함경도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각 지역의 양반들이 반항을 하긴 했으나 소용없었다.
“반항하면 구족을 멸문시키겠다!”
대규모 작전에 의해 조선은 빠른 시간 안에 무너졌다.
이는 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덕분에 거둘 수 있는 결과였다.
“전하, 끝났습니다.”
전쟁 준비는 길었다. 그러나 전쟁은 짧았다.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 머리를 잘라냈다. 손발을 잘랐다.
지방을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조선에 깔린 상인들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불온한 움직임은 속속 제압되었다.
이지번의 보고는 만족스러웠다.
“수고했다.”
“부디 손을 더럽히는 일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만나보고 정할 일이다.”
명종을 비롯한 조선 왕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지번은 신유성이 손을 쓰지 않기를 원했다. 사리사욕에 물든 양반들이야 강하게 찍어 누르면 신유성을 따르겠지만 학문을 목숨처럼 여기는 양반들은 오히려 죽음을 택할 뿐이었다. 혹은 아예 은거해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고 다시 기회를 노릴 수도 있었다.
때문에 이지번은 신유성이 명종을 비롯한 왕가를 살려두길 원했다. 어딘가 섬에 가두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을 빠르게 장악하려면 이지번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신유성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봐서 정한다.’
빠른 안정은 물론 좋다. 하지만 빠르게 안정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약하기 때문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후일 강해졌을 때 뒤통수를 친다면 오히려 손해가 막심해진다.
앞으로 조선을 중심으로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사리사욕에 물든 놈들이 더 다루기 쉽지.’
물질문명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맛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편리함을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다.
사리사욕에 휘둘리는 인간은 이익을 나누는 한 함께 할 수 있다. 가끔 과하게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이 나오지만 그런 자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념으로 가득 찬 이들은 유용하면서도 다루기가 힘들다.
이지함이나 이지번만 해도 그랬다. 백성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두 사람도 얻을 수 없었다.
무엇인가 욕심이 있고 욕구가 있다면 그것을 주면 된다. 거래하면 된다.
그러나 군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뭉친 광신자들은 그게 안 된다.
“가자.”
신유성은 일단 명종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명종은 포박 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조선의 왕이었으니 그에 맞는 예우를 하는 것이었다. 허나, 명종은 낮은 곳에 위치한 초라한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반면 신유성은 높은 곳에 앉아 명종을 내려다보았다.
‘크윽!’
수치심을 느낀 명종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에는 포박된 조선의 조정 대신들이 있었다. 왕가의 가족들도 있었다.
한 명씩 만나기보다 모두 한꺼번에 보도록 한 것이었다.
궁 안이 아닌 한양에 있는 넓은 장터를 비운 자리에서.
다른 양반들도 보고 있었고 백성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궁궐 속에 살던 명종이 초라한 행색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묘한 감흥을 느꼈다. 웅성거림이 있었다.
신유성은 시끄러워지는 것을 방관했다. 사람들이 계속 떠들게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명종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언제까지 수치를 안겨줄 셈인가!”
명종의 외침에 주변은 금방 조용해졌다. 병약한 명종이었으나 분노는 강한 힘을 안겨주었다. 허나, 아무리 살기등등한 분노를 뿜어내도 신유성에게는 닿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어려서 암살의 위협도 당해보고 전투도 하면서 사람의 살기를 코앞에서 마주했던 신유성에겐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분노였다.
“죽여라!”
“그러면 그대의 가족들과 신하들 그리고 양반들은 어찌할까?”
명종은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이들의 명종의 입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찌하면 되는가? 내가. 내가 머리를 숙이면 살려주는 것인가?”
“아니.”
신유성은 일어나 검을 뽑았다. 김종수가 만들어준 명검은 겨울 햇살을 받아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그대로 인해 고통 받은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뭐?”
“그대와 그대의 식솔들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은 고통 받았다. 수탈을 당했고 편안히 살지 못했다. 그 죄는 어찌 할 셈인가?”
“나는 조선의 백성을 위해 살았다!”
“과연 그럴까?”
신유성이 손짓하자 매화가 자료를 가져왔다.
“여기에 네 어미와 숙부가 해먹은 것이 소상히 적혀 있다. 또한 그들이 패당을 지어 저지른 패악도.”
명종을 향해 종이를 던지자 사방으로 흩날렸다.
“모함하지 마라!”
“모함이라고? 거정. 내가 모함하는 건가?”
“아닙니다.”
신유성의 뒤에 서 있던 임거정은 험악한 얼굴로 명종을 노려보았다.
“여기 이 사람은 한 때는 그대의 백성이었다. 백정이었지. 기억할 것이다. 한 때는 잡으려고 난리쳤었으니.”
임거정의 과거가 알려지자 장터에 모여 있던 이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네 놈이!”
“내가 시킨 거냐고? 물론 아니다.”
“주군을 욕하지 마라. 네 놈 때문에 살기 힘들어진 이들과 뜻을 모아 저지른 일이다.”
“거짓말!”
한 쪽에 가만히 있던 윤원형이 독기어린 표정으로 외쳤다. 어떻게 해서든 신유성이 임거정과 결탁한 무뢰배라고 알려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군. 저 자의 이빨을 몇 개 부러트려라.”
명이 떨어지자 임거정은 활짝 웃으며 윤원형에게 다가갔다.
“네 네놈! 감히 천한 백정이!”
주먹이 휘둘러졌다. 윤원형의 입술이 터졌다. 이빨이 피와 함께 차가운 땅바닥에 떨어졌다.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엎어진 윤원형의 뒤통수를 툭 친 임거정은 다시 신유성의 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곧 수군거렸다. 양반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백성들의 표정은 달랐다.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윤원형의 패악이 심했기에 그가 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불쌍하게 여기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 한 대 맞은 놈이 저지른 패악은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신유성은 백성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백성들 사이에 숨어있던 신유성을 따르는 상인 하나가 외쳤다.
“맞습니다!”
이어서 다른 방향에서도 똑같이 숨어 있던 이가 외쳤다.
외침이 세 명으로 늘어나자 백성들은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신유성은 바람잡이를 이용해 군중심리를 자극한 것이었다.
“쳐 죽일 놈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외쳤다.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은 신유성이 무엇을 하는지 깨달았다.
‘자극하고 있다.’
백성들을 자극해서 단숨에 민심을 훔쳐가려는 것이었다.
명종과 왕가의 사람들을 처분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몰락한 모습을 보이고 진정한 지배자가 누군인지 알리려는 것이었다.
한양의 백성들의 뇌리에 똑똑히 새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어찌 이리 모욕을 준단 말입니까!”
포박된 이들 중에 한 명이 외쳤다.
“그대의 이름은?”
“이황이라 합니다!”
거물이었다. 퇴계 이황은 사림의 거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림의 거두라고 해서 신유성은 특별대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도리라 했는가? 무엇이 도리인가?”
“한 때는 섬기던 임금을 이제 와서 이리 모욕을 주는 것은 저잣거리의 모리배들이나 할 짓입니다! 도리를 안 다면 어찌 이리 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나 또한 왕이다. 그리고 나를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었고. 그런 자에게 내가 도리를 다 할 이유가 있는가?”
“모함이오!”
“모함이라. 참 편리한 말이군. 불리해지면 무조건 모함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날 의심하게 될 테니까.”
신유성은 이죽거리며 명종을 바라보았다.
“그대에겐 충신이 있군. 다른 놈들은 입 다물고 있는데.”
명종은 답하지 않고 신유성을 노려보기만 했다.
“하지만 충신이 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그대는 어찌 죄값을 치를 것인가?”
신유성의 질문에 명종은 계속 답하지 않았다.
“네 이노오오오오옴!”
대신 문정왕후가 노성을 질렀다.
“어찌 이리도 무도하단 말이냐!”
“아녀자가 나설 차례가 아니다.”
“네 놈이 감히 나를 능멸하려 하느냐! 오냐 어디 해봐라! 하늘이 네 놈의 죄를 알 것이다!”
“그래, 하늘이 네 년의 죄를 알고 있지.”
신유성은 검을 뽑아들고는 문정왕후에게 다가갔다.
“이, 이놈!”
검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에 문정왕후는 덜덜 떨었다. 진정하려 했지만 신유성의 모습이 워낙 살기등등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간 신유성은 검면으로 문정왕후의 볼을 툭 건드렸다.
“한 번만 더 나설 때를 가리지 못하고 날뛴다면 베겠다.”
문정왕후가 조용해졌다. 양반들은 신유성의 행동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겐 자신들이 우러러보던 왕족보다 더 강한 강자로 보이고 있었다.
“어찌 이러는 것입니까? 망나니라도 될 셈입니까!”
이황은 절규했다. 신유성을 도발했다. 망나니는 조선에서 천대 받는 직종이었다. 백정은 그래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망나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에 천대 받았다.
신동이라 불렸던 신유성이라면 망나니란 소릴 듣기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외쳤다.
“어릴 때 적을 베었다. 이 손으로 직접.”
신유성은 이황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망나니가 못 될 것도 없지.”
이황은 더 따지지 못했다.
‘이 자는!’
신유성의 말은 백성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설마? 정말 우릴 위해서 그렇게까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신유성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말.
‘거짓말이라도 좋다.’
자리에 있던 백성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군중 심리란 무서웠다. 누군가 행동하자 곧 그대로 따라했다.
오직 신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양반들과 유생들이 꼿꼿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황은 자신까지 이용하려는 신유성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해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생각으로 가득해보였다.
‘신동이라더니.’
이황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신유성은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하지. 날도 추우니 내일 다시 나오도록.”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