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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모리 모토나리는 가독을 장자인 모리 다카모토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가문의 실권은 여진히 모토나리가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어쩐다?’
바다 건너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은 모토나리는 공포를 느꼈다. 일본의 모든 무역은 이제 신유성의 신국을 통해서만 이뤄지게 생겼다.
해상에서 이루어지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후지바야시 켄이라는 닌자 출신 제독은 바다의 귀신이라 불리고 있었다. 자국의 배가 아니면 털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떤 면에서는 신유성보다 켄이 더 명성을 떨칠 정도였다.
여기에 북해도의 신페이와 큐슈의 요시시게도 명성을 떨쳤다.
일본의 은을 긁어가는 요시시게.
모든 것이 정체불명인 북해도의 패자 신페이.
일본의 영주들은 켄이나 요시시게보다 신페이를 더 두려워했다. 이유는 북해도가 바로 신유성이 처음 영주가 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북해도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북해도에 들어간 닌자는 행방불명되었다. 시체도 찾지 못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신유성의 모든 힘이 북해도에 있다고 믿는 영주들도 꽤 많았다.
모토나리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북해도와 큐슈만 가지고 있어도 두려운데 신유성은 조선까지 손에 넣었다.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었다.
‘이대로 계속 있어봐야.......’
소모적인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아마고 가문은 아마고 쓰네히사 이후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쫄딱 망한 것은 아니었다. 쓰네히사의 손자인 하루히사가 뒤를 이어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물론 아마고 하루히사는 모토나리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애송이도 아니었다.
소모적인 전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모토나리는 가문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신들의 힘도 그렇고.’
무엇보다 휘하에 있는 유력 가신의 가문들이 완전히 종속 된 것은 아니었다. 모리 가문의 세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호족 연합에 가까웠다. 때문에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여러 영주들이 모여서 한 명의 대영주를 맹주로 세운 형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맹주로 올라선 이가 모토나리였기에 강한 장악력을 보였다.
‘내가 죽고 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모토나리의 그늘에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지 몰라도 모토나리가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강한 자가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터.
일찌감치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이유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모토나리는 알고 있었다.
‘부족해.’
자식들의 능력은 압도적이지 못했다. 준비를 나름 하고 있지만 부족했다.
‘이대로는 안 돼.’
맹렬히 회전하던 두뇌는 자꾸 신국을 보라고 했다. 거기에 답이 있다고.
‘신국.......’
북해도와 큐슈를 생각하던 모토나리는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몰래 신유성에게 밀사를 보냈다.
조선을 꿀꺽한 신유성은 한양을 중심으로 건설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노비로 잡혀있던 이들을 풀어준다. 군역은 없앤다. 대신 1년에 한 번 일주일 동안 군사 훈련을 받는 것으로 대체한다. 아울러 병사가 된 자에게는 녹봉을 지급한다.”
이지번에게 조선을 맡겼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신유성은 조정의 구조를 바꾸고 아예 전문직인 중인들도 고위직으로 오를 수 있게 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이지번은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 또한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은을 이용해 은화를 주조한다.”
군에 녹봉을 지급할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은화를 주는 것이었다. 이를 가지고 상점이든 어디든 가서 교환하게 하는 것으로 화폐를 유통시킬 생각이었다.
“또한 모든 채굴권은 내 것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만 하지는 않았다. 슬쩍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하면서 막대한 부를 선점하기도 했다.
이를 보고 이지번은 피식 웃었다. 반대하지는 않았다. 자고로 왕이 돈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얕보는 법이다. 이지번의 입장에서 신유성이 가난해 신국이 쓰러지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좀 더 챙겨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선을 많이 만들도록 하라. 한 1천 척 정도는 있으면 좋겠군.”
“네?”
“기근이 심하다. 그렇다면 물고기라도 잡아먹어야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쪽에서 듣고 있던 이지함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1천 척은 만들기 힘들지 몰라도 해금령을 따르지 않는 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평저선인 판옥선을 만들어 해안 방어선으로 돌리고 침저선을 만들어 해양 경비선으로 둘 것이다. 그러니 침저선 개발에 힘쓰도록 하라.”
“명심하겠나이다.”
신유성은 배에 대한 주문을 많이 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것이 신유성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배에 대해선 양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상인들이 선박 등록을 할 경우에는 항구 이용을 허락한다.”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였다.
“허나 명에서 이를 어찌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명나라는 신경 쓸 것 없다. 북방은 곧 정리된다.”
명나라가 아무리 거대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산해관을 넘어 조선까지 오려면 한 가지 난관을 돌파해야만 했다.
바로 여진족이었다.
예전이라면 여진족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젠 이야기가 달랐다.
건주여진은 이미 기오창가가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기오창가는 스스로를 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해서여진의 타이란도 칸을 자칭했다. 이 둘이 동원할 수 있는 기병만으로도 산해관을 넘어 공격해 올 명나라 군대를 박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전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명나라 해안선을 탈탈 털 수 있었다. 바다에서는 명나라도 어쩔 수 없는 국가가 바로 신국이었다. 왜구 토벌을 빌미로 강력한 해양 전력을 키워온 덕분이었다.
이지번도 상황을 알기에 겁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신유성의 신하 그 어느 누구도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아직은 상국으로 되어있지만 신유성의 성정을 생각하면 명나라 밑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미 명나라에 침투한 정보원들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명나라는 아직도 부패가 심했다. 엄숭이 버티는 한 명나라는 쉽게 강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명나라의 입장에서 다행이라면 바로 척계광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청교공주를 부인으로 둔 척계광은 부마이기도 했기 때문에 엄숭이 함부로 할 순 없었다. 덕분에 척계광은 척가군을 순조롭게 육성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명나라는 옛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 자리 잡은 알탄 칸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신국으로 쳐들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명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역 단절 정도였다.
“누구든 상회를 운영할 수 있다. 등록하고 세금만 낸다면 누구든 가능하다. 더 이상 돈을 다루는 것을 천하게 여기지 마라.”
화폐를 유통하기 위해서는 상업이 발전해야만 했다.
“그리고 염전을 만든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염전에 대한 것은 이미 연구가 끝난 상황이었다. 신유성이 염전에 대해 언급할 것도 없었다. 이지함은 이미 염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금의 대량 생산은 저장 식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했다.
기근으로 힘든 상황에서 저장 식품의 대량 생산은 매우 중요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그러니 소금의 대량 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어선을 대량으로 만드는 이유도, 염전을 만드는 것도 결국 저장 식품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를 알기 때문에 이지번과 이지함이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농사로 해결할 수 없는 식량 문제를 어업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더 얘기 할 것 있나? 없으면 여기까지 하지.”
신유성은 더 생각나는 것이 없어 일단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쉬기 위해 움직이는데 이지번이 다가왔다.
“주군, 왜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밀사?”
“일단 만나보시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내가 해야 하나?”
신유성은 이지번에게 많은 것을 맡겼다. 군과 원정에 관한 것만 신경 쓰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이지번에게 떠넘기려는 것이었다.
“제 선을 넘은 문제입니다.”
이지번이 자신이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하니 만나야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밀사는 모리 모토나리가 보낸 자였다.
“그러니까 날 섬기고 싶어 한다고?”
“그렇습니다.”
용건은 간단했다. 모토나리는 신국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대신 자신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 밑의 영주가 된다면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지켜야 할 것도 있다.”
우선 신유성은 채굴권의 소유를 주장했다. 아울러 세금에 대한 것도 알렸다. 또한 일정 수의 군대를 주둔시킨다고 했다. 이는 보호한다는 취지였지만 감시의 의미도 있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단숨에 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만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영주라고 했으니까. 대신 영지민들의 거주 이전에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 영지민들이 영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막아선 안 된다.”
외교 문제도 신유성의 권한으로 남겨두었다. 그러자 밀사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받아주십시오.”
“모토나리에게 물어보지 않고 정해도 되는 건가?”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밀사로 온 것을 보면 꿍꿍이가 있군. 날 이용한 대가는 치르라고 전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해본 결과 모토나리가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이 때문이겠지.’
아무리 똑똑한 인간이라고 해도 영원히 살 순 없었다. 영웅이 나를 세웠어도 그 나라가 오래 간다는 보장은 없다. 영웅의 사후, 후계자가 삽질을 하면 나라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후계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계속 이어져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이 후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게 한다. 모토나리는 그것을 위해 신유성을 택한 것이었다.
‘알아서 잘 하겠지.’
영주의 후계 문제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아울러 영지 내부의 문제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문제가 많은 영주라면 언젠가 무너지겠지. 영지민만 빼내면 돼.’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란 이유는 딴 것이 아니었다. 조선을 멸망시킨 것처럼 모리 가문의 영지도 몰락하게 만들 수 있었다.
더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 얼마든지 와서 살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되면 영주라고 해서 영지민에게 함부로 할 순 없게 되는 것이었다.
영지민 없는 영주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빠르게 돌아온 밀사로부터 확답을 얻은 모토나리를 고개를 끄덕였다.
‘은광을 노리고 있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미 은광은 매우 중요한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신유성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아랫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군대를 주둔시켜 준다면 더 고맙지.’
모토나리는 전혀 나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게 보았다. 신유성의 군대가 와 있으면 가신들도 함부로 나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가신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쓴 돈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을 다시 거둬갈 생각이었다.
‘아마고 놈들과 싸울 일도 없어졌어.’
무엇보다 외부와의 전쟁은 신유성에게 몽땅 맡길 생각이었다. 은광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모두 포기한 대가는 받아야 하니까.
외부의 적만 경계하지 않아도 모토나리는 내부 정리를 빠르게 하고 후계자의 권력을 더욱 강화 시킬 자신이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모토나리는 이제는 당주가 된 다카모토를 불렀다.
“할 말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신국의 밑으로 들어간다.”
“네?”
“그렇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아라.”
모토나리는 자세한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다카모토는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간섭이 있지 않겠습니까?”
“약간의 간섭으로 자손대대로 평안히 영주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야심이 있다면 주군의 원정에 참여해라.”
모토나리는 신유성의 근황을 살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신유성은 절대 한반도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함께 한다면 공을 세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더 큰 땅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전쟁이 싫다면 그냥 이곳에 안주해도 되는 거고. 나쁠 것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면 더 큰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포기해라.”
모토나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아마고를 멸망시키고 가신들을 종처럼 부릴 능력이 있다면 신국의 밑으로 들어가리고 한 결정을 철회하겠다.”
“그건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주군께서는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신동에 불과했었다. 영지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지. 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다카모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유성의 성공담은 일본의 영주들에게는 신화와 같았다. 신유성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였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결국 다카모토는 신국의 영주가 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