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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96화 (9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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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의 전쟁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선의 마음을 꺾을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그런.......”

이지번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에게 대놓고 하지 말란 말을 하지 못했다. 신유성의 행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에게 직접 자신의 강함을 각인시키고 계신다.’

단순히 죽이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을 결정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신유성은 지배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조선의 왕을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대는 이 땅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도록.”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조선의 조정과 같이 하시겠습니까?”

목적에 따라 행정의 구조는 변하게 된다. 이지번이 아무리 일을 잘 한다고 해도 신유성이 기본적인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조선은 그대에게 맡기지.”

“네?”

“영주들처럼 그대에게 맡기겠다는 거다. 날 배신하지 않는 이상 그대를 끌어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쿵.

이지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무슨?’

과거 신페이가 느꼈던 감동을 이지번도 느끼고 있었다. 조선은 작은 영지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나라였다. 그런데 그것을 다스릴 기회를 신유성이 쥐어주었다.

“이 땅의 백성을 위한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뜻을 펼쳐봐라.”

어깨를 툭 치며 신유성은 발길을 돌렸다. 신유성의 등을 보던 이지번은 무릎을 꿇고는 절을 올렸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지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음 날, 신유성은 다시 명종과 왕가 사람들 그리고 조선 조정의 대신들을 장터에 끌어냈다. 예전에는 이런 행동에 의문을 품었던 이지번은 이제는 평온한 눈을 하고 지켜보았다.

진실과 거짓을 섞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양반들도 있을 터였다. 허나 그것을 지적해봐야 소용없었다.

이미 신유성에게 기울어진 마음을 품은 백성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만약 신유성의 행동을 비방한다면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화를 낼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지번은 그저 신유성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명종에게 수치를 안겨주는 행동은 불편했으나 이젠 신유성의 신하였다.

‘주군의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신유성이 자신에게 조선을 맡기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순전히 호의는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뜻을 펼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받은 것이 크니 그만큼 돌려주어야만 했다. 은혜를 갚아야 했다. 이것이 이지번의 사고방식이었다.

“아직 그대를 어찌할지 정하지 못했다. 죄가 크나 무슨 벌을 내려야 할까?”

신유성은 계속 이죽거렸다. 한 쪽에선 포박 당한 대신들이 이를 악무는 모습이 보였다. 신유성은 전날과 같이 명종의 죄를 계속 떠들었다. 그리고는 돌려보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셈이냐?”

신유성이 돌아가기 위해 돌아서자 명종이 외쳤다.

“어제 말했을 텐데? 죽을 때까지라고. 수치 속에 죽어라.”

그제야 명종은 신유성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게 그런 의미였다니.’

죽을 때까지 수치를 주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포박하지 않고 일정한 자유를 주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명종은 끌려가는 자신의 가족과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명종에 대한 대접은 좋았다. 방에서 편히 먹고 자게 해주었다.

시중을 드는 하인도 붙여주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모두 옥에 가두었다.

잠깐 얘기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계속 살 수 있었다. 그냥 먹고 자고 잠시 욕 좀 먹으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이었던 명종은 버틸 수 없는 생활이었다.

드높은 자긍심에 금이 갔다.

‘그래, 죽겠다.’

방 한 쪽에는 줄이 놓여 있었다. 왜 놓여있었나 의아해했는데 이제 용도를 알 것 같았다.

‘빌어먹을 놈.’

명종은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목을 맸다.

“너희들의 왕이 자결했다. 이제 정해라. 순순히 신국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신유성은 조정의 대신들만 따로 모아서 소식을 전했다.

“전하아아아아아!”

이황을 비롯한 충신들은 목 놓아 울었다. 다른 이들은 슬프지는 않았지만 대세를 따랐다.

순식간에 곡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신유성은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정해라.”

“차라리 날 죽여라!”

이황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외쳤다. 신유성이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명종만큼은 편히 살다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계속된 괴롭힘에 결국 명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운 것이 많은 자들이니 죽이긴 아까워서 그러지.”

순순히 따른다면 평민으로 풀어줄 생각도 하고 있었으나 저항이 너무 심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온전히 조선의 양반들을 손에 넣고 싶었지만 지나친 욕심이었다.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며 포기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죽겠다면 어쩔 수 없지.”

신유성은 포로로 잡은 이들을 모두 장터로 끌어냈다.

백성들이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설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죽음을 택했다. 나의 적이었으나 마지막으로 선처를 내리려 했다. 허나 이를 거부했다. 그러니 이들의 숨을 내가 직접 끊겠다.”

“주군!”

신유성이 검을 빼들자 이지번이 깜짝 놀라 말리려 했다.

“말리지 마라. 내 백성들에게 말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선 망나니도 될 수 있다고.”

“하오나!”

“내 입으로 말해 다른 사람이 죽이나 내 손으로 직접 죽이나 모두 내 뜻으로 죽이는 것이다. 이들은 나의 적으로 남는다 했으니 내 손으로 죽이겠다.”

신유성은 가장 먼저 이황에게 다가갔다.

이황은 죽음을 각오한 눈으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각오 됐나?”

“죽이시오.”

신유성의 검이 번뜩였다. 눈을 감고 있던 이황은 섬뜩한 느낌에 몸을 움찔했다. 허나 이상했다.

눈을 떠보니 상투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대는 이제 죽었다.”

신유성은 대신들의 상투를 모두 잘라냈다. 그리고 명했다.

“이들은 죄인들이 모두 노비로 삼겠다. 끌고 가라!”

하지만 단 한 명 남겨진 이가 있었다.

윤원형이었다.

다른 이들은 살려 줄 수 있었지만 윤원형만큼은 예외였다.

‘내 등골을 빨아먹으려 했던 놈.’

그리고 죽이려고 했던 자였다.

“이렇게 될 줄이야.”

윤원형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신유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신유성의 검이 번뜩였다. 허나 이번에는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

목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차가운 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은 금방 시들었다.

“듣기 싫다.”

이미 죽은 자에게 한 마디 뱉은 신유성은 벌벌 떠는 문정왕후를 비롯한 종친들을 바라보았다.

‘저 중에 선조도 있겠지.’

허나, 선조는 신유성에게 대항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들 또한 모두 노비로 삼는다.”

고귀한 지위에서 단숨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켜보던 백성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 자신들을 지배하던 자의 추락을 보게 되니 묘한 쾌감을 느꼈다. 충성심을 가진 자들이라면 슬퍼하거나 분노할 일이었지만 실정을 계속하며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지배자에게 동정을 품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철저하게 길들여졌던 이들이라면 슬퍼했겠지만 그런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신유성이 더욱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노비가 된 이황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인가?’

학문을 익히며 뜻을 펼치려 했던 나날을 떠올려보면 너무나 허망했다. 이제부터는 험한 노동을 하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가 되었으니 자식들도 모두 노비가 될 뿐이었다.

‘더 살아서 무엇 하나?’

하지만 죽지 못했다.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미련이 남았다. 아직 제자들에게 해주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대로 죽는 것은 어쩌면 신유성이 원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끝까지 살아서 비참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겠다.’

같은 양반이라면 분노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황은 죽으려던 마음을 접고 살기로 했다. 그리고 강도 높은 노동에 대비해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지만 다음 날 주어진 일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네? 무슨 일을 시키라고요?”

“그들은 글을 아주 잘 아는 집단이지.”

신유성은 조정 대신들에게 곱게 죽음을 내릴 생각이 없었다. 원래라면 고급 인력을 설득해서 신하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을 들였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며 조선에서 먼저 전쟁을 하려 했다.

때문에 계획을 바꿔야만 했다.

‘비효율적이지만 이거라도 시켜야지.’

신유성이 맡긴 일은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은 낭비다. 농사를 지을 사람은 많다. 하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적지.”

그래서 생각한 것은 옥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번역을 비롯한 일을 시킬 생각이었다.

“과로로 죽으라고 그래.”

곱게 죽게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신유성이었다.

이황의 제자들은 치를 떨었다. 자신들의 스승이 노비로 만든 신유성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순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모두 잡혀가니까.

‘스승님!’

그러나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에 결국 어디서 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게 되었다.

‘대체 어디서 일을 시키는 거냐?’

아무리 살펴도 스승은 찾을 수 없었다. 대장간에서도, 마굿간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사람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아, 그 분 집현전에 계시네?”

“네?”

“몰랐나? 이번에 노비가 된 조정 대신들은 모두 집현전에서 일하게 되었다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을 시킨 답니까?”

“듣기로는 옥편부터 새로 만든다던데?”

신유성은 노비로 만든 조정 대신들을 몽땅 집현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책을 만들게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이들도 결국 일에 착수했다.

골방에 가두고 문방사우와 책만 넣어주니 할 일이 따로 없었다.

잠을 자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심심해 미칠 것 같으니 결국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허허.”

이황의 제자들은 신유성에게 품었던 증오가 살짝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신유성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또 알아보고 갔습니다.”

“그래, 계속 알려라.”

정보를 차단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이황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집현전에서 일하게 된 것을 숨기지 않았다. 노비로 만들었지만 힘든 일은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조정 대신들의 일은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왕실과 종친 문제가 남아있었다.

“종친들 중 남자는 모두 농사를 짓게 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빨래를 시켜라.”

먹는 것은 넣어주되 모든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감시였다.

‘불만을 가진 놈은 어떻게든 구하려고 하겠지.’

함정이었다.

아무리 불만이 팽배해져도 불만을 한 곳으로 모을 구심점이 없으면 결국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것이 집단의 분노였다. 때문에 신유성은 덫을 놓았다.

행여나 반란을 일으킬 자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훗날 가끔 덫에 걸려든 이들은 닌자들에 의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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